285화 염탐 (1)
“가지.”
김민수가 알려 준 우회로는 상당히 멀었다.
서울 동쪽을 완전히 휘감다시피 해서 가야 하는 길이었다.
“근데 저것들…… 괜찮을까요?”
구우준이 함께하기로 했다.
그뿐 아니라 거대 개체 셋이 더 있었다.
단순 거대 개체는 아니고, 간단하게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박중 대위는 그런 일행을 보며 속삭였다.
김태평 또한 마뜩잖은 얼굴이었다.
“어쩔 수 없죠. 이 산길을 우리끼리 가는 건 자살 행위예요.”
“산…… 그렇긴 하죠.”
개활지.
그러니까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라드는 솔직히 별 위험이 아니었다.
물론 많은 수의 라드가 뛰어오는 상황이라면야 오금이 다 저려 오겠지만…….
그만한 무리의 라드가 어디 흔하다던가.
좀비가 아닌 생물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작은 규모의 무리가 더 생존에 유리한 법이니.
허나 산에서는 단 한두 마리만 갑자기 나타나서 치명적이었다.
“일단 보호의는 잘 착용했죠?”
“네, 당연하죠. 이제 와서 이렇게 뒤지기는 싫습니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행은 전원 보호의를 착용하고 있었다.
말이 좋아서 보호의지 그냥 질기고 단단한 옷을 입었단 얘기였다.
아직 봄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여름이었다면 단지 이렇게 입는 것만으로도 지켜서 퍼져 버렸을 터였다.
“따라가 봅시다. 밤만 주의하면 됩니다.”
“근데…… 교수님도 꼭 왔어야 했을까요?”
“본인이 너무 오고 싶다고 하는데, 그럼 어쩝니까.”
“이거, 참.”
둘은 대화를 하다 말고 역시나 단단히 동여맨 유현을 돌아보았다.
오예리 그리고 김용일 형사, 이순규와 함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도움이 되긴 할 터였다.
정예 중의 정예니까.
정유현의 직감이나 분석력 또한 알아주는 것이었고.
거기에 더해 김용일 형사는 밖에서 워낙 오랜 시간 버텨 온 사람이다 보니 기이한 방향으로도 사고가 가능했다.
쉽게 말하면 별의별 상황에 대해 임기응변이 가능하단 얘기였다.
“자, 가죠.”
“네.”
하여간, 일행은 이제 산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해가 떠 오기 시작한 시간이니만큼 어둑한 느낌도 있었다.
그만큼 걷기에는 힘들었지만 유리한 면도 있었다.
아직 라드들도 활동하기엔 이른 시간이라는 뜻 아닌가.
자박거리는, 겨우내 삭은 낙엽 밟는 소리만 사방으로 퍼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걸었을까, 갑자기 선두에 있던 구우준이 걸음을 멈추었다.
“라드다.”
어찌 보면 자신들에 대한 멸칭일 수도 있는 말을 하면서였다.
뒤를 돌아보니 이순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대응을 해야 했다.
당장 총을 쏘거나 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총을 쐈다간…….
일단 근처에 있는 라드들을 다 불러 모을 수 있지 않겠나.
거기에 더해 정부 측에서도 무언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될 터였다.
전자와 후자 모두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었다.
해서 일행은 전부 숨을 죽인 채 총구를 사방으로 겨누고 있었다.
“지나가는군. 우리가 너무 많아서 그런가 도망가는데?”
구우준은 보이지도 않는 놈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전에도 느꼈던 것인데…….
확실히 이놈들은 선민의식이 있었다.
다른 라드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다르지. 저놈도 욕심이 나.’
유현은 구우준을 보면서 생각했다.
철창 안에 갇힌 놈의 모습을.
그리고 그에게 이런저런 짓을 하면서 자세한 것을 묻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을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지.’
유현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일행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시금 자박거리는 소리가 산속을 울리고 있었다.
“거의 다 와 가는데…….”
얼마나 걸었을까.
산속을 걷는 일이다 보니 금세 지쳐 가고 있었다.
아무리 원래 체력이 좋았던 사람들이라 해도 사태가 터진 지 1년이 지났다 보니, 그사이 알게 모르게 쇠약해진 탓도 있었다.
물론 구우준이라는 교활한 라드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단순히 싫은 것을 넘어서 위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다들 최선을 다해서 참았다.
다행히 다들 정신력 하나는 뛰어난 사람들이다 보니 그리 어렵진 않았다.
“저기……?”
“그래. 이 밑이 바로 터널이야. 여기서부터는 조용히 움직이는 게 좋지.”
“그렇겠네. 병사들이…….”
“그래도 워낙 트럭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속삭일 필요는 없지.”
구우준이 가리킨 곳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건물들과 그 맞은편으로는 연대측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과 함께 터널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니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승용차가 다니던 길에 오가는 군용 트럭들과 총 든 군인들만 아니었다면 아마 인지하는 것이 훨씬 더 빨랐을 것이 분명했다.
낯익은 풍경 위에 낯선 무언가를 끼얹은 느낌이었다.
우우웅
구우준의 말처럼 트럭들이 꽤 자주 오갔다.
그중에는 빈 것도 있고 꽉 찬 것도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사람들만 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방금은…….”
“먹을 거. 몰랐는데 봄에도 재배 가능한 것들이 있는 모양이야. 아니면 산을 뒤져서 캘 수도 있고.”
“그렇군…….”
나물류가 실려 가는 것을 봤다.
봄나물이라…….
사태 이전이었다면 뭐 늘상 먹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종류의 음식이었다.
일단 산이 너무 위험하지 않나.
그 위험을 감수하고 캐기엔 얻는 보상이 너무 적었다.
허나 그 대상이 노예가 된다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지는 법이었다.
‘잡아간 민간인들을 이런 식으로……. 흐음.’
확실히 이걸 이대로 방기하게 되면 정부의 군세는 훨씬 더 강해질 것이 자명했다.
나물까지 주는데 군인들이 안 몰리고 배기겠나?
당장 수원 측 사람들도 저런 모습을 보면 몰리게 될 것이 뻔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닭에 돼지에…… 미쳤군.”
“모르긴 해도 아마 정부 측 인사들은 사태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을 겁니다.”
평소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유현이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 말에 김태평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가 했던 일이 떠올라서 그랬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훈련한 요원들이 동원된 일이었다.
사태 이후에 살아남은 이들을 찾아 규합하던 일.
우선순위는 군인보다 다른 곳에 있었다.
‘망할…….’
진짜 망해야 할 텐데.
어찌 된 셈인지 정부 측은 점점 더 잘나가고만 있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득이 되냐 아니냐만을 철저히 따져서 그런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가 목숨 걸고 지켰던 국가에 제대로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아니, 이보다 확실한 배신도 없을 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아니라 소를 위한 대의 희생이지 않나.
“어떻게 더 가까이 가지?”
하여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해서 김태평은 상념을 애써 뒤로하고 일어나 구우준에게 물었다.
구우준은 옆쪽 길을 가리켰다.
이화여자대학교 쪽으로 난 길이었다.
“저쪽으로 가야 하는데 아마 중간중간 군인들이 있을 거야.”
“군인들은…….”
“처리해야지.”
“처리하면 근데 의심을 받지 않나? 어차피 탈영으로 생각하나?”
김태평의 말에 유현이 끼어들었다.
“탈영? 상황이 저런데 탈영을 합니까?”
“뭐……. 관계라는 건 복잡한 거니까요. 특혜를 받는 게 좋기만 한 사람도 있겠지만 마음 불편한 사람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줄기야 하겠지만.”
“그건…… 그렇겠군요. 확실히……. 탈영으로 여긴다라.”
“네. 따지고 보면 저도 탈영범입니다.”
김태평은 농담처럼 말하곤 쓴웃음을 지었다.
구우준은 딱히 그러한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놈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여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가지. 조용히 처리하는 건 우리보다 나을 거 같은데.”
“그럴 수 있지. 아예 라드로 만들어 버리면 깔끔할 것도 같네.”
“우리는 그랬지. 발가벗겨서.”
“그래, 뭐…….”
군인들도 잘못이 있을까.
이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말단 병사들도…….
‘이런 생각은 지우자.’
김태평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도 애써 고개를 털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과의 싸움이지 않나.
거기서 이기기 위해서는.
아니, 버티기라도 하기 위해서는…….
이쪽도 어느 정도 인간을 포기해야만 했다.
“누…… 읍.”
김태평과 요원들은 확실히 인간 제압하는 데 있어서는 완연한 스페셜리스트였다.
한 명이 주의를 끌고 다른 한 명이 뒤로 돌아 제압하고.
이미 가야 할 길을 다 계산하고, 그 경로에 있는 이들 중 최소한만 제압하고 이동했기 때문에 시간도 엄청 적게 걸렸다.
그렇게 출발한 지 채 10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일행은 세브란스 병원 맞은편에 있는 건물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군…….”
“군인들이 이렇게 많나.”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 아닙니까.”
유현, 박중, 오예리가 순서대로 탄식했다.
욕이 안 나온 게 다행인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군세였다.
수백에 달하는 군인들이 세브란스 근처를 메우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병원 안쪽까지 다 해서이긴 한데…….
지금 여기 있는 군대만 와도 고터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고야 말 터였다.
‘이상하게 혼란스러운데…….’
그 와중에 김태평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뭔가 지휘 체계가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도 그럴 것이, 군복에 붙은 마크 같은 것들이 나누어져 있었다.
초반에야 보급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지만 자신이 나올 때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그렇다는 건…….
‘김선태가 실각했거나, 적어도 전보다는 확실히 영향력이 줄었어.’
가장 두려웠던 적이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잘된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낯이 익었다.
“어, 저놈!”
외친 것은 구우준이었다.
그가 문 놈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까지 자르면서까지 도망간 놈이었으니까.
“어…….”
방금은 이순규였다.
인상이 좀 달라졌음을 느껴서 그랬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을 겪기는 했다.
개고생이라는 말로도 좀 부족할 만한 사건이 있지 않았나?
하지만 보통 그러면 야위거나 하지 저렇게 되진 않는다.
“얼굴 좋네, 개새끼가.”
김태평은 욕이나 했지만, 이순규 그리고 정유현이 느끼는 것은 좀 달랐다.
“이상한데…….”
“저거 설마 물렸던 건가? 그냥 다친 게 아니라?”
“내가 물었어.”
유현의 말에 구우준이 저도 모르게 답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구우준에게 향했다.
너였어? 라는 말을 애써 참으면서였다.
“뭐? 그럼 진짜로?”
“그래, 내가 물었어. 근데 자르고 도망치더구만……. 대단한 놈이지. 저놈이 라드가 되면 어떨까, 그게 궁금해.”
이어지는 말에 유현은 하고 싶었던 말을 또다시 참아야만 했다.
어쩐지 이놈들이 동맹을 제안했던 동기 중 하나가 김선태의 라드화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랬다.
그가 생각하기에 김선태는…….
‘어쩌면 이미 라드화가 되고 있는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