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적의 적은 우군 (1)
“어떻게 하죠?”
박중 대위의 말에 대령은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커녕 그 또한 이 질문만 되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밖에서 뭔가 날아왔다는 보고를 들은 것이 대략 30분 전의 일.
돌멩이에 종이 뭉치가 매여 있었는데,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부공격. 우리와협력 가능?
내용만 보면 뭐 이렇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정부에 원한 가지고 있는 단체가 어디 한둘일까.
하지만 수결이 문제였다.
꽉 찍힌 손…….
너무 컸다.
딱 날아든 방향으로 인지되는 곳에 라드들이 서 있었다.
깃발 하나를 세운 채였는데 거기에도 수결이 찍혀 있었다.
“라드가 보냈다 이건데…….”
“지성이 있는 놈들이 있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순규 교수는 언제 온대?”
“바로 부르러 갔으니……. 곧 올 겁니다.”
뭘 어쩌겠나.
혼자서는 절대 결정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아니, 그 전에 이해가 안 됐다.
유현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떡하니 이순규도 있고.
하지만…….
막상 밖에서 이런 것이 날아들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똑똑
둘이 얘기해 봐야 속만 답답해지지, 답도 없을 것 같아서 그저 앉아 있다 보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라고 해.”
이순규일 터였다.
“네, 대령님.”
과연 이순규였다.
자주 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봤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거대했다.
먹는 게 그리 많은 건 아니다 보니 마른 편임에도 그랬다.
라드를 눈앞에 둔 느낌이랄까?
거기에 더해 볼 때마다 나이를 점점 먹어 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은 아닐 터였다.
‘정유현 교수가 그랬지…….’
라드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눈앞의 이순규는 비록 라드는 아니지만 신체가 그리되었으니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터였다.
대령은 이 모든 생각을 간신히 속으로 갈무리하고 입을 열었다.
어차피 좀 티가 났어도 괜찮긴 했을 터였다.
이순규야말로 진짜 인격자이지 않나?
“교수님. 들으셨겠지만…….”
“라드가 쪽지를 보냈다고요.”
“네. 이게…….”
“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순규는 오면서 이미 누가 이런 짓을 했을지 대강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하고자 했던 말이 있다, 이 말이었다.
덕분에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가능하군요.”
“네.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그놈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순규는 어쩐지 세종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김 주무관을 데리고 탈출했던 그때.
벌써 다른 이들을 식량처럼 쓰고 있던…….
그리고 다른 라드들을 부리고 있던 그놈.
그놈이 아마도…….
지금껏 일행을 따라붙었던 그놈이 아닐까.
“그것들이 우리한테 호의를 가지고 있진 않지 않습니까?”
“네. 오히려 악의를 가지고 있죠. 저희도 여럿 죽었고요. 당장 재난 본부도 그놈들이 무너뜨린 거 아닙니까.”
“근데…… 이 쪽지를 보십쇼.”
“흐음.”
무서운 놈이었다.
될 수 있으면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은 이순규지만 그놈만큼은 죽이고 싶었다.
허나…….
-정부 공격. 우리와 협력 가능?
이 문구를 보고 있자니 역시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마 예전의 이순규였다면, 상대가 그놈들이 아니더라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절했을 터였다.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중요한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과정에 있어서 도덕성의 결여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아무리 정부가 적이라지만 라드와 손을 잡는 게 맞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뻔히 보이지 않나.
아마…….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정부는…… 너무 강력하다…….’
지금의 이순규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정유현의 영향일지, 김태평의 영향일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지금 세상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과정을 신경 쓸 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면 정부 측에서 고터를 집어삼키지 않는 건 그냥 욕심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당장 우리 공격했던 인원만 보내도 뒤집어엎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자리에서 생존자들을 더 모으고 물자도 모아서 우리를 치겠죠.”
“그럴…… 공산이 큽니다. 그럼 역시 라드와 협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령의 말에 이순규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유현이라면 협조를 해야 한다고 했겠지. 하지만…….’
협조?
할 수 있다.
정부 측에서 자행하고 있는 짓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대로 두었다가, 만약 사태가 해결되고 나서도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다면…….
그건 좀 아닌 거 같았다.
누구보다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이 있는 놈이…….
‘믿을 수 있나?’
하지만 라드에 대한 신뢰도는 아예 별개의 문제였다.
‘아.’
그리고 이순규는 하필 자신을 부른 이유를 정확히 깨달았다.
“제가 가서 얘기를 해 봐야겠군요.”
“그…… 어려운 부탁이라는 건 압니다. 여기 박중 대위가 호위할 겁니다.”
“네……. 뭐…….”
이순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게 맞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만약 일이 틀어질 경우 완력으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무엇보다 어쩌면 라드 쪽에서 더 호의적으로 나올 수도 있었다.
지성이 없거나 많이 부족한 초기 라드들도 그랬지 않나?
기실 지금도 홀로 나다닐 때 이순규에게 위협이 되는 건 도적 떼로 변한 생존자들이지, 라드는 아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군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럼 저희가 변통을 할까요?”
“뭐…… 제가 이 돌을 던지죠.”
해서 이순규는 종이에 큼지막하게 만나자고 쓴 후, 돌에 매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저 멀리 모여 있는 라드들을 향해 던졌다.
돌은 마치 투포환 선수가 던진 것처럼 힘차게 날아가 그 근처에 툭 하고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소란이 일었다가, 거대한 놈들 틈바구니에 서 있던 조금 작은 놈이 보는가 싶더니 이내 돌이 다시 날아들었다.
매인 종이에는 오라고 적혀 있었다.
“저격수 배치하겠습니다.”
“네, 그보다는 기도부터 해 주시죠.”
대령은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리지도 않았다.
일단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순규는 그의 사람도 아니지 않나.
너무 많은 사람을 잃어 온 그는 벌써 자동으로 이순규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잃어도 괜찮을 거라고 자기 세뇌를 시도하고 있었다.
‘많아……. 엄청 많다. 더 늘어난 거 같은데.’
그런 대령을 뒤로하고 이순규는 라드 쪽을 바라보았다.
초 거대 개체만 여럿이었다.
거대 개체는 열도 넘었다.
그 외에 다른 대체들까지 하면…….
그야말로 수백에 달하는 세력이었다.
만약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면, 제아무리 소총으로 무장한 수원이라고 해도 어찌 될지 모르겠는 병력이었다.
중화기나 기계라도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여긴 공군 부대이지 않나.
‘아마 기갑사단이라고 해도 별로 다르지 않을 거야.’
하늘길도 바닷길도 멈춘 지 오래다.
아니, 항구에 있는 물류조차 옮길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현대화된 군대는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힘을 쓸 수 없다는 건 상식이었다.
이순규의 생각대로 이미 기갑사단들이 보유하고 있던 탱크와 장갑차 등의 비대칭 전력은 가동을 멈추고 각지에서 돈좌 된 지 한참이었다.
“아무튼, 가 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여간, 이순규는 몇몇 군인들, 그리고 박중 대위와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육안으로 상대의 얼굴이 식별 가능할 만한 거리에서부터는 혼자 갔다.
“굳이 다 가서 죽을 필요는 없겠죠.”
“교, 교수님.”
박중은 아무래도 대령만큼 냉정할 수는 없는 위인이었다.
대령은 부하들의 죽음을 서류로 보고받아 왔지만 박중은 두 눈으로 보지 않았나.
더군다나 이순규와 실제로 작전에 나선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 와중에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많이 남지 않았어요.”
그런 박중을 보며 이순규는 주름진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령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주 이순규를 보는 박중으로서도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오늘따라 주름이 많아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순규를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후우…….”
이순규는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군 박중을 두고 앞을 향해 걸었다.
그런 이순규를 김민수와 구우준이 보고 있었다.
“저놈…….”
“그때 그놈이군요.”
재난 본부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땐 놈들이 라드를 부린다고 생각했더랬다.
암만 생각해도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가능한 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다.
허나 이순규는 자유 의지로 걷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라드화가 되다 말았나? 어떻게 저러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참을성이 대단할 수도 있죠.”
“이 본능을 참을 수 있다고?”
라드는 예민하다.
김민수와 구우준은 상대적으로 좀 덜하지만, 그럼에도 박중 대위를 비롯한 군인들에게서 풍겨 오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질적인…….
그러면서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충동성과 폭력성을 잔뜩 건드리는 냄새.
한두 번, 그리고 잠깐이라면 이렇게 있는 것도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저들 틈바구니에서 지내면서 내내 그럴 수 있나?
불가능했다.
“아, 실언했군요.”
구우준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면서 답했다.
그 또한 간신히 참고 있었기에 그랬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사이, 이순규가 그들 앞에 당도했다.
“만나자고 해서요.”
그러곤 최대한 간결하게 말했다.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함이었는데, 기실 그럴 이유는 없었다.
김민수는 적의가 아니라 호기심만을 느끼고 있었고, 설령 그러지 않은 놈들이 있다 해도 김민수의 명령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놈들만 주변에 있었기에 그랬다.
“그래, 그랬지. 근데 너 인간인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간들 사이에서 있을 수 있으니 그렇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런가.”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말이었겠지만, 김민수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순규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충동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지 않나?
인간이라고 봐야 했다.
겉모습은 별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온 건…….”
“정부가 적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럴 거 같았지.”
김민수는 이순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라드조차 몽골이 송연해질 만큼의 악의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유태인을 대하던 나치가 그러지 않았을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그나마 다른 민족에게 그렇게 한 것이지만, 정부는 같은 민족을 대상으로 그러고 있었다.
“그럼 자세한 얘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제가 전권을 가지고 왔으니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이순규는 여전히 두려움을 감춘 채, 차분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