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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81화 (281/323)

281화 세브란스 (3)

“엄청 많습니다.”

김선태가 김조은에게 이러저러한 얘기를, 그러나 너무 자세한 얘기는 피한 채 해 주고 있을 동안 구우준과 김민수는 여전히 바깥을 보고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내부에서 소동을 피우고 있는 다른 라드 놈들을 단속해야 했을 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놈들이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었거든.

그놈의 충동이 문제였다.

자제가 거의 안 되는 놈들이 태반이다 보니 뭔가 신기해 보이거나 또는 처음 보는 것이 있으면 부수고 보았다.

와장창

지금도 그랬는데, 적잖은 소음이 일었다.

허나 그럼에도 상관없을 만큼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이미 밤, 그러니까 해가 지고 났는데도 그랬다.

사태가 터지고 나서 밤은 더 이상 인간의 시간이 아니게 되었다는 걸 감안하고 보면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다 어디서 저렇게 잡아 오는 거지?”

“모르겠습니다. 미친놈들인데요?”

트럭이 오가고 있었다.

정비가 아주 잘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렁찬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아우성까지 더해져서 세브란스와 연해 있는 도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사, 살려 줘!”

“이 미친놈들아!”

군인들에게 잡혀 온 민간인들이 절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의 얼굴은 엄혹하기 그지없었다.

“시끄러! 이 식인종 놈들이.”

“머, 먹을게……. 여기 이렇게 많은 줄 알았으면…….”

“지랄 마. 먹을 게 없다고 사람을 먹어? 역겨운 새끼들……. 니들이랑 라드랑 다를 게 뭐냐.”

식인종이라서일까?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만약 식인종만 있었다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시끄럽진 않았을 터였다.

왜?

놈들은 실제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사람이 사람을 먹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선을 넘어서게 된다는 걸, 바로 그놈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시끄럽군…….”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비단 구우준, 김민수 일당만 있는 건 아니었다.

실로 오랜만에 복귀하게 된 김선태 또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오늘 최종적으로 확인하게 된 지성체를 떠올리면서였다.

‘많아……. 200명도 넘는다…….’

병실 전체가 이놈들을 위해 개조되었을 정도였다.

설명에 따르면 김조은의 분류법, 그러니까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놈들을 본격적으로 물게 하자 성공률이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200명은 너무 많다 싶을 수도 있었다.

인류의 1% 내외가 사이코패스라고 알려져 있으니.

못해도 20000명을 잡아 왔어야 한다 이 말인데…….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애초에 지금까지 저 밖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겠나.

열 명 중 하나는 사이코패스라고 봐도 무방했다.

바야흐로 짐승들의 시대였다.

“네, 매일 밤 있는 일입니다.”

“근데…… 벌써 수가 많던데. 아직도 잡아들일 이유가 있나?”

김선태는 순수한 의문을 표했다.

대체 왜 아직도 저렇게까지 잡아들이고 있단 말인가.

방금 그가 본 것만 해도 수백은 되었다.

“죽어 나가니까요.”

“죽어 나가?”

“지금 VIP께서 직접 관리하는 지역이…… 청와대에서부터 광화문 종로까지 수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구만 해도 거의 이천 명이에요.”

“많이도 늘었군그래.”

이천 명이라…….

사태 초기에 측근들 싹 다 긁어서 세 봐야 수백도 안 되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어디서 그렇게 모셔 왔을까?

간단했다.

일단 군인들 그리고 정부 요직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있었다.

또 정부 측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연예인들과 음악가, 화가 그리고 작가 등 예술가들 그리고 셰프들을 비롯한 이들 또한 다수 포진해 있었다.

덕분에 저 안에서는 매주 공연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호화로운 식사를 하면서.

“그치들이 먹고 마시는 거 다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우리가 엄청 긁어 오고 있을 텐데?”

“그렇긴 하죠. 지금도 그렇긴 합니다만……. 생산이 결여된 약탈 행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상부 생각입니다.”

“그건 그렇지. 아……. 저들이 그럼?”

“네. 선별 검사를 통해서 사이코패스로 확인된 것들은 물리게 하고 나머지는 북부로 이송되어 노동하게 됩니다. 농사도 짓고 한다는데 솔직히 말하면 잘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군의관은 완전 남의 일이라는 투로 씨익 웃었다.

그러곤 이제는 완전한 사치품이 되어 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 바리스타도 모셔 왔었지.’

입맛 까다로운 대통령 이하 각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행했던 작전이 얼마나 많았나.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과정에서 반기를 들고 나가떨어졌던 군인들…….

그저 반란군이나 반동분자는 아니었다.

그냥 상식적인 것들일 뿐이지.

‘죽여야…… 아니, 아니지. 내가 무슨…….’

갑자기 분노가 들끓다가 수그러들었다.

김선태 스스로가 놀랄 만큼이나 격정적인 감정의 폭포였다.

다행한 것은 워낙 금세였고, 어두운 와중이다 보니 눈앞에 있는 이들 중 그의 변화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럼 지능체들에 대한 활용은…… 그에 대해서는 무슨 말씀 없으신가?”

“아……. 지금 뭐……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김선태는 자신의 이상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질문을 던졌다.

마침 옆에서 와인을 홀짝이고 있던 김조은이 잘됐다는 식으로 답했다.

연구야 그의 영역이지 않나.

더군다나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인도적인 처사 따위는 전혀 없는 것이었다.

“라드에 대한 연구가 어려웠던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도 한몫하고 있죠. 사실 오늘 중장님이 보셨던 놈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상당수는 지하에 있어요.”

“지하?”

“네. 주로 감염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감염 연구라면…….”

“이놈들이 호르몬이 다르지 않습니까?”

“자세한 얘기는 들어도 모르네.”

김선태는 아까부터 어딘지 모를 불편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불편했다.

물론 김선태는 원래도 이 김조은 같은 인간을 좋아하진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별생각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아, 네. 그…… 아무튼, 우리랑은 뭔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럼 바이러스에 대한 감수성도 다르지 않겠습니까?”

“아…….”

“네. 감염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대개 우리에게는 무해하거나 별로 위험하지 않은 것들로요. 그 외에는…… 가장 관심 가는 것이 아무래도 이놈들이 교배가 가능한지 아니겠습니까?”

“그건 이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이론적으로는요. 하지만…… 이론만 따지고 보면 이 사태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김조은의 말은 이랬다.

원래 뼈는 성인이 되면 뭔 지랄을 해도 자랄 수 없는 법이라는 것.

아무리 호르몬을 맞춰도 근육만 큰다는 것.

곧 좌우로 넓어질 수는 있어도 위로 크는 건 어려운 일인데 이놈들은 그런 성장까지 이루고 있다는 것이 기실 이론에 맞지는 않는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사태죠. 그렇다면…… 교배도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하긴……. 흠. 그렇군. 만약 그렇다면…… 최악인데.”

“최악이죠. 사실 정부의 전략은 버티기에 가깝습니다. 저도 거기에 동의하고 있고요. 종로만……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만 지키면 결국, 재건이 가능하다는 거 아닙니까? 그 와중에 쓸데없는 사람들은 청소도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장기적으로 이게 옳은 방향일는지도 모릅니다.”

김선태는 김조은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팔뚝을 한번 쓸었다.

소름이 돋아서 그랬다.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역시나 이놈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통령은 입으로만 떠들지만 이놈은 실제 현장에서 사람과 라드를 무생물 다루듯 하고 있지 않나.

아무튼,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물어야만 했다.

“아, 그래서…… 교배는 성공했나?”

“아, 아직요. 아무래도…… 여성 개체가 적습니다. 이유야, 뭐.”

외부 상태는 험악하기 그지없지 않나.

원시 시대보다 더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회귀한 시대에서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것은 노약자들이었다.

노인과 아이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고, 아무래도 여성도 적었다.

죽자고 덤비는 이들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 해도 있을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보통은 싸움이 벌어지더군요. 둘을 한방에 넣으면.”

“아…….”

“뭐 행위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긴 한데……. 아직까지 임신이 확인되진 않았습니다. 뭐, 그 외에도……. 대화를 시도한다거나 하고 있습니다.”

“대화는 위에서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런 대화는 아니죠. 강압적으로 대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아…….”

“밑에서는 대답하지 않는 경우엔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많죠. 가령 왜 교접하지 않냐.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없냐 등등을 물어보는 데 있어서…….”

“그렇군.”

김선태는 굳이 아래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내려갔을 터였다.

하지만…….

‘왜지?’

뭔가 불편했다.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하고 있다면 오히려 나을 거 같은데, 이건 좀…….

“그래. 그렇군. 필요한 일이겠지.”

해서 대화를 대충 끝내고 밖을 내다보았다.

김조은도 딱히 김선태가 보고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더 대화를 이어 나가진 않았다.

덕분에 안은 조용했다.

바깥의 소란스러움도 잘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상당히 높은 사람이 쓰던 곳이었으니까.

이제 와 그게 원장이었는지 누구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잘 꾸며진 곳에서 셋은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더 있으실 겁니까?”

맞은편에 있던 구우준은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트럭을 보고 난 후에야 김민수를 돌아보았다.

김민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표현할 것 없이 그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본의 아니게 합동 공격이 되었지?’

수원의 군대.

그걸 무너뜨린 건 김민수가 보건대 그 자신도 아니고 수원의 군대도 아니었다.

둘의 합동 공격이 그러한 결과를 낳은 것이었다.

‘합동이라…….’

오면서 보았던 화려한 거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김민수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김선태뿐이었다.

김태평도 궁금하긴 했지만, 김선태는 정말이지 잭팟이었다.

그놈을 문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동류가 탄생할 터였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뛰어난 개체가 나올 수도 있었다.

이 열망이 김민수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바이러스의 것인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지만, 하여간, 김민수는 이제 눈앞의 세브란스를 무너뜨리는 데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었다.

인간들과의 보다 적극적인 협조도…….

“일단 돌아가자.”

“어디로 말입니까?”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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