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79화 (279/323)

279화 세브란스 (1)

유현이 새롭게 들어온 이들을 들먹이자마자 김태평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이 사람은 좋은 악당이다.

이율배반적인 이야기 같지만…….

확실히 그랬다.

대의는 있었다.

이 사태를 끝내고자 하는, 그리고 이 사태의 진범들을 잡으려고 하는…….

허나 그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나쁜 짓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딱히 그러한 짓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거 같지도 않았다.

허나 김용일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멀뚱히 있었다.

마침 수원에서 온 부대를 통솔하다가 돌아온 조영상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그게 뭐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여기 불만이 진짜 많습니다. 그래 보인다가 아니라……. 저랑 얘기 나눴던 사람들은 다 그래요.”

“그럴 수밖에 없긴 하죠.”

김용일 형사는 본인이 살핀 바를 말했다.

사실 유현이 있어서 따로 탐문을 하고 다닐 필요가 없을 정도긴 했다.

다들 알아서 오니까.

하지만 김태평이나 유현 모두 비틀림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고, 그에 따라 김용일 등은 형사 노릇 하던 시절 갈고닦았던 특유의 친밀함을 무기로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고 있었다.

“형사님이 전해 주신 말도 그렇고……. 오 형사도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요.”

유현은 지금쯤 경계를 서고 있을 오예리를 떠올렸다.

고터 쪽에서 수원으로 요청을 하자마자 오예리를 비롯해 양재원, 김현철 등등이 지원 온 마당이었다.

아무래도 수원 토박이는 아니다 보니 이쪽 사람들과 더 잘 지낼 거란 의견도 있었고, 거기에 더해 수원 입장에서는 이들 일행이 좀 불편한 것도 있었을 터였다.

대령 입장에서는 특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단히 단단한 집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현의 위용은 어마어마하다는 걸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고속터미널이었다.

“한강 쪽 노동하는 것도 그렇고……. 수색이나 이런 작업에도 대개 신규 인원들이 투입되니까요.”

“심지어 같이 나가는 인원들 중에 파이프 총은 소장 측 사람들만 독점을 하더라고요.”

“어째 다단계 느낌이 나는데……. 뭐 이런 방식의 정책이 집단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할 겁니다. 꾸준히 신규 인원들이 유입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지금 고생하더라도 나중엔 편해질 거란 생각으로 버틸 테니까요.”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도 불만이 많긴 합니다.”

“그 고생이라는 것이…… 죽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최근 들어 고속터미널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강 고수부지 쪽에서 진행 중이던 개간 사업에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모두가 우려했던 비로 인한 홍수 따위는 없었다.

습격이 있었다.

저격수인지 나발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일하던 인원들 중 무려 열 명이 넘게 죽거나 다쳤다.

그나마 다수가 온 게 아니다 보니 더 많은 수가 죽어 나가진 않았지만…….

사기가 푹 꺾이기에는 충분한 수였다.

“그렇죠. 지금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새로 들어온 이들 위주로 탐색에 나서게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색 시에는 숫제 비무장한 사람들을 먼저 안으로 들여보내는 경우도 늘었다고 했다.

숫제 포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건데…….

그 때문에 불만은 하늘을 찔러 가고 있었다.

정작 소장 측 인원들은 그렇게 불만이면 나가라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해결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당장 나가면 답 없는 상태이기는 해서 더 고자세로 나오는 것이긴 했다.

갈 곳이 없는 이들이지 않나.

터전이었던 강북은 이제 정부가 다 먹었고, 이들은 그 정부에서 원치 않는 이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잠실에서 온 사람들도 비슷하지…….’

모두 각자 있던 자리에서 여러 이유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유민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기 때문에 고속터미널 집단에서 나가게 되면 그야말로 갈 곳 없는 떠돌이 신세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이 상황에서 살아온 세월이 하루 이틀이 아닌 만큼, 그 떠돌이들의 최후가 어떠한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푸대접에 제대로 된 항의도 하지 못한 채로 속으로 삭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말이었다.

유현을 비롯한 일행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런 인원이 물경 100명은 더 헤아렸다.

아마 높은 확률로 오늘 면접 비슷한 것으로 솎아 내기를 시행했던 수십 명도 그렇게 될 터였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저 잘해 주고 있습니다. 뭐 배급받은 물품을 하나둘 나눠 주는 게 고작이기는 한데…….”

유현의 말에 김태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도 유현이라면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다른 이들에게 유현은 더더욱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그것만으로도 힘이 될 겁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수님이니까요.”

“네, 그런 거 같더군요. 문제가 있다면…… 이게 무르익기 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이죠.”

“그렇죠. 전면전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벌써 뒤숭숭합니다.”

유현이나 형사들이 상대적으로 새로 유입된 인원들에게 치중하고 있다면, 김태평은 그보다는 이 집단의 중추를 이루는 이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순경 출신들이 간부들이고 또 젊은이들이 태반이다 보니 국정원 요원이라는 명함이 아주 잘 먹혔다.

북한 왔다 갔다 했던 얘기나, 밀림에서 중국 요원들과 추격전을 벌였던 얘기 그리고 그들의 자금 출처가 되거나 혹은 사회 혼란 목적으로 파견된 마약 밀매업자들에 대한 얘기 등을 해 주었더니 몇몇은 아예 선망의 대상으로 그를 쳐다보곤 했다.

말뿐인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사격이면 사격, 격투면 격투 못 하는 게 없지 않나.

더군다나 이쪽 집단은 이렇다 할 위기를 겪어 보지 못했던 와중에 갑자기 거대한 적이 등장하고 동맹도 생긴 마당이다 보니 입이 날래지는 친구들이 많았다.

“싸움이 벌어지면 아마……. 도망가는 놈들도 적진 않을 겁니다.”

“여기서 도망가면 돌아갈 곳이 있던가요?”

“있는 놈들이 있더군요. 너무 풍족한 곳인 데다가…… 소장이 너무 빨리 안주해 버렸어요. 현장에 나가지 않는 대장에…… 주변으로는 풍족하니 밑에 것들이 딴 주머니를 안 차는 게 더 이상하죠.”

“아…….”

딴 주머니.

이렇게 위험한 세상에서도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한데, 원래 인간이라는 게 그리 합리적인 동물은 아니지 않던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 꽤 많고, 또 그렇지 않던 사람조차 감정이 앞서게 되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 근방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들에……. 차량들이 구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 안에는 당연히 식량이나 물자들이 그득하고요. 이게 비단 간부 하나만의 일탈이 아닙니다.”

“팀원들의 묵인이 없이는 절대로 진행이 안 되겠죠.”

“네. 혼자 어디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니까요.”

“그럼 팀 단위로 이탈이 일어날 거란 얘긴데…….”

“네. 이러한 정황을 정부 측에서 알게 되는 순간 여긴 끝장입니다. 대강 보면 굉장히 잘 굴러가는 곳 같지만…….”

“사상누각이로군…….”

유현은 쯧 혀를 차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면 볼수록 엉망이었다.

대체 사람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이 지경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소장이나 그 주변 사람들을 보면, 사실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해 보여서 그랬다.

일치단결한 집단이라는 건…….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 그런 집단이 가능할 수 있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비단 이곳에서만의 일은 아니었다.

“아, 얘기 들었습니다. 거참……. 어쩌다…….”

김선태는 한동안 서대문 경찰서에서 칩거하다가, 간만에 세브란스에 방문한 참이었다.

돌이켜 보면 진짜 오랜만이었다.

수원으로 향하던 날 이후론 오늘이 처음이었으니.

하여간, 김조은을 마주하고 있다 보니 감정이 참으로 복잡했다.

‘그때 그 라드……. 자연 발생했을 리가 없어.’

여전히 눈을 감으면 팔을 잘라야만 했던 날이 떠올랐다.

제대로 마취를 하고 자르기는커녕 진통제도 없이, 그것도 자기가 자긴 손으로 직접 잘랐기 때문에 그 날의 통증은 그야말로 비참할 지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따금 없어진 팔 쪽에서 기이한 감각이 일었다.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 이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이 되었건 간에 몹시 불편했다.

환상통이라는 걸 겪게 되었단 얘긴데, 김선태는 일부러 방기하고 있었다.

‘이 자식일까?’

와신상담하기 위함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김선태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 안에 배신자가 있다.

정부에 대한 배신일까?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자신에 대한 사보타지가 있었다는 건 확실했다.

“오랜만입니다, 중장님.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아니면…… 이쪽일까?

군의관…….

군인들 중, 특히 지휘관들 중에 자신에게 불만을 품지 않은 이가 더 적다는 것 정도는 김선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놈들 태반은 이미 제거했다.

혹은 인수 분해해서 아무 실권도 없이 그저 자리만 지키게끔 해 놓았거나.

이끌고 있는 부대랄 게 없게끔 만들어 놨다, 이 말인데…….

‘이놈들은…… 예외지.’

자기 사람은 딱히 아니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김선태의 커리어상 군의관들이나 연구진들하고 엮일 일은 아예 없었으니까.

그나마 삼청동에서부터, 그러니까 지금 남산에 있던 놈들과는 좀 끈이 있었지만 그놈들은 대통령에게 밉보이고 말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정황들을 보였는데…….

그렇게 거의 귀양살이하게 된 놈들을 품을 정도로 김선태가 지각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허나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무리를 해서라도 하나쯤은 세브란스에 박아 놨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랜만이네.”

하여간, 김선태는 나름 조심하기로 작정한 마당이었다.

한번 당하지 않았나?

그 말은 언제든 또 찌를 수 있다는 얘긴데……. 괜히 이들 앞에서 무언가 의심하고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건 어리석은 일일 터였다.

“네, 어쩐 일이신지.”

“좀 보려고 왔는데. 안에 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지?”

“아……. 네. 안내하겠습니다.”

경계심을 최대한 허물면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는 것이 김선태의 판단이었다.

해서 별말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세브란스를 지켜보는 인영들이 있었다.

김민수와 구우준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몇몇 라드들이었다.

놈들은 용산 공원이고 어디고 간에 라드들이 득실거리건 말건 다닐 수 있는 놈들이지 않던가?

그렇다 보니 오히려 김태평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강북으로 침입하기에 쉬웠다.

물론 반포대교를 통하진 못하고 더 동쪽으로 돌아서 오긴 했지만, 시간이 좀 걸렸을 뿐 딱히 어려움을 못 느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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