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청와대 (2)
“정지.”
청와대 앞으로 가자 각 잡힌 헌병이 차부터 제지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 뚫고 왔는데, 여기서부터는 아무래도 무리인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안은 사실상 궁궐이나 다름없었으니.
은유적인 표현은 아니었다.
작금의 대통령은 사실상 왕이라 해도 무리가 없었다.
“김선태가 올 거라고, 언질 못 받았나?”
하여간, 그렇게 치면 김선태도 정승쯤은 되기에 딱 창문을 내리고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김선태라는 이름 석 자는 어떤 시점에서도 가벼이 여길 만한 부분이 아니지 않나.
헌병 또한 부리나케 달려와 얼굴부터 확인했다.
“아,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래. 들어가면 되나?”
“네. 들어가셔서…… 저기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아, 그래.”
헌병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대통령 집무실이나 숙소가 아닌 한편에 자리한 대기실이었다.
이름이 대기실인 만큼 다들 거기 있었을 거 같지만…….
김선태만큼은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는 늘 직통으로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릴 수 있었으니.
‘이런 식으로 기강을 잡는다……?’
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사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양호한 느낌이지 않나?
당장 모든 책임을 김선태에게 물고 광화문 광장에서 교수형을 집행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아무래도 재밋거리가 부족한 시대이지 않나.
자고로 높았던 사람이 비참하게 추락하는 모습만큼 고소하고도 재미난 광경도 없는 법이었다.
끼이익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상사는 금세 차량을 대기실 앞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와…….”
대기실은 말 그대로 급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이 거하는 곳의 일부이지 않나.
당연하게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잘사는 나라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할 텐데, 관리도 아주 잘 되어 있었다.
특히 창밖을 통해 보이는 정원이 일품이었다.
“차는 뭐로 드시겠습니까?”
“아……. 커피도 있습니까? 저는 믹스가…….”
“네. 중장님은?”
“난 물이면 됐네.”
“네.”
그렇게 동그란 탁자에 앉아 감탄을 늘어놓고 있으려니 직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고 곧 마실 것과 다과를 내왔다.
다과는 말 그대로 다과였다.
아주 싱싱한 과일이 놓여 있었다.
‘이게 어떻게…….’
상사는 그것을 보면서 퍽 놀랐다.
나름 군에 속해 있다 보니 무력으로 사방을 털어놨지만 아무래도 이런 신선 식품은 수급이 어려워서 그랬다.
아무래도 어디서 이걸 키우고 있는 모양인데…….
‘딸기라니.’
반면 김선태는 별 감흥이 없었다.
딸기 따위의 과일 재배에 성공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자원으로 구황 작물을 재배했다면 훨씬 더 많은 양의 식량을 재배할 수 있었을 테고, 동시에 더 많은 시민들을 구원할 수 있었겠지만 대통령은 딱히 관심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정말로 특별한 것이란 느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확실히 정부에 붙은 시민들의 충성도는 이런저런 이유로 상당한 편이었다.
‘제길.’
거기에 더해 김선태는 뭘 먹어도 입맛이 없는 상태였다.
나름 실력 있는 농부를 데려다가 품종 좋은 딸기를 재배한 덕에 달디단 딸기가 놓여 있었지만 아까부터 모래 씹는 기분이었다.
자세히 보니 손에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김선태라 해도 대통령을 마주할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두려움이 샘솟아서 그랬다.
그는 진짜 괴물이지 않나.
아니, 어쩌면 악마라 해도 족함이 없을 터였다.
“오시랍니다. 아, 그쪽 분은 여기 계시면 됩니다. 식사라도 하시죠. 여기.”
그렇게 시간을 죽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중천에 떠 있던 해가 휘영청 떨어져 내려가 될 즈음이 되어서야 대통령은 김선태를 호출했다.
그쯤 되고 나서는 상사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된 참이었다.
김선태의 위상이 아무래도 전과 같지는 못해 보이지 않던가.
뭐,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이 끼어들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 들고 온 메뉴판에 적힌 메뉴들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경을 꺼 버렸다.
‘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갈비가 있다니?
여기 어디 외양간이라도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소를 공수해 왔단 말인가.
“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사이 김선태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직원을 따라나섰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걸어가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훈련을 받은 군인이었다.
그것도 꽤나 혹독한.
‘나 모르게 부대를 취합하고 있었나……?’
헌데 모르는 얼굴이라니…….
심지어 상대 또한 김선태에게 딱히 군인으로서의 유대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하긴……. 저 대통령이 언제까지고 칼자루를 내게 쥐여 주고 있을 리가 없긴 하지…….’
여기 와서부터는 계속해서 당황할 일뿐이었다.
그럼에도 김선태는 군인 특유의 그 냉막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죽기밖에 더하겠나.
그가 지금까지 한 일을 떠올려 보면 사실상 몇 번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김선태는 오히려 가슴을 펼 수 있었다.
“오랜만이로군, 자네.”
그렇게 들어간 집무실엔 대통령이 앉아 있었다.
늘 그렇듯 침착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한 채였다.
“네, 오랜만입니다. 각하.”
“어찌 된 건가?”
물어 오는 표정에서도 뭔가 읽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원래 이런 인간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었다.
“거기서 습격이?”
“네. 라드 놈들이었습니다.”
“자연 상태의 라드가 그 정도의 지능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김선태는 처음 의심했던 세브란스 측 그러니까 김조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김조은 박사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없는 동안 신임을 얻어 냈을 터였다.
여기서 쓸데없는 억측을 꺼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냥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게 나았다.
대통령은 무능한 놈도 미워하지만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놈을 더 미워하니까.
만약 쓴소리를 한다 해도 유능한 놈이면 곁에 둘 만한 사람이었다면, 김태평이 밖으로 쫓겨나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수원에 역습을 당했다……. 고터 쪽도 수원에 붙었다?”
“네, 그렇습니다.”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참 무능한 면이 있군.”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것만 마음에 되새기던 김선태는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통령은 어떤 쾌감을 느꼈다.
늘 군인다운 모습을 보이던 사람의 비굴한 모습을 보는 건 묘한 즐거움을 자아내는 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선태에 대한 처분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아직 김선태의 후임이라 할 만한 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중장일 터였다.
‘여기 정도 채우는 건 내 사람만으로도 된다.’
경호원 정도.
그러니까 수십에 달하는 병력은 이제 김선태 부대 출신이 아닌 대통령이 직접 발굴한 인재들로 채웠다.
GOP 쪽에서, 그러니까 휴전선 근처에 있던 이들이 겨우 내내 내려오지 않았나.
물론 보급도 없는 데다가, 일산 등지가 완전히 라드에 의해 또 폭격에 의해 초토화된 탓에 생존율은 희박했지만 그럼에도 여기까지 닿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중 선별해서 뽑은 이들이 지금 청와대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알아본 바에 따라도……. 고터와 수원은 적대적이야. 뭐 우리가 민간인들을 잡아 올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
허나 전쟁을 치른다면 어떻게 될까?
내부 통제는 가능하겠지만 적의와 무기 모두 충분히 갖추고 있는 상대와 맞서려면 도저히 무리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 병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휘관들의 역량도 필요했다.
가서 처박아 놓은 걸 보니 그 역량이라는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닌 거 같지만…….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일어나게. 한 번의 패배는 병가지상사라지 않나.”
“가, 감사합니다.”
“그래. 봐서 알겠지만 체계가 좀 바뀌었네. 하지만 자네 직급은 변화 없어. 서대문역 경찰청에서 여지껏 하던 대로 하면 되네. 다만……. 자네 말대로라면 고터가 말썽이 될 가능성이 있겠군.”
“네, 그렇습니다. 정면에서 승부한다면 하루도 안 걸려서 쓸어버릴 만한 병력이기는 합니다.”
“공교롭게 자네가 거기 안에 들어갔다가 오게 되다니. 팔을 잃은 건 안됐지만, 뭐 나름 잘된 일도 있구만.”
대통령은 잘린 팔을 보면서도 별다른 표정을 짓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외팔이라 해도 지휘하는 덴 무리가 없겠지 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 저 꼴을 해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으니 나름 능력을 입증한 셈이라고 여기고 있기도 했다.
여차하면 프로파간다로 써먹을 생각도 있었다.
저쪽에서 뭐라고 떠들어 대건 이쪽은 이쪽에서 풀 수 있는 정보가 있지 않겠나.
“네, 그렇습니다만…… 그 막대한 물자를 몰리게 되면 불태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하에 있다 보니 한번 불이 붙으면 지금 저희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끌 수가 없습니다.”
“그게 마음에 걸리는군……. 그렇다면 밖에서 조여야겠지.”
“조인다면……?”
“한강 고수부지에서 경작을 시도하고 있다며? 정작 먹을 건 부족한 모양인데……. 많이도 필요 없을걸. 저격수로 몇 놈 쏴 죽이게.”
“아.”
“그리고 자네는 방송 한번 타지. 저기 광장에서.”
“어떤…….”
“수원 측에서 라드를 동원해 공격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죽었다고. 누군가 죽음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나? 걱정 말게. 자네는 영웅이야. 그 와중에도 살아왔으니.”
“아……. 네.”
프로파간다로 사용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를테면 광대가 되라 이 말이었는데 김선태는 오히려 안도를 느꼈다.
일단 이렇게 된 이상 당장 토사구팽당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뭐 좀 얼굴이 팔리긴 하겠지만 별 상관없었다.
실제로 라드에 물린 후 바로 팔을 잘라 살아남았다는 건 어디 가서 떠들기에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어쩌면 군인들 중에서는 정말 그를 신성시하는 이들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럼 물러가지. 난 또 할 일이 있어서.”
“네, 각하.”
하여간, 대통령은 그렇게 김선태를 보낸 후 집무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참 쉬운 일이 하나 없었다.
‘결국, 수원을……. 흠. 제기랄.’
수원이 그대로 남아 고터와 동맹을 맺게 된다면, 이건 좀 위험한 일이었다.
“잠깐, 애들 들어오라고 하지.”
그렇다면 훼방을 놔야 했다.
해서 경호를 맡은 이들을 불렀다.
그러자 인원이 쭉 들어왔다.
“너네 중에 고터에 잠입해야 할 사람들이 필요한데…….”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면 되지 않겠나?
김선태의 말에 따르면 그쪽 리더가 딱히 뭐 훌륭한 놈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얼마든지 가능성은 있을 터였다.
“고터란 말입니까?”
“그래. 고터.”
“제가 그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오, 또?”
“저 자신 있습니다.”
몇 명 자원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끝은 아니었다.
검증은 필요하지 않겠나?
해서 대통령은 그렇게 선별된 인원들을 최근 김선태 후임으로 점찍고 있는 이에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