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청와대 (1)
부드드드득
김선태는 오토바이를 타고 반포 대교를 건넜다.
‘우리 부대는 무조건 인도로 건넌다.’
오래된 명령을 병사들이 기억하고 있기를 바라면서였다.
그렇지 않는다면…….
고작해야 오토바이 한 대라 여기고 붙잡아 두려고 한다면 다행일 텐데, 발포의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발포가 있다면 김선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새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샘솟거나 하지는 않았다.
죽음이 도처에 깔린 지는 이미 오래되었으니까.
특히 라드 떼에게 당한 후로는 날마다 아니 매 순간 죽음을 되새겨야만 했더랬다.
탕탕
하여간, 그렇게 달리고 있으려니 앞에서 총을 쐈다.
다행히 오토바이 쪽이 아니라, 뒤따르던 놈들 쪽이었다.
딱히 조준 사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으로 총탄이 튀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전진을 막는 데는 충분했다.
끼이익
일단 무서운 기세로 따라붙던 놈들이 멈췄다.
도보로 뛰던 놈들이야 오히려 저 뒤에 있었으니 괜찮았다.
-더 접근하면 이번엔 맞힌다!
곧이어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웅성대는 소리가 뒤에서 울려 왔고.
그사이에도 김선태는 그대로 내달렸다.
속도만 조금 줄인 채로, 딱 인도 위에서.
“저건 어쩌죠?”
“오토바인데 인도를 달리잖아. 굳이 올라왔다는 건데…….”
“우연 아닐까요?”
“우연이면 그때 잡으면 돼. 하난데 뭐. 잘 보니까 팔도 없네.”
“하긴, 그렇군요.”
다행히 부하들은 그의 명령을 기억하고 있었다.
워낙에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고 그렇기에 간혹 습격에 의해 흩어졌다가 혼자 돌아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멈춰.”
하여간, 반포 대교 끝에 다다를 때쯤에는 거의 속도를 줄인 참이었다.
어차피 뒤쫓던 놈들은 다 돌아간 데다가 섣불리 사격을 시도하는 것들도 없었으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겁이 났을 터였다.
꽤 거대한 집단이긴 하지만 막상 전쟁을 통해 무언가를 도모한 적은 없는 것들이니까.
단순히 가진 것이 많다 보니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든 덕에 저리되었을 뿐 아닌가.
그 흔한 자동 소총도 하나 없는 걸 생각해 보면…….
‘예비군 훈련장도 그렇게 먼 데 있는 게 아닌데 말이지.’
아마 김선태가 같은 입장이었다면 이미 털었을 터였다.
M-16이라고 해도, 그러니까 구식 소총이라고 해도 꽤 잘 맞거든.
끼이익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선태는 금세 오토바이를 멈춰 세웠다.
그러곤 하나 남은 팔을 하늘을 향해 올렸다.
그러자 병사들이 다가왔다.
‘훈련이 잘되어 있군. 내 부하들인가. 옷은…… 옷은 다른데.’
경계 탑에 남은 놈들 중 절반이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나머지는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오는 놈들 중 둘은 밧줄, 그리고 나머지 둘은 역시나 총을 겨누고 있었다.
육탄전에 대비해서 그런가. 총에는 대검이 꽂혀 있었다.
이렇게 되면 김선태 아니라 라드라 해도 순순히 잡히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터였다.
“누구지?”
밧줄을 든 사람이 멈추더니 물었다.
김선태는 물끄러미 그를 돌아보았다.
“음?”
아는 얼굴이었다.
얼굴만 알고 이름은 몰랐지만, 군인들이야 명찰을 다 달고 있지 않던가.
“김주하 상사.”
“어……?”
그에 비해 김선태는 많이 변한 마당이었다.
너무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고 팔도 잘렸고, 무엇보다 군복도 잃었다.
허나 딱 하나 목소리만큼은 이전 그대로였다.
상사는 자신도 모르게 부동자세를 취했다가 겨우 다시 움직였다.
“누, 누구……?”
말 그대로 간신히 움직였다.
태도도 아까보다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어리둥절했으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티를 낼 만큼 기강이 안 잡혀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보니 그대로 서 있었다.
“김선태다. 청와대에 바로 보고 올리도록.”
“아……. 중장님!”
상사는 김선태의 말에 긴가민가하던 것을 관두고 소리쳤다.
그런 거 같더라니 역시가 역시였다.
하긴 그가 아니라면 이 상황에서 누가 이토록 당당할 수 있겠나.
‘근데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김선태 중장이면 사실상 현 정부 체제에서 넘버 2 아닌가.
책상물림들의 의전 서열이 더 위긴 하지만 실제 힘으로만 따지면 아니, 실제로 그렇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오합지졸들에게 쫓겨 온 것도 모자라…….
팔 한쪽은 어디서 두고 온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 서 본 김선태는 정말 김선태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것들아 뭣들 해! 안으로 모셔!”
“그래. 일단…… 따뜻한 물 좀 준비해 주지.”
“네! 위스키도 따로 올리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군.”
그들의 환대에 김선태는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오토바이를 갖다 버리고 안으로 향했다.
급하게 지어진 초소다 보니 얼기설기 지어진 상황이었다.
그나마도 반포 대교 북단으로는 주민센터가 있다 보니 제대로 된 건물이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김선태는 안으로 들어가 이곳의 담당자라 할 수 있는 대령의 방을 꿰차고 들어가 뜨끈한 물에 몸을 담갔다.
“하…….”
거기에 더해 위스키와 담배도 진상 받았는데 모두 최상품이었다.
상황을 고려한다면 멀쩡한 시절의 대통령보다도 더한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이었다.
더욱이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가 살아났다 보니 천하의 김선태라 해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김선태를 두고 반포 대교 북단 경계 초소의 인원들은 수군대고 있었다.
뭐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상사와 대령이 주로 그랬다.
“무슨 일인 거 같나?”
“소문이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어떤? 아. 그거 말인가. 말이 되나. 정예 중의 정예를 거기서 다 잃었다고?”
“김선태 중장이 팔 잃고 온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합니다.”
“그건 그렇지. 그거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이 말인데…….”
대령은 잠시 위를 돌아보았다.
맨 위층에 자신이 쓰던 방을 내준 탓에 아래층에 남게 된 그의 얼굴에는 의문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걸 다 잃었다……. 뒤쫓아오던 놈들한테 잃은 거 같진 않다고 했지?”
“네.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었습니다. 저희 부대만으로도…… 아니, 경계 서던 인원만으로도 쓸어버릴 만한 병력이었습니다.”
“그럼 역시 수원인가. 같은 군인이라 이건가……? 이상하군그래.”
공군 부대 아닌가?
당장 서울 공항에 있던 놈들은 라드한테 쓸려 버렸는데…….
아무리 규모가 좀 더 큰 부대였다고 해도 그 정도로 강하다고?
그럼 이거…….
여기도 마냥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동원 가능한 전차는?”
“구색만 맞추고 있을 뿐입니다. 다리라도 건너면 다행일걸요……?”
“제기랄. 아니, 대체 그 많던 기름은 다 어쩐 거야?”
“뭐…….”
대령도 모르는 일을 상사가 어찌 알겠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청와대 근방을 거의 이전 상황처럼 굴리기 위해 막대한 기름을 소비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대가리들이 제아무리 삽질을 해 왔다고 해도 이건 무지의 소치가 아니지 않나.
개념이 어지간히 없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세상에 아직 수복 못 한 국토가 천지인데 기름을…….
“무용한 질문이었군, 그래. 아무튼, 씻고 나오면 바로 가시겠지?”
“네. 여기 더 이 있을 이유는 없으실 테니까요.”
“자네가 수고를 좀 해 주게.”
“제…… 제가요?”
“생각보다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알고 있어. 뭐……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혼자 덜렁 운전병 붙여서 보낼 수는 없지 않겠나.”
“그건 그렇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이참에 별천지라는 청와대 근처에 가보자는 생각에 고개를 냉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군 이인자를 모시고 가는 길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뭐 상관있겠나?
대령과 상사는 이 근방의 왕처럼 지내고 있었다.
위의 말만 잘 들으면 뭐라 할 놈들이 없다 이 말이었다.
“차량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부탁 좀 하지.”
“네. 미리 병사 보내 놨으니 그쪽에서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김선태는 준비가 어떤 준비가 될는지 살짝 걱정이 되었다.
대통령의 성향상 대체재가 있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김선태는 밀려날 테니까.
하지만…….
대체재가 있을까?
모든 것이 귀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재가 귀한 시대지 않나.
더욱이 대통령처럼 의심병에 걸려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우웅
김선태는 속에 든 걱정을 애써 감춘 채, 차량에 몸을 싣고 북으로 향했다.
이미 몇 차례 정리를 한 곳이다 보니 라드는커녕 놈들 특유의 울부짖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사태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돌아다니는 사람의 부재였다.
물론 그것도 청와대가 가까워 오자 얘기가 좀 달라졌다.
일단 광화문 광장부터가 북적였다.
“저건…….”
거리로만 따지면 엄청 가까웠다.
하지만 인구 이동이 철저하게 막혀 있는 현 대한민국의 정부 정책상 상사도 여기까지 오는 건 처음이었다.
광장에는 장이 열리고 있었다.
“나름 화폐가 돌고 있다네. 내가 볼 때는 개짓거린데, 뭐 이전과 비슷하게 굴러가는 거 같아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지.”
그런 상사를 보면서, 김선태는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말을 꺼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었는데 상사는 꽤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군인들이 최우선인 것은 맞으니 너무 섭섭해하지 말게.”
“그…… 네.”
“아무튼, 저기서 위로 향하면 된다네.”
“네.”
찻길에는 차가 하나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차를 몰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까.
아니,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못한다고 하는 게 맞을 텐데 두 말이 아주 다른 건 아니었다.
이 근처에 거주하게 된 이들 모두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건 맞지만, 그럼에도 진짜 특별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와…….”
“뭐지?”
그렇기에 차도를 빵빵거리며 지나는 김선태 차량을 본 이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흔한 국산 차량임에도 그랬다.
그렇게 청와대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가로등에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었다.
심지어 주변에 있는 건물에도 그랬다.
상사는 이래서 전차 움직일 기름이 없어졌나 하면서도, 옆에 있는 김선태 때문에 암말도 하지 못했다.
이번엔 김선태 또한 침묵을 지켰다.
‘어찌 나올 것인가…….’
다른 생각을 품기엔 지금 마음속에 여유가 너무 없었다.
대통령이 화가 많이 났다면 세브란스행이 될 수도 있었다.
피험체가 될 수도 있단 말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꽤 훌륭한 피험체가 되지 않겠나?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사이코패스 기질이 강할수록 지능이 많이 남는다고들 하던데…….
‘아마 나도 그렇겠지.’
스스로 판단하기에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보니, 속으론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아, 저기…….”
“그래, 보이는군.”
그렇게 침묵 속에 달리다 보니 어느새 청와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