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결국, 위로 (3)
“어이, 거기! 정지!”
딱히 몸을 숨길 생각도 없이 그저 이동했기 때문에 고터에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마자 파이프 소총으로 무장한 이들 둘이 다가왔다.
“경비가 꽤 삼엄하군요.”
김태평은 긴장한 기색도 없이 중얼거렸다.
손을 올리면서였는데, 셔츠 뒤로 권총이 낑겨져 있었다.
여차하면 여기서라도 쏠 생각이었다.
나머지는 비워 둔 채였다.
어차피 이 거리에서 권총 사격을 한다는 게 그리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랬다.
“그러게요.”
유현만이 대꾸를 해 준 상황에서, 경비를 서던 인원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야 모두 몇 명인지 알아볼 수 있었는데 무려 넷이나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 건가……. 아니면 뭔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건가.’
김태평은 넷 모두 파이프 소총으로 무장한 것을 보면서 그 너머를 생각했다.
그가 파악하기로, 고속터미널이 한강 이남에서 가장 부유한 땅인 것은 맞았다.
폭격도 피했고, 위치도 너무 좋지 않았나.
하지만…….
이 시대에 풍족하다는 건 아무래도 이전 시대와는 그 뜻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뭐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총 든 사람 둘은 그대로 이쪽을 겨누고 있었고, 나머지 둘이 다가오고 있었다.
둘 또한 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나만 보지.’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총구가 박중 대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군복 입은 걸 보면 아무리 닳고 닳은 생존자들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긴장을 늦추기에 그랬다.
‘아……. 이 근처에서 김선태 그 새끼가 사람들 잡아갔다고 했지.’
허나 마냥 당황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미 들은 정보들이 있어서 그랬다.
전에는 정보라 하면 윗대가리들이 달리 할 것이 없어서 습관처럼 떠들어 대는 무언가라고 여겼는데 실제 작전을 진행하다 보니 확실히 ‘정보’는 중요한 것이긴 했다.
덕분에 박중 대위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나름대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너네, 다 뭐야?”
아무튼, 상대는 섣불리 접근하는 대신 다섯 보가량 떨어진 곳에서 질문을 던졌다.
여전히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고, 이 거리라면 제아무리 마구잡이로 만든 수제 총이라 해도 명중률과 치명률을 장담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네 명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게 되었다.
특히 유현은 가까스로 뒤를 돌아보고픈 마음을, 그러니까 오예리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픈 마음을 억누를 수 있었다.
‘괜찮다……. 저격수만 넷도 넘고…… 여차하면 김태평도 있어.’
짧은 거리에서 소수끼리의 전투라면 김태평만 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 흔하겠나.
무엇보다 유현 본인도 꽤 괜찮은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려니 박중 대위가 입을 열었다.
원래는 유현이 제일 먼저 입을 열어야 하는데, 좀 꼬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일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니.
게다가 누가 봐도 총구를 박중 대위에게 들이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섣불리 나서면, 대강 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이 애송이들이 갑자기 발포할 수도 있었다.
“아, 저는 박중 대위라고 합니다.”
“대위는 시발. 나라 망한 지가 언젠데. 어디서 왔지?”
대위라는 말에도 상대는 전혀 긴장을 늦추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대화에 끼지 않은 놈 하나는 이제 명확히 겨냥까지 하고 있었다.
‘하.’
박중은 옆으로 도망가고 싶은 본능을 겨우 억눌렀다.
몸에 받쳐 입고 있는 방탄복과 뒤에 있는 부하들 그리고 오예리 형사 등을 떠올리면서였다.
뭐 그래 봐야 얼굴에 맞으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순망치한을 떠올리라고 했지.’
오면서 내내 나누었던 대화를 요약해 보면 이랬다.
아무리 정부 측의 가장 날카로운 칼끝을 꺾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적은 너무 강대하지 않나.
남산은 변수로 고려하기엔 너무 약했다.
그렇다면 고속터미널 측과 동맹을 맺어서 어떻게든 대항을 해야만 했다.
이쪽이 망하면 다음은 정말 수원밖에 남지 않을 테니까.
“아, 네. 수원에서 왔습니다.”
“이 개새끼들!”
해서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기도 했으니까.
헌데 상대 반응이 어째 이상했다.
“야, 지원 불러!”
“너 솔직히 말해! 혼자 온 거 아니지!”
거기에 더해 억측도 했는데 아쉽게도 듣는 입장에서는 억측이 아니라 합당한 추론으로 들렸다.
순진한 군인인 박중에게는 특히 그랬다.
닳고 닳은 형사인 김용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당황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실 그가 그리고 있던 그림은 자연스레 소개하면서 저는 광수대 출신 형사입니다 라고 하면서, 김태평에게 들었던 대로 아직 경찰들이 이쪽을 장악하고 있다면 압도적인 친화력을 발휘하는 그런 것이었다.
“아.”
그렇게 멈칫거리고 있는 사이에 김태평이 나섰다.
말이 나선 것이지 그가 한 것이라곤 그저 소리를 낸 것뿐이었다.
하지만 다들 긴장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런가, 그것만으로도 주의를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이제 총구 세 개가 김태평을 향하고 있었다.
이것도 나머지 한 놈이 지원을 요청하러 뛰어들어 간 덕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 있는 총구는 모두 김태평을 향하고 있었다.
‘수원에 대해 정찰을 시행한 것도 그렇고…… 이렇게 과민한 반응도 그렇고…….’
김태평은 여기 있는 인원들과 함께 이곳에 한번 온 적이 있지 않던가.
그때 그가 제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역시 김선태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보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어떤 느낌이 일었다.
김선태가 살아 있을 거란 느낌이.
‘그 자식이 설마 여기에 있나?’
그놈이라면 충분히 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를 억울하게 만드는 것.
정보가 어느 정도라도 풀려 있는 상황이라면, 요원도 아닌 군인 출신이 하기엔 어려운 일이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담력 좀 있고 머리 좀 도는 놈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김태평의 생각이었다.
“혹시 여기 김선태가 있습니까? 군복 입은.”
“뭔 소리야.”
“아니, 잠깐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중 하나가 당시 밤에 있던 이였다.
그리고 김선태의 등장은 쉬이 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세상에 그 밤에 혼자 팔도 잘린 채로 여기까지 오다니.
주변에 있는 물자는 전부 닥닥 긁어모아, 수 킬로미터 이내는 아예 황폐화시켜 놨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이지 기적이었다.
“이 새끼들 추적한 건가?”
아무튼, 김선태는 이제 이들의 일원이었다.
일원이라고 해 봐야 그들 사이에 공유하고 있는 감정은 알량한 동료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수원에서 왔다는 수상한 4인조보다는 김선태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괜찮았다.
김태평은 그냥 얘기할 시간을 번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 김선태 놈 정부 측 군인입니다. 민간인 잡아다가 라드로 만들고 있어요.”
“무슨…… 무슨 말이야.”
그리고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얘기라면 이놈들의 주의를 빼앗는 데 충분할 거란 확신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전부 김태평의 말을 듣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훈련받은 요원 둘이 옆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김태평에게도 보이진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딱 와서 보자마자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보였고, 이런 상황이라면 말이 없어도 늘 그렇게 움직이도록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아, 그리고 이분은 정유현 교수님입니다. 아시죠? 감염내과 교수님. 이 사태를 예견하신 분 아닙니까.”
“응?”
“그게 누…… 아?”
“홈페이지?”
그렇다면 저격수가 한 명만 처리해 주면 이 셋 정도는 순식간에 해결된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김태평은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사이 모여들었던 이들은 이제 정유현을 보게 되었다.
“네, 맞습니다. 홈페이지 운영했던 정유현입니다.”
“요새도 있긴 있던데.”
“활동을 안 한다뿐이지…….”
“얼굴 맞아. 확실해.”
예상대로 이쪽은 폭격을 피해서 그런가, 인터넷이 되는 모양이었다.
유현은 그렇게 셋과 뒤에서 뛰어오고 있는 십수 명의 사람들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김선태, 진짜 나쁜 놈입니다. 혹시 그놈이 와서 수원에 대해 뭐라 말했다면 다 거짓말입니다. 놈이 이 사태를 일으킨 주범이에요.”
그 사이에 김선태가 있었다.
‘쏴? 말아.’
김선태는 일단 김태평부터 확인했다.
권총은 대장에게 뺏겼기 때문에 들고 있는 총은 파이프 소총이었다.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총이기 때문에 명중률 또한 극악이었다.
제아무리 기량으로 극복하려 해도 별 소용은 없었다.
무엇보다 김선태는 딱히 뛰어난 소총수도 아니었다.
‘아니…… 아냐.’
그러다 김선태는 유현을 확인했다.
그 옆에 놈들은 모르는 놈들이었다.
아무튼, 유현이 있는 한…….
‘저 사람 얼굴 모르는 놈이 있을 리가 없지.’
정부에서 가장 신경 쓰이던 놈 아닌가.
기회가 있었을 때, 그러니까 아예 사태가 터지기 전에 죽였어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때까지만 해도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또 라드라는 생명체의 위력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제길.’
저놈이 왔다면, 일은 글렀다.
어중이떠중이처럼 팔 잘려서 온 떠돌이가 하는 말과 정유현이 하는 말 중 무엇을 더 신뢰하겠나.
잘 보니 이미 웅성웅성하는 것이 이상했다.
‘이렇게 되면…….’
정부 측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자리보전이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거기 외에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아니, 돌아갈 수 있을지부터 염려해야 할 거 같았다.
“어, 마침 저기 있네! 야, 너!”
“어, 어디…… 어디 가! 야 잡아!”
탕그렇게 결정을 내린 김선태는 이곳에 있으면서 보아 두었던 경로를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그리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놈을 쐈다.
“어, 어억.”
죽이진 않았다.
“야, 의사 불러!”
“저 시발 새끼!”
이렇게 하면 두 명 정도를 더 낙오시킬 수 있으니까.
탕게다가 김선태는 방금 총 맞은 놈에게서 총을 빼앗아 다른 놈을 하나 더 쏴 버린 참이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절반가량이 낙오해 버린 셈이었다.
애초에 파이프 소총이라는 것이 재장전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김선태는 그대로 총을 몽둥이로 쓰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요.’
이미 가까이 와 있던 요원 중 하나가 김태평에게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만 봐도 의중을 알 수 있었는데, 김태평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놔둬.’
간신히 평화 무드가 조성된 참이지 않나.
마침 김선태가 나타나서 도망가는 바람에, 누구의 말이 맞는지 명백해진 상황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우리가 실은 뒤에서 너네 칠 생각이었다는 걸 밝힐 필요가 있겠나.
김선태야 물론 죽여 마땅한 놈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