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고속터미널역 (3)
세상에 이런 놈들이 있다니.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정도껏이지.
위와 같은 말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의도했던 바이긴 했지만, 김선태는 이제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쉽게 살았는지 알 만하군…….’
지금 세상이 어디 라드만 무서운 세상이라던가.
오히려 라드보다는 일부 생존자들이 더 두려운 존재라고 봐도 무방했다.
식인종?
직접 보게 된다면 꽤 두려운 존재겠지만…….
과시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식인을 택하게 된 놈들은 오히려 경쟁에서 도태된 놈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식인이라는 행위를 왜 거의 대부분의 문명에서 지양해 왔겠나.
‘뭐, 나도 김조은 박사에게 들은 거긴 하지만…….’
숙주가 지닌 병이 그대로 옮아 올 수 있었다.
그 흔한 소나 닭, 돼지를 먹어도 인수 공통 감염병도 발생할 수 있는데 사람을 먹으면 뭐 당연한 거 아니겠나.
거기에 더해 영양학적으로도 그렇게 좋은 영양 자원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서운 건…… 약탈자 놈들이지.’
재미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갈취하는 것들.
일부 군인들도 그들에게 합류했거나 혹은 흡수당한 탓에 전투력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라드가 아니라 사람을 습격하는 데 특화된 놈들이다 보니 군인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놈들이 제일 두려운 놈들이었다.
수제 폭탄 얘기를 듣고는 식은땀마저 줄줄 흘렸던 기억이 있었다.
“그놈들은 어디에 있지?”
하여간, 그렇게 딴생각을 하면서 고속터미널 놈들의 의미 없는 한탄을 들어 주고 있으려니 뒤늦게 정신을 차린 순경이 다가왔다.
입가에 묻은 토가 거슬렸다.
허나 김선태는 보다 큰 일을 위해서라면 작은 일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위인이었다 보니 그저 묻는 답에나 답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기억에 저기, 저 위쪽이었을 겁니다.”
“위……? 아, 이쪽?”
“네.”
“흐음…….”
순경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턱 밑을 쓸었다.
짓는 표정은 그랬지만 김선태는 알 수 있었다.
‘겁먹었군…….’
그냥 두려운 것이라는 걸.
뭐, 알 만한 얘기긴 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지냈다고 하면 많이 억울할 테지만 하여간, 고속터미널 근처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생존에 있어 상당히 유리한 지역 아니었던가.
초장에 군인들이 진입해 수많은 라드를 죽여 없앴던 것이 주효했다.
동시에 그 군인들의 통제를 청와대에서 직접 하지 못했던 것도 그랬다.
만약 대통령이 나섰더라면, 의도적으로라도 수를 줄였을 터였다.
그래야 말을 잘 들을 테니까.
‘잘된 일이지.’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면 더 찾아볼 수도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여기서 중요한 건 이놈이 겁을 먹었단 점이었다.
‘이놈이 이대로 돌아가서 보고를 올리면…….’
글쎄.
그 소장이라는 놈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아니, 조금 다를 수도 있었다.
그놈은 그래도 밑에 수백에 달하는 인원을 다스리고 있는 놈이니까.
말이 수백이지 아마 영향권 아래 있는 인간을 다 치면 천 명도 넘을 터였다.
규모만 따지면 정부 바로 다음이지 않을까 하는 게 김선태의 판단이었다.
그만큼, 고속터미널 집단은 퍽 부유하고 또 번성했다.
그런 집단을 끌고 있는 놈이 마냥 평범할까?
그렇게 기대하는 건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보고만 가죠.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간에……. 원래 계획에서 틀어진 것 같긴 합니다.”
“응?”
김선태의 말에 순경은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다.
물론 김선태가 보기엔 그저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이미 공포에 빠진 인간은 김선태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김선태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맹수에 가까운 인간이니까.
“저를 포함해서 민간인들을 라드로 만들고 있지 않았습니까? 근데 여기…… 여길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는데.”
김선태는 하마터면 공장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단어는 맞지만, 그 대상이 애매해질 수 있지 않나.
“아무튼, 여기가 완전히 파괴되었어요. 뭔가 소요 사태가 있었던 같은데…… 그렇다면 경계가 좀 느슨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그런가. 흐음.”
경계가 느슨해졌을까?
뭐, 아주 약간은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정도 이상 느슨해졌을 리는 없었다.
이 파괴 공작을 다름 아닌 수원 놈들이 하지 않았나.
혹시 모를 추가 작전에 대비하고 있을 터였다.
‘근데 그 라드 놈들은 뭘까? 어떻게 그렇게 타이밍 좋게 쳤지? 설마……?’
김선태는 그렇게 북쪽을, 그러니까 군부대가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자기 팔을 물었던 놈을 떠올렸다.
말을 했다.
그것도 의미 있는 말을.
그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김선태가 진짜로 궁금한 것은 대체 그놈들이 어떻게 하필이면 딱 그 타이밍에 들이닥쳤냐는 점이었다.
수원 놈들만 있었더라면 아예 전멸하진 않았을 텐데.
‘수원 놈들도…… 라드를 부리나? 그럼 말하던 놈들은 라드가 아닌가? 아냐. 라드였어. 흐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문만 쌓이는 일이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진 모르겠는데, 김선태는 무용한 의문은 일단 뒤로 묻어 두는 인간이었다.
나중에 김조은이나 다른 전문가에게 묻기로 마음먹었다.
덕분에 그는 별 흔들림 없이 하고자 했던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아마 간단한 정찰은 될 겁니다. 놈들이…… 정확히 얼마나 많은지는 봐야 대비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래. 으음.”
순경은 여전히 탐탁지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확인은 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너, 너. 그리고 너까지. 이렇게 넷만 저 차에 타지.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무슨 일 나면 도우러 오고.”
“네!”
김선태까지 해서 총 네 명이 SUV 차량에 올라탔다.
어떻게 봐도 너무 눈에 띄는 차량이었다.
대체 왜 노란색이지?
이렇게 큰 차가?
게다가 엔진 소리도 너무 컸다.
여러모로 정찰에는 어울리지 않는 차다 이건데…….
‘뭐, 굳이 떠들 이유는 없겠지.’
다른 이들 모두 가만히 있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 살 필요는 없지 않겠나.
해서 김선태는 길 안내나 충실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는 좀 틀리기도 해야 의심을 덜 사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생각을 바꿨다.
‘그렇게 했다간 난리가 나겠어, 아주.’
이놈들.
차가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도로 그러니까 폭격을 피한 건물들 사이에 난 도로 위를 달리자마자 눈에 띄게 긴장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그냥 퇴각할 게 분명했다.
핸들 잡은 놈의 손에서도 땀이 어찌나 나는지 저러다 그냥 미끄러지면 어쩌나 싶을 지경이었다.
“여기서 우측입니다.”
“우측…….”
“그럼 거의 바로…… 아, 그렇네요. 저기, 저깁니다.”
“그런 건 좀 빨리 말해!”
순경의 외침이 먼저였는지 브레이크가 먼저였는지 헷갈릴 정도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게 효과가 있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니, 김선태는 확신했다.
걸렸다고.
‘보고 있다. 확실히 수원 놈들이 경계가 장난이 아니었어. 지금도 그렇군.’
부대 내에 남은 건물 위에는 어김없이 병사들이 있었다.
전투를 준비하는 것은 아닌 만큼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사방을 경계하는 데에는 충분한 인원이었다.
이 시간에 뭔 일이 날 리가 만무할 텐데도, 멀리서조차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뭐 당연한 일이긴 했다.
지척에 라드를 생산하는 놈들이 있었으니, 아무리 놈들을 한번 격퇴했다고 해도 긴장이 되지 않겠나?
‘숨겼을 리는 없어.’
높은 확률로 공표했을 터였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었다.
작전 중이었다면 또 모를까, 성공하지 않았나.
그렇게 되면 상대에 대한 증오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장난 아닌데요? 저거 수제 총이 아니라…….”
“군대잖아. 당연히 총이지.”
“하아……. 저놈들이…… 위로……?”
“그건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판교 근방에 있는 작은 마을들도 다 털렸던데요…….”
“시발.”
순경은 망원경으로 그쪽을 살피고 있었다.
순경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랬다.
확실히 물자가 많은 집단이다 보니 망원경이 좋은 것도 좋은 건데, 수도 많았다.
잘된 일이었다.
잘 볼 수 있다는 건…….
“일단 갈까요? 저기서 자꾸 여기 보는 거 같은데.”
“그, 그래. 어…….”
그 순간 수원 측 정문이 열리고, 차가 두 대 나왔다.
모두 SUV였는데, 꽤 오래된 차들이었다.
그래도 잘 달렸다.
이쪽을 향해서.
“야, 튀어!”
“네, 네!”
총 든 인원만 해도 6명을 상회하는 상황.
그렇다고는 해도 사격을 하기엔 아주 먼 거리였지만 순경은 그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부우우우웅
뒤로 뺐다가 훅 하고 달리는데, 안전벨트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튕겨 나갈 뻔했다.
그만큼 폭력적인 가속이었다.
‘이런 차도 나쁘지 않겠군그래.’
들켜도 되는 상대라면 차라리 이렇게 빠른 차도 좋겠다 싶어질 정도로 차는 빨랐다.
뒤따르는 차량들도 꽤나 밟는 듯했지만 상대가 안 될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운전석에 있는 놈의 솜씨가 제법이었다.
“야! 평소에 연습하길 잘했지?”
“그게…… 연습입니까, 노는 거지!”
“그게 그거지!”
“뭐, 인정합니다!”
대화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걸로 놀았던 모양이었다.
뭐, 평화로운 집단이라면 달리 할 것도 없는 상황에 무리도 아니긴 했다.
아무튼, 그렇게 5분여가 지나자 뒤따르던 차량은 포기했는지 서서히 감속하고 있었다.
그게 맞았다.
잡을 가능성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데 굳이 기름을 소모할 여유가 없지 않나.
“야야! 빨리 튀어! 수원에서 알았어!”
그에 비하면 이쪽은 여유가 넘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었지만, 순경은 너무 놀라서 버스에 대기 중이던 인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덕분에 일행은 곧장 북으로 도망가게 되었다.
수원에 대한 절대악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두려운 존재라는 이미지 정도만 가지고서였다.
“뭐지?”
그렇게 사라져 버린 고속터미널역 일행을 보던 박중 대위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딱히 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냥 황당함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차 존나 좋네요.”
운전대를 잡고 있던 하사 또한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였는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또 다른 놈들인가……?”
“모르겠습니다. 정부 놈들은 아닌 거 같은데…….”
“이거…… 영 찝찝한데……. 흐음.”
박중 대위는 이마 쪽을 긁다가 이내 뒤를 가리켰다.
“일단은 들어가지. 짚이는 구석이 있긴 해.”
“그렇습니까?”
“그래. 전에, 고터 갔었잖아.”
“아, 거기…… 거기 놈들이라고요? 거기 놈들이 왜?”
“모르지. 거기 아니면 또 아예 다른 놈들일 텐데……. 그럴 거라면 생각하면 머리 아프잖아.”
“하긴 그렇습니다. 시발 뭔 놈의 생존자가 이렇게 많은지. 라드 놈들만 상대할 때가 차라리 나았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