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고속터미널역 (2)
부우웅
람보르기니 우르스를 앞세운 채 일행은 남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상당히 요란한 행렬이었다.
단지 우르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뒤를 따르는 버스만 해도 요즘 들어서는 거의 보기 어려운 종류의 물건이었으니.
사사삭
사삭
그 때문일까?
길가에 있던 생존자들이나 라드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거나 몸을 숨기는 것들이 보였다.
아마 김선태 때문이기도 할 터였다.
그가 이끌던 부대가 이미 한차례 이 주변을 싹 쓸어 가지 않았나.
그 때문에라도 김민수가 이끄는 라드는 잘 올라왔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치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가기라도 한 것처럼 수원 주변은 완전히 황폐화되어 있었다.
“어디 가는 거지?”
“모르겠습니다.”
“저 차…… 굉장히 좋은 차 같은데.”
“그렇죠. 굳이 저런 차를 끌고 갈 이유가 있나 싶은데…….”
김민수와 구우준은 멀어지는 차량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고속터미널역 주변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아주 근처는 아니었다.
아무리 수제 총이라고는 해도 맞으면 아프고 끝나진 않을 테니까.
방금 스쳐 지나간 놈들과 같은 전력이라 해도 끌고 온 전력의 4분지 1 정도는 물고 늘어질 수 있을 터였다.
“아무튼, 저 정도가 빠져나갔으면…… 주변을 둘러보는 데 부담이 덜하겠군그래.”
“네. 아마…….”
“그놈이 저기로 간게 분명해. 뭐라고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남쪽을 확인하려고 간 거겠지. 죽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맥없이 죽을 거 같진 않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래, 그렇겠지. 미친놈이지…….”
김민수는 이제 슬슬 썩기 시작한 김선태의 팔을 들여다보았다.
구우준은 그것이 무슨 대단한 전리품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허리에 달고 있었는데, 굳이 뭐라 할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이상한 짓 하기로 따지면 다른 놈들이 더했으면 더하지 않나.
애초에 이성이 부족한 놈들이 많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쪽으로 가지.”
“네.”
“이렇게 셋만 가자고. 이놈들 달고 가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김민수는 이번 병사들과의 싸움 끝에 얻은 또 다른 이성체를 바라보았다.
구우준처럼 완전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놈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놈들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협조 정도가 아니라 숫제 작전에 투입되어도 좋을 정도였다.
“네.”
“네.”
조용히 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봐라.
김민수는 자못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팔까지 자르고 도망간 놈을 물면 대체 어떤 놈이 나올까 하는 기대를 품은 채 조용히 앞으로 나갔다.
말이 조용히지 절대적으로 그렇진 못했다.
김민수도 라드는 라드라서 그랬다.
의도치 않은 손동작이나 발동작 탓에 완전히 소리를 죽이는 것은 불가했다.
* * *
“저긴가?”
“잘 모르겠는데. 밤에 끌려와서요.”
그렇게 김민수가 정찰에 나선 사이, 김선태는 수원에 닿았다.
완전한 폐허 지대를 지나자 곧 건물들이 보였다.
상대적으로 멀쩡한 건물들이었는데 정작 고속터미널, 그러니까 강남에서 온 이들에게는 이 또한 폐허처럼 보일 뿐이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폭격 같은 것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랬다.
“서울 남쪽은 다 이런가……?”
순경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폭발음 같은 것을 듣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서 며칠 밤을 지새우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내 남의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그마저도 툭 끊긴 지 오래다 보니 완전히 잊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저도 서울에 있다가 잡혀간 거라……. 이 주변은 다 이렇습니다.”
“이렇게까지 다 날려 버렸다고? 여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텐데…….”
김선태는 물끄러미, 동시에 면밀히 순경과 다른 이들을 살폈다.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 넋이 나가 있었다.
아니, 압도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애송이들이군……. 하긴, 환경이 좋아도 너무 좋았지.’
만약에 사이가 틀어져도 걱정할 것은 없겠다 싶었다.
물론 사람이라는 것이 어떤 환경에라도 적응할 수 있는 동물이니만큼 갈등 상황이 길어지게 되면 또 모를 일이겠으나 지금 당장은 두부 쪼개듯 부숴 버릴 수 있을 터였다.
‘잘 구슬려서 이용해 먹는 편이 좋기야 하겠지.’
다만 제일 좋은 것은 역시 외교적인 협상일 터였다.
이제 슬슬 서울 전체 수복을 염두에 둬야 할 시점이 왔고, 대통령 또한 더 많은 시민을 잡아 족치는 데에 있어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만한 생존자들의 집합체라면 앞으로 강남 일대를 규합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가시죠. 라드 놈들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폐허에?”
김선태의 말에 순경이 주변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엔 영락없는 폐허일 뿐이었다.
낡디낡은 건물들은 바람에도 힘겨워하는 듯했다.
실제로 벽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것도 보았다.
“오면서 보시지 않았습니까? 주변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온전한 건물입니다.”
“아, 그런가……. 여기에 라드들이. 흐음. 그래, 이동하지.”
엉망진창이었다.
라드라 해도 꺼릴 거 같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만큼 온 것도 처음인 데다가 김선태의 말이 일견 그럴싸했기 때문에, 순경은 이내 다시 차에 올랐다.
그가 그렇게 움직이자 나머지 사람들도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곤 다시 출발했다.
‘이제 곧이로군. 개 같은…….’
김선태는 점점 익숙해지는 광경에 이를 갈았다.
그 모습이 마치 잡혀 오던 때를 회상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김선태의 속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특히 순경이 그랬다.
“그렇게 분한가?”
“네? 그, 그렇죠. 제 동료들이 다 죽었어요. 가족도…….”
“정말 나쁜 놈들이로군. 군인들이 말야.”
“네, 그렇습니다.”
김선태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이라 더더욱 그러한 분위기를 잘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어……. 앞에 뭐가 있습니다.”
그렇게 쭉 가다가 먼저 SUV 차량이 멈추어 섰다.
확실히 좋은 차라 그런가, 브레이크를 밟자마자 딱 멈추었다.
그 앞에는 버려진 차량이 있었다.
이게 민간이 태우고 돌아오던 트럭을 멈추게 했던 바로 그 차량임을 김선태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두돈반 트럭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회수도 못 하겠군…….’
김선태는 아쉬움에 한숨을 토하며 차에서 내렸다.
이미 순경은 그 차량들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건 완전히 폐차인데……. 이것들은 굴리면 굴러갈 것처럼 보이네?”
어리숙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완전 행운 덕만은 아닌지 순경은 딱 보자마자 차량 상태를 파악했다.
여기서 뭐 아는 척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김선태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이걸 여기다 왜 버려 둔 거지?”
“모르겠습니다. 이걸 이렇게 버릴 정도면 수원 쪽이 꽤……. 흠. 부유한 모양인데요?”
“그러니까. 이거 타이어 봐. 거의 새거야.”
“음…….”
김선태를 제외한 핵심 인물들이 토의를 하기 시작했다.
딱히 그에게 뭘 묻는 이는 없었다.
잡혀 왔다가 팔까지 잘리고 도망한 사람에게 뭘 묻겠나.
게다가 어설프게 알아볼 수 있는 게 나온 만큼 지금은 더 떠들고 싶었다.
모든 것이 생경하게 느껴지다 보니 이런 것으로라도 불안을 해소해야만 했다.
“저기, 저쪽으로 길이 나 있습니다.”
“가려면 이거 치워야겠는데.”
“가능합니다.”
“그래?”
“네. 이거 나름 SUV지 않습니까?”
“이걸 그렇게 쓴다고? 아까운데…….”
“아까울 게 뭐 있습니까? 한두 대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하여간, 그들은 곧 SUV를 이용해 폐차를 치워 버렸다.
그러곤 다시 차량에 올라 김선태가 잘 닦아 둔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스팔트가 까진 곳을 새로 덮어 두는 작업까지 해 두었기 때문에 속도가 났다.
순경과 다른 이들은 보면서 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도의 작업은 고속터미널에서도 불가했기에 그랬다.
“이거 큰일인데…….”
“보통 놈들이 아닌 거 같습니다.”
“설마 군부대가 통으로 남았나?”
“근데 공군이지 않습니까? 병력이 아주 많지는 않을 텐데…….”
“하긴, 그런데……. 이건…….”
정부 측에서 징발한 물자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이들이 대체 어찌 알겠나.
그저 정체불명의 수원을 불가해한 수준의 적으로 상상하게 될 뿐이었다.
‘좋아. 근처에 적이…… 그것도 상당히 강한 적이 있다는 상상을 하고 있는 놈들은 약해지기 마련이지.’
물론 전투 준비를 하긴 할 터였다.
하지만 애초에 민간인이었던 이들이 할 수 있는 준비가 뭐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들 혼자서 이러한 적과 대적할 수 있을 거란 상상은 하지 못할 터였다.
그때 정부 측에서 손을 내민다면…….
‘그래, 이 정도면 대통령도 나를 내치지 못하겠군.’
김선태는 연신 잘됐다고 여기면서,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채 그저 달리는 차에 몸을 실고 있었다.
끼이익
그렇게 달리다 또 차량이 멈추었다.
이번엔 김선태 측에서 구원을 가다가 멈추게 만들었던 또 다른 폐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뭐야?”
“바리케이트 같은 건가……?”
“굳이? 이 주변에 뭐가 있나?”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듣다가, 김선태가 끼어들었다.
“혹시 뭐 정부 측 군대를 마주쳤다거나 한 건 아닐까요?”
“아……. 그런가? 여기까지……?”
“여긴 아니더라도, 기지 주변의 방비를 단단히 했던 것일 수도 있죠.”
“아, 아하. 그렇군.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 아무튼…… 치우고 더 가 보지.”
이미 수원은 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지 오래다 보니 김선태의 말에도 쉽게 흔들렸다.
아무튼, 일행은 그렇게 차를 치우고 더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피웅덩이가 형성된 곳에 이르렀다.
날이 이제 슬슬 풀리기 시작한 무렵이다 보니 완전히 마르지도 그렇다고 얼어붙지도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워낙에 흘러나온 피가 많아서이기도 했다.
“웁.”
“이게 무슨…….”
“이 미친놈들이 여기서 뭘 한 거지?”
김선태는 이번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그저 저들 나름의 추론을 그러니까 끔찍한 상상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다만 한마디만 보태었는데, 누가 봐도 새로 단 것처럼 보이는 입구를 가리키면서였다.
“어? 제가 저기…… 저기 갇혀 있었습니다.”
“허……. 그럼 진짜…….”
“그때 그냥 다 죽여 버린 모양인데…….”
“세상에 이런 놈들이 있다고?”
어떻게 봐도 이곳은 살육의 현장이었다.
시신이라곤 단 한 구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미처 치우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살덩이와 사방에 튀어 있는 핏덩이 등등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몇이나 죽어 나갔던 걸까 하는 의문을 이어 나가던 순간, 누군가 뱉은 말 때문에 상상은 또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근데 시신은 다 어디…… 어디 간 거지?”
“어…….”
“그러게…….”
그리고 거기에 김선태가 불을 붙였다.
“식인종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웁.”
“우우우욱.”
그 생각만으로 토하게 된 이들이 있었다.
순경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