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고속터미널역 (1)
고속터미널역.
무려 지하철만 세 개 노선이 지나고 지상으로는 서울에서 가장 큰, 그러니까 국내에서 가장 큰 버스 터미널이 있는 곳.
이곳을 다스리고 있는 이는 원래 형사였던 이였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신반포 파출소의 소장이었다.
그쪽에서 세력을 키우다 이쪽이 모종의 이유로 무주공산이 되었을 때 진입했더랬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생활은 퍽 만족스러웠다.
“어으…….”
바로 앞에 있던 신세계 백화점의 명품관이나 가구관은 모두 사태 초창기에는 외면당했던 곳이었다.
당장 먹고살기 바쁜데 뭔 사치품이란 말인가.
더군다가 바로 지척에 강남 성모 병원이 있었다 보니 아주 초기부터 라드가 창궐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바로 그러한 연유로 인해 지금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다.
소장이라 불리는 사내, 진세균은 고급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런 미친…….”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안락함으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가격 또한 수천을 호가하는, 가구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사치품에 해당하는 물건이었고.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별 상관이 없었다.
그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진짜 같다고?”
“네. 아무리 봐도…… 트럭이 왔다 갔다 한 흔적이…… 게다가 경부 고속 도로 옆으로 아시죠?”
“알지. 거기서 여기까지 온 놈들 많잖아.”
“네네.”
고속터미널역에서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땅이었다.
해서 안전을 완전히 담보하긴 어렵지만 한강 고수부지 쪽으로 밭을 조성하고 있었다.
여름철 장마에 심심하면 잠기는 곳이긴 하나, 어쩌겠나.
달리 땅이 없는데.
하여간, 그쪽 경작은 대개 외지인들이 하고 있었다.
‘영국 놈들이 이렇게 했다고 하지?’
그리고 그 감독은 원래 이 근처에 있던 이들, 그러니까 초창기 고속터미널에 입주했던 이들이 맡고 있었다.
그랬더니만 과연 아예 위에 있는, 그러니까 치안을 담당한다는 구실로 온갖 무기와 장비는 다 가져가고 정작 노동은 피하고 있는 진세균의 실세들보다는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이들에게 원성이 쏠리고 있었다.
이렇게 쭉 지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주변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네. 떠나온 놈들도 거기가 뭐 아주 못살겠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세력 싸움에 밀려서 그런 것이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래서 더 일 부려 먹기 좋았지. 나름 괜찮은 곳이라고 들었는데…….”
“근데 아예 씨가 말랐습니다.”
“뭐 단체로 어디 이동한 건 아닌가?”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여기 온 놈들이 털어 둔 말 토대로 보면……. 거기 세력이 대단히 여러 개입니다.”
“하긴. 근데 없다……. 다 잡혀갔군.”
“네.”
“하…….”
진세균은 들고 있던 담뱃갑을 집어 던졌다.
어차피 비어 있던 것이다 보니 볼품없는 소리나 내고 떨어질 뿐이었다.
“어쩐다…….”
“군인 놈들이…… 이 밑으로 어떻게 왔을까요?”
“어떻게 오긴. 우리가 정찰할 수 있는 범위라고 해 봐야 예술의 전당이 다잖아. 그나마 거기도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합니다. 그 밑으로…… 우면산 밑으로 갔다면 아예 몰랐겠군요.”
보고를 올리는 이는 파출소 소속 순경이었던 이였다.
원래부터 상하가 명확했던 사이였던 데다가 일 벌일 때마다 섭섭지 않게 챙겨 둔 덕에 충성도는 오히려 이전보다 높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건 좋았지만…….
‘그 새끼는 유능해 보였지?’
아무래도 이런 돌발 사태에 대응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당장 자신만 해도 운이 좋아 이렇게 된 것이지, 실력으로 뭘 한 건 아니지 않나.
사태가 본격적으로 터질 때, 총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는 거 자체가 운이었다.
더군다나 한때 진입했던 군이 라드를 꽤나 많이 집어 먹고 스러졌다는 것도…….
처음부터 총으로 진압했다면 모르겠으나 왜인지 모르게 이상한 막대기만 사용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아직도 왜 탱크가 발포를 안 했는지 그걸 모르겠어.’
진세균은 땅값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윗대가리라는 것들이 바라보는 현실이라는 것이 또 그들이 탑재하고 있는 현실 감각이라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몰라서 그랬다.
“그…… 김선태? 그 사람 불러와.”
“네? 그 사람은 왜…….”
“지금 우리 중에 그 사람만큼 바깥 상황 잘 아는 놈 있어? 게다가 보통이 아니잖아. 잡혔다가 도망을 치다니.”
그가 인상적이었던 건 단지 그의 행적만은 아니었다.
‘겁먹은 구석이 없었어…….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래, 다시 생각해 보면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어.’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러니 거기서도 도망쳐 올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이 진세균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들어 보니 팔도 엉망으로 잘렸다고 했다.
다름 아닌 강남 성모에 근무하던 외과 의사의 말이니 틀림없었다.
아무리 봐도 마취도 없이 그것도 그리 날카롭지도 않은 칼로 했다고.
‘미친……. 그걸 견뎠다니.’
유능한 데다가 독하다.
거기에 더해 아무래도 뜨내기 출신이다 보니 나름 성과를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일단 아직 치료가 더 필요한 몸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찰을 나서겠다고 하지 않나.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정찰을 두려워하질 않아. 잘은 모르지만 잡혀가기 전에도 평범한 생존자 무리에 있던 놈은 아닐 거야. 어쩌면…….’
식인종 무리였을까?
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렴 세상이 이 지경이니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니겠나?
좋게 보려고 애쓰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무슨 비밀이 있어도 다 덮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한번 놓고 나니, 그제야 비로소 소파의 안락함이 엉덩이로 곧장 전해져 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때 김선태가 안으로 들어왔다.
피와 땀 그리고 먼지 가득했던 군복 대신 백화점에서 공수한 옷을 입혀 놔서 그런가 완전 다른 사람 같았다.
다른 곳과는 달리 한강에서 물을 수급할 수 있어 나름 씻을 수도 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아, 그래.”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무엇보다 인물도 나쁘지 않았다.
밑에 부리고 있는 순경들보다는 뭐가 되었건 더 나아 보였다.
‘그래도……. 너무 티를 내면 안 되겠지.’
물론 초짜 리더는 아니다 보니 그런 걸 티를 내서 결속력을 흔드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여기 김 순경이 정찰 나갈 건데……. 도와서 나가 보지.”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 잘 들어야 하네. 어디 그룹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쪽은 경찰 베이스야. 상명하복이 기본이라고.”
김선태는 진세균의 말에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상명하복이라면 그 누구보다 전문인 것이 바로 김선태이지 않나.
다행히 팔 물렸을 때의 생각만 하면 모든 웃음을 삽시간에 지워 버릴 수 있게 된 참이다 보니 그런 실수는 피할 수 있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그런 김선태의 말에 옆에 있던 김 순경 또한 불만 어렸던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래, 어디까지나 메인은 처음 파출소 멤버다.
이 원칙을 그들의 소장이 지켜 주는 한 충성을 저버릴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럼 나가 봐. 더 멀리 가 봐. 수원까지 가 볼 수 있으면 제일 좋아.”
“차는…….”
“여기 넘치는 게 차인데. 아무거나 튼튼한 놈으로 타고 가.”
“네!”
김 순경은 씨익 웃었다.
‘버스 한 대에 SUV 한 대로 갈까.’
버스는 그야말로 남아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비할 수 있는 이들도 남아 있었다 보니 한동안은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거기에 더해 기사도 있다 보니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SUV는 그걸로.”
“네? 어……. 그거 너무 튀지 않나요?”
“지금은 그냥 차 몰고 다니면 다 튀어.”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 가져오라면 가져와.”
“네, 네.”
소장의 취향은 벤츠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마이바흐.
아직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꿈도 못 꾸던 차였지만 지금의 소장은 마이바흐만 열 대가 넘었다.
그래 봐야 간혹 기분이나 낼 때를 제외하면 탈 일이 없지만.
하여간,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그러나 대부분의 부하들이 따르고 싶어 하는 명령 때문에 고속 터미널 근처 주차장은 고급차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중 김순경이 고른 것은 람보르기니 우르스였다.
‘이거 시끄러운데…….’
김선태는 차의 껍데기보다는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간이다 보니 처음 든 생각이 이랬다.
“와, 이걸 탄다고요?”
하지만 겉으로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럼. 우리 부자야.”
별 의미 없는 말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부자라니!
돈이 의미가 없는 세상에 그게 뭔 소리란 말인가.
당장 김선태는 수억을 준다 해도 권총 한 자루랑 바꿀 생각이 없었다.
‘뭐……. 이럴수록 좋지.’
김선태는 속내를 감춘 채 말했다.
“운이 좋군요. 얻어걸린 곳이 이런 곳이라.”
“그래, 운이 좋지. 소장님이 잘 봐 준 걸 다행으로 여겨. 아니었으면 저기 한강 가서 밭 갈아야 해.”
“아…….”
멀리서 보이던 인영들이 밭을 갈던 사람들이었구만.
거기 홍수라도 나면 애써 갈아 두었던 거 죄 허사로 돌아갈 텐데.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뒤통수 치고 도망가는 대신 좀 더 진득하게 붙어 있다가 전복을 꾀해도 되겠단 생각도 들었다.
“갈까.”
“아, 저도 여기 탑니까?”
“왜, 싫어?”
“아, 아닙니다. 저야 좋죠.”
한눈에 봐도 김선태가 나이가 위임에도 불구하고 김순경은 일부러 반말을 썼다.
김선태 또한 최선을 다해 그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김선태는 이쪽이 보유한 버스의 수량 및 정찰에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을 확인했다.
‘단순 정찰인데도…… 스물이 넘어. 모두 파이프 소총으로 무장했고. 나름 냉병기도 소지하고 있어. 여기 어디 헬스장이 있나? 꽤 체격들이 건장한데……. 하긴, 쌓여 있는 재고만 먹어도 아직까지는 충분하겠지.’
확실히 그가 보아 왔던, 그러니까 잡아갔던 민간인 집단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규모였다.
그뿐만 아니라 꽤나 풍요로워 보이기도 했다.
숫제 여유가 있어 보일 지경이었다.
‘하긴 이 근방에 민간인 잡아가면서 우리가 라드들도 꽤 잡아 죽였지.’
아마 김선태의 영향도 있었을 거 같았다.
다른 곳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라드가 적지 않겠나.
대강 기억하는 것만 해도 살상 규모가 수백에서 수천을 넘나드는 작전이 여럿이었다.
부우웅
그렇게 딴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차량이 출발했다.
우선 기동성이 좋을 수밖에 없는 SUV가 앞서가고 그 뒤를 버스가 따랐다.
주변 도로는 이미 치워 둔 지 오래였기 때문에 경부에 오를 때까지 장애물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하행 도로가 아니라 상행 도로를 통해 내려가고 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불법도 이런 불법이 없는데 묘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고속도로 역주행.
이런 건 이런 세상이 아니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짓이었다.
“수원으로 바로 갈 거야. 부대 위치 정확히 아나?”
“잡혀간 거라…… 그래도 예비군 훈련 때 갔었으니 대강은 압니다.”
“그거 좋네. 내비는 안 되거든.”
“아, 하하하.”
김선태는 턱도 없는 농담에 하하 웃으면서, 이놈을 어찌 이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골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