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주변 (2)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부정확한 정보라고 해도 그랬다.
그런 정보들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교차 검증을 통해 옥석이 가려지기 마련이니까.
“가죠.”
“저는 그럴 건데…… 교수님도요?”
“제 직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겁니다.”
“하긴……. 어차피 진료는 다른 분들이 하고 있죠?”
“네.”
다른 분들이라고 했지만 주로 그러고 있는 건 재원이었다.
우식은 다른 일에 더욱 전념하고 있었다.
주로 서울에서 몰려든 최근의 피난민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아직까지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지만 원래 통계라는 게 그렇지 않나.
저러다 충분한 n수가 쌓이고 나면 갑자기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법이었다.
그걸 잘 아는 유현과 김태평 덕에 대령 또한 최우식에게 별다른 일을 요구하진 못했다.
오히려 이참에 새로 합류한 이들의 불만이나 그들 사이에 도는 소문들을 알려 줄 것을 요구했다.
“위험…… 할 수도 있겠지만. 뭐…… 낮에만, 개활지 위주로 다닐 거니까 아마도 괜찮을 겁니다.”
“철창은요?”
“철창은 위협이 되죠. 하지만 트럭으로 다닐 거니까요. 박중 대위님. 부대원 좀 빌려주시죠.”
“아니, 저도 나서겠습니다.”
“대령님 명령이 있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그 정도 재량권은 있습니다. 내일부터는 모르겠지만.”
박중 대위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미 놈들의 근거지가 무너졌음에도 그의 분노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간혹 대령과도 생존자 구출 문제도 부딪치곤 했다고 들었으니.
이제 부대 내 비축 물자의 부족이나 생존자끼리의 충돌 등 여러 문제를 이해하게 됨으로써 입을 다물었다고는 하는데…….
아마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불만이 있을 터였다.
군인은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 이 원칙은 간단한 만큼이나 강력하니까.
그 원칙을 외면하는 것도 지탄받아 마땅한 일일진대 역으로 민간인을 공격해?
아니, 그 정도를 넘어 라드로 만들다니…….
으드득 이 가는 소리가 났다.
“잘됐군요. 그럼 바로 가죠. 두돈반 한 대면 될 겁니다. 양옆으로 총 겨누고 있으면…… 아무리 놈들이라 해도 쉽사리 접근하진 못할 겁니다. 아마 이번 일에 거대 개체나 초거대 개체 몇 놈은 손실되었을 테니.”
라드 놈들의 현장 정리란 것은 깔끔하면서 동시에 엉망이었다.
딱 시신과 라드화되는 것들만 치워서 그랬다.
덕분에 뭔가 썩어 가는 것도 없고 들짐승이 꼬이는 일도 없었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령 탄피와 같은 것들.
그리고 군데군데 파여 있는 땅들.
아마도 수류탄의 영향이었을 터였다.
그것만 봐도 이곳에서 있었던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이제이가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군그래.”
유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곤, 차에 올라탔다.
운전대를 쥔 것은 김태평이었다.
이미 적진이라고 해도 족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지 않나.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안전지대가 아닌 곳은 그냥 다 위험하다고 보면 되었다.
부우웅
그사이 박중 대위도 부하들 준비를 시켰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에야 차량은 천천히 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으음.”
“흐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끔찍한 광경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북상을 하면 할수록 폐건물이라 할 만한 구조물도 잘 보이지 않았다.
숫제 폐허라 해도 좋을 만한 지대가 이어졌다.
실제로 인구 밀집 지역이기도 했거니와, 정부 측에서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 지대가 있어서 그랬다.
김태평은 옆에 비집고 앉아 있는 유현과 오예리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눈으로는 바깥 상황을 살피면서였다.
“이러다 또 분당 가까워지면 귀신같이 온전한 건물들이 나옵니다.”
“네? 분당이 진짜 인구 밀집 지역 아닌가……?”
“정치 논리죠. 거기에 땅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겠습니까? 게다가 강남과 가까운 1기 신도시라는 상징성 때문에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죠.”
“말이 되나. 그럼 세종시는……?”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릅니다만……. 지금 정부…… 그러니까 대통령이었던 작자는 일단 서울만 제대로 지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미친놈들…….”
폐허가 물론 보기 좋은 건 아니었다.
폭격에 의해 죽어 나간 것이 어디 라드뿐이겠나.
죄없이 죽임을 당한 민간인들도 엄청 많을 터였다.
하지만…….
“확실히 이 주변은 조용하네요.”
오예리의 감상대로였다.
단지 당시에 많이 죽어 나가서 뿐만은 아니었다.
폭탄에 눈이 달려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무슨 전술 폭격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일대를 지우기 위해 한 폭격이니만큼 식량이니 물자니 뭐니 다 박살 났다.
그렇다 보니 폭격이 끝나고 난 후에도 뭐가 모일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죠. 그 반대로 분당 쪽은 아주 난리입니다. 김선태가 생각이 있으면 그쪽을 정면으로 뚫고 올라갔을 리는 없습니다.”
“난리라면……?”
“사람도 많고 라드도 많죠. 이제 베드타운으로써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도시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태평은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씁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딱 보기만 해도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굳이 물을 필요는 없겠지.’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캐물을 만큼은 아니었기에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오예리 또한 그냥 그렇게 있었다.
같은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이 폐허가 주는 압도적인 공허감에 짓눌려 있었다.
“역시.”
그때 김태평이 잠깐 차를 세웠다.
저 멀리 마천루까지는 아니지만, 뭐가 되었건 높은 건물들이 보였다.
아마 분당일 터였다.
김태평은 세우는 것도 모자라 차에서 내렸다.
그러곤 어떤 흔적을 가리켰는데 무수히 많은 발자국이 있었다.
크기만 봐도 인간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틀었습니다. 아마 경부 고속 도로 쪽으로 갔을 겁니다. 뭐…… 그쪽은 너무 버려진 차량이 많고 그걸 모를 놈이 아니니 옆길로 갔을 거예요. 거기도 폭격 지대는 아니어서 뭐가 많이 남아 있긴 하겠지만 분당 정도는 아니니까.”
“그럼 그리로 갈 겁니까?”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판단하도록 하죠.”
“그게 좋겠군요.”
샛길이라.
그래, 경부 고속 도로 양옆으로도 마을이나 신도시 비슷한 것들이 조성되어 있지 않나.
길을 잘못 들어서 그쪽으로 돌아 나왔던 기억이, 유현에게도 있었다.
부우웅
방향이 결정되자마자 차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더 달리자 폐허 지대가 끝이 나고 이내 멀쩡한 그러나 낡은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래 낡았던 것인지 아니면 사태가 벌어진 후 이렇게 된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오래된 건물들이었다.
특히 서울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강남에서 살고 있는 유현에게는 옛날 세트장에 왔나 싶어질 지경이었다.
“확실히 안전한 곳을 잘 아는군…….”
약간 구경꾼처럼 된 유현을 두고 김태평이 중얼거렸다.
“네?”
혼잣말 같기도 했지만 하여간, 좁디좁은 앞좌석에서 안 들릴 리가 있겠나.
“아, 여기 용인입니다. 에버랜드 근처죠.”
“여기가요?”
“그렇게 안 보이죠? 여기서 15분만 가면 에버랜드 입구입니다. 이 근처에…… 그래, 저깄네.”
오래된 건물들은 그냥 서 있는 것도 힘든지 봄바람에도 삐걱이고 있었다.
군데군데 오폭으로 인한 것인지 뭐에 의한 것인지 모를 자국들이 나 있기도 했다.
아니, 오폭이라기보다는…….
“여긴 군대가 진압했었습니다. 딱히 전략적으로 유리할 것도 없고 가치도 없는 곳이라 생존자들만 대강 취합해서 서울로 올라갔죠.”
“아……. 여긴 그럼.”
“저거 다 탱크가 쏜 거예요. 하여간, 그 때문에 라드도 거의 없고 사람도 거의 없을 겁니다.”
“아…….”
“민간인들은 절대 알 수 없죠. 김선태야 당시 작전에 깊이 관여했으니 자세한 것들을 다 알고 있지만…….”
김태평은 도망치는 와중에 이런 것들을 다 기억해서 도망간 김선태가 새삼 대단하긴 하다 싶었다.
물론 그 또한 엘리트 군인이긴 했지만 훈련받은 종류가 다르지 않나?
그럼에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건…….
‘확실히 보통 놈은 아냐.’
그래서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그런 놈이 가뜩이나 괴물인 대통령 곁에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번에 놈의 칼이라 할 수 있는 부대 상당수가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서울엔 많이 남아 있을 터였다.
지휘관만 돌아간다면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게 뻔했다.
“그렇게 듣고 나니까 더 을씨년스럽긴 하네요. 서울 근방에 이런 곳이 있었나…….”
“생각보다 많습니다. 서울 안에도 있지 않습니까?”
“어디요?”
“양재천 근방에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
“아, 거기. 그래, 그렇죠.”
유현은 잠시 평화롭던 시절을 떠올렸다.
머리 식히려고 산책 삼아 걸을 수 있었던 천을.
그리고 그 근방을 메우고 있던 풍경을.
허나 눈앞에 닿는 건 모두 생경한 것들뿐이었다.
가뜩이나 낡은 지역에 사람마저 사라지고 나자 남은 것은 말 그대로 쓸쓸함뿐이었다.
“어…….”
“왜 그러십니까.”
“여기, 총알 자국이.”
“아까부터 있었는데요?”
“그렇죠. 그런데…….”
군대가 진입했던 곳이다 보니 사방에 총 자국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한 건 좀 달랐다.
자국이 아니라 주변에 떨어진 탄피가 그랬다.
차 타고 지나가면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이나 반짝이고 있었다.
군대가 움직였다고 확인된 시기는 벌써 몇 달이 지나지 않았나.
그때 발생한 탄피라면 저럴 수가 없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뭐, 김선태 부대겠죠. 근데 이상하군요. 탄피가 너무 적은데.”
“그러고 보니. 이거 고작해야 서넛이 쏜 거 같은데.”
“아뇨. 떨어진 위치를 보면 둘입니다. 한 놈은 그나마…… 이동하면서…… 그래, 여기서. 여기 오토바이 바퀴 자국이 있군요.”
오토바이 바퀴 자국은 앞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흠. 이 뒤를…… 몇 놈이 향했는데…… 제가 이런 흔적 보는 데에는 아주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그렇겠죠. 사냥꾼도 아니고. 어?”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핏자국이 있었다.
핏자국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없었다.
특별할 만한 일도 아니고.
“왜 그럽니까?”
해서 김태평이 물었고, 유현은 그 자리에 한참 서 있다가 이내 주저앉아 살피기 시작했다.
‘피가 너무 많이 튀었어. 이 뒤로 떨어진 거 보면 뭔가 대비를 한 느낌이 드는데…… 그런데도 튀었어. 이거…… 절단인가?’
확신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뭔가 일반적인, 그러니까 라드에 의해 발생한 핏자국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총상과도 달랐고.
“부상을 입은 거 같은데, 누군지는 몰라도 꽤 심각한 부상 같습니다.”
“라드에 의해 그렇게 다쳤다면 죽었을 텐데…… 바퀴 자국은 계속 이어집니다.”
“흐음…….”
“이거 김선태인가?”
“네? 갑자기요?”
“부상을 입었는데도 도망갔죠. 게다가 아까 그 탄피 흔적…… 한 놈이 한 놈을 버린 겁니다. 그럴 수 있는 놈이 많지는 않겠죠. 뭐 제 억측입니다. 놈을 미워하는 마음이 만든. 하지만 크게 다쳤다니까 그놈이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