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주변 (1)
유현은 김태평과 함께 조심스레 남하하고 있었다.
남하라고 해 봐야 그리 거창할 것은 없었다.
그저 부대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으니.
탕보다 앞으로는 박중 대위가 이끄는 부대가 있었다.
이전보다 확실히 줄어든 라드 잔당을 소탕하기 위함이었다.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크기도 작다 보니 딱히 위협이랄 것이 없었다.
탕그렇다고 해도 평소라면 저런 식으로 총탄을 낭비하지 못했을 터였다.
사태 초창기였다면 모를까, 장기화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오래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소탕’이라는 말 자체를 쓰지 못하게 되어서 그랬다.
모든 것이 부족했다.
특히 탄약처럼 도저히 자체 생산이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탕허나 지금은 예외였다.
-아마…… 놈들이 있던 곳에 물자가 꽤 있을 겁니다. 라드가 더 흩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답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주변에 있던 생존자들이 털어 버릴 수도 있겠죠.
어지간한 무리라면 추적해서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까지 빼앗아 올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위험이라고 대령은 느꼈다.
그래서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이들 또한, 그러니까 그때 그 현장에 있던 이들도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던 참이었기에 잘됐다 하고 나왔다.
“거의 멈춰 서는 게 없군요.”
유현은 차에 탑승한 채 입을 열었다.
딱히 대상이 정해지진 않는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안에 있는 모두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여간, 그 말을 받은 건 김태평이었다.
오예리는 음울한 얼굴로 밖을 보고 있었고, 이순규는 애초에 트럭 화물칸에 있어서 듣지 못했다.
“네, 뭐…… 박중 대위 부대도 라드 상대로는 이제 베테랑이니까요. 몰려드는 상황이거나 탄약을 한 발 한 발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쏴도 되면 별 무리 없이 뚫을 겁니다.”
“거기에 여전히 라드가 많이 있으면 어쩌죠?”
“수류탄이라도 까야겠죠. 하지만 그렇진 않을 거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뭐……. 다 가설입니다만.”
이제 원래 있던 세상이 망하고, 라드와 공존하는 세상이 열린 지도 거의 9개월이 다 되어 가고 있지 않나.
그렇다 보니 미지의 영역이었던 부분도 많이 밝혀지고 있었다.
인프라가 쫙 깔려 있던 시기에 기대할 수 있던 것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했지만.
유현과 같이 배경 지식이 있고 또 남다른 직관력이 있는 이들은 무언가 감을 잡아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생전의 기억의 영향을 받는 거 같습니다.”
“그게 라드 개개인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거 같다는 거죠?”
“네. 뭐……. 다른 요인들도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겁니다만. 우리가 본능이라고 부르는 여러 영역들이 사실은 그 개인의 기억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건 이제 유명한 이론이 되었지요.”
유현은 언젠가 이순규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생각해 봐. PTSD도 감정…… 본능적인 두려움이야.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 때문에 발생하는 거지.
-그렇군. 하지만 라드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해…… 그리고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면서 인간처럼 기억이 또렷하진 않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림빅(Limbic) 시스템까지 망가지는 거 같진 않아. 감정을 느끼잖아. 우리처럼 정교하진 않겠지만…… 라드가 되기 직전에 겪었던 강렬한 기억들은 상당한 영향을 끼칠 거야.
여러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중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를 감안해서 생각을 해 보면, 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라드들의 가장 최근에 있던 강렬한 기억이 뭔지 고민을 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렸지. 그것도 군인들에게 의해 강제로.’
바로 저 위치에서 물렸다.
유현은 그가 입을 다물자 자연히 입을 다물게 된 김태평 등과 함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폐건물의 집합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만 보면 그저 부대 근처에 놓인 폐건물들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이 방향에서 보면 그랬다.
하지만 돌아가면 잊을 수 없는 구조물이 나왔다.
“이 미친놈들.”
“이 새끼들한테 하마터면 당할 뻔했잖아.”
먼저 도착한 군인들이 주변에 벌어져 있는 참상에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유현은 그 사이에 유유히 내려 그날 그들이 부수었던 거대한 철문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부술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문이었다.
저 안에, 라드들이 수도 없이 들어 있었더랬다.
그리고 지금 그 라드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 두려움으로 자리했을 것이 분명한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악취가 났다.
밖에 피와 살덩이 그득해 이미 악취가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류가 다른 악취가 느껴질 정도로 심각했다.
‘트라우마가 될 만도 하지.’
라드에게 강제로 물린 것도 모자라 그 즉시 갇혔다.
라드화가 이루어질 때 모든 사람들이 같은 증상을 겪다던가?
그리 많은 수의 감염을 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경과를 보였다.
누워서 바르르 떨던 것들은 그저 떠밀려 나오는 라드들에게 밟혀 죽었을 터였다.
그렇게 죽은 것은 굶주림에 시달리던 라드들에게 먹혔을 테고.
‘똥오줌도 아무 데나 갈겼고…….’
거기에 더해 본능이 우선하는 라드들의 특성상 아무 데나 배설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 근방에서 적어도 라드들에게서 제일 안전한 곳은 이 건물일 수도 있어.’
물론 개중에는 두려움 대신 복수심에 불타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감히 돌아올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아무리 많다고 해도 수십도 안 될 텐데…….
그 정도는 총든 병사 열만 있어도 제압이 가능할 터였다.
뭐, 운이 좋거나 특출난 재능이 있어서 거대 개체 이상으로 성장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긴 하겠지만.
“찾았습니다! 탄약입니다!”
“여기! 탄약을 실었던 흔적이 있습니다. 남은 것도 많은데……. 가져간 것도 꽤 있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잠시 상념에 젖어 있으려니, 욕설하는 것을 멈추고 해야 할 일에 열중하던 병사들이 차례차례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과연 그들의 말대로 물자들이 보였다.
적지 않은 탄약이 쌓여 있었다.
이 정도면 수백에 달하는 수원 부대 전체가 격렬한 전투를 하루 또는 이틀 정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무리하지 않으면…… 1년은 버티겠군.’
격렬한 전투가 그렇게 될 정도니 지금처럼 조심조심 지내면 1년 아니라 2년도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어찌 보면 충분한 물자를 노획했다, 이 말이었다.
허나 박중 대위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더 있을 수 있단 말이지?”
“네.”
“따라가 보지.”
“네!”
아주 무거운 실은 것이 분명한 SUV 차량의 흔적이 피범벅이 된 현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군데군데 끊긴 곳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쭉 이어져서, 어디까지 간 건지 확연히 확인할 수 있었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 그때 놈들을 습격했던 라드가 있을 수 있어요. 아니, 있을 겁니다.”
박중과는 달리 그 뒤를 볼 여유가 있던 유현이 말렸다.
하지만 박중 대위는 완강했다.
“조심하면서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여기 오는 것도 위험했던 거 아닙니까? 병력 따로 빼지 않고 전체가 움직이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음…….”
그 모습을 보던 유현은 판단을 유보했다.
김태평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유현의 의중을 전달 받은 김태평은 잠시 고민했다.
‘100명의 무장한 병력…… 군인. 놈들이 지금까지 발견한 군인은…….’
본부 근처에서 전투를 벌였던 자신들과 김선태의 부대였다.
말이 쉬워 부대라고 퉁치는 것이지, 돌멩이나 철창 외에는 변변한 원거리 무기가 없는 라드들에게 그들은 거의 재앙이었을 터였다.
물론 대단한 완력을 이용해 인간은 엄두도 못 낼 만한 엄폐물을 방패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 않겠나.
‘이걸 건드릴 가능성은 없어. 만약 이미 이 정도 병력을 우습게 생각할 정도로 커졌다면…….’
그렇다면 사실 조심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이대로 쭉 원래 있던 부대까지 밀려도 이상할 것이 없을 테니.
허나 이건 별 가능성이 없는 얘기였다.
모든 것이 부족한 것은 비단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랬다.
특히 식량이라는 자원에 한정을 둔다면 라드 쪽이 훨씬 부족할 터였다.
놈들은 많이 먹으니까.
비단 성장을 위해서만 많이 먹는 건 아니었다.
그냥 유지를 위해서도 많이 먹어야 했다.
‘정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그 때문에라도 유지 가능한 집단 크기는 정해져 있어…….’
단위 구역당 생산 가능한 식량은 정해져 있지 않겠나.
물론 질소를 이용한 비료의 개발로 인해 그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다 옛날이었다.
아니, 농사는커녕 채집과 수렵 생활로 회귀한 라드들은 절대로 거대 집단을 이룰 수 없었다.
잠시는 몰라도 장기간은 안된다.
“가 보죠. 대신 너무 멀리 가지는 맙시다.”
“네, 그러죠.”
“다행히 오늘 날씨가 아주 좋아 시야가 좋군요. 이러면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태평은 의견을 내놓았고, 유현은 그에게 판단을 유보했던 만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던 답이 나왔으니 박중은 환하게 웃으며 앞서 나갔다.
그러면서도 트럭의 흔적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놈들이 근거지로 썼던 곳을 조금 벗어나자 흔적이 훨씬 선명해졌다.
김민수가 이끄는 라드들이 본의 아니게 현장을 정리해 놓은 탓이었다.
시신은 식량으로 쓰기 위해 치웠고 살아남은 이들은 라드화를 기다리기 위해 데려갔다.
“여기서 이쪽으로. 갑자기 틀었어요. 전투 중이었나.”
“알 수 없죠. 길이 막혔을 수도 있고……. 아.”
아무튼, 그들은 트럭의 흔적을 따라 걸었고, 그 결과 철창에 의해 파괴된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에…… 탄약이 있습니다!”
“오.”
김민수와 구우준에게 총탄이 그리 대단한 물자는 아니지 않나.
당장 그네들부터가 딱히 뛰어난 사격술을 지니지 못했는데, 나머지 놈들은 총을 다루기는커녕 사고나 안 내면 다행인 상황이다 보니 그랬다.
해서 저번 습격에서 소모했던 정도만 딱 그 현장에서 노획하고 나머지는 건들지고 않았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박중 대위는 트렁크를 가득 메운 탄약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가 그 때문에 단순한 얼굴로 기뻐하고 있을 때, 유현과 김태평은 주변을 살폈다.
‘그놈들이 어디로 갔을까.’
‘이 차 안에 있던 놈들은 다 죽었을 거야. 아니, 아니군. 여기 발자국이…… 이건 군화. 김선태인가? 억측이지. 군인들이 라드가 되었을 거야. 하지만 뒤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많아. 크기도 하고.’
‘북쪽으로?’
‘다 갔나? 그 후로 더 많은 발자국이……. 흠.’
둘을 그렇게 각자 추론을 하다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곤 각기 생각한 바를 꺼내었다.
결론은 아무래도 라드가 위로 향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골목과 야지를 가득 메운 이 발자국 흔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왜……?”
“모르죠. 어쩌면 우리에게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있는 게 최선일까요?”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정보는 아무래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