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탈주 (2)
구세대 라드.
정식 명칭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달리 부를 만한 명칭이 없지 않나?
확실히 이성이 있는 놈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보니 ‘구세대’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김선태는 생각했다.
탕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도 김선태는 흔들림 없이, 달려들던 놈의 무릎에 총알구멍을 내주었다.
머리를 맞힐 수 있다면 제일 좋기는 한데 달리는 놈의 머리를 한 방에 맞히길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무릎 타격이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리는 계속 움직이니까.
“컥.”
하지만 맞히기만 하면 효과적이었다.
탕탕
그렇게 널브러진 놈의 머리에는 신진식 대령의 총알이 날아들었다.
탕탕탕
두 군인들이 열심히 총질을 하면서 간신히 구세대 라드들과 싸우는 사이, 김민수와 구우준은 그들의 무리를 이끌고 접근 중이었다.
정면이 아닌 뒤로 돌고 있었다.
김선태나 신진식처럼 이 폐허가 된 세상이 마냥 위험한 곳은 아닌 놈들인 만큼 그 둘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진 않았다.
아니, 숫제 달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으, 총. 총!”
김선태도 신진식도 뒤가 없다는 생각으로 쏴 대고 있었다.
마냥 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격을 조준 사격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찰나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간에 벌써 열 개체에 가까운 라드가 죽거나 당장 움직이기는 어려워졌다.
“탄약 있나?”
“다행히 탄창 한 개 정도는…….”
“물러나는군, 그래. 다행이야. 저놈들이 이성이 있는 놈들이었으면 위험했을 거야.”
“그렇죠, 아무래도.”
이성이 없는 놈들도 손에 쥔 것이 있다면 던져 대고 하기는 했다.
처음부터 총 쏴 대는 놈들도 있었으니 그럴 만하지 않나?
심지어 수행 기억에 의해 운전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운전이라고 해 봐야 그저 액셀 밟고 돌진하는 게 다이긴 했지만.
그에 비해 신세대 라드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놈들은 기다릴 줄 알았다.
정말로 사냥이라도 나선 것처럼 주변을 맴돌면서 사냥감, 그러니까 인간들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후…….”
“완전히 물러 났군그래.”
김선태는 지니고 있던 망원경으로 라드들의 동태를 살폈다.
말한 것처럼 놈들은 딱히 주변에 머물 생각도 없는지 우르르 물러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고작 두 명의 인간이라 생각하고 습격했다가 뜨거운 맛을 보지 않았나.
아마 뼈아픈 손실일 것이고, 높은 확률로 저 무리는 다른 무리 또는 약탈자 무리라고 해도 좋게 변모해 가고 있을 생존자 무리에게 곧 절멸당할 터였다.
“갈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네. 알겠습니다.”
둘은 방금 격전을 치른 참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휴식 없이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폐물로 썼던 건물에서 빠져나와서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 즉 북쪽으로 향했다.
그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왜?
“어…… 중장님.”
“이런……. 망할…… 저거…….”
둘의 앞에 라드 놈들이 나타나서 그랬다.
그것도 일반적인 라드들도 아니었다.
총을 메고 있다는 것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범상치 않았다.
거기에 더해…….
“거대 개체에 초거대 개체까지…….”
김선태는 앞을 막아선 놈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죽음이 드리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가.
“아……. 아아…….”
신진식은 아예 그런 생각도 들지 않는지 절망에 빠진 채, 툭 하고 주저앉았다.
그럴 만한 상황이긴 했다.
여기서 살아 나간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었으니까.
그리고 기적이 기적인 이유는 원체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랬다.
‘오토바이…….’
허나 그마저도 일단 기적을 찾는 이에게 벌어지는 법이었다.
신진식의 가능성이 0%라면 김선태는 그래도 1%에 가까운 정도는 된다는 얘기였다.
‘아깝긴 한데…….’
김선태는 절망에 빠진 신진식을 돌아보았다.
우수한 부하였다.
참으로 성실한 놈이기도 했고.
심지어 그가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을 임무조차 수행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깝다 한들 본인과 비교할 수 있을까.
김선태는 다시 한번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아니, 남아 있던 인간성을 조금 더 덜어 냈다.
“신 대령.”
“네?”
“일어나게. 아직 끝난 게 아냐.”
“그…… 네, 알겠습니다.”
오토바이가 움직일까?
기름은 있을까?
바람이 빠져 있진 않을까?
내가 저기까지 달려서 도달할 수는 있을까?
등등의 걱정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김선태는 여상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저놈…… 쏠 수 있겠나?”
“음.”
신진식은 김선태의 말에 총을 겨누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김민수가 다른 놈 뒤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앞에 서게 된 놈이 그걸 용인했다는 것도 신기했다.
“지금은 안 되겠는데요.”
“그래도 해 봐야지. 가까이 오면…… 쏘자고. 내가 봤을 때 저기 두 놈이 리더야. 저런 놈들일수록 리더가 쓰러지면 와해되기 쉽지.”
“아……. 그때도 그랬죠.”
“그래, 강변에서 그랬지.”
박기태.
1호.
놈을 쏘자, 억지로 이어져 있던 유대감이 증발이라도 한 것인지 뭔지 강변을 에워싸고 있던 놈들이 완전히 와해되었다.
그 바람에 오히려 가까이에 있던 생존자들 태반이 더 빠르게 증발해 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꼴을 본 바 있는 신진식은 그가 믿어 의심치 않는 김선태의 말대로 총을 꽉 쥐었다.
온 신경이 앞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에 김선태가 뒤로 물러서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알기는 알았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는 않았을 터였다.
“뭔가 이상하군그래.”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민수가 구우준에게 말했다.
둘 다 초거대 개체의 뒤로 몸을 숨긴 채였다.
어지간한 중화기가 아니고서야 이 몸을 뚫을 수 있겠나?
하물며 K2에 불과한 총으로는 절대 무리였다.
“네, 움직임이…….”
“저 둘이 중요해. 아마도…… 자네처럼 될 가능성이 높아.”
“네. 그럼…… 죽이면 안 되겠군요.”
“그렇지.”
“일단 말이나 해 볼까. 설득이 통할지도 모르지.”
김민수는 구우준을 물었을 때, 구우준이 항복했을 때를 떠올렸다.
“총 내리지.”
기대는 기대로 끝나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구우준이 유별난 것일 확률이 더 높지 않겠나?
다만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렇게 대화를 시도하는 경우 마음이 꺾일 가능성은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 중장님?”
확실히 신진식은 혼비백산했다는 딱 어울릴 만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간신히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김선태를 불렀다.
김선태도 당연히 놀라긴 놀랐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방향이 조금 달랐다.
‘세브란스에서 풀었나……. 이건 딱 1호…… 그 수준인데.’
놀랐다기보다는 오히려 분노했다는 게 올바른 말일 터였다.
그는 세브란스를 떠올리면서, 조용히 그리고 착실히 뒤로 빠지고 있었다.
“총 내리지 말고, 쏴.”
“엇, 네.”
계산이 섰다.
놈들이 죽일 생각으로 달려들었다면 도저히 무리였을 터였다.
거대 개체만 해도 달려들면 막을 길이 있겠나?
하물며 초거대 개체라니.
헌데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놈들은 달려들고 있지 않았다.
100미터 이내로만 들어와도 수초 내에 달려들 수 있을 텐데, 어쩐지 주춤거리는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그게 맞았다.
놈들은 아까 몸을 숨긴 놈 쪽을 계속 힐끔거리고 있었다.
‘명령을 기다린다……? 아니면 눈치를 본다? 둘 중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명령을 내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본능을 거슬러야 하는 명령도 있기 마련 아니겠나.
가령 라드 놈들이 다가오고 있는데 기다리라는 명령이라든지 하는 것들.
그럴 때면, 주변 병사들이 진짜 과장 없이 자기 명령만 기다린다는 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건 달려들어야 하는데 말리는 상황일 테니 정반대긴 하겠지만 하여간,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 만큼 느슨한 위계는 아닌 듯했다.
타타타타타타타
이쪽의 위계도 만만치 않았다.
해서 신진식 대령은 총을 마구 쏟아 냈다.
김선태도 쏘기는 했다.
신진식처럼 조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마구 쏴 대는 것일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신진식을 안심시키는 데에는 충분했다.
다다다다다
물론 김선태가 열심을 낸 것은 오히려 오토바이 타는 것이었다.
“응?”
총질 때문에 잠깐 놀라 몸을 숨겼던 김민수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초거대 개체가 집중포화로 인해 쓰러지고 나서야 김선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저쪽입니다!”
“잡아! 이놈은 내가 잡는다!”
“어, 네! 조심하십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김선태가 향한 곳은 구우준이 잡아냈다.
끼디디디딕
김선태는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놈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급히 시동을 걸었다.
허나 기대와는 달리 힘없는 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런 시발!”
당황한 김선태는 욕까지 하면서, 또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염없이 시동을 걸었다.
“주, 중장님!”
그사이에 이미 신진식은 주변에서 달려들고 있는 라드에 둘러싸인 채였다.
총을 쏴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맨몸으로 오는 것도 아니고 뭔가 들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준이 아니라 지금처럼 쏴서는 방법이 없었다.
“으, 으아아아!”
홀로 남은 신진식은 이내 김민수에게 물렸다.
한번 물리면 대개의 경우 물렸다는 생각으로 인한 패닉 그리고 물림과 동시에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정신이 풀리는 게 태반이었다.
신진식도 그랬다.
“저기, 저기가 진짜다!”
김민수는 그 평범한 반응에 실망한 채 김선태를 가리켰다.
물론 이러고 나서도 얼마든지 김민수처럼 될 수도 있겠지만…….
구우준과는 다르지 않나?
초조해진 그의 손가락질에 라드들이 달려들었다.
물론 그보다 먼저 김선태에게 닿은 것은 구우준이었다.
“빨리! 빨리!”
김선태는 총을 쏘려다가 탄이 빈 것을 보고는 시동을 계속 걸었다.
달려서 도망간다는 건 이미 선택지에 없었다.
저렇게 빠른 놈들을 어찌 다리로 떨쳐 낼까.
“윽, 으아악!”
결국, 김선태는 구우준에게 팔을 물렸다.
부다다다다
기적처럼 그때, 시동이 걸렸다.
물림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저 김선태가 여상한 인물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그는 정신을 잃는 대신 오토바이를 몰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꺼져! 꺼지라고!”
그러면서도 빈 총으로 구우준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원래 같았으면 효과가 없었을 텐데, 구우준도 물고 나서는 마음을 놨던 참이었기에 떨어져 나갔다.
“저, 미친놈이?”
그렇게 툭 떠밀린 구우준은 달릴 생각도 못 하고 멀어져 가는 김선태를 바라보았다.
멀어지는 그를 보면서도 딱히 걱정이 들진 않았다.
어차피 물렸지 않나?
가다가 쓰러질 게 뻔했다.
“뭐……. 가 볼까.”
해서 구우준은 괜히 달려서 힘 빼는 대신 터덜터덜 걸어갔다.
안 그래도 오늘 좀 달려서 그런가, 온몸이 뻐근했다.
확실히 라드의 몸뚱어리는 순간적으로는 강력하지만 지구력에 있어서는 좀 밀리는 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