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역습 (6)
‘후…….’
뒤따르고 있던, 그러니까 후미를 맡았던 김선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뒤를 아무리 돌아봐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감이라는 게 있지 않나.
여러 번 사선을 넘나들며 싸워 온 이에게는 흉터처럼 남게 되는 것들이 몇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위험에 대한 직감이었다.
‘망할.’
따라오는 놈들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놈들이었다.
라드일까?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게 그것뿐인 건 아니었다.
아까 보았던 현장, 즉 급습의 현장을 보면……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
‘분명 총을 쐈어……. 조준 사격 아니더라도…… 방향성은 있었어.’
라드 놈들이 간혹 총을 습득한 이후 쏘아 대는 경우를 보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엄청 위협적일 거 같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일단 견착과 같은 초보적인 방법을 고려치 않다 보니 조준이 이리저리 튀는 정도가 아니라 대개 하늘 방향으로 난사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아까 보았던 총알 자국은 확실히 트럭 쪽으로 난사되어 있었다.
그게 무슨 유의미한 타격을 주었다거나 한 거 같진 않았지만, 어차피 밤이니만큼 그것이 최선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반대편으로 달려든 놈들은 라드야. 이상한 건…….’
우연이 겹쳤을까?
그랬을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거 없는 세상이지 않나.
하지만 우연이라면, 라드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병사들이야 싸우다 보면 죽이거나 할 수 있었겠지만, 민간인들은 그야말로 강력한 유혹이었을 터였다.
그 자리에서 물어 감염을 시켰어야 옳았다.
아니면 배고픔에 못 이겨 먹어 버리거나.
‘두 행위 모두 흔적이 남을 텐데…….’
감염을 시키는 데 급급했다면, 여전히 주변을 배회하던 라드가 있어야만 했는데 없었다.
그렇다고 먹어 치운 흔적이 있었나?
을씨년스러운 핏자국들뿐이었다.
그것조차 그렇게까지 많진 않았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진 않았단 뜻이었다.
‘뭐지, 대체? 아니, 가만…….’
그때 김선태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세브란스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곳에서 진행 중인 연구.
지능이 있는 라드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나.
대통령이 기대하는 건 라드화된 인간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거기서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지능이 있는 라드에 불과했으니 김선태의 예상이 억측은 아닐 터였다.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는 없어.’
그가 알기론 그랬다.
그렇다면…….
‘설마 엿 먹이려고 여기다 풀어……? 아니, 아닌데. 정보가 새어 나갔을 리가 없는데…….’
세브란스 쪽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민간인 이송이 확 줄었으니.
딱 거기에 있는 병력만 움직이고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하루 열 명도 채 안 들어가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주력 부대가 뭔가 다른 짓을 한다는 것 정도야 알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대통령과 김선태가 뻔뻔한 인간들이라 해도 이렇게 흉악한 작전을 어찌 떠벌리고 다닐 수 있을까.
타타타타타
그렇게 고민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지척에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본부에서 들려오던 것보다도 더 가까운 곳, 그러니까 신진식 대령이 이끄는 선두 쪽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였다.
“습격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딱히 동요하지 않고, 김선태에게 물어 왔다.
아직은 몰려다니고 있었다.
적이 수원인지 라드인지 모르겠으니까.
인간이라면, 즉 중화기로 무장할 가능성이 있다면 흩어지는 게 유리할 테지만 라드라면 모여서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다.
제아무리 잘 훈련받은 병사들이라고 해도 백병전, 즉 난전이 벌어지게 되면 근거리에서 라드를 어떻게 하긴 어려웠다.
“가능성이 있지. 뒤 경계하면서…… 속도 낸다.”
“네!”
여느 때 같았으면 대형에 대한 명령도 내렸겠지만, 김선태로서도 지금은 지극히 혼란스럽기만 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런저런 명령 없이 그저 손을 앞으로 뻗을 뿐이었다.
병사들은 그런 김선태의 명에 불만을 표하는 대신 그저 걸어 나갔다.
타타타타
“죽어, 시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총소리가 커져만 갔다.
별로 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거기에 더해 비명과 고함 등 소음이 급박한 상황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김선태는 총소리가 거의 한 방향, 즉 선두 측에서만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라드…… 적이 누구였는진 모르겠지만 지금 주둔지를 공격하는 건 우리가 모았던 라드인가 본데.’
상대에 군인들이 껴 있었다면 반드시 총질이 있었을 텐데, 그런 상황은 아니지 않나.
살짝 안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미소 지을 정도는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셈이니까.
무엇보다 이 일을 꾸민 놈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숨어 있다가 급습한다면…….
“너희는 계속 뒤 경계. 나머지는 뭉쳐서 선두를 돕는다! 적은 라드다, 쓸어버려!”
해서 김선태는 후방에 병력을 얼마간 남겨 둔 채, 앞으로 내달렸다.
“크아아아!”
“으아아아!”
예상했던 대로 선두는 라드와 싸우고 있었다.
말이 싸움이지 사실상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좁은 문을 통해 튀어나오는 라드들은 그렇게 큰 놈들도 아닌 데다가 갇혀 있는 동안 밥도 못 먹고 방치되었던 놈들이다 보니 사납긴 할지언정 별 위협이 되진 못했다.
맨몸뚱어리였다면 모르겠지만 총을 들지 않았다.
콰아아앙
거기에 더해 김선태 부대가 던져 대는 수류탄까지 더해지자, 라드들은 이제 달려드는 게 아니라 도망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타타타타
그래 봐야 대다수는 열린 문틈을 통해 달려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총질은 멈출 수가 없었다.
“휴, 오셨군요. 탄약이 간당간당해서…… 늦으셨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신진식은 마침 비어 버린 탄창을 떨어뜨리면서, 김선태에게 경례를 붙였다.
김선태는 자신이 차고 있던 탄창 하나를 건네주었다.
“수가 많군…….”
“며칠이나 모았으니까요. 아마 처음에 풀어놓은 놈들까지 있었으면 위험했을 겁니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었나?”
김선태는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도 주둔지 상황을 돌아보고 있었다.
라드들을 가둬 두었던 건물 일층 문이 박살이 나 있었다.
저런 짓은 초거대 개체들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트럭.
여기까지 오는 길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원래는 그들이 몰던 트럭 정도나 돼야 할 수 있는 짓이었다.
“그게, 싸우느라…….”
“그래, 그렇지.”
저 짓을 했던 놈들이 주변에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진식의 말마따나 지금은 그거 파악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마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도 별 소용은 없었을 터였다.
총소리가 사방에서 난무하고, 앞에서는 라드 놈들이 날뛰고 있었으니.
그 중엔 군복을 입은 이들도 적지만은 않았다.
저기서 물린 모양이었다.
‘제길.’
대다수는 공병이긴 할 터였다.
직속 부하들은 아니라는 말, 즉 정예병들은 아니란 뜻이겠지만…….
“하, 시발.”
그놈들을 쏘는 병사들의 표정이 그리 좋진 못했다.
당연하지 않나.
같은 부대 소속은 아니더라도 며칠이나 같이 지냈던 동료들이 라드가 되었다.
그것도 본인들이 만들어서 가둔 라드들에 의해서.
‘된통 걸렸군…….’
김선태가 그렇게 고개를 털어 가며 이제 어찌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동안에도 유현을 비롯한 수원 측 인원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슬슬 쏠까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후방에 있던 놈들이 탄약이 충분하다는 것이 걸리지만…… 어차피 쫓아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겁니다.”
유현의 말에 박중 대위와 김태평이 총을 어깨에 걸면서 한마디씩 했다.
다른 병사들도 한마음 한뜻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기 있는 저새끼들에게 한 방 먹여 줘야겠다는 생각은 다들 하고 있었다.
유현 또한 총을 걸면서, 옆에 있던 오예리에게 말했다.
“혹시 김선태 같은 놈이 있으면…… 잡아 주세요.”
“노력해 볼게요.”
빈말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떨어져 있는 것인데, 어두운 게 더 큰 문제였다.
뭐가 보여야 쏴 죽일 거 아닌가.
탕물론 그런 말이 무색할 만큼이나 간단히-
오예리 형사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한 명의 병사가 쓰러졌다.
그것을 신호로 모든 병사들이 총을 쏴 댔다.
누누이 말했듯 어둡고, 깜깜했기 때문에 정확한 조준 사격이 가능한 것은 수십에 달하는 병력 중에서도 몇몇뿐이었다.
허나 김선태 부대는 라드를 상대하느라 한곳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눈먼 총알이라 해도 일정한 방향성을 띠고 있다 보니 삽시간에 병사 여럿이 쓰러졌다.
“뭐, 뭐야!”
“측, 측면입니다! 측면에 적이!”
“바로 대응 사격해!”
허나 김선태의 부대는 그야말로 정예 중의 정예였다.
즉시 총알이 날아든 방향으로 딱 절반의 부대가 총구를 겨누더니, 곧 총구에서 튀는 불꽃 방향을 향해 총알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그래 봐야 눈먼 총알이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모여 있기로 치면 이쪽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두어 명이 나뒹굴었다.
그래도 교환비는 압도적이었다.
저쪽은 대강 봐도 방금의 사격으로 인해 스무 명이 넘게 쓰러졌으니.
“퇴각! 퇴각!”
그 이상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오늘 본 피해만으로도, 정부는 아마 수원을 넘볼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을 터였다.
어쩌면 내부의 압력이 커지면서 김선태가 실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발언권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대통령?
그 권력욕에 미친놈은 잘 모르겠지만…….
이전과 완전히 같기는 어렵지 않겠나.
두두두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수원 측 일행은 뒷덜미를 향해 서늘하게 날아드는 총알을 피해 도주로를 통해 도망갔다.
탈취한 두돈반 트럭이 있다 보니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좀 아쉽긴 하군요.”
“결사항전을 벌였다면 오히려 이쪽이 위험할 수 있어요. 아까 보셨죠?”
“그건……. 네, 뭐. 인정합니다.”
박중 대위는 하염없이 뒤를 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태평은 그런 박중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확실히 훈련도에서 차이가 명확하지 않았나.
애초에 공군 병사들이 어찌 특수 부대와 땅에서 싸울 수 있겠나.
“어, 어!”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수원의 입장이었다.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김민수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앞쪽에 여전히 남은 소수의 라드 그리고 측면에서의 총격과 함께 쓰러진 병사들, 남아 있는 병사들의 측면 사격 등.
후방을 경계하던 인원의 수는 물론이거니와 집중도도 크게 줄었다.
“미친!”
“쏴!”
해서 달려들었다.
넓게 퍼져서.
여기저기서 주워 둔 철판 등을 든 라드들이 앞장섰다.
그렇다고 쓰러지는 놈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처럼 화력이 흩어진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다 쓰러뜨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일단 붙고 나면 끝이었다.
“으, 으윽!”
“아, 안 돼!”
물리고 나면, 무슨 수를 써도 저항할 수 없었다.
길어야 1, 2분이지 않나.
그 후론 고열과 함께 쓰러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것들은 숫제 옆에 있는 이를 물기도 했다.
“주, 중장님!”
“막아! 무슨 써서라도!”
그렇게 라드의 습격이 김선태의 부대 아니 김선태를 휩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