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53화 (253/323)

253화 역습 (4)

“시작했나.”

“정말…… 놈들이 이걸 습격하다니.”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구원병이 올 겁니다. 그럼…….”

“저쪽이 오히려 빈집이 되겠죠.”

김태평과 박중 대위는 벌써 여러 번 손발을 맞춰 본 경험이 있었다.

거창한 작전에서는 아니고 정찰 임무에서만이기는 했지만…….

뭐가 되었건 뭘 해 봤고 안 해 봤고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지 않겠나?

게다가 이번 작전은 워낙에 중요한 데다가, 요행이 많이 낑겨 있다 보니 더더욱 둘 다 필사적이었다.

‘무장 상태만 봐도…… 난적이다. 저기에 라드까지 끼어서 오면 수원은…….’

박중 대위는 지금껏 살펴본 것으로 인해 김선태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정작 서울 등지에서 김선태가 벌인 여러 작전은 보지 못했지만…….

사실 강한 군대는 딱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법이었다.

괜히 제식 훈련을 하겠나?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부대야말로 강한 군대였다.

오와 열을 맞춰 걸을 수 있는 부대야말로 작전대로 움직일 수 있는 군대이니.

‘김선태……. 인간을 넘어선 놈…….’

김태평도 두렵기는 매한가지였다.

그의 평생을 돌이켜 보면 거의 유일하다 해도 좋을 만한 적이었다.

단순히 무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무력도 무력이지만…….

김선태나 대통령이 보여 주고 있는 모습에서 유추할 수 있는 저들의 마음이 더 무서웠다.

이걸 악이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건 확실했다.

“아, 여기도 차로 막아 놨군요.”

“저건 지금 당장 절대로 못 치울 거 같은데.”

하여간, 박중과 김태평은 역설적으로 그 두려움 때문에라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이 주변 정찰을 철저히 해 온 몸이었다.

다행히 수원 군부대 내에 비치된 지도와 한참 전부터 이루어진 정찰 및 수색 구조 작업 등으로 인해 이 근방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둘은 김선태가 자리한 곳을 제외하고 그곳에서 이어지는 여러 도로는 숙지하고 있었다.

해서 지금도 바로 그곳에서 습격 지점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딱 확인할 수 있었다.

-도보로 간다!

-빨리! 도보로 이동!

헤드라이트만 켜져 있을 뿐, 가로등 따위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드문드문 보일 따름이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놈들이 지금 차에서 급하게 내려서 도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쪽도 지금 당장은 도보긴 하지만…….

“습격 지점에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겠죠?”

박중 대위는 희망을 담아 물었다.

김태평은 그에 비해서는 냉소적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인 얼굴은 아니었다.

“모르겠습니다. 영악한 놈들이다 보니……. 굳이 총 든 놈들과 정면에서 싸울 생각이 없을 수도 있어요.”

“아.”

“그렇다고 해서 가자마자 바로 돌아오진 못할 겁니다. 상황 파악도 해야 할 테니까요.”

“그럼…….”

“적어도 20분, 길게 보면 30분 정도는 시간이 있다는 얘기죠.”

“그렇게나요?”

“우리가 저 차 타고 돌아갈 테니까요.”

“아하.”

부대원들이 떠난 트럭과 SUV 등은 여전히 헤드라이트가 켜져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아니, 어지간한 응급 상황이었다면 시동을 끄고 키도 챙겨서 떴을 터였다.

그게 절차였으니까.

혹 탈취당할 가능성도 있었으니.

하지만 오늘의 습격은 너무 급작스러웠기 때문에 모두가 당황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경계 병력이 아예 남지 않은 건 아니었다.

두 병사가 깜깜한 어둠 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능하겠어?”

유현의 말에 이순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에 비해 훨씬 예민한 그는, 단지 시각이 아니라 후각에만 의존해서라도 단거리 주파가 가능했다.

그는 그렇게 말없이 내달리더니 별 경계심 없이 주변을 훑어보고 있던 둘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날려 버렸다.

빠각

총이나 칼을 쓰지 않은 건 쓸데없는 소음이나 살생을 피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이순규도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상태 아니겠나.

평소라면 그의 대단한 참을성 덕에 티가 나지 않겠지만.

흥분 상태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랐다.

“이런.”

놀라운 완력과 빠르기로 머리통을 말 그대로 날려 버린 이순규는, 잠시 허망한 얼굴로 피에 젖은 바닥과 시신이 되어 버린 두 병사를 내려다보았다.

“가자. 잘했어.”

“어……. 그래.”

허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 험악해져 버리지 않았나.

이순규도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유현?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격수를 맡은 오예리야 숫제 인간 백정이 된 지 오래였고.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니란 것은 잘 알았다.

잘 알기에, 이순규는 내색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유별나게 굴어서 이들에게 괜히……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겠지.’

아마도 여기서 사람 죽이는 데에 있어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은 김태평과 그 요원들뿐이지 않겠나.

‘아니……. 유현이도 어쩌면.’

최대한 많이 쳐 주면 유현이도 낄 수 있긴 할 터였다.

친구긴 한데, 어쩔 때 보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냉정하지 않나.

인간미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는데, 이런 세상엔 그런 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 법이었다.

“자, 갑시다!”

“이 새끼들, 이거.”

그렇게 이순규가 둘을 죽인 죄를 홀로 집어삼키고 있을 때쯤, 박중 대위와 김태평은 더 많은 생명을 앗아 가기 위해 차를 돌렸다.

차량 상태는 더없이 좋았다.

확실히 정부는 풍족한 모양이었다.

뭐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도 모든 것이 풍족했던 서울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멀리 보면 나쁜 일이었지만.

“잘 가네.”

“그러니까요.”

지금 당장은 잘된 일이었다.

노획한 차량은 밤 중임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크게 줄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헤드라이트 상태도 좋았고, 거친 노면조차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차체 또한 잘 정비되어 있었다.

부우우웅

그렇게 달리기 시작한 지 수 분이 채 지나기 전에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반짝일 정도로 윤이 나는 철조망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여기로군.”

새로 만든 모양인데, 수원에서 하는 것처럼 완전 재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뭔지 하여간 때깔이 좋았다.

끼이익

밤중이라 그럴까?

아니면 이놈들 지침이 그런 걸까.

별다른 확인 절차도 없이 문이 열렸다.

하긴, 방금 나갔던 놈들이 고대로 돌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게다가 얼핏 보면 같은 놈들로 보일 수밖에 없기도 했다.

다 같은 국군이니.

“별로 없군.”

“닥닥 긁어서 나간 모양인데…….”

“그렇다 해도 전투가 벌어지면 절반 이상 죽을 겁니다.”

“뭐……. 그렇게 두진 않을 겁니다.”

“무슨 좋은 수라도 있습니까?”

박중 대위의 말에 김태평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물 하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전체적으로는 이 근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폐허에 가까운 건물일 뿐이었다.

허나 1층부터 2층까지는 새로이 정비가 되어 있었다.

철문도 있었고.

숙소일까?

그럴 리는 없었다.

“저게 차도 막을 수 있을까요?”

단박에 뜻을 알아들은 유현의 말에 김태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너무 차가 조용하자, 그제야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는지 뭔지 다가오는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이미 장전된 총을 지니고서였다.

“제가 쏠 테니 갖다 박아 버리죠.”

“좋습니다.”

유현은 액셀에 발을 올렸다.

그런 그의 귓가엔 아까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르르

저 건물 안쪽에서였다.

민간인들을 데려와 여기서 라드로 만든 후, 죄 가둬 두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마치 수공을 하려고 강을 댐으로 막는 것처럼, 한 번에 라드를 풀어서 혼란을 야기하려고.

‘미친놈들.’

물에는 눈이 없다.

그 말은 곧 수공은 누가 먼저 눈치채느냐에 따라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라드는 어떨까.

그들은 비록 눈이 있기야 하겠지만…….

자신을 라드로 만든 놈들에게 감정이 안 좋았으면 안 좋았지, 은혜 갚으려 나설 리는 없을 터였다.

“쏴!”

타타타타타

김태평의 신호를 시작으로 트럭 안에 있던 부대 전원이 양옆으로 총을 난사했다.

이상하다 여기긴 했지만 설마 이게 적일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던 병사들 태반이 무력하게 쓰러졌다.

김선태의 주력 부대도 드문드문 있긴 했지만 사실 공병이 더 많아서이기도 했다.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질 수 있을 만큼의 훈련이 이루어진 적도 없거니와 본능조차 그들에 비하면 굼뜨기 짝이 없었다.

쾅그나마 총질은 금세 멎었지만.

그보다 더한 재앙이 그들을 덮쳐 오고 있었다.

트럭은 그대로 내달려 철문을 들이받았다.

그리고 트럭이 뒤로 빠지자마자, 우그러진 철문을 향해 다른 트럭이 또다시 박았다.

이순규가 탄 트럭이었는데, 운전대는 오예리가 잡고 있었다.

그렇게 육중한 두돈반 트럭이 두 번이나 같은 데를 처박았으니 철문 아니라 뭐가 되어도 버티기 어렵지 않겠나.

시간과 장비를 들여 튼튼하게 만든 곳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시한부로 지어 둔 문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르르

-크아아아

-물어!

-배고파!

철문이 무너지나 안에 갇혀 있던 라드 수백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라드화가 진행된 지 기껏해야 일주일 이내의 것들이다 보니 커다란 것들은 없었다.

허나 사나웠고, 무엇보다 너무 많았다.

애초에 병사들만 수백에 달하는 수원을 일시적으로나마 무력화시키려고 준비하던 놈들 아닌가.

그게 이렇게 내부에서 터져 버렸으니 어쩌겠나.

“자, 우리는 빠져나간다!”

“네!”

일행은 트럭을 탄 채, 이번에는 뒤로 달려 철조망으로 된 문을 뭉개며 밖으로 향했다.

돌아갈 여유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바로 수원 군부대로 향했다.

흔적이 고스란히 남기는 하겠지만, 뭐 어쩌겠나?

이런 일을 겪고서도 쫓아올 여력이 남았다면, 애초부터 수원에는 희망이 없었을 터였다.

“어……. 안 돼!”

“도, 도망…… 으악!”

“살려…….”

타타타타타

“쏴!”

“쏘라고!”

당장은 트럭이고 나발이고 쫓아올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1층, 그러니까 밖에 있던 병사들은 죄다 라드에 휩쓸리고 있었다.

작게 쌓아 올린 경계 초소에 있던 병사들이라 해서 운명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아까 김태평 때문에 한차례 쓸린 탓에 라드의 수를 초장부터 줄이지 못해서였다.

뒤늦게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탄창 하나를 비워 봐야 쓰러지는 라드는 기껏해야 열도 채 되지 않았다.

“이런 시발…….”

“뭐, 뭐 하십니까?”

“난…… 저렇게 될 수 없어.”

“어, 병장님!”

탕어떤 이는 마지막 남은 총알을 라드에게 쏘지 않고 자신에게 쐈다.

툭“크아아아아!”

무력하게 떨어진 시신은 이내 라드의 먹이가 되었고, 그 끔찍한 광경을 내려다보면 병사들 중 더 많은 이들이 생을 내려놓았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버텨! 중장님이 곧 오신다!”

김선태를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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