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역습 (3)
“뭐?”
습격이 있기 조금 전.
김민수 일행에게 급습당해 도망갔던 병사가 수원에 도달해 보고를 올렸다.
대상이야 당연하게도 대령이었다.
“라드 놈들이…… 라드 놈들이 총을.”
“그게 뭔 소리야. 총을 왜……. 아니, 쏠 수는 있지.”
병사는 횡설수설 중이었다.
대령은 이 녀석이 왜 그러지는 몰라도, 어떤 상황인지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어! 정지! 야! 정지!
이놈은 몰던 차로 그대로 정문에 들이받고 이송되어 온 참이었다.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데다가 마침 경계 서던 병사들이 얼굴을 알아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벌집이 되었을 터였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다, 이 말인데…….
안타깝게도 대령은 이런 일을 벌써 몇 번이나 보아 온 바 있었다.
패닉에 빠져 버린 부하들.
그럴 만했다.
동료들이 죽어 나가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충격적인 일들을 안 겪을래야 안 겪을 수가 없는 시절이니.
“좀 기다릴까.”
대령은 안쓰럽다는 얼굴로 병사를 내려다보았다.
그사이에도 병사는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렸다.
“라드 놈들이 총을…… 총을 들고 말. 말까지.”
뭔가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모양인데, 아쉽게도 대령은 이게 대체 뭔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역시 부담이 좀 되더라도 박중을 직접 보냈어야 했나 싶을 지경이었다.
혹시 몰라 옆에 있던 조영상을 바라보았는데, 녀석은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뭔 말인지 알겠나?”
“아뇨, 전혀.”
“근데 뭘 그러고 있어.”
“정유현이나 김태평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치들이 아무래도 바깥 상황에 대해서는 훨씬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 지금 뭐 하고 있지?”
“아마 뭐……. 정찰 돌러 나간 거 아니면 쉬고 있을 겁니다.”
“그래, 불러오지.”
대령 또한 둘의 지식이나 경험을 높이 사고 있었다.
확실히 도움이 된 적이 있냐고 하면 그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둘이 일행에 합류한 이후로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 않나.
더욱이 그 전부터 정유현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이런저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시선은 여전히 호의적이었다.
마침 유현과 김태평 모두 정찰을 나갔다가 돌아와 쉬고 있던 참이었다 보니 금세 본부로 올 수 있었다.
애초에 둘이 묵는 숙소 자체가 바로 근처에 있는 건물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라드가……. 말을…… 표, 표정이…….”
금세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소요된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은 건 아니었다.
대략 20분가량이 흘러가 버렸는데도 여전히 병사는 넋이 나가 있었다.
먼눈을 하고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뭔가 대단히 무서운 광경을 본 건 틀림 없어 보이는데 그게 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한 상황이었다.
“병사가 돌아왔다고요?”
“그렇소. 청주로 구원군을 요청하러 갔던 병사인데……. 어찌 된 일인지 혼자 왔단 말이지.”
“어……. 저랑 같이 갔던 친구네요? 멘탈이 약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그러니까 불렀지. 이상하단 말이오.”
대령의 말에 김태평이 우선 병사에게 다가갔다.
병사는 그런 김태평을 보고 소리쳤다.
“그. 그! 라드 놈이! 총을 메고!”
대령도 그렇겠지만, 김태평도 이런 상태에 빠진 이를 숱하게 보아 온 사람이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대령은 보통 자기편이 이렇게 되는 걸 봤다면 김태평은 상대가 이렇게 되는 걸 봤다.
그리고 보통 그럴 때면 지극히 효율적인 방법으로 상대에게서 의미 있는 정보를 이끌어 냈다.
짝뺨을 후려쳤다.
삽시간에 고개가 돌아간 병사의 눈에 황당함이 서렸다.
대령과 조영상 등 다른 군인들은 당황한 나머지 별말도 하지 못했다.
“정신 들었지? 그렇게 약한 놈도 아닌데, 뭘.”
김태평은 그렇게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한 병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 새끼가 대체 어딜 보고 있나 싶었는데 이제야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초점이 잡혔다, 이 말이었다.
“그…… 으.”
“아까 하려던 말이나 해 보지.”
유현 또한 초점이 잡힌 것을 확인했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김태평 옆에 섰다.
둘 다 덩치가 좀 큰 편이다 보니 병사는 잠시 아까의 상황이 재현되는 느낌을 받았지만, 김태평의 말대로 멘탈이 약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금세 입을 열 수 있었다.
“가, 가는데…….”
물론 정신과는 별개로 몸은 여전히 긴장한 상태였다.
벌써 사건이 터진 지 한 시간도 넘게 흘렀음에도, 손은 물론이거니와 목소리도 떨렸다.
“파편이 길을 막고 있었……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오가던 길은 아니었을 거 아닌가.”
“네, 그렇죠. 뭐……. 폭격이 있던 지점이기도 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 여기고. 저 빼고 다 내려서…… 치웠습니다. 아니, 아니지. 치우려고.”
“그래, 그런데?”
김태평은 그렇게 물으며 유현을 돌아보았다.
유현은 그런 김태평을 마주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딱 여기까지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뭔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아서 그랬다.
아마 함정이었을 터였다.
뭐 특별한 일도 아니긴 했다.
딱히 라드 아니라 생존자들도 저런 짓을 하지 않던가?
“라드들이 나타났습니다. 어찌나…… 어찌나 냄새가 심한지 차 안에 있던 저까지…….”
“냄새가 심해? 초거대 개체들인가?”
“네네.”
그것만으로 병사가 공포에 질릴 수 있나?
그럴 수는 있었다.
애송이 병사라면.
하지만 상대는 베테랑이었다.
요원들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는 건 확인했다.
게다가 초거대 개체가 아무리 드물다 해도 수원 군부대에서 전투 조직에 속했던 사람이라면 숱하게 봤을 터였다.
“그놈들뿐인가?”
“아, 아뇨! 아닙니다. 놈들의 대, 대장이 있었습니다.”
“대장이라…….”
김태평은 말끝을 흐리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름도 뭣도 모르는 놈이지만 얼굴만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자식인가?’
재난 본부를 쳤던 놈.
양동 작전까지 썼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놈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제압 사격까지 할 수 있었고.
정말 라드가 맞긴 한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냥 이순규 같은 놈이 라드 편에 선 것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둘이나 있었어요. 총을 메고…… 우리한테 항복…… 항복을 권했습니다.”
“뭐? 라드가? 말이 되나.”
그때 끼어든 것은 대령이었다.
그는 놀란 것보다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 내면엔 두려움이 있었다.
라드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그래서는 안 되지 않나.
신체적으로도 열세인데 머리까지 갖추고 있다면 대체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뭐 이따위 생각들이 오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둘인가…….”
“맞는 거 같군요.”
그에 비해 김태평과 유현의 반응은 차분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에 대해 대응을 해야 했다.
떠들어 대는 건 다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
“그래서 뭐라 했지?”
“저, 저는.”
“도망쳤군, 그때.”
“그…….”
“비난할 생각은 없어. 내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김태평은 뒤에 선 대령을 바라보면서 뒤로 조금 물러섰다.
그러곤 대령을 향해 말을 이었다.
“요약하자면…… 총 든 라드가 함정을 판 후, 초거대 라드들을 이끌고 나타나 항복을 권유했다는군요.”
“그게……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란 말인가!”
“저는 거짓말하는 거 같지 않습니다. 재난 본부에서 벌어졌던 일과도 일맥상통하고요.”
“그…… 그게.”
“저도 거짓말한 적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아……. 이런 제길……. 제길! 이게 무슨…….”
대령은 훌륭한 리더였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이해의 범주를 넘어가는 일을 눈앞에 두게 되면 당황하거나 화를 내게 된다는 말이었다.
어쩌겠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 때가 아닙니다. 놈들이 어떤 정보를 취득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취득은 무슨! 물었겠지!”
“분명 항복을 권했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것저것을 물었겠죠.”
“그…… 하.”
해서 김태평과 유현이 나서서 그를 압박했다.
다행한 것은, 대령은 일반인에 속하는 사람일지언정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 자리의 압박과 책임감이 그의 정신을 강제로 붙잡았다.
“만약 우리가 구원병을 청했다는 걸 알아냈다면…….”
“쳐들어올까? 우리가 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아마…… 주변을 볼 겁니다. 경계 태세만 봐도 어지간한 라드 놈들은 쳐들어올 엄두도 못 내겠죠.”
“하지만…….”
“흐음……. 잠시만.”
김태평은 말을 하다가 말고 턱밑을 긁기 시작했다.
그도 모르는 습관이었다.
정보를 토대로 해서 무언가 다른 걸 도출할 때. 그가 취하는 행동이었다.
‘아는 게 많지는 않아. 많지는 않은데…….’
정보라고 하기도 좀 애매할 정도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이 다였다.
그걸 억지로 엮어 내는 것이 쉬울 리가 있겠나.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게 꼭 악재는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민간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정보를 놈들이 알아냈다면 말이죠?”
유현 또한 비슷한 의견을 냈다.
김태평의 얼굴에 잠시 놀라움의 빛이 번졌다 스러졌다.
확실히 이 인간은 교수가 아니라 다른 일을 했어야 했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넘어갔다.
“네, 그렇습니다.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재난 본부를 공격했던 놈들이라고 상정한다면…….”
“이쪽을 노리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수가 부족하겠죠. 그 와중에 민간인들이 탄 트럭이 있다면,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 여겨질 겁니다.”
“확인은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저도 돕죠.”
“교수님이? 교수님은…….”
“아뇨. 뒤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죠. 병사들은 여길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뭐…….”
오예리만큼 총을 잘 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보단 나았다.
일단 유현은 당황이라는 걸 안 하니까.
게다가 근접전에서도 유리할 터였다.
체격도 좋고, 무엇보다 움직임도 좋으니.
‘그래, 정찰만 할 텐데 위험할 일은 없겠지. 여차하면 전투를 벌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는 건 결국,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김태평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대령 또한 그랬다.
“박중 대위와 부대를 내어 드리죠. 만약에 습격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방법이 생길 수 있겠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김태평을 비롯한 유현의 일행 태반 그리고 박중 대위가 이끄는 2개 분대 규모의 병사들이 야밤에 몰래 부대 서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이쪽으로 트럭이 오가는 것 같다고 확인이 되었던 지점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탕갑자기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르르
라드들의 울부짖음 또한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