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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51화 (251/323)

251화 역습 (2)

“뭔 소리야? 습격이라니?”

무전을 받은 김선태는 우선 의문부터 표했다.

타다다당

하지만 무전기 넘어로 들려오는 총소리가 이어지자,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란 것을 확신했다.

누가, 왜, 어떻게 등등의 의문이 떠오르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순전히 개인의 호기심을 충족하려고 대응을 유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선태는 언젠가부터 그런 위치에서 아득히 벗어나 있었으니.

“구원 간다! 총소리 보니까 병력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네!”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기껏해야 십 킬로미터?

물론 지금 세상에 10km를 가려면 시간깨나 걸리는 게 보통이긴 하겠지만.

강남 일대에서 지금 김선태가 있는 곳을 오가는 도로는 적어도 차 한 대가 다닐 정도의 너비는 확보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달리면 금방 닿을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어…….”

달리면 금방 닿을 수 있을 텐데.

선탑 차량에 탄 신진식 대령은 냅다 내달리는 대신 탄식을 내뱉어야만 했다.

고장 난 차량 서너 대가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당했다! 수원인가? 대체 어떻게……? 누가?’

라드 따위의 짓일 리가 없었다.

구원군을 이런 식으로 지연시키고, 그사이에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취약한 부대를 급습한다는 건…….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건, 거기 있는 물자라 해 봐야 민간인들뿐이라는 점이었다.

무기나 식량 등은 처음 이곳에 올 때 이미 다 옮겨 왔으니까.

‘모르고 있나? 하긴,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이쪽 사정이었다.

수원이 되었건 다른 누가 되었건 지금 저 트럭들 안에 오로지 민간인들만 타고 있다는 걸 어찌 알겠나.

‘누구라도 입을 열면 위험한데…….’

대규모 선동 수단은 사라진 지 오래긴 했다.

오직 하나, 정부 통제하에 있는 라디오와 보다 좁은 범위로 송출되는 TV 채널 하나만 빼고는 모조리 사라진 세상이지 않나?

일부 이상한 라디오 방송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별 의미 있는 내용을 방송하고 있는 건 없었다.

개인 근황 따위의,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허나, 그럼에도 지금 이들이 하고 있는 짓은 다른 누가 알게 되었을 때 너무 위험했다.

“도보로! 도보로 이동한다!”

결국, 신진식 대령은 차에서 내려 명령을 내렸다.

뒤따라오던 김선태가 따라와 물으려다 말고, 합세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도보로 이동한다! 길이 막혔어!”

수원인가.

수원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이 근방에서 그나마 총으로 무장했을 가능성이 있는 놈들은 수원뿐일 테니.

물론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제삼의 세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조용히 숨어 살기에도 힘든 세상에 감히 군인들을 공격할 만큼의 힘을 갖춘 집단이 하나 더 있다고?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응 사…… 억.”

“뭐, 뭐야. 으악!”

“뒤, 뒤다! 뒤에 라드!”

그렇게 무전에 따라 김선태 등이 급히 달려가는 사이, 수송대는 급습에 무너지고 있었다.

총이 미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그러니까 주된 공격은 라드였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제아무리 훈련받고 또 무장한 군인들이라 해도 지근거리에서만큼은 라드의 밥이 될 수밖에 없기에 그랬다.

게다가 이들 라드 무리는 김민수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거대 개체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쾅휘두르는 쇠파이프 한 방에 그나마 정신 차리고 대응 사격을 하려던 병사의 몸이 트럭에 처박혔다.

살 수 있을까?

가망은 없을 게 뻔했다.

“이게 무슨…… 라드를 부린다고?”

“우, 우리도 하려던 짓인데. 윽. 으악.”

딱히 압도적인 무력을 뽐낼 필요도 없었을 터였다.

총소리와 함께 라드놈들이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만으로 대다수의 군인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끔찍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끔찍한 상상력이 자극되었기에 그랬다.

세상에 이만한 놈들이 또 있었다니.

상대가 김선태 같은 놈들이란 얘기 아닌가.

“가지.”

그야말로 순식간.

무전 치고 불과 수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수송대는 무너졌다.

탄창 하나를 비운 김민수는 그 총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수송대를 향해 달렸다.

구우준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땅바닥에 떨어진 총기류를 조금 챙겼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이번에 문 놈들 중에 그들처럼 되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덜커덕

하여간, 김민수는 트럭 하나를 열었다.

제법 단단히 잠겨 있었지만 별 의미는 없는 일이었다.

초거대 개체의 완력을 이용하면, 고작해야 인간을 상대로 만든 구조물은 무용지물이었으니.

“으, 으아.”

“사, 살려 줘!”

“괴물, 괴물이다.”

“라드 새끼들!”

안에 있던 민간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아니, 제각각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었다.

대다수는 겁에 질려 있었다.

어쩌면 절망에 빠져 있다고 해도 좋았다.

이들은 김선태가 이끄는 부대에게 ‘수원 근방에 정부 주도하에 세워진 쉘터가 있고, 거기에 가면 아무 걱정 없이 이전의 삶과 비슷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란 안내를 받았기에 그랬다.

순 거짓말로 점철된 안내였지만 그 안내로 인해 품게 된 희망은 진짜였기에, 그들은 저항할 의지조차 상실하고 있었다.

“제압해!”

“음!”

초거대 개체는 그 몸집 때문에라도 트럭 안으로 들어설 수 없었다.

더욱이 덩치가 크면 클수록 충동 제어도 잘 안 되기 때문에 함부로 민간인을 물어뜯거나 심지어 때려죽일 수도 있었다.

해서 안으로 향하는 것은 구우준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작은 놈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 봐야 라드에 비해 작은 것일 뿐, 일반인에 비하면 건장하다 못해 거대한 놈들이었기 때문에 민간인들은 순식간에 감염되었다.

“서두르지.”

“네!”

그렇게 감염된 것들은 거대 개체 또는 초거대 개체들에 의해 둘에서 셋씩 옮겨졌다.

어깨에 아무렇게나 짊어지고 폐허 더미 사이로 사라져 가는 놈들의 뒷모습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동안에도 김민수와 구우준을 비롯한 놈들은 다른 트럭으로 이동해 감염시키는 것에 열중했다.

감염 때문에 열이 오르거나 정신이 혼미해지면, 어느새 폐허 더미에 라드화가 진행 중인 것들을 내려놓고 온 거대 개체들이 또다시 옮겼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병사들까지도 모조리 옮겨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 이러한 표현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이게 대체…….”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김선태와 신진식 대령이 이끄는 부대가 도달했을 때 현장에 남아 있는 건 몇 안 되는 시신과 버려진 차량들뿐이었다.

“민간인을 모조리 데려갔습니다.”

“아니, 우리 병사들도 데려갔어.”

“무슨…… 무슨 일일까요?”

“일단 함정일 수 있으니, 사방 경계 철저히.”

“네. 명령 하달해 놓은 상태입니다.”

김선태는 신 대령의 말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과연 병사들이 둘씩 짝을 지어 사방으로 산개해 주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봐야 깜깜한 와중이다 보니 보이는 건 거의 없겠지만…….

뭐가 되었건 대응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아무튼, 이들은 정예이지 않나?

물론 여기서 급습당한 놈들도 정예인데도 당하긴 했다지만…….

‘흐음.’

김선태는 일단 그들을 믿고 트럭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요란하긴 했는데……. 적었어. 느낌만은 아냐. 자국이…… 적다.’

정예 중의 정예라면 딱딱 병사들만 맞혔을 가능성도 있긴 할 터였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나?

이렇게 깜깜한 와중에, 그것도 움직이던 트럭을 공격했는데…….

오발탄이 이렇게나 적다고?

‘기껏해야 수십 발 내외……. 도망가지 못한 건 저 앞에 차량 때문인데.’

여기도 역시나 길 앞에 버려진 차량이 하나 있었다.

이걸 운전해서 갖다 놓은 건지 아니면 그냥 끌고 와서 버려둔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한 차량이었다.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고…… 뭐지? 기껏해야 몇 놈밖에 안 되는 거 같은데…….’

현대전에서 숫자가 갖는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 건 맞았다.

무기의 우위 혹은 전술적 우위 혹은 둘 다가 병행되는 경우라면 열 배의 병력도 아무렇지 않게 분쇄해 버릴 수 있는 게 현대전이라서 그랬다.

물론 이제 와 그럴 수 있는 부대가 정부 측 외에 다른 곳에 있다는 것도 인정하긴 어려운 사실이지만…….

백번 양보해서 설령 그렇다고 치더라도, 민간인들까지 싹 쓸어 갔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냉병기……? 수백 명이 칼 들고 뛰어들었다……. 아니, 그렇다 해도…… 이상한데.’

수원이 아니라 어디 생존자 무리가 왔나?

근데 그놈들이 민간인은 왜 데려가?

식량을 비롯한 물자가 아니라면 허탕 쳤다고 생각하고 학살을 벌였으면 벌였지, 데려가?

“저, 중장님.”

그렇게 트럭 앞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며 고민에 빠져 있으려니 신진식이 그를 불렀다.

총탄 자국이 발견된 방향이 아니라 반대편으로 돌아 나름대로 조사하던 참이었다.

뭔가 다른 흔적이라도 있나, 하면서 김선태는 발걸음을 돌렸다.

“어, 뭐지?”

“여기 발자국이…….”

“발자국? 발자국이 남아?”

“네. 라드…… 초거대 개체들의 자국이 있습니다.”

“들? 들이라고?”

“네. 한둘이 아닌 듯한데, 거대 개체로 분류될 만한 놈들도 엄청나게 많은 거 같습니다.”

“무슨……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총을 쐈다고 했잖아.

아니, 분명 들었다.

총탄 자국도 적지만 있었고.

헌데 반대편으로는 라드가 왔어?

“우리처럼…… 라드를 부린 거 아닐까요?”

“부려? 부리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게. 라드는 명령에 복종하지 못해. 그냥 총알받이로 쓰면 그만이야. 게다가 일반적인 라드도 아니고 초거대 개체라니. 이런 놈들을 대체 어디서 데려와?”

사태가 진행되고 시간이 꽤 오래되었지만 초거대 개체의 수가 막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는 않았다.

더 자세한 것은 연구를 해 봐야 알겠지만, 현장을 뛰는 군인들이 내린 잠정적인 결론이 있었다.

아무래도 초거대 개체가 되는 놈들은 정해져 있는 거 같다고.

모든 라드가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무조건 초거대 개체가 되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어찌 보면 그것도 재능일 테니.

“그럼 이게 대체…….”

“모르겠군.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어. 이게 만약 수원 측의 공격이었다면…….”

“우리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수송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의 전력이 압도적인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병사들을 잃은 데다가, 다른 곳으로도 부대를 분산시켜 놓은 탓이었다.

진짜 공격을 할 때라면 다 긁어모아서 찌르겠지만 지금 이곳에 남은 병사들은 기껏해야 200명도 채 되지 못했다.

“그렇지. 생존자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미친…….”

“우선 퇴각하시는 것이…….”

김선태는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신진식을 바라보았다.

이놈 말이 맞았다.

일단은 돌아가야 했다.

또 자신의 속내를 병사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이들 앞에서만큼은 늘 강철의 중장이어야 했으니.

“돌아간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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