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역습 (1)
“X 됐다……. 튀, 튀자. 나라도…….”
넷 중 둘은 김태평을 따라 세브란스 근방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는 병사들이었다.
하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경계를 서면서 밖에 있었고.
“라드…… 라드 맞죠?”
“시발 근데 왜 총을.”
“뭐냐고, 이거…….”
그 하나는 잔해물을 치우던 둘을 서둘러 쳐서 앞을 내다보게 했다.
나머지 둘 또한 숱하게 밖에 나돌던 인원들이었기 때문에, 당황한 와중임에도 총을 겨눌 수는 있었다.
허나 물경 수십을 헤아리는, 그것도 덩치 큰 것들이 사방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방아쇠를 당기거나 하다못해 발을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대항할 생각인가 본데요.”
“설마.”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김민수나 구우준은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수원에서 나온 놈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최근 들어 부대 남쪽에 자리 잡은 이들과는 소속이 다르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허나 파악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은 제아무리 라드라 해도 무리였다.
“차, 차 타!”
부우웅
“이런 시발놈이!”
그 와중에 차에 있던 병사가 곧장 후진을 밟고서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딱히 그것까지 제지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튈 수 있었다.
김민수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된 참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남겨진 이들에게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콱그가 고개짓을 하자 옆에 있던 거대 라드 하나가 철로 된 창을 던졌다.
그 창은 병사들의 눈앞에 박혔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말이 안 될 정도로 깊이가 깊었다.
“허.”
모두의 눈이 그 창에 박혀 있을 때, 구우준이 앞으로 나섰다.
혹 김민수가 나섰다가 총에라도 맞게 되면 큰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총 내려놔.”
“어……?”
“말을……?”
“사람?”
절망적인 가운데 들려온 사람 말소리.
병사 셋은 이제 창에서 구우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총이야 여전히 들고 있긴 했지만, 그걸로 감히 구우준을 겨누는 이는 없었다.
그저 웅얼대듯 떠들어 댈 뿐이었다.
“총 내려놔.”
“어…….”
먼저 한 명의 병사가 총을 내려놓았다.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도 총을 내려놓았다.
“좋아.”
“사람, 사람입니까?”
“사람이지.”
구우준은 그 광경을 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옆에 있던 김민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저러다 갑자기 내려놓았던 총을 집어 들거나 혹은 칼 등을 뽑아내 덤벼들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거대 개체급으로 몸집이 커다래지진 못했지만 반사 신경이나 완력 등은 평범한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오히려 지능이 남아 있다 보니, 비슷한 체급에서는 일반적인 라드들보다도 더 잘 싸우는 편이었다.
“사람…… 아니잖아, 시발.”
“뭐, 뭐야.”
“으…… 으으.”
점차 가까워져 오는 둘을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마치 경호라도 하듯 따라오고 있는 초거대 개체에 속하는 라드들을 보면서 병사들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멀리서 봤을 땐 그냥 덩치 큰 사람인가 싶었더랬다.
총도 메고 있겠다, 또 말까지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둘은……
완연한 라드였다.
거대화된 턱 그리고 손 등.
우리가 흔히 말단 비대증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특징을 마치 복제라도 한 듯 공유하고 있었다.
“어쩌죠? 물어요?”
“아니, 물면 병신 될 가능성이 크지.”
허나 드문드문 들려오는 대화 그리고 둘의 얼굴에 떠오르고 있는 다채로운 표정 등은 여전히 인간에 가까운 존재임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 간극에서 야기하는 혼란이 병사들의 몸을 더더욱 굳게 만들고 있었다.
베테랑들이라 할 수 있는 병사들임에도 그랬다.
해서 아무것도 못 한 채로 둘러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둘러싸인 후에는 더더욱 움직일 수 없었다.
“으…….”
“제기랄…….”
이젠 김민수나 구우준 때문이 아니었다.
초거대 개체들.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해 그들이 내뿜어 대는 냄새 및 숨소리 그리고 위압적인 몸뚱어리 등등은 마치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처럼 몸이 확 움츠러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좀 묻도록 하지.”
“남쪽에 있는 것들 때문입니까?”
“그래. 그놈들.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민간인들이 잡혀 오고 있죠.”
“그래. 그렇지. 나는 그게 궁금하단 말이야.”
김민수와 구우준은 그렇게 바짝 오그라든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병사들은 이제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분명 라드다.
라든데……
오가는 대화는 인간들의 그것이지 않나.
무엇보다 멀쩡한 인간을 앞에 두고서도 물어뜯지 않을 수 있는, 이들의 인내가 그들의 두려움을 더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일단 꿇을까.”
그렇다 보니 김민수의 말에 즉각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발목에 감추어 둔 대검이 있다든지 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달려든단 말인가.
즉시 사지가 찢겨 죽을 텐데.
아니, 그보다 더한 공포가 심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말하는 라드라는, 불가해한 존재가 주는 압박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을 잘 듣네. 그래, 괜히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지.”
가까이 와 있는 라드는 단둘이었다.
김민수와 구우준.
그 외에 초거대 개체와 거대 개체들은 좀 더 떨어져 있었다.
명령이 있다 해도 그들에게 멀쩡한 인간을 코앞에 두고서 가만히 있는 건 너무 가혹한 형벌이기에 그랬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 길이지? 꽤 다급해 보이던데.”
김민수의 말에 세브란스 근방에 다녀왔던, 그러니까 이 중에서 가장 선임인 병사가 입을 열었다.
말을 안 하면 죽을 수 있다거나 하는 생각 따위는 들지도 않았다.
그냥 안 하면 안 될 거 같았다.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내가 이토록 지조가 없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꺾여 버렸다.
“수, 수원에서 17비로…….”
“17비?”
“청주…… 청주 비행장입니다.”
“꽤 먼데. 거기까진 왜 가지?”
수원에서 청주라면 멀쩡했던 세상에서조차 가까운 거리는 아닐 터였다.
헌데 이 망한 세상에서 청주까지 그냥 갈 리가 있겠나.
“도움을 요청하려고…….”
“왜?”
“남부…… 부대 남쪽에 적이 있습니다.”
“적이라.”
역시, 남쪽에 있던 그놈들은 소속이 다르군.
거기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적이라니.
군인들끼리 내분이 있다 이 말이렷다.
김민수는 잠시 구우준과 눈을 마주한 후, 말을 이었다.
“그쪽 수가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던데…… 도움까지 요청해야 할 정도인가?”
김민수는 김태평 그리고 정유현을 따라 북상하다 수원 군부대에 덜컥 막혀서 잔류하고 있던 중이지 않나.
내실을 다진다는 핑계로 주변 생존자들 그리고 한동안 피난 오던 생존자들을 먹어 치워 가면서 덩치를 불려 왔지만, 그럼에도 수원 군부대는 함부로 건들기에는 너무 거대한 느낌이었다.
완전히 파악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대충 무장한 인원만 기백은 넘지 않던가.
냉병기가 아니라 총기로 무장한 인원이 백이라니.
사태 초기도 아닌 만큼 대적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놈들이…….”
선임 병사는 이것까지 말해야 하나 하다가, 구우준의 서늘한……
아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조차 유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눈빛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맞을 수도 있다,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죽는다, 이건.
그것도 곱게 죽는 게 아니라……
산 채로 뜯긴다.
어쩌면 라드가 될 수도 있고.
존재를 잃어버릴 수 있단 공포는 그 궤를 달리하는 면이 있었다.
“놈들이…… 라드를 생산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라드를 생산해?”
김민수는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었다.
구우준을 돌아보니 구우준 또한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머리로는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이니까.
“네. 민간인들을 잡아 와서…… 강제로 라드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중 일부만 풀어놔서 정찰을 어렵게 하고, 나중에 한꺼번에 몇백 개체를 풀어서 혼란을 야기한 후, 군인들이 침입할 거라는 것이 저희의…… 예상 시나리오입니다.”
“허.”
그런 발상을 했어?
인간이?
김민수는 기특하다기보다는 아득해짐을 느꼈다.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된 그조차 악마적인 계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한 계획이지 않나.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이용할 여지가 있겠습니다.”
“그렇지. 어차피…… 주력 부대는 남쪽에 웅크리고 있잖아.”
“트럭을 급습하면, 그 안에 민간인들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안에는 라드들이 있고.”
“그렇지.”
만약 수백의 라드가 갇혀 있다면……
트럭을 급습해 이쪽 수를 불리고, 주력 부대만 어떻게 하면 수원까지 한 번에 밀어 버릴 수도 있을 터였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데……
문제가 있다면, 어마어마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김민수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간 간신히 긁어모은 정예가 보였다.
초거대 개체만 여섯에 거대 개체까지 하면 스물이 넘어가는……
그외에 조금 큰 라드까지 하면 백을 헤아리는 전력이었다.
‘트럭 정도야 뭐…… 아무것도 아니지.’
그 후에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놈들을 칠지 아닐지는 판단해도 되지 않겠나?
제아무리 신중한 편이라지만 라드 특성상 어떤 충동이 일면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서이기도 한데, 하여간, 그는 결정을 내렸다.
“오늘 밤 트럭을 급습하지. 아마 또 올 거야.”
“네, 그렇게 하죠. 이놈들은……?”
“더 아는 거 있나?”
김민수의 눈을 확인한 선임 병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 이놈들이 세브란스에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거 말고.”
“수, 수원에 병사들. 병사들이 수백입니다.”
“많네. 또?”
“그.”
“물지.”
결과적으로 보면 별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병사들은 그제야 필사적으로 반항에 나섰지만, 총도 내려놓은 일반인이 어찌 라드 둘에게 지근거리에서 대항이 가능하겠나.
“윽, 으윽.”
그저 무력하게 물릴 뿐이었다.
“꽝인가?”
“좀 더 기다려 보죠.”
지금껏 살아남긴 했다지만,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에 속하던 이들이니만큼 구우준처럼 변하진 못했다.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라드가 되었을 따름이었다.
김민수는 그에 대해 별 실망조차 하지 않았다.
구우준은 인간일 적부터 비범했으니.
대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부우웅
지난밤처럼 또 며칠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트럭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두 대가 아니었다.
무려 네 대나 되었다.
앞뒤로 지프차가 호위까지 하고 있었다.
모조리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엔 가까이 가지도 않았더랬다.
-뭐야!
-살려 줘!
오늘처럼 가까이 온 것은 처음이라 이건데, 와 보니 과연 트럭 안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동시에 정작 병사들의 수는 적다는 것도 확실해졌다.
“가지.”
“네!”
김민수의 신호에 따라 총알 세례가 있었다.
“뭐야, 이거!”
딱히 조준이 가능한 건 아니었기에 단지 총소리만 들려온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지만, 일단 총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모두의 신경이 쏠렸다.
그리고 정작 라드들의 침입은 반대편에서 시작되었다.
김선태로서는 예상이 불가능했을 침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