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생산 (4)
김선태도 대령도 각자의 위치에서 움직이는 동안, 유현이라고 해서 쉬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전엔 보통 진료를 봤다.
이전엔 거의 환자가 없었는데, 이제는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보니 빠질 도리도 없었다.
파종과 잡초 제거, 비료 뿌리기 등등의 농사에 투입되고 있는 민간인들의 부상 및 감기 등의 감염 질환 때문이었다.
이만한 육체노동에 익숙했던 사람이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대체 언제까지……. 저도 차라리 총 들고 나가 싸우고 싶습니다.”
대개의 경우엔 그래도 그 자리에 적응하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바깥보다 여긴 훨씬 안전하니까.
허나 밖에서 충분히 활약해 왔다고 자부하던 이들 중에는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저도 뭐……. 제가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로군요.”
오늘만 해도 여럿 그렇게 돌려보낸 참이었다.
유현은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병사를 돌아보았다.
그는 누가 그런 말을 하는지 다 기록을 해 둔 참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어떤 액션이 있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불이익이 있겠지.’
대령은 체제 안정화에 기를 쓰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신분이라고까지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일반 노동 계층과 군인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벽이란 게 존재하게 되지 않았나.
이게 옳아서가 아니라 효율적이라서 택하는 것일 터였다.
이 망할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끊임없이 해 나가지 않으면, 모두가 죽게 될 수 있으니.
‘그런 거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아니, 신경을 쓴다 해도 별 방법이 없었다.
뭐 어쩌겠나.
가서 대령한테 따져?
그랬다가 격리라도 당하게 되면.
아니, 격리는 너무 말랑말랑한 발상이었다.
“교수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네.”
“오후엔…….”
“양 선생이 올 겁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쉬십쇼.”
“네. 감사합니다. 잠깐 남쪽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봐야죠.”
“아…… 네!”
하여간, 유현은 대면하는 병사들에게 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몰라서 그랬다.
너무 인간이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거 아닌가 하는 자조가 뒤섞이는 밤도 있긴 했으나,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도 나니 한결 쉬워졌다.
-연구실에 탄저균이 구비되어 있는데……. 이걸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마냥 가벼워지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며칠 전 박원상이 전해 온 메시지 때문이었다.
독감과 아르스24의 병발 감염이 어떤 상호 작용을 일으킨다는 건 확인하지 않았나.
일정 확률로……. 그러니까 대략 2, 30%의 확률로 두 질환에 같이 걸리게 된 경우 상쇄가 되어 인간으로 남게 되었다.
이진호 형사처럼.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 또는 결핵과 같은 만성 감염 질환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급성 감염을 이용해 보려고 하는데……. 탄저균밖에 없습니다.
사실 비형 감염 따위는 별 효과가 없을 거 같긴 했다.
애초에 느리게 자라는 것들 아닌가.
단순히 비형 간염에도 걸린 라드가 될 것 같았다.
허나 탄저균은…….
테러로 쓰일 만큼이나 독한 놈이었다.
무엇보다 바이러스가 아닌 세균이었다.
-뭔가 다를 거 같긴 하지 않습니까?
박원상은 이미 호기심에 집어삼켜진 지 오래였다.
이것 또한 예상 못 했던 바는 아니었다.
그런 녀석이니 정부에 협조하지 않았겠나.
아마 일이 잘되어 갔다면, 그러니까 실험이 잘되어 갔다면 지금도 거기 있을 게 뻔했다.
‘내가 하는 게 아니지.’
유현은 놈이 알아서 하는 거라 여기며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나.
하필 감염내과 의사다 보니 탄저균의 위력이나 증상을 잘 알아서 더 어려웠다.
“교수님.”
“아, 형사님.”
“가실까요?”
“네. 가죠. 밥만 대충 먹고.”
“네네. 오전에 진료 보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진료실에서 나와 차를 타고 숙소, 그러니까 본부 바로 옆 건물에 도착하니 오예리 형사가 나와 있었다.
이순규도 그랬는데 둘은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물론 그것 또한 잠시뿐이었다.
유현이 도착하자마자 모두는 부리나케 움직여 식사를 했다.
식사라고 해 봐야 제대로 된 음식이 있는 건 아니었다.
“지겹네…….”
“투정 부리지 마.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고구마에 계란 그리고 소시지 등의 음식이 전부였다.
유현의 말대로 투정 부릴 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밖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감자 아니면 고구마 정도만 먹을 수 있었으니.
계란은 일주일에 한두 번 배급될 뿐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다 부족해서 그랬다.
“전투 식량은 아껴 두는 거지?”
“그렇지. 당장이라도 쳐들어오면 이런 걸 어떻게 찌고 앉겠어.”
“하긴. 그렇지.”
이순규는 그 커다란 덩치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는 식량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곤,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여기 와서 살이 좀 빠져서 그런가 옷이 펄럭이는 느낌이 있었다.
호르몬의 분비도 차츰차츰 줄어들고 있는 데다가 식량도 모자라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그나마 그의 초인적인 인내가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싸움이라도 났을 터였다.
아무래도 배고픔의 정도가 차원이 다를 테니.
“후.”
뭐 유현이라고 해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예리에게도 적당하거나 조금 모자라게 느껴질 정도의 양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만 다행인 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점이었다.
천천히 쇠약해져 가고 있을지언정 당장의 배고픔이 이전처럼 미쳐 버릴 정도는 아니게 된 지 오래였다.
“갈까요.”
“팀장님은?”
“조금 깊숙이 가 본다고……. 박중 대위랑 같이 갔습니다.”
“아. 그래, 알아서 하겠지. 우린 분위기만 보자고요.”
“네. 아, 여기. 쥐요.”
오예리는 쥐를 건네주었다.
산 채로 쇠창살에 갇힌 채였는데, 그 뒤를 보니 김 주무관이 서 있었다.
지척에 있음에도 꽤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다.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시피 하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탓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밖에 나와 있어 봐야 뭐 볼 게 있다고.
“오랜만입니다.”
“아, 그래요. 잘 지내죠?”
“네? 네. 저야……. 뭐, 원래 하던 일 하는 거라서요. 다만 별로 도움이 못 되고 있는 거 같아 미안할 따름이죠.”
“아뇨, 그래도…… 이게 있어 우리가 라드를 기습할 수 있는 거죠.”
유현은 창살 안에서 이리저리 뛰고 있는, 사나워 보이는 쥐를 내려다보았다.
이것들이 아니라면 기습은 오히려 이쪽에서 받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놈들은 냄새로 피아를 구분하니까.
냄새는 시야 따위 없이 그저 범위로 뻗어 갈 따름이니까.
허나 이 쥐가 있어, 인간은, 적어도 김 주무관과 함께하는 인원은 몰래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혹은 쓸데없는 교전을 피할 수 있거나.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이만.”
“또 가요?”
“네, 쥐들이 예민해요. 밥도 좀 부족하고요…….”
“아, 네. 그럼.”
유현은 김 주무관을 두고 차에 올랐다.
말마따나 그리 멀리 갈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랑 셋만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날 동안 애쓴 결과 이곳 병사들과 부대낄 수 있게 된 김현철이 꼈다.
“가죠.”
“네. 교수님.”
유현, 이순규, 오예리 그리고 김현철까지 넷을 태운 차량이 밖으로 향했다.
밖이라 해 봐야 부대 남쪽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곳이야말로 이 근방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었다.
“수가 더 는 거 같진 않은데……. 잡아 죽이고 있진 않죠?”
유현은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드문드문 눈에 띄는 라드들을 지켜보았다.
벌써 며칠째 관찰하고 있는 중인데 방금 말한 대로 수가 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김 소위님. 잡아 죽이고 있진 않죠?”
“아, 저한테 물은 거군요.”
“네, 작전 계속 나가시잖아요.”
“아, 네네. 지근거리에서 마주치는 것만 아니면 싸움을 피하고 있습니다. 굳이……. 총알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죠.”
민간인들이 라드 잡이에 동원된다는 건, 일단은 비밀이었다.
허나 병사들 사이에서 총알을 아껴야 한다는 인식만큼은 의도적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야 책임자가 ‘피치 못할 선택‘을 내릴 때 다들 납득할 수 있으니까.
‘확실히 대령은……. 괜찮은 리더야.’
당하는 입장에서야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유현은 전체적으로 봤을 땐 꽤 괜찮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확실히……. 수는 거의 그대로예요.”
“옷이 낡은 것으로 볼 때, 동일인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네요.”
다른 인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예리는 저격수 특유의 날카로운 눈썰미로 옷이 얼마 전 보았을 때와는 상태가 현저히 달라졌다는 걸 지적했다.
원래도 낡기는 했을 터였다.
이제와 새 옷을 만들거나 쇼핑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하지만 이성이 남아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움직임은 다를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여기저기 긁히고 해지는 빈도가 라드화가 진행될수록 아무래도 증가한다는 얘기였다.
“그래. 그런 것치고는 거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 같지는 않은데…….”
“이전보다는 무리를 이루고 있어. 그래 봐야 둘, 셋이긴 하지만…….”
“적응하고 있다는 건가.”
“그렇지.”
“흐음.”
유현은 그 후로도 대략 40분가량을 돌면서 라드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수는 늘지 않았다.
그냥 있던 놈들이 그대로 낡은 느낌만 받을 뿐이었다.
‘이놈들이……. 더 생산을 하지 않았을 리는 없는데…….’
김태평이 그러지 않았나.
매일 적어도 백 명 정도는 잡아 오고 있다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쳐도, 그러니까 절반만 오고 있다고 해도 매일 50명가량은 라드가 되고 있다고 봐야 했다.
헌데 그 수는 변하지 않고 있다.
그 말은…….
‘어디다 모아 두고 있나?’
삼국지 보면 수공이 꼭 한 번씩은 나오지 않던가.
흐르는 물을 막아 두었다가 충분히 모이면 터뜨려서 한 방에 보내 버리는 그런…….
‘아무래도 그게 군부대 같은 곳을 치는 데는 유리하겠지.’
인간성을 지우고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얘기였다.
상대는 인간을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니 필시 이렇게 나오지 않겠나.
“일단 돌아가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현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뭔가 말을 하진 않은 상태였지만 다들 그저 그의 말을 따랐다.
어차피 유현 때문에 나온 것이었으니까.
“어.”
그 시각, 박중 대위가 보낸 네 명의 특사는 이 부대 남쪽보다 더 남측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차를 타고서였는데, 그럼에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무런 보수 없이 한반도의 혹독한 겨울을 지낸 도로 상태가 개판이라서 그랬다.
파편을 치우기 위해 차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 야야, 이, 일어나!”
운전대를 잡은 하나만 빼고, 셋이 내렸다.
둘은 파편을 치우고 나머지 하나가 총을 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그러던 중 라드들이 나타났다.
아니, 라드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중 둘은 총을 둘러메고 있었으니.
“어쩌죠?”
“일단 붙잡아 두기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