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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47화 (247/323)

247화 생산 (2)

“북쪽에서는 더 뭐가 관찰되는 건 없더군요.”

정찰 나갔다 돌아온 김태평이 신음하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그러니까 침입이 있던 날부터 단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그를 지켜보는 모두가 이렇게 더 가면 지칠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할 수 있었다.

허나, 유현은 그럼에도 위로의 말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그래야만 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남쪽은 어떻습니까?”

“그쪽은…… 요새 라드가 너무 늘어서 박중 대위도 원래 부대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뭐……. 라드가 많다는 건…….”

“라드의 영역이라면 인간이 움직이기 어렵다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그렇더라도…….”

유현은 재난 본부에서 마주했던 라드 무리를 떠올렸다.

놈들이라면, 어지간한 군보다도 더한 위협이었다.

물론 헬기가 뜨고 하는 상황보다야 놈들이랑 붙는 게 더 낫기는 할 터였다.

적어도 라드의 존재를 완전히 인지한 지금이라면 그랬다.

“남쪽에 대한 경계도 거두면 안 될 거 같긴 하군요.”

“그렇죠.”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저도 가서 좀 볼까요.”

“네? 교수님이?”

“네.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지켜볼 겁니다.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놈들이 관여했다면 어떤 특징이 있을 터였다.

방구석에서 ‘어떤’이라고 특정하긴 어렵겠지만…….

막상 나가서 보면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유현은 이제 자신의 직관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 지 오래였으니.

“뭐……. 교수님이 한번 보시면 좋겠죠. 뭔가 다른 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유현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김태평 같은 사람조차 유현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족한 정보, 한참 떨어져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 그나마 정답에 유사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으니까.

김태평이 단순 협상 수단으로서의 유현보다 그냥 유현 자체가 더더욱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그 정도는 지금 당장 가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가……. 낮에는 배회하는 놈들이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배회라.”

“네.”

“배회.”

유현은 배회란 단어를 반복했다.

겉으로는 두 번이었지만 속으로는 척 여러 번이었다.

‘배회……? 왜 어색하지?’

어색하다.

정말로.

왜 그런지는 지금 당장 알 수가 없었다.

하여간, 나가게 된 마당이니만큼 유현은 곧장 김태평을 따라나섰다.

최우식이 혹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보니 같이 나갔다.

그외에 이순규, 오예리 등도 따라나섰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느낌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렇게는 있어야 근접이건 멀리서건 적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대응이 가능할 테니.

“저도 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때 김현철이 나섰다.

옥상에서 죽을 뻔했던 경험 탓인지 한동안 조용히 지내더니만, 이젠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수원은 커다란 위기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 명약관화해지지 않았나.

게다가 날이 따뜻해져서 파종도 가능해진 상황이다 보니 원래도 바삐 움직이던 인원이 다들 톱니바퀴처럼 구르기 시작했더랬다.

거기서 열외로 빠진 인원들이라고 해서 마냥 편한 것도 아니었다.

몇몇 인원을 제외하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김현철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다 보니, 이러다간 애매하게 팽당할 수도 있단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뭐……. 그러시죠.”

유현도 김현철 정도면 믿을 수 있단 생각을 하게 된 지 오래다 보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다 같이 차 한 대에 올라타고는 밖으로 향했다.

말이 밖이지 사실상 부대 안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령이 자살한 사령관에게 부대를 인계받았을 때, 너무 넓어서 관리가 어려울 거란 이유로 남겨 둔 남쪽 지대였다.

완전히 방치된 지 거의 일 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었고, 애초에 군부대 내의 건물이라는 것이 썩 잘 지어졌다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나.

엉망이었다.

“어, 저기.”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지대를 달리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5분이나 되었을까?

달린다는 말을 쓰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느리게 다니고 있음에도 라드가 눈에 띄었다.

“혼자인가?”

“혼자 같습니다.”

“혼자라……?”

분명 사태 초기에는 혼자 다니는 놈들이 많았다.

그러다 무리를, 제대로 말하자면 그냥 다니다 보니 같이 다니게 된, 유대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집단이라고 해야겠지만.

하여간,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지도 벌써 반년도 더 되었다.

지금?

지금은 숫제 무리가 아니라 어떤 단체를 이루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적어도 재난 본부로 쳐들어왔던 놈들은 그러했다.

“어, 저기도.”

“저기도 있습니다. 확실히…… 수가 엄청 늘었는데요? 어디서 몰려온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유현은 내부의 고민 속으로 침잠하느라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최우식은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이곳 수원에 딱히 뭐가 없는데……. 먹을 수 있는 게 있나?”

“자연적으로 라드가 모일 만한 요소 말입니까?”

“네. 아무래도 저보다는 더 밖으로 다니셨으니까…….”

“딱히……. 마트도 그렇고 털린 지 오래입니다. 무엇보다 저놈들이 소문을 내고 듣는 놈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확실히……. 흠. 하지만 이미 벌어진 현상이지 않습니까?”

잠깐 사이 목격한 라드만 해도 벌써 열이 넘어갔다.

거리가 있어서 망정이지 가까웠으면 몇 번이고 전투가 벌어졌을 터였다.

홀로 떨어져 있는 데다가 다들 크기가 작다 보니 그렇게 위험한 전투가 되었을 거 같지는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라드는 라드 아닌가.

이렇게 되면 확실히 더 남쪽으로 가는 건 어려워 보였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라드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만 있었으니.

“여기까지가 박중 대위가 말한 안전한 라인입니다. 더 내려가면…… 뭐 이미 라드가 많긴 합니다만. 어쩌면 안전 라인을 위로 올려야겠군요.”

“대체 이 많은 라드들이 다 어디서…… 온 걸까요?”

“글쎼요. 다만 지금 다 죽이는 건 불필요해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장막이 되어 줄 테니까요. 적어도 알람은 되겠죠.”

김태평은 용산 공원에서 쏴 죽였던 라드를 떠올렸다.

그놈은 어느 정도 자란 놈이었고 동시에 무리를 이룰 정도로 지능이 있었다.

무엇보다 냄새가 아닌 육안으로 인간을 보면 바로 분간할 수 있을 만큼의 경험도 있었다.

이놈들보다는 우월한 존재들이었다는 건데, 뭐가 되었건 놈들을 마주하게 되면 총을 쓸 수밖에 없었다.

‘총소리가 들리면 방비를 더 잘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차를 뒤로 돌렸다.

오예리와 이순규는 그저 라드들을 경계하고 있으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상하네……. 뭔가 이상한데…….”

그사이에 최우식, 그러니까 어떤 정보를 취합하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데 능한 최우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유현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라드를 지나쳤을 때, 그러니까 거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을 때가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잠깐. 멈출 수 있습니까?”

“아……. 네.”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김태평도 유현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보니 순순히 차를 멈춰 세웠다.

그렇게 끼익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추어 서자, 유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불과 2, 300미터 거리에 방금 지나쳐 온 라드가 있었다.

비척비척대는 꼴이 달려들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초창기 라드였다면 뛰어들었을 테니 좀 낫다고 볼 수 있겠지만, 확실히 어리숙한 모습이었다.

“오늘 본 라드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다 작죠?”

“네? 아……. 듣고 보니까, 그렇긴 합니다. 변이가 생긴 지 얼마 안…… 응?”

“네, 거의 인간이에요. 더 자랗다는 흔적을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더 가까이에서 보면 정확하겠지만……. 작아요.”

“그 말씀은……?”

“이 근처에 이만한 무리의 생존자가 있었습니까?”

“아, 아뇨. 있었다면 반드시 눈에 띄었을 겁니다.”

이 망할 세상에서 인간은 보통 숨어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면, 호모 사피엔스의 진정한 강점인 집단행동을 할 수 있게 되기 마련이었다.

밖에 나가 사냥을 하건 파밍을 하건 하게 된다 이 말이었다.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척이라면 수원 군부대쯤 되는 규모의 집단이 모를 수가 없었다.

반대로 군부대를 모를 수도 없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접촉이 있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최근에 생존자들이 왔다가 라드에게 한꺼번에 감염이 되었다고 봐야 할 텐데…….”

“흠…….”

김태평과 최우식 그리고 경계를 서고 있던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아니, 이 잠깐 동안 목도한 라드의 수가 무려 스물을 헤아리기에 그랬다.

이보다 최소 몇 배는 되는 인원들이 있었을 텐데…….

무력하게 라드화가 되었다고?

“심지어 상처를 보시면…… 전투의 흔적이 없어요.”

“아.”

“보통의 라드는 초창기에는 대개 전투 또는 저항의 흔적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랬다.

초창기에야 뭐 무력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었다.

그때 그들은 의도적으로 정보를 틀어막아 버린 정부 때문에 아예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허나 지금도 모르겠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껏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면 지독할 테니.

“없어……. 그렇군요. 아니, 그럼 이게 대체?”

“자연 발생한 놈들이 아닐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네? 그럼…….”

“의도적으로 발생하는 거. 우리가 아예 모르는 내용은 아니지 않습니까?”

의문에 그득한 김태평을 유현은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런 유현의 눈은 단단하기 그지없어서, 김태평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가 말하는 바를 단숨에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직접 그 현장을 보고 온 인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세브란스…….”

“남산도 그렇죠.”

“그럼 누가 이 근방에서 라드를…… 라드에게 민간인들을 물리게 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거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어요.”

“대체 누가……?”

“이 끔찍한 일을 떠올리고 실제로 저지를 수 있는 놈들이 하나 더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생각하기도 싫고요.”

유현은 그런 말을 하면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선태…… 대통령. 그 인간들만이 할 수 있는 발생이죠.”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김태평의 얼굴이 이보다 더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구겨졌다.

확실히 유현의 말대로이지 않나?

여기 보이는 라드 놈들은 초짜였다.

거기에 더해 저항의 흔적도 없었다.

언젠가…….

‘서울 지구 병원에서 내가 하던 짓거리지.’

죄수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말이 면피가 될 수 있을까?

김태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오긴 할 터였다.

허나, 오늘은 아니었다.

“바로 대령에게 가시죠.”

“네.”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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