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생산 (1)
‘사람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빠져나오면서, 김선태는 그런 생각을 했다.
확실히 대통령은 일국의 지도자라 할 만했다.
일반적인 사람이 어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겠나.
민간인들을…… 인간인 채로 수송해서 수원 비행장 인근에서 라드로 만들자니.
그게 과연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 그냥 사람이 할 수 있는 발상이란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오직 대한민국만이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어.’
평화로운 세상이라면.
그러니까 사태가 터지기 전의 세상이라면 저런 인간은 없어져야 할 악인일 터였다.
하지만 이 개 같은 세상에서는 악마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악마가 애국심을 품고 있다면, 그거 이상 가는 행운이 있을까.
‘좋아……. 좋아.’
김선태 중장은 가슴 한편이 뿌듯함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 다시 헬기에 탔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감정일지 알 만큼 오랜 세월 함께 굴러온 신진식 대령이 입을 열었다.
“해결된 겁니까?”
해결이라는 말을 담았다.
왜냐.
지금 그들의 전력으로 수원 비행장을 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 그랬다.
허나 코앞이라 해도 좋을 위치에서 저만한 무리의 반란군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을 그냥 두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이 말인데…….
그래서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상관의 얼굴이 밝아졌으니 이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방법을 찾았어.”
“어떤…… 어떤 방법입니까?”
방법을 찾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없는 병력을 어디서 끌고 올 수는 없지 않겠나?
기갑사단들 태반이 경기 북부, 그러니까 일산그라드라고 불리는 곳에서 창궐하는 라드에게 돈좌한 데다가, 서울 근교에 있던 부대는 싹싹 긁어모아서 겨우 지금의 병력을 꾸리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밭에서 병사를 뽑아내는 게 아니라면 방법이 없었다.
“라드를 생산한다.”
“네? 아니, 네?”
신진식 대령은 라드와 생산이라는 단어가 조합이라는 걸 이룰 수 있다는 걸 지금 알았다.
이게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라드를 생산이라니?
“들은 그대로야. 우리는 수원으로 가서 라드를 생산한다. 그 라드를 이용해 수원 비행장을 공격할 거야.”
“그…… 여전히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신진식 대령은 여느 때처럼 바위처럼 굳건한, 어찌 보면 냉막해 보이기까지 하는 김선태의 얼굴 뒤로 다른 부하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들도 귀가 있지 않나.
헬기 내부 공간이 넓은 것도 아니었다.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다면 소음이 있을 테니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고요하기만 했다.
청와대 인근에 달리 소음이 있을 만한 곳도 없다 보니 숫제 헬기 안에 있는 인원 전원이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뭘 한다고?’
‘라드를…… 생산?’
‘잘못 들었나.’
이들의 훈련 정도는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선별 과정도 엄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애국심이 투철한 수준이 아니라 세뇌당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라고 보면 좋을까?
때문에 상부에서 어떤 말이 내려와도 의문조차 품지 않는 것이 보통이겠으나, 지금은 수군거리지만 않고 있을 뿐 혼란이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술렁였다.
당연했다.
당장 신진식도 비슷한 심정이니.
“어차피 민간인들 잡아들이고 있지 않나.”
“네, 연구를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신진식도 냉정한 사람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해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김선태만큼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핑계가 필요했다.
아니, 변명거리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군인된 신분으로 민간인에게 중대한 위해를 범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뭐가 되었건 대의를 위한 것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이 있었단 얘기였다.
“이제 그 인원을 반란군을 진압하는 데 쓴다.”
“그럼…….”
“민간인들을 잡아서 수원으로 이송한 후, 거기서 라드로 만든다. 이해가 어렵나?”
그리고 김선태는 수하들에게 그것이 비록 말이 안 되는 종류의 것일지라도 명분화하는 데 소질이 있는 인간이었다.
언변이 수려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본인이 그에 대해 추호도 의심을 품고 있지 않아서 그랬다.
그는 늘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자신에게 반하는 모두는 애국심이 부족한…….
변절자라 여기고 있었고.
“이해…… 이해했습니다.”
“좋아. 그럼 경찰서로 가지. 당장 오늘부터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신진식은 아직 마음 깊숙한 곳에 뿌리 박혀 있는 거리낌이 빠져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간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 대통령이 내린 명령이고…… 그걸 내 상관이 따르고 있어. 이걸 따르지 않는 건 불충이다. 그리고…….’
애써 합리화를 하면서였다.
이게 처음 있는 일이라면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죄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 이것이 최선이다.’
이들의 손에는 벌써 묻은 피가 하나 가득이었다.
1호의 탈출부터, 수락 마을, 죄수들, 충정로역 그리고 지금껏 잡아들여 온 민간인들.
그때마다 조금씩 마모되어 온 양심은 이제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대통령을 악마라 매도하기엔, 이들도 역시 인간은 아니었다.
타타타타
그렇게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이들을 싣고 서대문 경찰서로 향했다.
널찍한 주차장이 구비되어 있는 그곳엔 여러 승합차들과 두돈반 트럭들이 그득했다.
물론 거기에 탈 인원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아.”
“네.”
“북쪽에 있던 인원들은?”
“지금 다리 건너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추적은 없었습니다.”
“차도 괜찮았나 보구만.”
“네.”
그에 비해 미끼로 던졌던 인원은 태반이 죽어 나갔다는 말은, 신진식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걸 그리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게 김선태뿐은 아니라 그랬다.
어차피 대부분의 인간은 수단으로 전락한 세상이지 않나.
그 쓸모를 보이고 죽으면 최선이고 아니면 마는 게 보통이었다.
“오늘은 좀 쉬도록 하지. 작전은 우리랑 대기하던 인원들……. 그리고 공병 수배해 봐.”
“공병…… 말씀이십니까?”
“많을 필요는 없어. 하지만 건물에 생산한 라드들을 가둬 두었다가 한 번에 몰아야 수원 비행장 정도 되는 규모의 기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을 거야.”
“아……. 네. 수배하겠습니다. 아마 있을 겁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진식이 장담한 대로 공병도 제법 모였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전달받은 인원은 없었지만…….
어쩌면 장기 출장이 될지도 모른단 말은 들었다.
‘망할…….’
‘탈영도 못 하고…….’
대다수는 그냥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원래 대한민국에서 군이란 집단 자체가 징병에 의해 타의로 온 병사들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그나마 그때는 애국심에 기대고 또 사회 인프라에 기대어 돌아갔지만 이젠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냥 이곳이 그들에게 남은 단 하나의 선택지라 강요될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구속력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상황이었다.
‘까라면 까야지…….’
‘뭐 어쩌겠어.’
‘근데 이 새끼들 사지로 내모는 건 아니겠지?’
‘그랬으면 굳이 공병 모을까?’
‘하긴…….’
‘하……. 시발.’
다들 마뜩잖은 얼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멀뚱거리는 인원 하나 없이 두돈반 트럭에 몸을 실었다.
이미 시간도 늦었고 밖은 위험 지대라는 것조차 그들에게 제한 사항이 되지 못했다.
여기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으니.
실제로 바깥을 떠돌다 합류하게 된 부대 같은 경우엔 아무래도 더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가지.”
“네.”
선탑 차량에 탄 김선태가 말하자, 이내 차량들이 줄지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차량 전원이 한곳으로 향하진 않았다.
일부는, 그러니까 공병이 탄 차량들은 김선태를 따라 곧장 수원으로 향했다.
일단 처음에라도 공병들이 이 일의 전말을 모르게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또 그게 효율적이라서도 그랬다.
나머지…….
그러니까 원래 민간인들을 잡아다 세브란스로 옮기던 인원들은 원래대로 강 이북과 이남으로 나뉘어서 움직였다.
말 그대로 인간 사냥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말이었다.
“여긴…….”
두어 시간 후, 김선태는 떠오르는 해를 올려다보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공병대에게 말했다.
“이곳에 수용 시설을 지으면 된다.”
“수용 시설 말씀이십니까?”
“그래. 적당한 곳을 골라 보도록 하지.”
수원 비행장 남측에 위치한, 폭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지점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만큼 여전히 라드들이 창궐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했지만 김선태가 데리고 온 공병대들도 무장을 한데다가 그 호위 격으로 딸려 온 스무 명의 병사들도 있다 보니 근방은 오히려 조용했다.
“있던 건물을 활용하란 말씀이시죠?”
“그래.”
“헌데…….”
공병대 대장은 슥 훑어본 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도 시설이나 전기 설비가 완파되어 있다시피 해서……. 사람들이 오래 살기엔…… 혹시 용도가 무엇인지 여쭈어도 괜찮습니까?”
단지 계급 차이로 인해 내비치는 비굴함은 아니었다.
김선태와 기타 인원들과의 권력 차는 대통령과 김선태와의 격차보다 더했다.
말 그대로 여기서 수틀리면 그대로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마 공병대 인원들도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할 터였다.
물론 김선태는 그런 식으로 일을 그르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답했다.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공간만 안전하게 확보해. 문은 밖에서 여닫기 좋게 만들고.”
“밖이요?”
“그래. 수용 시설이다.”
“누굴…….”
“궁금한 게 많군?”
“아니, 아닙니다.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공병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수원 비행장이고 나발이고 간에 아는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조심성이 유별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김선태는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이쪽은 수원 비행장의 눈이 닿을 가능성이 적으니까.
애초에 라드들이 이토록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심지어 비행장의 남부도 다 터져 나가 있지 않던가.
‘뭐……. 걸리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지.’
언제는 안 그랬겠냐만서도, 현대전에서 수비가 공격보다 유리하다는 건 당연한 상식 아니겠나.
물론 포격이나 폭격이 가능하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헬기를 통해 관찰한 결과, 저들의 무장은 그저 재래식 무기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남쪽으로 어그로 끌려서 나오게 되면 오히려 좋을 수 있단 말이 되었다.
너무 성급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김선태는 이미 무너져 내린 수원 비행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변수가 있다면 놈들이 혹 청주나 계룡대 또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반란군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단 뜻인데…….
‘여기서 더 남쪽으로 가는 건 어렵지.’
김선태는 망원경을 통해, 이쪽을 관찰하고 있는 예의 그 라드 무리를 주시했다.
저놈들이 있는 한 소수의 인원이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가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