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45화 (245/323)

245화 중장 김선태 (3)

타다다다다

김선태는 헬기를 타고 그 즉시 청와대로 향했다.

중간에 잠시 내리거나 하는 건 불필요했다.

애초에 거리가 그리 먼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가는 것이 어려워진 것은 그저 재난 때문이지 않나.

적어도 하늘은 여전히 안전한 길이었다.

“보고드렸나?”

“네, 보고드릴 것이 있다고만…….”

“답은?”

“와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허락이 있기는 해야했다.

대통령은…….

그러니까 김선태의 충성이 되는 사람은 의심병이 도지고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남산을 배제한 것도 모자라 몇 되지도 않는 거점의 군 지휘관을 계속해서 돌려 대고 있겠나.

그 와중에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던 건 김선태뿐이었다.

‘뭐……. 나만큼 충성을 보여 준 사람이 없긴 하지.’

김선태는 시끄럽기 그지없는 헬기 의자에 앉아 손을 내려다보았다.

원래도 그리 깨끗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손이긴 했다.

김태평처럼 공작을 위해 민간인을 죽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 또한 북으로 오가지 않았나.

사태가 터지지 직전에 이르러서는 민간인까지 몇 죽여야 할 지경에 이르렀더랬다.

‘나만큼 피를 묻힌…… 공범도 없을 것이고.’

허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 저지른 죄악의 무게는 이전까지 저질렀던 죄악 따위는 말 그대로 따위로 치부해도 좋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학살.

그래, 학살을 저질렀다.

군인은 명령을 받아 이행할 뿐이라는 변명이 통할까?

만약 그랬다면 나치 전범들도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을 터였다.

이건 명백한 범죄였고, 김선태는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명분도 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국가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대통령.

혹자는 그를 두고 사이코패스라고 했다.

이런 일을 고의로 저지른 주제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면서.

위기가 벌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김선태도 저런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벌어지지 않았나?

유약한 사람은 견딜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더군다나 이걸 견뎌 냈을 경우 얻어 낼 수 있는 과실이 어마어마했다.

부족한 정보력으로나마 파악한 바에 의하면 북한이야 에저녁에 무너졌고, 중국도 여러 군벌로 쪼개졌다.

미국마저도 민병대와 주 방위군 단위로 거의 쪼개져 있다시피 하다니 뭐…….

‘이것만 잘 극복하면 우리가 초강대국이다…… 나는 거기에 일조한 애국자야.’

김선태는 언제부터인가 주문처럼 외우게 된 애국자라는 단어를 되뇌면서 비로소 손이 아니라 밖을 내다보았다.

불빛이라곤 잃어버린 서울 도심 한복판에 별천지처럼 빛나는 곳이 보였다.

청와대 그리고 일부 번화가가 있는 곳이었다.

굳이 그런 식으로 기름을 낭비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은 묵살되었다.

산유국은 아니었지만 군을 동원하니 주유소에서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과하다 싶을 만큼이나 많은 기름을 얻어 낼 수 있었기에 그랬다.

적어도 저 안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작금에 벌어진 이 사태조차 먼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곧 도착합니다.”

“다시 한번 안전벨트 점검하도록.”

“네.”

시끄러운 헬기 안에서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훈련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김선태의 말에 따라 안전벨트를 점검했고 모두가 엄지를 치켜세우자마자 헬기는 천천히 강하해 청와대 앞마당에 마련된 착륙장에 내려앉았다.

대통령이 나와 있거나 하진 않았다.

“주변에서 대기.”

“네.”

“아, 그리고…… 양동 작전 들어갔던 애들한테 무전 들어오면 기록해 놔. 3시간 후에도 안 들어오면 구출 작전 고려하고.”

“네.”

구출의 대상이 되는 건 오로지 김선태의 부하들뿐일 터였다.

미끼로 쓰였던 인원들은 말 그대로 미끼들일 뿐이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그들 또한 대통령이 회유한 부대원들이기는 했지만…….

대통령의 명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믿을 수 없는 것들이니 마음대로 소모해도 좋네.

소모라…….

군 자원이니만큼 그런 표현이 적절할는지도 몰랐다.

언젠가 자신이나 부하들이 그런 처우를 받게 된다면 화가 나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뭐 그따위 생각을 하면서 김선태는 익숙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태 전에는 청와대가 다 뭔가.

계룡대에도 쉽사리 발길을 디디기 어려웠던 신세였음을 고려하면 정말이지 대단한 신분 상승이라고 할 만했다.

“안에 계십니다. 열어 드리겠습니다.”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길은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지금의 대통령은 투표가 아니라 힘으로 군림하고 있는, 일종의 왕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각하.”

하여간, 김선태는 안으로 들어가 대통령을 대면했다.

한때, 조금이나마 얼굴이 상했던 바 있던 대통령은 이제 여느 때와 별다름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어찌 보면 더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여론이고 야당이고 신경 쓸 일이 없지 않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라고 해서 반대하는 세력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엔 숫제 이 일의 배후에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폭로하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지금?

지금은 다 죽었다.

김선태는 그때 묻었던 피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바지에 손을 문질러 닦았다.

“아, 왔나.”

대통령은 그런 김선태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저 악수를 앞두고 손을 닦는 것이라 여긴 까닭이었다.

그 바람에 김선태는 경례를 올리려던 손을 어색하게, 그러나 즉시 내려 대통령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 보고할 일이라는 건……?”

대통령은 마주 잡았던 손으로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잔 하나를 옆으로 밀었다.

색으로 미루어 볼 때, 위스키였다.

그리고 대통령의 성향을 미루어 볼 때, 아마도 고가일 터였다.

“네, 각하. 김태평의 소재지를 파악했습니다.”

“그 국정원 놈 말인가?”

“네.”

“테크노 마트에서 도망갔었지……. 근데, 어떻게 찾았지?”

제아무리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라 해도 김태평 정도로 기술이 있는 놈이 작정하고 숨어 버리면 찾기가 어렵지 않던가.

인프라가 삭제되었다고 해도 좋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라면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감히 뒤적거려도 좋을 터였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얼굴에는 흔히 내비치던 의심 대신 순수한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김선태는 그런 대통령을 보면서 답했다.

“수원 비행장에 있었습니다.”

사실 거짓말이다.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김태평이 남긴 흔적은 확실히 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유혹이라도 하는 것처럼……. 선명했지.’

프로가 아니라면 알아보기 어려웠을 흔적이긴 했다.

하지만 프로가 보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이나 분명한 흔적이었다.

“수원이라…… 김태평인지 알았을까?”

“그것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흔적이 용산 공원에 남아 있었습니다.”

“용산이라…….”

“최악의 경우 세브란스까지 탐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걸 의심할 만한 상황이 있었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요원이니까요.”

“그렇지.”

대통령은 밀어 두었던 잔을 다시 들고 왔다.

그러곤 향을 맡다가 그대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건 확실히 스트레스가 되긴 하는 모양이었다.

“수원이…… 배신했군.”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력은?”

“어렵습니다. 이번에 보니 무장한 군인이 적어도 400은 넘습니다.”

“400이라……. 탄약이 그렇게 많진 않을 텐데? 어딜 털었나?”

“그랬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뭐……. 어느 정도 허수가 끼어 있긴 할 겁니다만……. 그렇더라도 정면으로 부딪치면 너무 피해가 클 겁니다. 그보다.”

그보다.

김선태의 말에 대통령은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기다렸다.

이놈이 이럴 땐 중요한 얘기가 튀어나온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서 그랬다.

“정유현이 있었습니다.”

“응?”

정유현?

대통령은 너무 의외의 인물의 이름이 나온 탓에 즉각 반응을 하지 못했다.

김선태는 그걸 보면서 말을 이었다.

“정유현 교수……. 그가 수원에 있었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정유현이 거기에 있다고?”

“네.”

“허…….”

정유현 교수…….

대통령은 그의 이름과 얼굴을 동시에 떠올렸다.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도 눈엣가시였던 녀석은 사태가 터지고 나서도 비슷했다.

홈페이지에서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은근히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나.

여전히 생존자들이나 군인들 중에 정부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많은 건, 아무래도 그 탓이 클 터였다.

헌데 그놈과 김태평이 다 같이 수원에 있다?

“여력이 없더라도……. 수원은 어찌하긴 해야겠는데?”

“그럼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움직일 수 있는 말이 우리 부대뿐인가?”

“지금으로서는…….”

“파주 쪽은 어떻지?”

“그쪽은 이미 독자적으로 움직인 지 오래되었습니다. 일산에 자리 잡고…….”

“반란군이 여기저기에 있군그래.”

대통령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원…….

놈들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직접 쳐들어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쪽에서야 정면으로 붙으면 피해가 예상될 뿐이지만 거긴 괴멸일 테니.

하지만…….

“청주와 계룡대가 문제인데. 주변 육군 부대도 문제입니다. 거의 궤멸되긴 했겠지만…….”

“흐음……. 군대만 움직일 수 있나?”

“네? 무슨 말씀이신지.”

대통령의 말에 김선태는 당황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군대가 아니면 뭘 움직인단 말인가.

민병대들?

아니면 식인종들?

그놈들을 뭘 믿고 쓴단 말인가.

아니, 믿고 자시고가 아니라 가능할 수가 없었다.

“라드.”

“라드…… 말씀이십니까?”

라드?

뭔 소린가.

라드를 써먹는다고?

“세브란스에 쌓인 라드가 모두 몇이지?”

“정확한 숫자 파악은…… 어렵습니다. 가둬 두고 밥도 안 주고 있다 보니……. 매일 죽어 나가고 있을 겁니다.”

“죽어 나가는 속도가 빠르진 않겠는데.”

“죽으면 먹힐 테니까요.”

“그렇지. 그놈들을 풀면 어찌 되겠나.”

이번 말에는 김선태조차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붙잡고 있었다.

쓸어내리는 건 예의에 어긋날 거 같아서였다.

“왜 답이 없나.”

그 와중에도 대통령은 여유로운 얼굴로 질문을 던져 왔다.

그래, 이거였다.

김선태가 마음으로 굴복한 이유.

이 사람이야말로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송…… 이송이 문제입니다. 아시겠지만 라드는 너무 거칠어서…….”

“그렇지. 그럼 그 근처에서 생산하는 건?”

“생산…… 이요?”

“연구에 진척이 있다고 들었네. 그쪽에서 검체를 원하겠지. 하지만…… 연구도 살아남아야 가능한 거 아니겠나.”

“그…… 그렇습니다.”

“수원 비행장 근처로 가는 길을 뚫어 두게. 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대규모로 나오진 못할 거야, 그렇지?”

“그렇습니다.”

“앞으로 한동안 거기로 민간인들을 나르게. 그리고 거기서 라드를 생산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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