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중장 김선태 (2)
타타타타타타타
또 다른 헬기가 남쪽에서 떴다.
밤이라 해도 헬기 정도 되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시절 아닌가?
지금은 벌건 대낮이니만큼 이것조차 눈치채지 못하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했다.
“음?”
남들보다 예민한 편에 속하는, 게다가 오예리 등을 밖으로 내보낸 참이라 건물 옥상 위에 올라와 있던 유현은 헬기 소리를 곧장 들을 수 있었다.
“저기…….”
“어…….”
“뭐지?”
그 옆에 줄줄이 서 있던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겁이 많기도 하거니와 쥐 생산에 열중하고 있는 김 주무관을 제외한 일행은 대다수가 밖에 나와 있었다.
최우식과 양재원 등등이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헬기가 떠 있었다.
쉬누크.
어제 떴다는 놈은 좀 다른 놈이라고 들었더랬다.
“헬기가 둘?”
“이런 미친. 저거 이쪽으로 오나?”
“어……. 이럴 때가 아니라, 알려야 하지 않아요?”
양재원의 말에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시에 다른 건물 옥상을 가리키면서였다.
그쪽으로 벌써 병사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비록 정예라 할 수 있는 박중 대위의 부대는 밖으로 나갔지만, 남은 이들이라고 해서 허당이겠나.
다 돌아가면서 경계도 서고 정찰도 도는 인원들이었다.
“아.”
“여기 군부대야. 게다가 저거 그냥 쉬누크잖아. 무장이 있을 리가 없지.”
아파치 헬기 같은 게 떴다면…….
그럼 옥상이 아니라 일단 튀어야 할 터였다.
제아무리 보조 없이 맨 몸뚱아리로 오는 헬기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아파치는 그것만으로도 부대 하나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는 놈이니까.
하지만 저건 기본적으로 수송기였다.
“가까이…… 오는데요?”
“뭐지?”
그러니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 유현의 생각이었다.
허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헬기는 남쪽에서부터 곧장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진 않았지만, 그 밑에서 움직이는 것들도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이렇게까지 가까이는…….”
“보기만 할 거야. 헬기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괜찮겠지.”
“네.”
라드.
그중에서도 김민수가 이끄는 이레귤러 라드 떼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아니, 우르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는지도 몰랐다.
나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니.
“저게 뭔…….”
한편, 본부 쪽 건물 옥상에는 대령과 조영상 소령이 올라와 있었다.
그 옆으로는 경계 서던 병력이 총으로 무장한 채 서 있었는데, 아쉽게도 RPG를 비롯한 대공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 무장이 있는 부대가 아니어서 그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민병대들조차 들고 있는 무기지만 공군 부대에서는 예외였다.
“헬기가 두 대……. 그나마 공격용 헬기는 아닙니다.”
“그렇지. 그런데…… 흠. 저거 아마도 정부 측 헬기겠지?”
“그럴겁니다.”
“그쪽이라고 해서 자원이 많을 리가 없는데……. 저딴 식으로 헬기를 운용한다는 건…….”
“모르긴 해도 이번 작전 시에 이쪽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저쪽에서 알게 된 모양입니다.”
대령은 조 소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메고 나온 소총을 매만졌다.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총 들고 나설 일이 생기면 그땐 이미 나라가 망한 거라고 했었지.’
더이상 우스갯소리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게 된 지 오래였다.
나라가 망했으니까.
공군이 총 들고 나서야 하는 시절이 오고야 말았으니까.
타타타타
복잡한 상념에 잠긴 동안에도 헬기는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거의 10킬로미터 밖에 있던 것이 이제는 불과 1, 2킬로 남짓한 거리를 두고 날고 있었다.
“쏠까요?”
“아니, 여기서 쏴 봐야…….”
움직이는 걸 어찌 맞히겠나.
게다가 K2 소총의 사거리가 아무리 3킬로미터까지 가능한다고 해도, 실제 조준이 가능한 건 300미터 내외라고 봐야 했다.
물론 그 이상을 맞힐 수 있는 재원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건 너무 드문 인재일 터였다.
“탄환 아껴야지.”
무엇보다 보급이 없는 상황이었다.
밀려드는 피난민들에 대해서도 점점 더 소극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니던가.
모든 것이 부족해져만 가고 있었다.
물론 실재하는 위협이 다가온다면 쏟아부어야 하겠지만…….
‘저 헬기는…… 더 가까이 오진 못할 거야.’
대령은 그런 생각으로 헬기를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헬기에서도 그런 군부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망원경을 이용해서였다.
“좀 더 가까이 가는 건 어떤가?”
“위험…… 위험합니다. 이 근처에서 비상 착륙이라도 하게 되면 낙오할 인원이 많을 겁니다.”
“흠…….”
김선태는 정확히 보이지 않는 것이 불만이라는 듯 기장에게 말하다 말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폭격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우선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덜그럭거리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라드들도 보였다.
확실히…….
여기 추락하게 되면 낙오자가 발생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죄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알았네.”
단념한 김선태는 다시 망원경을 집어 들었다.
“어…….”
그런 김선태를 옥상에 올라와 망원경을 집어 들고 있던 유현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알아보았다.
“김선태…….”
따지고 보면, 유현이 김선태를 본 건 수락마을에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후론 볼 일이 없었더랬다.
허나, 그때 기억이 워낙에 선명했다.
딱 봤을 때도 그랬지만…….
그 후에 고속도로에서 발생했던 사건 때문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유현……?”
마찬가지로 김선태 중장 또한 유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유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서만은 아니었다.
정부에서 유현은 요주의 인물이지 않았나.
비단 사태가 터지고 나서만의 일도 아니었다.
그전부터 유현은 골칫거리였다.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김선태로서는 후회로 남은 인물이기도 했다.
“정유현이요?”
시끄러운 헬기 속에서도 정유현이란 세 글자는 정확히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신진식 대령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김선태를 바라보았다.
어디 가서 개죽음당할 위인은 아닐 것이라는 게 중론이기는 했다.
하지만 세종으로 내려가 있다는 것까지는 파악하고 있지 않았나?
근데 어떻게 여기에……?
이전처럼 이동이 자유로운 시절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아무리 유현이라는 교수에게 용 빼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총이 있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 정유현이야. 김태평도 이곳에 있을 텐데……. 보이진 않는군그래.”
“역도들이 다 여기에 있었군요. 그렇다면…….”
“수원 비행장은 이미 반란군이다.”
김선태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반란군이라면 박살을 내야 마땅하겠으나…….
멀쩡한 건물만도 한두 개가 아닌데, 그 건물 옥상마다 수십에 달하는 병사들이 무장한 채 올라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대 안에 있던 개활지를 개간하고 있던 민간인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이 부대의 규모는 천은 훌쩍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에 반해 그가 이끌고 온 부대는 서른 남짓.
‘참수 작전도 어려웠겠군…….’
저기에 김태평과 그가 이끄는 요원들까지 있다면 참수는커녕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돌아간다. 대통령께 보고드리지.”
“네!”
김선태의 말에 기장은 다소 안심한 얼굴이 되어 회피 기동을 시작했다.
웅 하는 소리와 함게 순식간에 멀어지는 헬기를 보며 부대 측에서도 수많은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라드도 무섭지만…….
훈련받은 병사들과의 싸움은 또 다른 느낌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물론 다들 안도의 한숨만 쉬고 있는 건 아니었다.
김태평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양동을 할 거면 밤에 왔어야지……. 멍청한 놈들……. 오예리 형사 하나한테 다 털려? 아니, 가만……. 이상한데?’
허나 김태평도 일반인은 아니지 않나?
누군가를 속이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이인 동시에 그 때문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의심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이었다.
‘오예리 형사가…… 뛰어난 저격수인 것은 맞지.’
김태평은 거의 단신의 힘으로 수십에 달하는 적을 쫓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예리 형사 쪽을 돌아보았다.
급한 대로 아무 건물 옥상에나 자리 잡은 참이었기 때문에 위치를 측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선태가 이끄는 놈들이라면 이럴 리가 없어.’
무엇보다 그쪽에도 저격수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않고 그저 타고난 재능만으로 활약하고 있는 오예리 쪽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현대전에서 저격이란 단순히 맞히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있지 않아서 그랬다.
그들은 회피와 위치 숨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움직였다.
허나 이번엔 제대로 된 응사는커녕 숫제 저격이라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놈들, 미끼였나. 확실히…… 뒤로 밀리긴 했지. 하지만 우릴 붙들어 매긴 무리가 있었어…….’
이건 오예리 때문이었다.
너무 빨리 무너졌다.
숫제 박살 내 버린 수준이 아닌가.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 지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십수 명이 누워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저 헬기가 노렸던 건…… 오히려 이쪽인가? 여기에 무슨…… 무슨 요인이 있…… 설마 나? 내가 노림수였나?’
김태평은 어이가 없어서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전투가 진행 중임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짓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상황이긴 했다.
이미 저쪽은 분쇄된 채 후퇴 중이었고 이쪽에서는 딱히 저 북쪽의 마궁을 따라갈 생각이 없어서 그랬다.
마땅한 이송 수단이 없다면 딱히 후에 위험으로 남을 가능성도 없었다.
라드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왜 나지?’
해서 김태평은 추론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결론은 나왔다.
상대도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가정한다면, 노림수는 자신이 맞았다.
어떻게 자신이 여기 있는지 특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탕그때 요원이 총을 쐈다.
뒤늦게 도망가기 시작한 놈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 넣기 위해서였다.
탕병사들이야 무질서하게 총탄을 낭비하고 있었으니, 저들이 총 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위화감이 찾아왔다.
‘소리가 달라. 아……. 그래 우리는 다른 총으로 무장하고 있지. 이 소리로 알았나? 그럼 김선태일 테고……. 놈은 내게…… 원한이 있겠지.’
총소리 때문일까?
김태평의 눈앞으로 주마등처럼 그가 이때껏 죽여 온 인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엔 김선태의 부하들도 다수 끼어 있었다.
다들 정예 중의 정예였다.
아마 뒤통수를 치는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면 그렇게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럼 이게 마지막이 되지 않을 거 같은데…….’
김태평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벌써 헬기는 저 멀리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쪽에 원한을 가득 지닌 게 뻔할 김선태 등을 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