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중장 김선태 (1)
-쏟아져 나오는군요.
“기대했던 대로야.”
김선태는 방금 헬기가 비행했던 방향의 정확히 반대 측에 있었다.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 말이었다.
그냥 남쪽이 아니라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쪽은 폭격을 피하기도 했거니와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도 했기 때문에 배회하는 라드들이 많았다.
-어찌할까요?
“교전해. 어차피…… 버릴 인원들이니 다 죽어도 괜찮아.”
-네, 천천히 뒤로 빠지면서…… 유인도 하겠습니다.
“좋지. 김태평이 있는지 꼭 확인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있으면…….
“바로 알려. 내가 간다.”
김선태는 라드의 시신 더미에 눈길을 주다가 이내 뒤편에 위치한 쉬누크 헬기를 바라보았다.
비행장에서 이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가뜩이나 항공유가 부족한 마당에 멀리 돌아오느라 소비한 항공유도 항공유였지만…….
헬기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멀리 이동하는 건 무조건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 지 오래지 않나.
‘아까…… 봤던 놈들은 좀 이상했지?’
다행히 공격을 당하진 않았다.
아니, 돌멩이 같은 것들이 날아들긴 했는데 별 의미 없는 피해였으니 무시해도 좋을 터였다.
그따위 것들보다 김선태는 아까 비행할 때 봤던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라드의 무리였다.
무리는 무린데…….
“저, 중장님.”
“뭐지.”
잠자코 무전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누군가 말을 건네왔다.
말이 누군가인 거지, 감히 김선태에게 말을 걸어올 만한 사람은 무척 한정적이었다.
“아까 봤던 놈들 정말 라드일까요?”
신진식 대령.
계급은 대령이지만 맡은 일은 대위에 불과했다.
작전을 계획하고 수립한다기보다는 여전히 직접 앞에서 뛰면서 현장 지휘를 한다고 보면 되었다.
실제 나이도 기껏해야 중위나 대위 사이 어딘가에 있으니 억울할 건 없을 터였다.
그보다는 여태 그가 보여 주었던 압도적인 무위가 훨씬 중요했다.
“라드가 아니겠나. 덩치 봤잖아.”
“하지만 줄을…… 줄을 서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희를 완벽히 인지했는데도 별 움직임도 없었고…….”
라드는 충동적이다.
지능이 있건 없건 간에 돌연 이상한 짓을 한다, 이 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멀쩡히 옆에 서 있던 동료를 갑자기 공격하는 일이 있었겠나?
허나 그놈들은…….
뭔가 달랐다.
통제되는 느낌이었다.
팔다리가 움찔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큰 움직임은 없었다.
“주변으로 경계 나가 있지?”
“네. 그놈들이 너무 신경이 쓰여서요. 어쩌면…….”
신진식 대령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번 작전은 너무 무리야…….’
그들이 파악하기로 수원 비행장의 군부대의 규모는 적어도 수백을 넘어갈 정도였다.
물론 공군 부대였던 만큼 중화기보다는 소형 화기로 무장하고 있기야 하겠지만…….
원래 소총은 이게 신식이건 아니건 간에 맞으면 죽지 않나?
수십 년 된 총이라 해도 일단 맞으면 끝이었다.
‘김태평이 그때 주요 부하들을 죽인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이건.’
그 한복판에 기껏해야 30명가량으로 침투를 한다는 건 자살행위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부대의 무장 상태와 훈련 정도를 보면 참수 작전이야 가능할런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전에 죽어 나갔던 사람들보다 더한 숫자가 죽어 나갈 거 같았다.
거기에 더해서…….
“저희를 들여다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 있는 얘기야.”
당연한 얘기지만, 김선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운도 좋지…….’
아까 봤던 라드 무리는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었지만 그 수도 보통이 아니었다.
얼핏 봐도 100개체는 훌쩍 넘어 보였다.
휘하의 모든 부하들을 끌고 왔다면야 별 무리 없을 테지만…….
여기에 있는 부하들은 기껏해야 서른 남짓할 따름이었다.
어디 하나라도 뚫리게 된다면 싹 다 죽는다고 봐야 했다.
“경계 철저히…… 무전 없더라도 이상 징후 발견되면 바로 뜬다.”
“아, 네. 중장님.”
그의 말에, 신진식은 비로소 안심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경례를 붙이거나 하진 않았다.
거추장스러운 일이니까.
이 자리에서 중요한 건 시키는 일을 똑바로 수행하는 일이었다.
“흐음…….”
김선태나 신진식의 예상대로 라드들은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냥 맨눈이 아니라, 망원경을 써서였다.
아마 이 장면을 봤다면 아무리 김선태라 해도 놀랐을 터였다.
1호 외에도 이만한 지능을 가진 놈이 또 있다는 얘기이니까.
그가 아니라 김조은이나 박원상이 봤다면 놀라는 게 아니라 기절도 할 만한 일이었다.
심지어 야생에서 자연 발생한 셈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것들도 수원 놈들인가.”
라드의 리더 김민수의 말에 구우준이 고개를 저었다.
“군복이 다릅니다.”
“군복? 아……. 확실히. 근데 그것만으로 알 수가 있나?”
“우연히 다른 곳에서 온 군인들이 합류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만……. 저렇게 많이, 그것도 저렇게 무장이 좋은 놈들이 우연히 합류했을 리는 없을 거 같습니다.”
“그렇긴 하지. 게다가…….”
김민수는 인상을 쓰면서, 김선태를 바라보았다.
놈은 분명 북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경계 어린 눈을 한 채였다.
아무래도 수원을 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탕그때 아주 먼 곳에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김선태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 그러니까 수원 비행장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뭔 일이지?”
“모르겠습니다. 뭐…… 여느 때처럼 사냥하는 것일 수도…….”
“아니, 그랬으면 이렇게 총소리가 요란할 리가 없지.”
김민수는 망원경을 북쪽으로 돌렸다.
그래 봐야 보이는 건 없었다.
10km도 더 떨어져 있는데 뭐가 보이겠나.
다만 주의 집중을 해서 그런가, 소리는 아까보다 더 확연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소리였다.
확실히 총소리였다.
“너무 많아. 싸우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럼…….”
“저놈들……. 아래서 수원을 치려고 하는 거 같은데.”
“그렇다면 어찌할까요?”
구우준과 김민수는 총으로 무장한 채였다.
조준 사격은 불가했다.
제아무리 지능이 뛰어나다 해도 망할 놈의 충동성을 완전히 조절하긴 어려워서 그랬다.
특히 무언가를 맞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급해지면서,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드르륵 갈겨 버린 후였다.
그럼에도…….
‘근거리에서 총은 어마어마하지.’
누군가 뒤에서 총을 쏴 주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황의 차이는 극명하지 않겠나.
특히 라드들을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제압 사격으로 단 수초만 벌어 줘도 근거리에서의 살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놈들의 총에 눈독을 들였었지만…….
이렇게 되면 계획은 수정해야만 했다.
“그냥 두지. 우리가 치면 남 좋은 일이야.”
“네.”
해서 라드들은 천천히 접근하던 것을 멈추었다.
날카로운 창 형태를 띠고 있던 놈들이 돌연 뒤로 물러나는 것을, 경계 서던 병사가 확인했다.
“시발……. X 되는 줄 알았네.”
앞으로 두어 걸음만 더 왔으면 바로 위에 알리고 대응 사격 내지는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다.
그나마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던 건, 그가 정예 중의 정예라서 그랬다.
물론 정예라 해서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기에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어 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그토록 많은 전투를 겪어 온 그에게도 방금 전의 라드는 뭔가 달랐다.
‘뭐라도 배웠나…….’
모두가 한 발씩 오는데…….
수많은 라드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몽골이 송연해지게 하는 무엇이었다.
-라드들이 오다가 물러납니다.
같은 종류의 보고가 두 방향에서 들려왔다.
“중장님.”
“나도 들었어. 무슨 꿍꿍이속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선태는 헬기를 돌아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기다리지.”
“네.”
김선태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망원경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봐야 보이는 건 없었다.
총소리도 미약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아무래도 라드들에 비하면 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그랬다.
때문에 김선태는 곧 뭔가 듣거나 보는 걸 단념한 채, 무전기만 노려보기 시작했다.
타타타
바람을 타고 은은한 총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도, 무전기는 조용하기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장은 김태평을 찾아 나서기는커녕 살아남기에 급급할 정도로 급박하게 굴러가고 있어서 그랬다.
탕“윽.”
또 하나의 총성이 바람을 가르고 들려왔다.
동시에 군복을 입고 있던 이 하나가 툭 하고 쓰러졌다.
“미친……!”
어디서 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방향을 보면 뻔했다.
허나 그쪽으로 부대를 보낼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탕“컥.”
더미라고 해야 할까?
이번 작전만 성공하고 나면 강제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는 명목하에 끌고 온 병사들이 무력하게 죽어 나가고 있었다.
타다다다당
다른 곳에서도 총소리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전방이 훨씬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수많은 총알 세례보다 훨씬 확실히 아군을 학살하고 있는 건 단 한 명의 저격수였다.
“어, 어쩌죠?”
김선태의 부하는 옆에서 물어 오는 부사관을 돌아보았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는데 이럴 만한 놈이 아니었다.
경험이 많은 놈이다 이건데…….
그런 주제에 이 지랄을 하고 있냐는 말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사신……. 이런 정보는 없었잖아? 공군이 무슨……?’
늘 압도적인 화력과 전술적 우위로 상대를 압살해 오지 않았나.
군인들과 싸운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명령을 거부한 이들도 있고…….
심지어 밖에서 반란이랍시고 일으켰던 놈들도 있었으니.
하지만 그런 전투에서조차 이만한 상대는 없었다.
“휴.”
정예 중의 정예를 공포에 떨게 만든 오예리 형사는 한숨과 함께 또다시 총알을 걸었다.
그러곤…….
탕격발했다.
동시에 쓰러지는 상대를 확인했다.
‘적이다……. 적…….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속으론 억지로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형사가 된 그녀에게 이러한 살상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랬다.
“가까이 오는 놈들은 없어요.”
“네. 어……. 물러갑니다.”
“그럴 만도 하죠.”
보람이 있긴 있었다.
아군도 죽어 나가긴 했지만…….
상대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적었다.
-버틸 수 없습니다!
그 시각 김선태는 이해할 수 없는 보고를 받았다.
“뭔 소리야. 설마…… 다 튀어 나갔다고?”
“그럴 리가요. 보고 받은 숫자는 기껏해야 수십입니다.”
“아무리 전부 내 부하들이 아니라고 해도 몇 명 끼어 있잖아?”
“퇴각하는 게…… 어떨까요? 김태평이 안에 있다면……. 그쪽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으음.”
김선태는 침음을 흘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은 욕심이 많은 인간 아닌가.
말이 자기 부하일 뿐, 대통령은 다 자기 자원으로 여길 뿐이었다.
만약 무용하게 잃었다고 한다면…….
대체 가능해지는 순간 버림받을 게 뻔했다.
“가지.”
“네.”
해서 김선태는 부하를 모아 헬기에 올랐다.
“아까보단 가까이 붙어 보지. 전장을 봐야겠어.”
“위험합니다!”
“그 정도는 감수하도록 하지.”
“그…….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도망갈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