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실마리 (3)
타타타타타
저 멀리서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게 뿜어 대고 있는 빛도 보였다.
그런 거로 미루어 볼 때, 아직 거리는 멀었다.
하지만 적어도 서울 상공에 떠 있는 건 아니었다.
멀다고 해 봐야 몇 킬로미터 정도일 터였다.
아니, 소음과 빛이 없는 밤인 것을 감안한다면 10킬로 정도일 수도 있기는 했다.
“정부 측 헬기겠죠?”
“네. 갑자기 이 밤에 여기서 헬기를 띄울 이유가 없습니다.”
김태평은 이유뿐 아니라 여력도 없을 거란 말을 애써 씹어 삼켰다.
“저게 어떻게…….”
“어떻게가 아니라 왜 저렇게까지 하냐는 게 중요할 겁니다.”
이유가 없기로만 따지자면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헬기가 얼마나 주요한 자원이란 말인가.
지금 보면 딱히 참수 작전을 위해서 오는 거 같지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양동 작전이라도 하지 않았겠나.
헬기가 비록 비대칭 전력이라고는 하지만, 아무 지원도 없이 날아들어서야 바로 파괴될 수밖에 없는 종류의 전력이기도 해서 그랬다.
‘습격이 아니라…… 수색에 동원된 거야.’
야밤 수색에 헬기라니?
저거 저러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런단 말인가.
‘남산도 그렇고……. 뭐 진짜 다른 일이 같이 터진 건가?’
정보 다루는 사람이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 놓이다 보니 정말이지 답답하기가 하늘을 찔러 대고 있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머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답답하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불안했다.
타타타타
아무리 멀리서 들려오는, 그래서 작게 희석된 소리라 해도 헬기가 뿜어 대는 아우라는 그야말로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저게…….”
“저게 대체 왜.”
“설마 완전히 걸린 건가요?”
오예리, 이순규, 최우식 순으로 입을 열었다.
반면 유현은 헬기와 김태평 그리고 박원상을 번갈아 떠올리고 있었다.
‘정부라고 해도…… 역량이 아주 대단치는 않을 거야.’
만약 그랬다면, 일단 말 안 듣는 수원이나 청주부터 날려 먹지 않았겠나?
아니, 그 전에 강변도 지켰을 터였다.
그게 안 되고 있다는 건, 우수하긴 하되 그렇게까지 우수한 건 아니라는 걸 뜻한다고 봐야 했다.
헌데 헬기가 야밤에 떴다.
저렇게 빛을 내면서…….
‘저러다 총을 맞거나 또는 라드가 던지는 창 같은 거에 맞기라도 하면 박살이지.’
낮에도 위험이 있기는 마찬가지겠지만, 낮에는 다른 병력들이 주변의 위험을 최소화시킬 수 있지 않나?
하지만 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무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능성이 몇 가지 있는데……. 일단 팀장님, 뭔가 짚이는 구석은 없습니까?”
“음……. 강남…… 그러니까 다리 건너서부터는 여유가 없어서 흔적을 지우지 못하긴 했습니다.”
“그 전은요?”
“그 전은 확실히 지웠습니다.”
지웠다고 하는데 뭐 어쩌겠나.
무의식중에 흘러나오는 단서라면 유현이 귀신같이 잡아낼 수 있겠지만, 김태평쯤 되는 인간이 최선을 다해 걸어 잠그고 있는 상태라면 유현도 별도리가 없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실험체가 탈출했거나, 또는 남산이나 주요 시설의 반란이 있거나일 텐데……. 남산은 박원상의 말을 미루어 보면 뭐 가능성은 없겠죠.”
“실험체라.”
김태평은 여전히 자신이 의도적으로 남긴 흔적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실험체 탈주라는 유현의 의견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게 우연히…….
‘우연히?’
우연히 같은 날 실험체가 튀고 그게 여기로 온다고?
‘말이 안 돼.’
하지만 그걸 토대로 유추를 해 보니 오히려 말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역시…….
자신이 원인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그렇다면 왜 저렇게까지 하냐는 의문이 남게 되는데…….
‘혹 나인 줄 알았나? 김선태가 나한테 원한이…… 있을 일이…… 있겠군. 있겠어.’
김태평은 마트에서 있던 있을 떠올렸다.
테크노 마트에서 탈출하던 날, 김태평은 완전 무장한 김선태의 부하 여럿을 사살한 일이 있지 않았나.
최선은 그냥 억류해 두거나 또는 납치라도 하는 것이었을 터였다.
허나 그날은 여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딴 식으로 버려진다는 것에 화가 났던 게 화근이었다.
싹 죽여 버렸다.
‘어떻게 나인 줄 알았냐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겠지.’
만약 알고 있다면 어떻게는 쓸모없는 질문이지 않겠나?
물론 이유까지 알아낸다면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 테니 의미가 있겠지만…….
“어…… 간다.”
“돌아간다.”
“휴.”
김태평이 잠시 멈춰 있던 사이 빛이 멀어지는지 내내 밖을 내다보고 있던 이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돌아보니 과연 헬기가 자리를 이탈하고 있었다.
허나 나머지 상황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지상군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덜커덕
그때 일행이 있던 방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조영상 소령이었다.
자다 깼는지 얼굴에 자국이 나 있었는데, 그와는 별개로 표정은 쌩쌩해 보였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대령님께서 찾으십니다.”
“아, 네.”
유현은 뭐 마음 불편할 일이 없었다.
나머지 인원들도 그랬다.
다들 별생각 없이 조 소령의 뒤를 따랐다.
김태평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지만, 아무래도 속으로는 켕기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 알 수는 없겠지.’
김태평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조 소령을 따라 대령의 방으로 향했다.
말이 집무실이지 그곳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령은 거의 늘 보던 그 모습으로 일행을 마주했다.
“김 팀장.”
허나 표정만은 달랐다.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구역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소속이 다른 헬기가 떴으니까.
그냥 무장한 차량 한두 대가 어정거리고 있어도 속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을 텐데 이건 헬기이지 않나.
“짚이는 구석이 없습니까?”
대령의 말에 김태평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네. 없습니다. 병사들에게도 들었겠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해 흔적을 지우고 도망쳤습니다.”
“으음.”
차라리 병사들을 딸려 보내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의심이나 추궁을 이어 나갈 건덕지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지 않나.
확실히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흔적을 그 와중에 지웠습니다.
-확실히 뛰어난 인재는 맞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믿을 만한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정부……. 그 새끼들이 진짜 악마입니다.
굳이 더 자세하게 떠올릴 것도 없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적은 정부였다.
‘그래……. 흔적을 지웠음에도 따라붙었다……. 아니면 간자가 있나? 김태평을 내치게 하려고?’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대령은 딸린 식솔이 워낙에 많다 보니 머릿속이 더더욱 복잡해지고만 있었다.
배신할 만한 동기가 있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
당장 조영상만 해도…….
‘아니, 아냐.’
의심은 그것만으로 사람을 좀먹기 마련이었다.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면 그건 차근차근해야 하지 않겠나?
괜시리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들들 파고든다면 오히려 간자는 쏙 숨어 버리게 될 터였다.
천천히 들여다봐야 했다.
“후우.”
남들은 절대 진위를 알 수 없을 만한 한숨을 내쉬고, 대령은 말을 이었다.
“일단 헬기가 떴던 곳 수색이 필요합니다. 박중 대위를 보내겠지만…… 팀장님도 가 보셔야겠습니다.”
“으음.”
김태평은 하마터면 바로 ‘네’라고 할 뻔했다.
‘그러면 의심이 다시 들겠지?’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보상 심리가 있어서 그랬다.
바람 피운 사람이 배우자에게 더 잘한다는 통계도 있지 않나?
허나 김태평은 초인적인 인내로 그걸 견뎠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야말로 평소의 그였다.
“야간 투시경 다루는 것도 그렇고, 직접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해서 일말의 의심마저 당장은 털어 버린 대령은 황급히 김태평이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떠들었다.
그러자 김태평은 비로소 하는 수 없다는 투로 한숨을 쉬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위험할 수 있으니……. 오예리 형사와 김용일 형사님을 데려가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오예리 형사님은 실력 들어서 알지만 김용일은 왜요?”
“그 사람이 광수대에서 얼마나 유명했는지 모르시는군요. 흔적 보는 데 도가 튼 인간입니다.”
“아.”
김태평은 이참에 인력도 보충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병사들도 후보가 될 수 있겠지만…….
대령이 심어 둔 사람이면 어쩐단 말인가.
그에 반해 김용일은 적어도 군 쪽에 붙을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동시에 정유현과의 접점도 아주 진하지는 않았다.
‘오예리급은 아니겠지만.’
잠깐 사이에 고민을 끝낸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하지만 본인 의사가 제일…….”
“저는 가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 성한데 일에서 빠져 있는 게 좀 그랬어요.”
오예리 또한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저격에 있어서 그녀만 한 인재가 없지 않나?
누군가를 암살하는 임무가 아니라 역으로 아군을 보호하는 임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몇몇을 죽여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와 그런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죽어 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네? 그럼요. 교수님은 진료라도 보지, 저는 진짜 하는 일이 없잖아요.”
“네, 그럼…… 조심히.”
정유현은 그런 오예리에게 걱정과 당부를 건넸다.
솔직히 말하면 안 갔으면 좋겠지만…….
‘이건…… 부적절한 감정이야…….’
유현은 다른 이에게도 엄격하지만 본인에게 제일 엄격한 이였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감정마저도 억지로 틀어막고 있었다.
‘애쓴다.’
이순규는 그런 유현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마 평소라면 그러면 안 된다고 이런저런 조언을 건넸을 터였다.
정신과 의사는 불행한 사람을 건져 내는 이이기도 하지만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이에게 행복을 건네주는 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네가 최선이라고 믿는다면 그게 최선이겠지.’
그런 유현의 말에 오예리는 고개를 끄덕인 후, 김태평을 따라나섰다.
얼마 안 있어 김용일 형사와 욕쟁이 배달 기사 등 일부 인원이 그 일행에 합류했다.
“아니, 나는 왜……. 시발 존나 무서운데.”
그중 배달 기사가 거부 의사를 표했지만, 여기 끼면 중노동에서 빠질 수 있다는 말을 듣자 금세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뒤질 가능성이 높은 세상이니만큼, 당장 편안한 것에 의의를 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차피 할 거면서 입을 놀린 것이었거나.
-자리 잡았습니다.
하여간, 오예리는 근접전에 있어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이순규와 팀원 하나와 수원 비행장 북쪽에 위치한 어느 한 건물 옥상에 올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둑하기만 했던 하늘은 어느새 떠오르기 시작한 햇살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 결과, 오예리는 몇몇 인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군으로 식별되지 않는 인원 다수 포착. 쏠까요?
그녀는 조용히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