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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39화 (239/323)

239화 실험 (6)

김태평이 개같이 구르고 있을 때쯤, 유현은 수원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원 군 비행장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또 남는 시간에는 김일용 형사의 말도 들었다.

홀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최우식, 양재원, 오예리 그리고 이순규가 거의 늘 함께했다.

유현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일이 너무 필요한 일이었기에 그랬다.

“그러니까…… 저기서 농사를 짓겠다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교수님.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고 하셨으니…….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 봐야죠.”

그에 더해 대령이 신임하는 부하 중 하나인 조영상 소령과도 함께하고 있었다.

박중 대위가 전투원으로 활약하고 있었다면, 조영상 소령은 부대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렇죠. 근데…… 사람들 행색이 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외부인 중에 필수 인력을 제외하면……. 모든 것을 맞춰 줄 수가 없어요. 지금 원래 부대에 있던 사람들도 때론 강등이 되기도 하니까요.”

“본부에서 들고 온 물자로는 뭐가 어떻게 안 되는 겁니까?”

“그건 필수 물자가 대다수였지 않습니까. 씨앗으로 쓰기에도 부족합니다. 농사라는 게…… 쉬울 리가 없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입니다.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긴, 그렇죠.”

농사가 쉽겠나.

만약 그랬으면 조선 시대에 왜 그렇게 굶어 죽는 이들이 많았겠나.

물론 비료의 개발 이후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현재 부대 내에 농부라 할 만한 인원이 워낙에 적다 보니 이 또한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저렇게 되면 불만이 생길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유현은 조 소령의 말을 들으면서도 군부대 내의 드넓은 대지를 개간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날이 슬슬 풀려 가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바람이 매서웠다.

그럼에도 저들은 최소한의 방한 장구만을 갖춘 채 땅을 일구고 있었다.

딱 봐도 평생 사무직만 했을 법한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유현의 걱정도 기우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필수 인력이란 말 그대로 필수 인력이라 그랬다.

지금도 박중 대위는 전투원을 이끌고 주변을 수색하고 있지 않나.

“여기가 전에 쓰셨던 의무 전대입니다. 이제 완전히 주변 정리하고 철책까지 세워서 안전합니다. 뭐…… 안전지대에서는 외곽에 속하긴 하지만……. 경계 인원들이 많아서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여차하면 도망갈 수 있도록 차량도 정비가 아주 잘되어 있고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일행은 의무 전대에 도달했다.

나름 공군 비행장에 위치한 의무 전대다 보니 시설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수술장이나 이런 건 없지만, 최소한의 응급 처치가 가능하도록 어지간한 시설은 마련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대다수의 현대 기기들이 그러하듯 전기가 필요하겠지만…….

기름 발전기가 있으니, 정말 초응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그것도 사용이 가능하긴 했다.

그 외에도 썩 괜찮은 기구들, 그리고 특히 약들이 꽤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한동안은 여기서 진료를 하라는 거죠.”

“네. 연구가 가능하면 하셔도 된다고는 하는데……. 그게 될까요?”

“피 검사 결과를 볼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긴 한데, 제대로 된 연구는 어려울 겁니다.”

노화만 해도 피 검사로 확인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호르몬의 미세한 변화를 봐야 할 텐데, 특히 성호르몬의 감소를 봐야 하는데 이건 이만한 설비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근력과 같은 검사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협조가 가능한 대상이 있어야 할 테니 라드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나 연구에서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역시 그렇겠군요. 그렇다고 남산은…….”

“얘기를 들어 보면, 남산 쪽은 굉장히 위험할 거 같습니다. 주변에 포진한 군부대만 해도……. 사실 이쪽 전 부대원을 쓸어 버릴 만한 전력이라더군요.”

“김태평 요원의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만……. 판단은 대령님이 하실 일이겠죠.”

“뭐……. 그런 일로 거짓말을 할 거 같지는 않습니다.”

조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교수에 대해서는…… 뭐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겠지만……. 김태평 그 사람은 여러 얘기가 있단 말이지?’

군부대의 정보 처리 능력이 뭐 아주 대단한 건 아니었다.

정보사나 다른 부대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쪽이야 비행장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많은 데다가, 서울에서 내려오는 인원들의 말들을 취합하다 보니 알게 되는 사실이 꽤 있었는데 그중엔 김태평에 관한 것들도 있었다.

‘그 인간이야말로 지금 정부의 핵심 인력이었다는 증언이 있어…….’

물론 대개의 사람들은 내밀한 일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중에 잭팟이 터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강변에 있던 테크노 마트가 터져 나갔을 때, 거기서 낙오한 인원 중 청와대에서 왔다는 장교가 하나 있었더랬다.

정처 없이 도망가다 보니 어느새 수원이었더라는 군복 입은 놈의 말이 아무렇지 않게 들린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터였다.

-사, 살려 주세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심지어 군인이라 해도 고문이 익숙하겠나?

그러나 하려면 해야 하는 것이 작금의 세상이었다.

몇 번 지지고 볶아 보니 확실히 우연히 온 게 맞아 보였지만, 대령은 안전제일주의를 고수했다.

특히 강변이 아무래도 버려진 것이 확실하다 보니 더더욱 그랬는데, 그 결과 알아낸 사실이 많지는 않아도 몇 개 있었다.

“아무튼,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해 봐야죠. 또 다른 연구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낸다면…… 더 좋을 테고요.”

“그렇죠. 부디 성과가 있어야 할 텐데……. 아직 안 돌아온 거죠?”

“네. 아직. 뭐…… 서울이 지척이라고 해도 사실상 적진이니까요.”

“그렇긴 합니다.”

유현도 조 소령의 말에 따라 북쪽을 바라보았다.

김일용 형사의 말에 따르면, 그쪽엔 일부 군기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했다.

유현이 생각할 때는 그만한 부대가 있으면 그냥 빨리 라드들을 쭉쭉 밀어내면 어떤가 싶었지만…….

사실 생존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니지 않나.

사태 초기였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남은 물자가 너무 적었다.

좁은 땅덩이에 사람이 많이 산다 할 때도 실감이 잘 안 났었는데, 이렇게 돼 보니 알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생산이나 수입 없이 소비만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정말이지…….

‘그래도…… 대통령이 그러면 안 되지.’

물론 그렇다고 대통령 측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 혼자 잘 먹고 잘살라고 대통령 자리에 뽑아 놓은 건 아니지 않나.

‘망할 놈…….’

유현은 욕설을 내뱉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아, 네. 저도 들었습니다. 돌아온 모양입니다.”

징 소리가 들려서 그랬다.

진보된 군부대에서 징이 웬 말인가 싶겠지만, 지금은 이런 것 이상 가는 통신 수단이 없다고 보면 되었다.

계속 울리면 침입, 한 번 울리면 나갔던 인원이 돌아온 것, 두 번 울리면 긴가민가하는 놈들의 접근으로 정해 놨는데 방금은 분명 한 번만 울렸다.

“가 보죠.”

“네. 어차피…… 환자가 있어 봐야 기다릴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제가 남겠습니다.”

“그럴래? 그래 주면 고맙지.”

“네, 그게……. 저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이 사람들은 너무 고생하는 거 같아서요.”

“그래. 그렇긴 해.”

재원이 자원해서 의무 전대에 남고, 나머지는 대령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비행장이 아무리 넓다고 해 봐야 절반 이상은 라드에게 빼앗긴 채다 보니 돌아가는 길이 그리 길거나 하진 않았다.

금세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간에 대령이 있는 본부 건물에 닿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경계는 꽤나 삼엄했지만 아는 얼굴에 대해서는 딱히 뭐가 없어서 즉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 교수님.”

“살아오셨군요.”

들어가니, 김태평을 위시한 요원들 그리고 대령이 붙여 놨던 병사 둘이 있었다.

습관적으로 세어 보니 낙오된 인원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다행이었다.

아무리 이들이 정예라 해도 서울의 경계가 삼엄했다면 살아왔겠나?

뭐, 대충만 보고 왔을 가능성도 있기야 하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생각만큼 경계가 삼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확실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세브란스 주변으로 군인들이 많고, 안으로 옮겨지는 민간인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군……. 그 수가……?”

“사실 처음부터 본 건 아니라……. 그래도 수십 명은 넘어 보였습니다.”

“매일 그만한 수가 들어가는 건가?”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뭐가 있다는 게 확실합니다.”

“그렇겠군요.”

대체 뭔 실험을 하고 있는 걸까?

대령을 비롯해 유현까지 모조리 생각에 잠겼다.

‘설마…….’

그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았다.

민간인을 끌고 가서 할 수 있는 실험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신 효과를 보려고 물리게 하나? 아니면 치료제? 뭐가 되었건…… 가능한 시나리오긴 해.’

특히 저놈들에게 더 이상 인간적인 면이 없다는 걸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그야말로 상상력을 쥐어 짜내야 나올 수 있는 일 모두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현마저도 저들이 한편으로는 여전히 라드를 개량해서 더 나은 품종의 병사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루트로 또다시 침투가 가능하겠습니까?”

유현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아무래도 배경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관련한 상상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대령이 아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종류가 다르다 뿐이지 이 또한 중요한 질문이긴 했다.

오히려 김태평에게는 이게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

“중간에 잠깐 트러블이 있긴 했지만…… 아예 막힐 거 같진 않습니다. 아직 전역을 다 감시하에 둘 만한 역량이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대령은 이따가 병사들에게 확인해 보면 될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김태평의 말을 신뢰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근데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세브란스까지 간 겁니까. 아무리 밤이라 해도…… 그 근처는 사실 청와대와 바로 지척인데요.”

바로 김태평이 기다렸던 말이기도 했다.

그는 별 지체 없이 답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은 사태가 터지기 전에 일부 예견을 하고 있어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사태가 그의 예상보다 더 심각하자 주변을 약탈했습니다. 사치품도 포함했는데 그래서 마트나 백화점 등이 최우선 순위 지점이 되었습니다.”

“거기엔 생존자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주 협조적이지 않았던 경우,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제거……?”

“네. 그리고 지하철 같은 경우엔 필수 설비나 물자가 있는 데다가 시야 확보가 잘 안된다는 이유로……. 신경 가스를 살포해 안에 있는 것이 라드건 생존자건 일단 제거했습니다. 제가 거기에 불복했다가 테크노 마트로 가게 된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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