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실험 (2)
MRI도 되는구나.
김조은은 한숨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숨을 내쉬었다.
‘남산에는…… 뭔가 되는 검사가 없었는데……. 여기에 뭘 얼마나 쏟아붓고……. 아니, 아니지.’
남산 안에 갇혀 있을 땐 솔직히 진짜로 세상이 망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밖에서 잡혀 들어오는 민간인들의 행색이나 라드들의 흉포함을 보면 낙관적인 생각이 생기려다가도 슥 사라져서 그랬다.
그 와중에 보급도 점점 줄어들어만 갔더랬다.
거기에 더해 전기도 끊기는 시간이 있었고.
그러니 무슨 좋은 생각이 들겠나.
‘청와대……. 정원도 관리되고 있었지.’
청와대라는 곳이 좀 숨겨져 있는 데다가 언론에서 공개되는 곳이 아무래도 한정적이다 보니 대체 얼마나 넓은 곳인지 감이 잘 안 올 텐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땅은 작아도 그 위상이 후루꾸는 아니지 않나.
그 나라의 지도자가 거주하고 또 나라의 앞길을 좌지우지하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넓기도 넓고 동시에 촌스럽지 않은 화려함을, 즉 품격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거의…… 사태 터지기 전이나 다름이 없었어.’
김조은은 당일 귀빈룸에서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잠이 잘 안 온다고 하니 칠링이 완벽하게 된 샴페인과 캐비어까지 먹을 수 있었다.
서버로 온 직원의 옷도 빳빳하게 다려져 있었는데 없는 와중에 격식을 차린 느낌이 아니라 그냥 여유로운 와중에 내놓은 느낌마저 받았다.
‘뭐……. 잘된 일이지, 지금 당장은.’
김조은 회한을 느끼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남산에 계속 남은 이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이란 말인가.
이로써 한 가지 명백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면, 남산은 확실히 유배지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쓸모 있는 사람으로 판별이 나지 않는 이상 그 안에 있다가 그대로 아사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우선…… 지금 데려온 민간인들 숫자가 모두 몇입니까?”
“아직 감염자가 되지 않은 이들은……. 총 218명입니다.”
“감염이 진행 중인 사람들은요?”
“59명입니다.”
“숫자가 좀 이상한데요?”
하여간, 김조은은 다시 군의관에게 물었다.
MRI가 있다는 건 확인했지만 바로바로 찍기엔 무리가 있어서 그랬다.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가던 시절에도 MRI는 만만한 검사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어떻겠나.
함부로 막 굴리다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질 자신은 없었다.
해서 그 전에 선별을 하기 위해 대화를 진행 중이었다.
“아…… 매일 동일한 수의 사람들이 오는 건 아니니까요. 어떤 날은 잭팟이 터지고 또 어떤 날은 별로 없고 그렇습니다.”
잭팟이라.
사람 잡아 오는 데 쓰기엔 좀 이상해 보이는 단어를 서슴지 않고 내뱉는 군의관을 보면서, 김조은은 이놈도 어지간히 망가졌구나 싶었다.
어쩌면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망가져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것처럼 말이지.’
원래 세상은 너무 많은 제약이 있지 않았나.
그 사슬에서 풀려난 지금이 오히려 더 나은 느낌도 들었다.
“그렇군요. 그들 대상으로 우선…… 이 검사를 해 보죠.”
“검사……?”
“PCL-R(Psychopathy Checklist)이라는 검산데……. 사람의 성향을 보기 위한 검사입니다.”
“성향이요?”
군의관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과가 뭐라고 했더라.
아, 그래.
내과였지.
김조은은 그렇다면 검사 이름도 모를 수 있긴 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많이 통용되는 검사가 아니기도 하지 않나?
어쩌면 의사들보다는 오히려 심리를 다루는 이들이 더 익숙할 수도 있었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는 단어는 아시겠죠?”
“아, 알죠. 근데 그게 딱히 의학적인 용어는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그렇죠. 하지만 의학적인 용어가 아니라고 해서 존재하는 현상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 그거야 그렇죠.”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데 여전히 고정관념에만 사로잡혀 있을 수 있겠나.
만약 그런 류의 인간이라면 여태 살아남지도 못했을 터였다.
상상 가능한 모든 일은 실은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어야 했다.
군의관도 그런 류의 인간이었다 보니 크게 저항감 없이 납득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런 류의 인간들에게 뇌의 기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뭐……. 당연한 일이죠, 사실. 우리는 유기체니까요.”
“그렇죠. 마음이라는 게……. 사실 뭐 신경 전달 물질과 연관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정신의학과가 신경정신의학과로 개명하게 된 이유가 왜 없겠나.
이전과는 달리 우리 마음이라는 것을, 또 감정이라는 것을 어떤 구체적인 물질이 결정한다는 증거가 하나둘 발견되고 있어서 그랬다.
예컨대 세로토닌이 부족한 이들에게서 또는 세로토닌 수용체가 부족한 이들에게서 우울증이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이제 비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만 알고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제는 그냥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 말이었다.
“그러니 공감 능력이 떨어지면서 동시에 남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뇌에 뭔가 특징이 있겠죠.”
“그렇죠. 그것도 그렇군요. 아……. 그럼?”
“그 특징이 뭐가 되었건……. 바이러스의 친화력과 연관이 있다면. 그래서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면……. 우리가 미리 저런 결과를 보일 만한 사람을 알아낼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단 얘기가 됩니다.”
“아하……. 근데 갑자기 그런 생각은 왜…….”
“남산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인 개체가 있지 않습니까. 그 개체들 중…… 하나……. 굉장히 이상했어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침착했단 말이죠.”
“으음.”
김조은은 군의관의 얼굴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표정만 봐서는 이놈이 대체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닌지 잘 감이 오지 않았지만, 여하간 해야 할 말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나.
게다가 설득할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걸 확인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무엇보다…… 이건 그리 어려운 검사도 아니에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설문지예요.”
“그렇다면…… 별 무리 없겠군요.”
“네. 게다가 갑자기 잡혀 온 사람들에게…… 이런 류의 검사를 한다면 뭔가 더 납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대로 된 수용 시설 아니지. 제대로 된 시설에 가기 전에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 뭐 좋겠죠.”
“어려울 거 없겠습니다. 뭐 바로 해 보죠.”
“네. 근데 그 검사를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어지간한 데이터베이스는 다 쌓아 뒀습니다. 사태가 터지기 전에…… DB가 있더군요.”
“아.”
그렇지. 그랬지.
이들은 알고 있었지.
세상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물론 이 지경까지 망가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그럼 가시죠.”
“네.”
김조은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병사가 어렵지 않게 찾아온 자료를 뽑아다가 아래로 향했다.
아까 들어온 입구 근방이었는데, 이전과는 달리 고요해져 있었다.
밤에야 차량들이 왔다 갔다 하는 일들이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지금은 해가 뜨지 않았나.
암만 뻔뻔한 사람들이라 해도 정작 해 아래서는 당당하기 어려운 법이었다.
그건 세상이 엉망이 된 이후라 해도 마찬가지란 것을 느끼며, 김조은은 여러 병사들 그리고 군의관과 함께 민간인들이 갇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풀어 줘!”
“대체……. 왜 이러는 거냐!”
“시발 새끼들…….”
필요에 의해 개조된 외래 진료실 안에 갇혀 있던 이들이 못 보던 얼굴이 나타나자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200명이 넘는 인원이 있다고 했으니 시끄러워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바뀌는 일은 없었다.
“이거 나눠 주고……. 필요한 절차라고 하시죠. 다 하면 결과 보고 제대로 된 곳에 갈 거라고. 그럼 조용해질 겁니다.”
“그건 좋군요. 안 그래도 병사들이 불만이 좀 쌓이고 있었는데.”
“뭐……. 그런 거 해소할 용도로 쓰는 것도 좋을 겁니다. 이게 검사가 짧게 걸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럼 이거 배포하고 밥이나 먹죠.”
“그럴까요.”
김조은은 이미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그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실험체를 보는 눈으로, 그러니까 무감한 눈으로 사람들을 보다가 이내 설문지를 내려다보았다.
-김조은 씨……. 당신은 사이코패스로군요.
언젠가 본인도 해 봤던 검사였다.
왜 했더라.
아, 그래.
주변인들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받았더랬다.
실제로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곁에 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부잣집 출신에 공부도 잘해서 직업도 좋았던 그임에도 불구하고 배우자는커녕 친구조차 없었다.
-뭐……. 그렇군요.
김조은은 검사 결과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다만 조금 억울해할 뿐이었다.
-누굴 죽여 보고 싶다거나 한 적은 없는데요.
-덱스터처럼요? 그건 좀 다릅니다. 그냥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을 뿐이에요. 가령…… 지금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건……. 어려운데. 더 확실한 표정을 보여 주면 안 됩니까? 웃거나, 울거나.
-그렇죠. 그러실 겁니다.
그런 김조은을 안타깝다는 눈으로 보던 정신과 의사는,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교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직장에서 권고한 사안이니만큼 천천히 따라와 보라고.
김조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그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는 아니었다.
조직의 장이 되려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서 그랬다.
‘나도 그럼 최소한 1호처럼은 되는 건가?’
김조은은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절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설문지를 나눠 주었다.
얼굴엔 그때 배웠던, 그림 같은 미소를 띤 채였다.
“저희가 인원이 부족해서 설명이 없었죠. 죄송합니다. 간단한 설문만 좀 하고 계시면 제대로 된 시설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이런 거면 빨리 말을 했어야지!”
“줘 봐요.”
김조은의 얼굴은 오랜 시간 학자로 살아온 사람답게 굴곡이 없는 데다가 미소도 괜찮아서 사람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
군의관은 혹 이 설문이 효과가 없다고 해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효과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김조은을 따라 설문지를 나눠 주었다.
그렇게 모든 설문지를 나눠 준 후에야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청와대에서 대접받았던 것에 비하면 형편없다고 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뭐 이 정도면 훌륭했다.
“계란이 있군요.”
“네. 근처에서 들고 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유도 있고.”
“네, 이것도.”
신선 식품이 있지 않나.
사태 전이라면야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이겠지만…….
꼭대기 층에서 망해 버린 서울을 내려다보며 먹는 계란 후라이와 시리얼의 맛은 그 어떤 오마카세 보다도 더 훌륭했다.
“근데……. 그렇게 선별이 되면 뭘 해 볼 작정이십니까?”
“MRI를 찍어 보고……. 그 후에 물리게 한 다음 차이를 봐야겠죠. 선별은 설문지만으로 된다고 해도, 연구는 해 봐야 하니까요. 뭐…….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렇군요. 기대가 됩니다.”
“오래 안 걸릴 테니 오늘 안에 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