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31화 (231/323)

231화 세브란스 (3)

“저긴가.”

서울역.

한때 KTX와 1호선 등을 타기 위한 사람들로 붐볐던 곳은 이제 어둑하기만 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지나쳐 왔던 골목길보다는 밝았는데, 군데군데 횃불을 놓은 덕이었다.

그리고 그 횃불 근처에는 어김없이 손을 쬐고 있거나 하는 군인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꽤 많은데요?”

“그래. 그리고…….”

역 주변으로는 윤형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그 안쪽으로는 트럭과 봉고 그리고 SUV 등의 차량들이 꽤 많이 들어차 있었다.

아무래도 저 역을 기점으로 해서 이 근방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변에 라드들이 있긴 한 모양이군요.”

“뭐……. 정리를 다 한다고 해도 어디서 몰려오겠지.”

“그렇긴 하죠. 서울은…….”

서울의 인구가 천만에 가깝지 않았나.

물론 실제 유동 인구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다고 봐야 했다.

행정구역상 수도권으로 밀려나 있을 뿐, 서울과 연해 있는 신도시가 얼마나 많던가.

기실 경기도의 인구 중 태반이 서울과 연해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많은 인구 중…….

과연 얼마나 살아남았을까?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라드가 되었을까.

“일단 지나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덕이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한 일이겠지만.

하여간, 서울역에 진을 치고 있는 무리는 딱히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왜 이 밤에 밖으로 나돌겠나.

게다가 윤형 철조망 안쪽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다고 보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1세대 라드, 즉 멍청한 개체들이야 도저히 혼자서는 뚫어 내지 못하겠지만 똑똑한 놈들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거기에 더해 이젠 식인종들마저 횡행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꽤나 경직되어 있는데요?”

“그래 보이지?”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곤 해도, 열 시나 되었을까 싶은 시각이었다.

해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지만, 평생을 12시 즈음 자 버릇하던 현대인들이 무작정 잘 수 있겠나.

심지어 횃불이 이리저리 자리한 곳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횃불이 있는 곳, 즉 야외에는 오직 군인들뿐이었다.

역 안쪽에 일렁이는 그림자만 보고 몇이나 있을지 가늠하는 건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멍청한 짓거리이겠지만, 하여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

김태평은 일렁이는 그림자 무리를 보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발걸음은 지체 없이 움직이면서였다.

“식인종 무리가 이런 곳이라고 노리지 않겠냐. 어디든 있겠지. 도움을 청했다가 이런저런 짓을 했을 거야.”

“하긴…… 그렇겠네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김태평과 다른 요원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서울역을 빙 둘러 통과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병사들은 간신히 따라잡고 있었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

‘딱히 우리를 속일 이유가 있나……?’

이 정도 실력이라면 마음먹고 어디 숨어서 지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이건 단지 병사들의 생각일 뿐이고, 김태평은 정작 팀원들만 데리고 고립되었을 때 생길 만한 문제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매일 돌아가면서 경계를 서야 한다는 것, 또 식량을 계속 직접 찾아야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 않겠나.

단단한 무리를 이끌거나 적어도 그 무리 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좀 멀리 돌아가도……. 충정로역을 통해서 들어가는 게 안전할 거야.”

하여간, 김태평은 어둑한 밤길을 그저 달빛 하나에만 의지해 걸어가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위치를 알아내는 데 있어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서울역을 벗어나 멀리 보이는 서대문역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 근방에는 경찰청도 있고……. 여러모로 정부 측에서 사용하기 좋은 건물이 너무 많아.”

“확실히……. 윤형 철조망도 여러 군데 쳐져 있습니다.”

“불도 밝고……. 무엇보다 서울역보다 훨씬 청와대랑 가깝지.”

거의 지척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경계가 삼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들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들킨다는 건 대개 죽음을 의미했다.

설마하니 전멸까지는 안 갈 테지만…….

‘더 잃게 되면 팀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돼.’

김태평은 팀원 중 하나라도 잃게 되면 끝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다리가 다친 녀석은 한글 박물관에 남기고 온 마당이지 않나.

그 녀석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지금도 전투력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쭉 내려온 상황이라고 봐야 했다.

물론 새로운 인력을 키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어디 쉽겠나.

“더 돌아간다. 남쪽으로 돌지.”

“어……. 너무 조밀한 구역 아닐까요?”

“그렇긴 한데……. 그만큼 주둔하기엔 좋은 곳이 아닐 거야.”

“으음. 알겠습니다.”

해서 태평은 밑으로 돌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밖으로 돌 생각은 없었다.

“역시……. 여긴 아직도 방치되어 있구만.”

충정로역.

아는 사람은 알 텐데, 사실 서울 시내 역 안에는 나름대로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비상식량과 같은 것들도 비치되어 있었고.

충정로역은 환승역이기도 하고 또 역 자체가 꽤 커다란 곳이다 보니 사태 초기에 많은 사람이 몰렸던 곳이기도 했다.

-사, 살려 줘!

-이……. 이 미친……. 이게 대체…….

-니, 니들 군인……. 군인 아냐? 이게 뭐 하는…….

그리고 약탈의 대상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당시 본인 생존에 급급했던지라, 군 통수권자라면 절대로 내려서는 안 될 명령을 내렸다.

김선태와 김태평.

두 애국자에게 충정로역에 있는 보급 물자를 모두 가져오라 일렀다.

방법은 불문에 부친다 했고 자연히 김선태와 김태평 둘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너……. 너!

-명령은 내가 완수했군.

-네놈이 지금…….

-방독면 똑바로 다시 쓰는 게 좋겠군. 역 밖으로도 새어 나오고 있다고.

-하…….

-안에 라드들도 있었어. 난 그 보고에 따랐을 뿐.

김태평은 공작을 통해 빼내 올 작정이었다.

애초에 역 내에 마련된 대피소라는 것은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이니만큼 대인 침투 작전을 어떻게 할 수 있을 만한 시설은 없어서 가능한 생각이었다.

물론 대한민국은 휴전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군필자가 많기야 할 것이고 자연스레 경계 근무에 돌입하는 등 최소한의 시스템이 갖춰지기야 하겠지만…….

전역한 민간인에게 뭐가 어떻게 된다면 국정원 요원이라는 직함이 울었다.

그에 반해 김선태는…….

“끔찍하군요…….”

“김선태, 그 미친놈 짓이지. 뭐……. 대통령의 명에 따른 것이니 진짜 괴물은 대통령이겠지만…….”

김태평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회상에서 벗어나 충정로역 안으로 향했다.

예상했던 바대로 이 근방에는 경계 병력조차 없었다.

애초에 라드고 생존자고…….

또는 병사들이나 정부 측 민간인들도 가까이 오지 못하는 곳이라 그랬다.

위험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 광경이 너무 끔찍해서 그랬다.

딸각

안으로 들어온 김태평은 손전등을 켰다.

그러자 달빛만으로도 닭살이 돋을 만큼 끔찍했던 광경이 더 선명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뒤틀린 사체들이 한데 뒤엉켜 썩어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입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체들에는 무수한 총알 자국까지 나 있었다.

물론 태반은…….

불이 꺼진 채 가스가 살포되었던 까닭에 그냥 벽 근처에 몰려 있었다.

“욱!”

“우우욱!”

이런 광경을 마주할 거라 예상치 못했던 병사들은 고개를 돌리고 토악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대규모 학살이…….

있었을 거란 예상이 있기는 했더랬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정부 측이 확보하고 있는 물자의 양이 이상하리만치 많아서 그랬다.

그러나 이런 식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정되면 가지. 가는 내내 이 지랄일 테니.”

김태평은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꺽꺽대고 있는 병사들을 보다가 말했다.

사실 그 또한 간신히 참고 있었고 또 다른 요원들도 그랬기에 그랬다.

아마 이 광경을 보면서도 멀쩡할 수 있는 건 대통령이나 김선태 정도일 터였다.

그 둘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라드보다도 끔찍한 놈들이지 않겠나.

“흐으……. 어떻게 이런.”

“이게 지금 대통령의 민낯이죠.”

“아니……. 어떻게…….”

김태평은 병사들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어쭙잖게 정보 요원 흉내를 낸다 이거지…….’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면서였다.

대령을 떠올리고 있었다.

수 싸움이랍시고 하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기꺼이 어울려 줄 자신이 있었다.

‘보고를 듣게 되면……. 총력을 기울이게 될 거다.’

민간인을 납치해서 실험체로 쓴다?

그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었다.

다만 심증만을 가지고 돌아갈 뿐.

하지만 이 충정로역에서 벌어진 학살은 어찌할 것인가.

아니, 사실 청와대 근처 역사에서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졌다.

마트나 편의점 그리고 병원에서도 그랬다.

“갈까요?”

“아, 네.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여기가 문제지. 앞으로도 계속 이럴 테니 주의하세요.”

김태평은 그렇게 점점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인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들어갈수록 사체의 수는 줄어갔다.

도망치느라 움직인 탓이리라.

하여간, 김태평은 스크린 도어를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로를 따라 이동할 작정이었다.

“이 안에는 라드들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구.”

“네.”

라드라는 변수가 있을 수 있는 곳이지만, 바깥보다는 안전할 터였다.

적어도 이 근방에서만큼은 라드가 아니라 정부 측 군인들이 진정한 위협이지 않나.

자박

자박

그렇게 일행은 말없이 걷다가 가좌역에서 나왔다.

말했던 대로 남쪽으로 빙 둘러 온 셈인데, 거리가 여전히 꽤 있었다.

일단 여기서는 세브란스는커녕 신촌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괜찮았다.

“이 근방에 궁산이라는 곳이 있어. 그리 높지는 않지만……. 거기 올라가서 보면 세브란스 근방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네.”

일행은 역 근처에 위치한 궁산이라는 야트막한, 말이 산이지 공원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향했다.

그 시간 즈음 유현은 수원 기지 본부에서 대령이 참관하는 가운데 라디오를 틀었다.

새벽 1시.

잠들지 않은 이들이 있을 만한 시간이었지만 별 상관없었다.

이제 박원상의 위상은, 적어도 남산에서만큼은 꽤 올라갔으니.

-보급 물품이 좀 줄었습니다. 인원이 줄었다는 것이 이유인데……. 아무래도 다른 쪽으로 집중하려는 거 같습니다.

물론 남산에서의 일일 뿐이었다.

통으로 팽당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마도…….

강변 측에서 생환한 이들이 대거 남산에 합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찝찝한 과거가 저기 한가득 묻어 있는 셈 아닌가.

“다른 새로운 소식은 없고?”

-아……. 유현이구나. 정부 측 소식은 아니고……. 우리 실험실 결과물이 좀 나왔는데.

“어떤?”

-여기 지금 병이 돌거든? 호흡기 질환인데……. 독감 같아.

“독감이라……?”

-실험체로 들어온 사람들 중에 감염원이 있는 거 같은데……. 그 사람들이 물린 이후 양상이 좀 이상해서. 병의 진행이 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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