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세브란스 (2)
낮.
말 그대로 해가 뜬 시각.
이렇다 할 장비 없이도 멀리 볼 수 있는 때이기도 했다.
이전에도 그랬는데, 미세먼지 따위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어 버렸다.
“저 위로 가야 된다, 이 말이지…….”
옥상에 선 채, 김태평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해는 쨍쨍하다 보니 저 멀리 남산도 잘 보였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잠실에 있는 롯데 타워도 보였다.
그 근방은 일부러 피해서 올라왔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쪽이 대체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반포부터 압구정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부촌 라인처럼 이쪽도 폭격을 대부분 다 피한 상황이지 않나.
‘사실…… 삼성동도 어지간하면 폭격을 안 하려다가 라드 밀집 지역이라는 의견이 너무 거세서 때린 거긴 하지……? 이 마당에 집값이라니……. 미친 새끼들.’
자기 집이 거기 있다, 이 말이었다.
세상이 망했는데 아파트나 주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냔 말을 해 봐도 별 소용은 없었다.
다들 말로는 애국이니 뭐니 하고 떠들지만…….
‘정치하는 놈들 다 한통속……. 아니지. 좋은 놈들은 사태 속에 다 죽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씁쓸해진 김태평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한데 모으는 심정으로……. 가래를 탁 하고 내뱉었다.
너무 여유 부리는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낮은 움직이기에 그리 좋은 시간이 아니었다.
비행장 근처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니, 하다못해 한강 이남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강북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윤형 철조망까지 동원해 임시 기지를 세우고 있는 마당인데 경계병이 아예 없겠나?
심지어 지금은 자기 권역이 아닌 곳에서 생존자들을 실험체로 쓰기 위해 잡아가고 있는 실정이니만큼……. 더더욱 경계가 강력해지긴 했을 터였다.
‘뭐……. 대통령 성격상 군부대를 경계하고 있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자기 통제 아래에 있어야 성이 풀리는 놈 아닌가.
미친놈이라 이건데, 하필이면 그 미친놈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팀장님. 식사하시죠.”
“어, 그래. 주변으로 지나는 놈들은 없지?”
“네, 오전에…… 지나간 트럭 말고는 없습니다.”
“아, 그놈들. 확실히…… 김선태가 이끄는 놈들 같았지?”
“네. 놈들이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김태평은 아까 지나갔던 트럭을 떠올리면서 아래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트럭 뒤에 타고 있던 놈들을 떠올리면서였다.
어디 동네 마실이라도 가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팽팽히 당겨진 긴장이 느껴졌다.
정예이면서 동시에 베테랑이라는 증거였다.
전장에서 경험을 쌓은 게 아니라, 시민들을 잡아 족치면서 또 라드들을 잡아 족치면서 쌓은 경험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속이 뒤틀렸지만…….
실력이라는 건 어떤 방식으로 쌓아 올렸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얼마나 쌓아 올렸는지가 중요한 법이지 않나.
“어떻게든 적으로 마주쳐서는 안 될 놈들이야. 그게 설령 기습이라고 해도……. 아직은 안 돼.”
“네, 그렇습니다. 장비도 차원이 다를 겁니다. 막말로 우리는 이제 개털 아닙니까.”
“개털은 아니지. 수원에서 보급받았잖아?”
“그렇긴 한데…….”
넝마주이처럼 긁어모은 장비를 돌아보며, 김태평은 부하의 어깨를 탁 치고는 없는 와중에 최대한 맛있게 끓인 육포 현미죽을 떠먹기 시작했다.
“팀장님.”
그렇게 먹고 있으려니 병사 하나가 찾아왔다.
그 또한 정예고 또 경험치가 찬 베테랑이었지만,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그득했다.
아무래도 주변이 어떠한지 확인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응, 왜요.”
“오늘 안에 돌아오는 거지요?”
“아……. 네. 가능하다면 그래야죠. 하지만 불가능하다면……. 으음. 하루 정도는 어디서라도 지새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짐 잘 챙기십쇼.”
“그거…….”
“원하신다면 여기서 기다리셔도 됩니다.”
김태평은 겁먹은 병사를, 별다른 편견이 없어 보이는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오히려 송곳처럼 병사의 마음을 푹 찔렀다.
“아니……. 아뇨, 가겠습니다.”
일단 대령의 명이 있지 않았나.
-모든 정보는 교차 검증을 해야 한다……. 좋은 말을 하던데.
기본적으로 대령은, 그러니까 비인간적인 처사만 일삼던 사령관을 대신해 올라선 이는 좋은 사람이었다.
병사를 위할 줄도 알고, 처음엔 나름 생존자들도 구해 주고 그랬다.
물론 그러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미 구했던 생존자들이 실종되는가 하면, 다친 병사들의 일부가 사라지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합리적인 의심이야…….’
이제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대령은 망한 세상에서 수많은 무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의해서인지 뭔지 차가운 인간이 되어 가고 있었고, 병사들 또한 그러한 대령의 변화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일견 그럴싸하기도 했다.
물론 병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유현을 믿고 있긴 했다.
그가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보였던 여러 행보를 보면, 일단 정부가 찜찜하고 유현은 떳떳하다는 것이 명약관화하지 않던가.
‘이 사람이 뭐라 나불대느냐에 따라…… 교수님의 태도가 바뀌고……. 그렇게 되면 우리 비행장도 선택을 해야 해.’
그러나 김태평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득했다.
애초에 정부 측 일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무엇보다…….
‘만약 저놈들과 전쟁이라도 벌이게 된다면…….’
라드?
식인종?
이런 놈들도 겁은 나지만 이제 와 두려워하기엔 너무 많이 죽여 오지 않았나.
하지만 총을 든……. 훈련받은 군대와 싸우는 건 여러모로 달라질 터였다.
‘그렇다고…… 놈들이 하고 있다는 그 짓이 진짜 사실이라면 두고 볼 수도 없어.’
그러나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실험이 뭐가 되었건 간에 성공을 하고 대세가 완전히 정부 측으로 기울게 된다면 어찌 될까.
이미 수원은 삐딱선을 탄 지 오래지 않나?
정부 측 명을 듣지 않고 있었다.
통신상의 장애가 핑계였지만, 멀쩡히 수신되고 있는 것을 그쪽에서 영원히 모를 거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애초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폭격이 그리 심하지 않았으니…….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하는 수…… 없죠.”
“중간에 잘못되면 버리고 갈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푹 쉬어 두세요. 어제보다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될 겁니다.”
김태평은 찰나의 순간에 병사의 얼굴 안에 오간 감정을 대강 읽어 냈다.
사실 병사 둘을 굳이 붙여 준다고 했을 때부터 감시역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적어도 이번 작전에서는 떳떳지 못할 것이 전혀 없었으니.
아니, 정부를 대상으로 한 작전에서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 뻔했다.
척을 지게 된 지 오래니까.
“가지.”
그렇게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오후 7시가 넘어가자마자 김태평은 건물을 나섰다.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이런저런 조작을 가하고, 또 차량도 다시 한번 은폐한 후의 일이었다.
낮에 시간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진짜 감쪽같이 숨긴 채 밖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혹 정부 측 인사가 이 건물 안에 들어온다고 해도 별다른 의심은 할 수 없을 터였다.
설령 김선태가 이끄는 부대 혹은 그 본인이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라 여기면서 밖으로 향했다.
‘오늘은 혹시 모르니…… 교수님이 교신을 맡으시죠.’
김태평은 그렇게 한글 박물관 뒤편에 자리한 국립 중앙 박물관을 옆으로 빙 돌아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용산 공원까지는 딱히 뭐가 없을 거야. 적어도 인간은 없을 거다.”
그렇게 조금 걸어 나가자마자 거의 수풀을 방불케 할 만큼 우거진 용산 공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애초에 오래된 공원이었던 데다가 상당 기간 방치되었다 보니, 과장 조금 더 보태면 정글 같아 보였다.
바닥에도 이리저리 뿌리나 잡초 등이 자라나 있다 보니 걷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특히 어두워서 더 그랬다.
“라드는 있을 수 있어. 교전 수칙은…… 일단은 피해 간다. 우리 수가 많고, 야간 시야등이 있으니 가능할 거야. 다만 붙게 되면…… 소음기 부착한 총만 쓴다. 알아들었지?”
“네.”
김태평은 소음기를 언급하면서, 총을 내려다보았다.
영화나 드라마 또는 게임에서는 소음기만 달면 그냥 바로 옆에서 쏴도 모르고 넘어가지 않던가?
하지만 실제로는 좀 달랐다.
물론 날카로운 폭발음을 확실히 뭉툭하게 줄여 주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이토록 조용한 곳에서는 최대한 발포를 자제하는 것이 좋았다.
“자, 그럼 선두에 내가 서고 옆으로는 너, 너. 대형 잘 짜서 가자고.”
“네.”
하여간, 그렇게 대형을 짠 김태평은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용산 공원을 통해 북상하기 시작했다.
과연 녹음이 우거진 곳인 데다가 이런저런 야생 동물들이 오가기 좋은 곳이다 보니 드문드문 라드의 흔적들이 있었다.
배변 흔적이나 발자국 등이 그러했는데…….
밤이 깊어서 그런가, 당장 움직이는 것들은 없었다.
“정지.”
그렇게 선두에 서서 가던 김태평은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눈앞에는 부분 개방되어 있던 미군 기지 건물들이 있었다.
방치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담쟁이덩굴이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전체를 잡아먹을 듯이 자라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 깨진 창 안쪽으로 라드가 있었다.
“돌아간다.”
“네.”
움직임은 없었다.
자고 있거나 혹은 그냥 쉬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 앞으로 발자국과 함께 짐승의 부산물 등이 어지러이 놓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절대 죽은 건 아니었다.
‘제기랄…….’
그 뒤를 따르던 병사는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용케 제대로 훈련받은 이들에게서 뒤처지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달이 떠올랐을 무렵에 이르러서야 일행은 남영동 주민 센터 즈음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윤형 철조망이 처져 있었는데,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돗자리.”
“네.”
“모포.”
“네.”
돗자리를 포함한 단단한 걸로 덮은 후, 그 위에 2차로 침구류 등을 덮어서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괜히 자른답시고 시간 끌 것도 없었다.
어차피 돗자리는 어지간한 충격에는 끊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윤형 철조망에 얽혀 들어가는 일도 없어서 그랬다.
“살짝 흔적이 남긴 했는데…….”
물론 모포는 찢기기 마련이었고 안에 들어가 있던 솜이 삐져나와 칼날에 걸려 있었다.
“저 정도까지 확인할 만한 병력이 있다면, 어차피 희망은 없어. 간다.”
김태평은 별 의미 없는 흔적이라고 판단하여 우선 서울역 근처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 근방은 사태가 터지고 나서도 워낙에 생존자들이 많았던 곳이니만큼 여차하면 뒤섞여 들어가기도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장비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해서 일행은 이제 야투경을 표시된 곳에 묻어 두고, 안에 방탄복을 입고 소음기를 단 권총만 챙긴 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박자박
한때 불야성을 자랑했던 서울은 그저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