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남산으로……? (2)
부우웅
김태평은 말했던 것처럼 팀원들 전원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수원의 대령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숫제 병사 둘을 붙여 주었다.
-민간인을…… 습격해서 실험체로 쓰고 있다면,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청주도 계룡대도 잠자코 있지만……. 증거만 있다면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말까지 하면서였다.
김일용 형사와 김순구는 저도 도망 온 민간인 물품 뺏은 주제에 저따위 말을 하고 있다는 게 불만인지 툴툴댔지만…….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와서 잡아가던 놈들보단 그냥 내쫓기만 한 군이 훨씬 낫기는 했기에 소란을 피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제가 따라가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일행은 군부대에서는 제일 높은 건물인 사령부에서 밖으로 나가는 SUV 차량을 보고 있었다.
방금 입을 연 것은 오예리 형사였다.
늘 손에 쥐고 있던 총은 내려놓은 채였다.
일단 철조망 위에 윤형 철조망까지 덧댄 울타리로 둘러싸인 이곳이 당장 위험해질 일은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랬다.
“뭐……. 김태평 팀장이 공격할 생각이라면 데려갔을 텐데 그냥 보고만 오는 거니까요.”
“도망칠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위험한 곳에 가고 싶습니까?”
“음……. 걱정되세요?”
그러나 밖으로 나가는 건 언제나 그렇듯 위험할 수 있었다.
특히 서울 쪽은 일행에게 있어선 완전 미궁이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현정을 비롯한 도망자들에게도 듣지 않았나?
식인종들도 우글댄다는데…….
걱정이 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네, 걱정됩니다.”
“김태평 팀장님은요?”
“뭐……. 알아서 잘하지 않을까요?”
물론 유현이 오예리에게 품고 있는 감정 때문에 더더욱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주제에 능청스레 답하는 유현을 보면서 옆에 있던 이순규는, 아까보다 조금 자리를 벌린 채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애 감정은 싹트는구나.’
놀라운 일이었다.
하루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세상인데…….
사랑이라니.
원래 사랑이라는 고차원적인 감정은 인간의 기본 욕구가 다 해결된 다음에서야 생기는 거 아닌가?
사태 끝날 때까지 무사할 수 있다면 교과서나 좀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어른이구나 우리 유현이.’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 보면, 유현이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게 맞았다.
일단 일행의 리더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사랑?
사치가 아니라 숫제 정신 나간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사람 감정이라는 게 생각처럼 움직일 수 없는 법이고…….
또 그게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들고 올는지도 알 수 없긴 했지만.
하여간 평소의 유현을 생각하면 역시나 저렇게 나오는 게 맞기는 했다.
부우웅
그렇게 수원에 남은 일행이 조금은 태평해 보이는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김태평이 이끄는 SUV 차량 두 대는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중간중간 길이 무너진 곳도 있고 또 뭔가에 막힌 곳도 있었지만, 대개는 괜찮았다.
어차피 행인도 없고 움직이는 차량도 없다 보니 아무렇게나 올라가기만 하면 돼서 그랬다.
게다가 타고 있는 차량 또한 군용 차량이 아니라 민간에서 징발한 외제 차량이다 보니 아무래도 상태가 훨씬 나아서 잘도 달리고 있었다.
“저 사실 벤츠 처음 타 봅니다.”
“그래?”
“팀장님은 원래 타 보셨어요?”
“버마…… 미얀마 갔을 때. 거기 카지노에서 작전할 때 타 봤지. 벤츠가 뭐야 롤스로이스도 탔는데.”
“와…….”
“그땐 X 같았는데…….”
골든 트라이앵글.
미얀마, 태국, 라오스 3국의 접경지대.
거기에 주변국 국경 문제라면 눈 돌아가서 끼어드는 중국까지 하면 무려 네 나라가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 주제에 주변의 밀림은 개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여러 범죄의 온상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약이 제일 심각했고.
무엇보다 북한의 돈벌이 중 하나가 그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국정원에서도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활동하기가 뭣 같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때가 좋았네.”
“그때 죽을 뻔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여기서도 노상 죽을 뻔하는데……. 나랏일 하다가 죽는 게 낫지. 지금은 그냥 개죽음 아니냐? 뭐……. 나라라는 것도…….”
김태평은 회한에 찬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슬슬 봄이 올 계절이건만 여전히 찬바람이 불어와 창을 내리진 못했다.
‘내가 지키려던 놈이…… 그런 놈인 줄 알았으면…….’
국정원 요원이 되는 데 가장 필요한 재능이 뭘까.
외국어 능력? 잠입 능력? 언변? 사격?
아니, 역시 애국심이었다.
말단 직원들이야 커다란 계획의 편린만을 만질 뿐이고, 그러한 이유로 그들이 변절하거나 금세 퇴사를 해도 별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서서히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림의 전체적인 모습을 목도하게 되기에 애초부터 변절 가능성이 있는 놈들은 뽑으면 안 되었다.
당연하게도 김태평은 그중에서도 꽤나 애국심이 투철한 편이었는데…….
‘시발 새끼…….’
대통령만 생각하면 열통이 터졌다.
쏴 죽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될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본인의 삶 전반이 후회되는 것 또한 문제였다.
왜 그렇게까지 충성했을까.
손에 피를 묻혀 가면서까지…….
“곧 서울입니다.”
상념에 빠져 있으려니 운전대를 잡고 있는 팀원이 말했다.
다리를 다쳤으니 이번 일엔 빠지라고 했는데도 부득불 온 놈이었다.
확실히 운전하는 덴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했고, 또 막상 빼고 가려니 훈련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쉽기도 해서 데리고 왔다.
“움직이는 차량 자체가 눈길을 끌 수 있으니까…… 작은 길로 가지. 전에 그 루트가 남아 있으면 좋겠는데…….”
“상암 쪽으로 올라가는 길 말씀이시죠? 숙지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 길로.”
거기에 더해 길도 알고 있다 보니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고 있었다.
별 망설임 없이, 아무렇게나 돌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음.”
“으음.”
물론 속도를 무작정 내기는 어려웠다.
중간중간 내려서 무언가를 치워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무엇보다 기존에 가려 했던 루트가 변수에 의해 막힌 경우가 있었다.
“다리는 밤에 건널까요?”
“그러지.”
그러나 가장 큰 난관은 역시나 다리였다.
한강을 보고 자란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을 보고 실망한다는 얘기도 있지 않던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 주요 도시를 관통하는 강 중에서도 한강은 정말이지 거대한 강이었다.
폭이 넓은 만큼이나 기다란 다리가 놓여 있었다.
가뜩이나 다리는 그 높이가 낮을 수밖에 없는데, 강변으로 높다란 건물이 있다 보니 그쪽에 한 줌이라도 경계 병력이 있다면 차량 따위는 바로 적발될 것이 뻔했다.
“차에서 버티고 있는 게 낫겠죠?”
“그렇긴 하지만……. 역시 주변 경계는 해야지.”
“불이 강 건너에서 보이진 않을까요?”
“건물 뒤편에서 새어 나갈 정도는 아닐 거야. 그리고…….”
김태평은 차량 지붕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많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여기저기 불빛들이 눈에 띄었다.
저게 라드가 피운 불이 아니라면…….
그만한 생존자들이 여전히 서울에 남아 있다는 뜻일 터였다.
아니,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게 분명했다.
본인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야밤에 불을 피우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부주의한 이들이라면 벌써 다 쓸려 나갔을 터였다.
“꽤 많아. 이 정도로 강 건너를 염려할 이유는 없지. 이 근처 라드들이 문제가 되긴 할 텐데……. 뭐…… 거의 없을 거 같은데.”
김태평은 손전등으로 한 폐허를 비추었다.
한때는 강변에 위치하여 상당한 고가를 자랑했을 아파트였겠지만, 지금은 그저 버려진 건물이 되었을 뿐이었다.
하여간, 철근 콘크리트로 된 건물 벽면엔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총탄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그 옆으로는 역시나 튀긴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핏자국도 있었고.
이러한 흔적이 여기서 벌써 1km 안쪽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온 건, 그 외에 다른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아서였다.
‘뭐……. 대통령 그 작자가 벌써 한강 이남까지 주둔시킬 이유가 없기도 하지…….’
인프라가 죄 박살이 난 상황 아닌가.
지금 급한 건 한강 이남이 아니라 그냥 한강일 터였다.
이걸 통해서 서해로라도 진출할 수 있다면 해외에서 물자를 얻어 올 수 있을 테니.
뭐 애초에 테러의 가장 주요 목적이었던 데다가 인구 밀집도도 어마어마했던 중국이 여기보다 사정이 나을 리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뭐라도 남아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 정부 아니, 저것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여기 남아 있는 자국은 그저 약탈을 위한 흔적일 뿐일 터였다.
타다닥
모두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은 아니었지만, 김태평이 지시했기 때문에 불을 피우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차량 안에 있는데 적이 갑자기 달려들면 아무래도 일찍 알아차리기가 어려워서 그랬다.
때문에 이렇게 일부는 내리고 한 명씩은 운전대를 잡은 채로 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게 안전했다.
무엇보다 어차피 여기서 밤을 지새울 작정인 것도 아니지 않나.
해가 완전히 내려앉아 지금보다 더 어둑해지면, 그러니까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밤이 오면 다리를 건널 요량이었다.
‘뭐……. 설마하니, 기관총 포대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겠지.’
한강대교 쪽은 또 모를 일이긴 했다.
거긴 그대로 직진하면 곧장 청와대니까.
하지만 이쪽은 반포대교였다.
놈들이 의도적으로 남겨 둔 남산을 등지고 선 다리란 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박원상을 보러 갈 때까지만 해도 이쪽으로는 딱히 뭐가 없었다.
“팀장님.”
그렇게 몇 번의 교대가 이루어지고, 사위가 어둑해진 지도 한참이나 지났을 무렵 팀원이 입을 열었다.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네.”
새벽 2시.
인간이 가장 피곤해지는 시각.
김태평이 기다렸던 시각이기도 했다.
애초에 이때쯤 가려고, 늦잠을 자기도 한 데다가 나름 수원에서 비축하고 있던 각성제들, 말이 각성제이지 기껏해야 박카스였지만.
하여간, 그 덕분에 일행은 멀쩡한 얼굴로 SUV에 올라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다행히 이전과 달라진 점은 딱히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짐이 좀 치워진 느낌이었다.
“왔다 갔다 좀 한 모양인데요.”
“뭐……. 아무래도 저기에 뭐가 많긴 하겠지.”
반포.
부촌의 대명사 아니었나?
집집마다 뭐라도 좀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신세계 백화점, 강남 성모 병원도 있으니 그 안에 비축물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폭격 대상을 선정할 때도 거기에 집 있는 의원들의 반대로 반포나 압구정과 같은 동네는 무사하지 않았던가.
사실 인구 밀집 지역이다 보니 폭격을 할 거면 거기부터 했어야 했지만…….
윗놈들의 판단이라는 게 원래 좀 그렇지 않나?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애국자란 법은 없다는 걸, 김태평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더욱 뼈저리게만 느끼고 있었다.
‘세브란스라…….’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안전하게 신촌까지 가는 것이었다.
“후우.”
새까만 허공에 작은 입김만을 남긴 채, 김태평을 태운 차량은 천천히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