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남산으로……? (1)
“흐음……. 일단 정보 진위 여부부터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김태평은 유현의 예상대로 그렇게 쉽게 몸을 일으켜 주지 않았다.
일단 깨운 사람이 자기 팀원이나 수원 비행장 소속 사람도 아니고 그냥 양재원이라는 게 더더욱 김태평의 화를 돋웠을 터였다.
어쩌면 최근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때가 딱히 없어서일 수도 있었다.
하여간…….
그는 유현 앞에 와서까지 지랄을 이어 나가진 않았다.
일단 넘어왔다는 정보가 꽤 귀중하기에 그랬다.
“이게 사실이라면……. 남산 자체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하여간 나머지는 다 듣고 있었다.
정보니 뭐니 하는 순간부터는 뭐가 되었건 간에 김태평이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남산의 중요도는 형편없이 떨어져. 어쩌면…….’
김태평은 속으로 나름의 추론을 하면서 동시에 말을 이어 나갔다.
“김일용 형사의 말을 떠올려 보면……. 최근 박원상이 실험체가 늘었다고 진술하긴 했지만, 형사의 말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죠. 그렇다는 건 그렇게 잡아들인 민간인을 집결시키는 곳이 또 따로 있다는 얘기가 될 겁니다.”
“으음.”
유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나름 우수한 머리를 지니고 있다 보니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긴 했지만…….
같은 이유로 김태평이 이 분야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수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물론 박원상 자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럴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지구 병원만 해도 청와대에 가까이 있으니, 그쪽에서도 실험을 이어 나갈 수 있겠죠. 다만…… 지구 병원이라면, 청와대의 영역으로 들어온 지 한참 지났을 텐데 왜 이제 와서 김조은을 데려가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건 이상하군요.”
게다가 이어지는 말을 듣다 보니 확실히 김태평의 말에는 시사하는 점이 있었다.
다른 이들이 쉬이 떠올리기 어려운 부분을 잘도 짚어 내고 있달까?
하여간, 김태평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뭔가 변화가 있었을 거란 추정이 필요합니다. 일단…… 한 가지 의심 가능한 것은 우리가 박원상을 복직시키기 위해 알려 준 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거란 점이죠.”
“라드의 수명이 훨씬 짧을 거라는 것 말이죠?”
“네.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얘기였지만, 관찰력이나 어떤 정보를 분석함에 있어서는 충분히 훈련받았다고 자부하는 저조차도 라드의 노화가 특별히 빠르다는 걸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김태평은 자책하듯 말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느 누가 라드의 행태나 생태를 면밀히 관찰해 볼 생각을 해 봤겠는가.
그런 건…….
김조은이나 유현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 볼 수 있는 인간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쪽에서도 잘 몰랐을 가능성이 크겠죠. 제가 의학 쪽에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 혈액 검사 등으로 노화를 유추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뭐……. 호르몬 수치의 변화 등으로 일부 추정할 수 있기는 한데…… 사실 부정확하죠. 게다가 라드는 애초에 호르몬이 폭발하고 있다 보니 기준점도 많이 달라졌을 거고요.”
“네, 저는 잘 이해는 안 갑니다만……. 하여간, 그 정보가 어떤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정보라.
사실 망하기 전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때는 정보라는 단어 자체도 많이 쓰지 않았더랬다.
지식 정보화 사회니 뭐니 해도 와닿는 게 없었다.
사실 지금도 비슷하긴 한데…….
김태평이 계속 정보 정보 하다 보니 중요한갑다 싶어지긴 했다.
“잘 생각해 보면 대통령의 성향상…… 남산에 있는 연구소가 아주 탐탁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실상 유배지로 사용하고 있기도 했고……. 의도적으로 주변을 정리하지 않아서 아예 도망가거나 딴생각을 못 하게끔 하고 있었고요.”
김태평은 하마터면 그쪽으로 배속될 뻔했다가, 강변 테크노 마트로 향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그렇게 갔다면…….
부하들을 잃는 일은 없었겠지만…….
‘남산 전임 사령관이 의문사 당했지.’
유배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적당한 핑계를 대 그쪽으로 보내 놓고는 결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보급을 줄이거나 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넣었고, 더 나아가서는 암살도 서슴지 않았다.
아니, 암살은 단순한 추정에 불가하지만 우연이 여러 번 겹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죽어 나간 사람이 벌써 넷도 넘다 보니 합리적인 의심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쪽에 있는 인원이 입 안의 혀처럼 굴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정말 최선을 다해 대통령을 보좌했지만 그럼에도 그냥 의심병이 도졌을 수도 있죠. 역사를 보면…… 뭐, 특별한 일도 아니긴 합니다.”
지금 대통령은 말이 대통령이지 아주 훌륭한 독재자이지 않나?
나라가 이 꼴이 되었으니 선거고 나발이고 다 불가능한 데다가, 아주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서울 이북에 있던 군부대 병력 중 온전한 부대에 대해서는 대개 통제권을 들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 온전한 부대라는 게 적어서 탈이긴 하지만.
또 삐딱선을 탔던 군부대장 중 손이 닿는 범위에 있던 이들은 김선태 또는 김태평 본인 손으로 날리기도 했다.
그러다 현타가 와서 김태평도 삐딱선을 타게 된 것이긴 한데…….
“히틀러도 그렇게 의심이 많았다고 하죠.”
“실제로 암살 시도도 있었고요. 스탈린도 숙청의 대명사 아닙니까? 마오쩌둥도 그랬다고 하고. 김정은은 삼촌도 죽였고……. 독재라는 게 묘한 면이 있는 모양입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정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순규를 돌아보았다.
정신과다 보니 이런 심리를 잘 알까 싶어서였다.
물론 그런 이론이 있다 해도 정신과 의사가 알 리는 없기에 이순규도 별말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정보를 얻었을 때, 이를 확인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또 다른 루트를 통해 정보를 얻어서 교차 검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청와대 쪽에서 정보를 얻어 낼 방법이 없죠. 남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뒤로 치워 둬야겠죠.”
김태평은 그렇게 말을 하다 말고, 지도를 꺼내 들었다.
이곳이 군부대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종이 지도라는 건 사실상 사장되지 않았나.
하지만 그럼에도 군부대에서는 종이 지도를 쓰고 있었는데, 과연 아날로그한 것을 다 배척할 필요는 없다는 걸 세상이 망하고 나서야 실감하고 있었다.
아무튼, 김태평은 지도상에서 청와대를 찾아 동그라미를 쳤다.
남산과 지구 병원이 있는 부위에도 쳤다.
“형사님이 정확히 여기쯤 있었다고 했죠?”
김일용은 자리에 없었다.
제아무리 강건한 사람이라고 해도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긴 데다 군부대에 잡혀서 갇히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사실 유현과 밤늦게까지 얘기라도 나눈 게 대단한 일이었다.
“네, 그랬습니다.”
아무튼, 그와 계속 대화를 나눴던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합정 부근을 가리키면서였다.
그 밑에 위치한 공덕과 마포에서도 김선태가 활동했다고 했고, 확실히 라드의 수가 적었다는 진술도 있었다.
그 진술들을 떠올리면서 지도를 보고 있자니, 확실히 청와대가 여태껏 남산 부근을 수복하지 못했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애초에 강변으로 갈 때 한남 옆으로 이동했다고도 했으니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수복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합정, 마포, 공덕……. 이 근방까지 군부대를 보낼 여력이 있다면, 이 사이에 있는 병원을 포함해 실험실을 구비할 만한 곳 중에 청와대가 영향력을 회복한 곳이 있을 거란 얘기가 됩니다.”
“그렇겠군요. 그중에 가능성이 큰 곳이라면…….”
유현은 매의 눈으로 지도상에 위치한 병원들을 살폈다.
‘근방에 커다란 병원은 꽤 많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강북 삼성 병원하고 세브란스는 대학 병원급…….’
누군가를 치료하기 위한 시설을 찾는 거라면 사실 범위가 너무 넓었다.
대한민국의 민간 의료 체계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잘 짜여 있어서 그랬다.
한창 ARS-24가 번질 때도 그렇지 않았나.
대한민국처럼 수많은 의료진과 의료 기관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단언해도 좋았다.
그러나 연구 시설로 눈길을 돌리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연구라는 건 기본적으로 벌어들인 돈의 잉여 자금을 투입할 수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의료 체계는 적은 돈으로 최대 다수의 치료를 꾀하고 있다 보니 완전히 임상 쪽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연구 시설을 구비하고 있는 2차 병원급 기관은 전무하다고 보면 되었다.
‘이게 이럴 때는 또 도움이 되네.’
아니, 2차 병원 아니라 3차 병원 중에서도 제대로 된 연구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연구 중심 병원을 표방하고 있는 세브란스뿐이었다.
“여기……. 여기가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지구 병원이 아니라면, 아마도 여기가 될 거 같군요.”
해서 유현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태평의 시선을 자연스레 넘기며 신촌을 가리켰다.
“흐음……. 지구 병원은 애초에 가 보지도 못할 겁니다. 경계가 삼엄할 거예요.”
물론 뚫으려고 마음먹고 간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긴 할 터였다.
그러나 위험했다.
청와대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깝지 않나.
편집증 정도로 자기 안위를 챙기는 대통령이 저기에다 대체 무슨 짓을 해 놨을지 감도 잘 잡히지 않았다.
사실 서울 수복만을 목표로 했다면 적어도 강북 정도는 이미 수복하고도 남았을 병력이 있음에도 밍기적대고 있는 건, 다 그런 대통령을 포함한 윗대가리들의 삽질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만약…… 교수님 예측대로 뭔가 있다면, 경계가 삼엄할 겁니다.”
“그럼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경계가 삼엄한 거까지만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무슨 연구하는지까지 볼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아.”
“빨리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유리할 테니, 오늘내일 중으로 팀을 꾸려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는 길은 괜찮겠습니까?”
유현의 말에 김태평은 바로 답을 하는 대신 밖을 내다보았다.
모일 때만 해도 새벽이었는데, 이제는 어느새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붉은 태양이 밤사이 차갑게 식었던 폐허 더미를 천천히 데우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김태평은 지난번에 박원상 때문에 다녀왔던 길을 떠올렸다.
‘뭐……. 괜찮진 않겠지.’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라드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라드가 근접전에서 무서운 존재라는 건 여전했다.
게다가 이젠 생존자들도 문제였다.
함정을 파질 않나…….
거기에 더해 김일용의 말에 따르면 서울 쪽에도 지능이 높은 라드 놈들이 있다지 않나.
‘그렇지만 우리는 갔다 올 수 있지.’
다리에 총 맞은 놈을 제외하면 전력을 온전히 보전한 마당이었다.
다행히 유현이나 최우식 등의 말에 따르면 다시 달릴 수 있을지 없을지까지는 몰라도 죽지는 않을 거라고 했으니 안심하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본부를 쳤던 놈들보다 무서운 놈들이 있을 거란 상상은 하기 어려웠다.
“괜찮습니다. 다녀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