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남산은 (3)
타타타타타
대통령을 싣고 왔던 헬기는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급하게 남산을 떴다.
지금 같은 세상에 헬기 같은 걸 쫓을 만한 운송 수단이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텐데도 그랬다.
“역시 청와대가 제일 낫군그래.”
“그럴 수밖에 없죠. 그 주변은 심혈을 다해 정리하지 않았습니까?”
그에게 청와대 주변을 제외한 모든 곳이 실패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뭐 이해 못 할 일도 아니긴 했다.
그의 옆에 딱 붙어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는, 김선태로서는 기생충이란 생각이 들게만 하는 인물인 박용만은 그러한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인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가려운 곳을 살살 잘 긁어 주는 데 통달한 인간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이 사태에 관여한 이도 아니고, 심지어 내각의 인물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것은 다 그러한 면모를 보였기 때문인데…….
‘네가 날 그렇게 보면 뭐 어쩔 거야?’
물론 그러한 면모만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걸 싫어하는 인간은 없는 법이고, 또 대통령과 같은 일종의 인격 장애가 있는 이일수록 더더욱 그런 법이긴 하지만…….
쓸모없는 인간을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기에 입만 나불대는 이들은 절대 곁에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선동가적인 기질이 있었다.
박원상이 전문가로서의 간판 그리고 이전부터 만들어 둔 이미지가 있어 프로파간다에 쓰였다면, 이 인간은 그냥 말을 잘했다.
“그래. 덕분에 백성들…… 아니, 시민들도 자기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
“그렇습니다. 다 각하 덕분입니다.”
둘이 이런 말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도 헬기는 말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김선태는 몰라도 다른 병사들은 백성이라는 말에 잠시 인상을 쓰기도 했다.
이놈들이 다른 이들을 어찌 생각하는지 다 보여서 그랬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붙잡은 줄이 이것인데.
게다가 남산에만 가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이 있지 않나?
이 시점에서는 아무래도 그 어느 곳보다 청와대 근처가 가장 안전하고 또 번화할 터였다.
그중에서도 김선태 휘하의 병사로 살아가는 건 일종의 특권층이다 보니 잠시 불만을 품을지언정 그 이상을 꾀하는 이는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다.
“끄으…….”
남산에서 청와대까지는 말 그대로 지척이었다.
아무리 안전한 이동을 위해 천천히 날고 있다 해도 헬기로 가면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란 얘기였다.
그럼에도 1호, 박기태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래 봐야 별다른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이미 헬기 안에 마련된 짐승 우리에 갇혀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묶여 있었으니.
‘이 개자식들…….’
무엇보다, 박기태는 지금 당장 뭘 할 생각이 없었다.
김선태를 죽일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지만, 그 대가로 생명을 바쳐야 한다면…….
그건 좀…….
애초에 그런 식으로 갈 거였으면 벌써 갔을 터였다.
이 굴욕적인 삶을 이어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는 건, 그만큼 박기태의 이성이 많이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했고 사람이 많이 꺾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박기태는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대통령이 탄 헬기라고 해 봐야 벽면에 다닥다닥 붙은 나일론이 의자 역할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군용 헬기였다.
그럼에도 창만큼은 꽤 구비되어 있었다.
애초에 군용이라는 게 실용적이어야 하다 보니, 또 수송을 위한 거라고 해도 전투를 염두에 두긴 하고 만드는 것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서울인가.’
서울은 깜깜했다.
불야성이라는 말이 애초에 존재하기는 했었나 싶을 정도로…….
북한 어딘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깜깜한 가운데, 홀로 빛나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헬기는 명백히 그쪽을 향해 날아가는 중이었다.
청와대였다.
오히려 주변 빛이 다 사라진 다음에 홀로 남아 있게 된 터라 그런가, 그 위엄은 평소와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굳이 지금 저기에 불을 밝힐 필요가 있나 싶긴 했지만, 헬기를 모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깜깜한 이 상황에 아무 데나 세우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겠나?
타다다다다
박기태의 생각과는 별개로 헬기는 내려앉고 있었다.
중국인으로 살아왔다 보니, 서울의 지리에 어두울 수밖에 없을뿐더러 이전과 너무 바뀌기도 해서 여기가 어디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어, 그래. 오랜만에 바깥바람 쐬니까 좋긴 하구만.”
그럼에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면, 이곳만큼은 어마어마하게 화려하다는 점이었다.
일단 사방을 밝히고 있는 불부터가 그랬다.
가로등이라니?
이럴 만한 전력이 있단 말인가?
대체 무엇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거지?
‘정원 관리도…… 되고 있군그래.’
심지어 가로등 주변으로 얼핏 보이는 정원엔 인간의 손길이 명확하게 닿아 있었다.
날카롭다는 인상을 줄 만큼이나 잘 잘려 나가 있었다.
그 외에 대통령을 둘러싼 인원도 꽤나 많았다.
무엇보다 복장이 죄다 통일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
그리고 그건 비단 박기태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김조은 또한 헬기에서 내리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원래의 그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모습이지만.
지금의 그는 세상 풍파를, 그것도 아주 모진 풍파를 겪은 상황 아니겠나?
물론 바깥에 생으로 내몰린 절대다수의 죄 없는 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우선적으로 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김조은과 같은 인간들은 그러한 성향이 더더욱 강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다른 이들에 대한 공감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이었다면 이런 짓은 할 수조차 없었을 터였다.
설령 사태를 일으켰다고 해도,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거나.
“어떻소. 여긴 좋지 않나? 대한민국이 망했다고 하는 것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지. 여기 이렇게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데.”
“그, 그렇군요.”
“신촌뿐만 아니라, 합정까지도 수복한 지 오래니 서울 전역이 우리 손안에 떨어질 일도 머지않았다네.”
“네,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울 지리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청와대에서 신촌까지의 거리와 남산까지의 거리 정도는 쉬이 가늠이 가능할 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산 쪽이 더 가까웠다.
애초에 직선으로 놓여 있기도 하고.
그러니 마음만 먹었다면 주변을 싹 정리해 줄 수 있었단 얘기였다.
합정까지 수복했을 정도면……, 다리만 남겨 놓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게다가 세브란스에서는 연구까지 가능하다고 했으니 확실히 서울 수복을 운운할 정도는 된다, 이 말이었다.
그런데 남산을?
김조은은 그런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그따위 말을 내뱉는 건 자살행위이기에 그랬다.
해서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으려니,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지. 겨울이 끝나 가고 있다고 해도 추워.”
“네, 각하.”
“오늘은 일단 여기서 자고 몸 좀 추스른 다음에 세브란스로 가게.”
“네, 각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대통령은 말을 그렇게 남긴 후 병사들 그리고 김선태와 함께 푸른 지붕의 건물로 향했다.
주변에서 밝게 빛나는 빛 때문인지 아니면 애초에 건물이 위엄 있게 지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단히 달리 보였다.
“근데 저것들은……?”
김조은은 걷다가 헬기 쪽을 바라보았다.
안에는 여전히 남산에서 싣고 온 실험체들이 있었다.
“아, 뭐……. 하루 저기서 버티다가 내일 트럭에 태워 보낼 생각이네.’
“아……. 네. 그렇군요. 하긴 굳이 옮길 필요는…….”
김조은은 삼청동…….
그러니까 서울 지구 병원엔 왜 안 가는 건지 조금 궁금해졌다.
한번 테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때 입은 피해라고 해 봐야 문짝 좀 날아간 정도 아닌가?
안에 연구 시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더랬다.
‘뭐……. 사정이 있겠지…….’
거리상으로도 그렇지만 병원 시설과 이런 류의 실험을 위한 시설은 아무래도 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지구 병원에서 하는 게 좋겠다, 이건데…….
그럴 수가 없으니 이 지랄인 거 아니겠나.
김조은 또한 사람 비위 맞추는 데 있어서 꽤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입을 다물어야 할 때 다물 줄 알았다.
치직
그 시각, 수원 비행장의 라디오에 소음이 일었다.
박원상은 이를테면 적진에 있는 상황이다 보니 딱 정해진 시간에만 켜고 끄고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이쪽은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
송신은 몰라도 수신은 24시간 가능하도록 해당 주파수에 맞춰서 켜 놓은 상태였다.
“음?”
경계라기보다는 그냥 잠이 잘 오지 않아 깨어 있던 양재원은 갑작스런 소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라디오 옆에 서 있던 게 아니다 보니 처음엔 잘못 들었나 싶었다.
치지직
하지만 확실히 라디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별일이다 하고 무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세상이 이렇게 된 마당 아닌가.
양재원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잠깐 사이에 흔들린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고, 음량을 높였다.
‘설마……. 걸렸나?’
걸렸다면…….
박원상은 어떻게 될까.
아마 죽게 되지 않을까?
아니, 그냥 죽기만 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절대로 곱게 죽이지 않을 테니.
어쩌면 라드화가 진행된 박원상을 마주하게 될지도 몰랐다.
-김조은과 1호가 청와대로 이동. 현시점부터 제가 연구 책임자로 올랐습니다. 그럼.
오만 가지 생각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안 좋은 생각만 하고 있던 재원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듣게 된 마당이라 할 수 있었다.
“응?”
잘못 들었나 싶었고, 다시 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원래 수신할 때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되어 있었기에 그랬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예외였다.
하긴 일단 4시 넘어서 수신이 되었다는 것부터가 무척 예외적인 상황이기는 했다.
“어……. 이럴 때가 아니라…….”
재원은 일단 다다다 달렸다.
유현이 오랜만에 만난 김일용 형사 그리고 김순구 배달원과 더불어 얘기를 나누다 늦게 잠들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쩌겠나.
알려야지.
혼자서만 이런 중대 사안을 알고 있다간 끙끙 앓다 쓰러질 수도 있었다.
적어도 재원은 그랬다.
“교수님. 교수님!”
“어……. 뭐야.”
다행히 유현은 오랜 병원 생활로 인해 누가 깨우면 바로 일어나는 사람이 된 지 오래였다.
게다가 정신 차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짧았다.
“방금 박원상 교수님한테 방송이 왔어요.”
“응? 몇 신데. 4시…… 넘었는데.”
“김조은이 청와대로 가고 이 시간부로 거기 책임자가 되었다는데요?”
“응? 아니……. 그게 말이 되나?”
박원상은 한번 거의 팽당하다시피 하지 않았었나?
이용 가치가 있어서 버려지지 않았을 뿐, 엄청 고생하는 것 같은데 갑자기 책임자?
‘함정인가……?’
유현은 퍼뜩 이런 생각부터 들어서 재차 물었다.
“목소리 어땠어. 주변 소음이나 이런 건 어땠고?”
“일단 무조건 녹음되게 되어 있으니까 들어 보시면 될 텐데……. 제가 듣기론 딱히 불안해하거나 하는 기색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일단 김태평 팀장 깨워 봐.”
“제가요?”
“어. 화낼 거니까 조심하고.”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