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남산은 (2)
1호, 박기태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런 식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퍽 오랜만이었다.
언제였더라.
그래, 애국심…….
아니, 그런 숭고한 뜻은 아니었다.
‘출신 성분 때문이지. 시발…….’
아버지가 탈북민 출신이라는 게 나중에 밝혀진 것이 화근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아버지의 장사 수완이 보통이 아니다 보니 그간 여기저기 쑤셔 넣은 뒷돈이 많았단 건데…….
그럼에도 북한으로의 강제 송환을 간신히 막는 데 그쳤다.
그 말은 곧 이제 막 공안이 되었던 박기태의 출셋길이 완전히 틀어막혔단 뜻이었는데, 이를 한 방에 타개하고도 남을 만한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기회라는 꼬리표를 단 독약이었지만.
그 후로는 기억이 흐릿했다.
처음엔 고열 때문이었다.
-버려.
실패작으로 정의된 이들에게 당의 조치는 단호했다.
아니, 잔인했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그렇게 박기태는 아직 살아 있던 여러 실험실 동기들과 함께 병원 근처의 들판에 버려졌다.
그나마 태워지지 않은 게 어딘가 싶긴 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대량의 화장 시설이 실험이나 유린의 현장을 들키게 되는 단초가 된다는 걸 학습한 당국 덕택이니 다행이라 할지 아니라 할지…….
-다 죽었……어? 여기.
그렇게 방치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미 버려질 때부터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고열이 뻗치고 있던 와중이었다 보니, 시간 가는 것은커녕 주변에 있던 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한국말이 들려온 것은.
밖으로는 그렇게 출신 성분을 숨기려 했던 아버지였지만, 집 안에서는 오히려 한국어 가르치기에 힘썼던 탓에 딱히 통역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여기 살았습니다.
-살아? 흐음……. 신원은?
-얼굴이 많이 상해서…….
-서둘러. 걸리면 위험해.
수상쩍은 놈들이었다.
하긴 중국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한 벌판에, 그것도 시신들이 널려 있는 곳에 와 있는 한국인들이 일반적인 놈들이겠나?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버려질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몸 상태가 더 엉망이어서 그랬다.
-박기태……. 이놈 같은데요?
-자원했다는? 별……. 아무튼, 가져가 보지. 위에서 이 건에 대해 관심이 많아.
그러나 귀만은 멀쩡해서 대화는 듣고, 기억할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기억을 잃는 지점이 있다 보니 어떻게 한국으로 들어왔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이 새끼……. 이거 경련하는데요?
-야야, 조심해. 물릴라. 왜 지랄이지?
-모르겠습니다. 어……. 이거…….
-심장 멈추네……. 아이씨. 이럼 이거 나가린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덜컹거리는 차 안이었다.
눈을 떠 보니 주변엔 방호복을 차려입은 인원이 있었는데,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눈앞이 새카매지면서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땐…….
‘정유현…….’
감염내과 교수가 있었다.
기억이 온전했냐고 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혼미할 따름이었다.
무언가…….
머릿속에 자신을 조종하려는 것이 자리한 것처럼.
-물어…….
그래, 지금처럼.
하지만 그보다 뼛속 깊이 각인된 것은 애초에 이 실험에 참가한 계기였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출세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을 주워 온 놈들이 만들어 둔 위조 신분증이 도움되었다.
아마 중국인이라는 게 확인되었다면 그 즉시 문제가 생겼을 텐데, 뭐가 되었건 한국인이라는 생각에 그들은 국적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았더랬다.
-이놈인가? 다시 살아났다는 놈이?
물으라는 명령에 이따금씩 정신을 잃어버렸고, 겨우 정신을 차려서 자신이 묶여 있는 것을 확인했을 무렵 또 누군가가 불쑥 찾아왔다.
의사들도 돌아가면서 찾아왔으니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 나타난 놈은 그냥 봐도 위험해 보였다.
뭐랄까…….
얼굴보다는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나.
-밖은?
-정리됐습니다.
-그래, 그럼. 데리고 가지.
이놈이 뭔가 하더니 배에 주사가 푹 하고 꽂혔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땐 시골이었다.
웬 할머니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어?
-물어…….
처음 보는 사람이었음에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눈길이었다.
좋은 사람 같았다.
그러나 주변에 위험 요소가 없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그는 그 할머니부터 물었다.
물고 나서 뭘 더 한 건 아니었다.
헤쳤다기보다는 그저 물었다.
-뭐, 뭐야!
-어, 어어!
그때 그 환희…….
뼛속 깊이 새겨지던, 그제야 명령을 수행했다는 깊은 충만감은 여태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기억은 흐릿했다.
그저 물고, 먹었다.
“이놈이군.”
잠시 회상에 잠겨 있으려니, 누군가 앞으로 다가왔다.
더 가까이 와 준다면 박살 내 버릴 수 있을 텐데…….
겁쟁이 놈은 창살 밖에서 멈추었다.
그런 주제에 눈은 독사 같은 기운을…….
‘아.’
그 옆에 있는 놈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었다.
세 번이나 자신을 잡아 가둔 놈이었으니.
“너……. 너!”
“왜 이러지?”
“아무래도 김선태 중장님을 알아본 모양인데요?”
“아.”
대통령은 옆에 있던 김선태를 돌아보았다.
꼭 필요할 말만 하는 편인 김선태는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둘 사이 인연이 깊긴 하겠군그래.”
대신 대통령이 후후 하고 웃고는 다시 1호, 박기태를 돌아보았다.
박기태는 여전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저 얼굴…….
저놈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머리에 안개처럼 껴 있던 것이 사라지고 난 이후로는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여간 기억도 한다 이건가. 화도 내고? 적절한 감정 반응인데.”
“네, 거짓말도 합니다. 간단한 거지만…….”
“어떤?”
“뭐, 안 물 테니까 가까이 와 보라는 둥…… 하는 말이죠.”
“아, 그렇군. 장족의 발전인데, 그래.”
대통령은 여유를 잃지 않은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외에 다른 심험체들을 돌아보면서였다.
아무래도 다른 것들은 김선태나 나머지에게 딱히 억하심정이 없다 보니 별 반응이 없었다.
다만 노려보고 있기는 했다.
막말로 원래 비감염자였던, 그러니까 생존자들을 잡아다 물리게 하고 가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둘만 더 데려가지. 어차피 2차 감염도 확인한 거 아닌가?”
“그, 그렇긴 합니다만……. 청와대 측에서 어떤 실험을……. 거기 실험실이…….”
“아, 그건 걱정 말게. 세브란스를 수복했거든.”
“아.”
“연구 중심 병원으로 선정해 두길 잘했지, 뭔가.”
대통령은 실로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세상이 망했으니 이제 와 누가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보통은 세상이 망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걸 본인이 주도했다는 사실에 참담함부터 느껴야 할 테지만…….
애초에 그럴 만한 인간이라면 지금까지 뻔뻔스레 살아 있지도 못할 터였다.
“그리고…… 자네도 가 줄 텐데 뭐.”
“네? 저……. 저 말입니까?”
그런 거야 다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이 말은 퍽 놀라웠다.
왜냐.
김조은은 여기서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에 그랬다.
게다가 생활도 만족스러웠다.
이렇다 할 결과가 아직 안 나오고 있긴 했지만…….
“여기는 어쩌고…….”
“설비를 놀릴 수야 없으니, 진행은 해야겠지. 박원상? 그 사람이 있지 않나.”
“임상 의사고…….”
“괜찮네. 거기가 메인이 될 테니.”
김조은도 김조은이지만, 이 시설을 담당하고 있던 준장의 표정이야말로 볼만했다.
그는 그대로 토사구팽당한 셈이지 않나.
김조은과 주요 실험체들이 빠져나간 마당에도 보급이 될까?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너무 걱정은 말게. 얼마 안 지나 이쪽까지 세력권이 이어질 테니까 말일세. 그럼.”
대통령은 김조은의 주도하에 연구 자료를 싹 긁어다가 헬기로 향했다.
“너……. 너! 내가……!”
그 자료에는 당연하게도 1호와 다른 실험체 둘도 포함이었다.
박기태는 배에 틀어박힌 마취탄을 내려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별 소용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불의의 습격이라도 하게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라드고 나발이고 간에 별 소용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잘 버티네.”
“그러니까요. 곰도 쓰러질 양인데.”
“그만큼 간이 비대하겠지?”
“네, 아마도.”
데려온 군의관과 함께, 김선태는 병사들에게 지시해 박기태를 옮겼다.
쓰러진 후에도 경계를 아끼진 않았다.
이런 놈은 잠시만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위험할 테니.
“끄윽…….”
“윽.”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수갑을 빙자한 철갑이 채워진 실험체들은 그 길로 들것에 실린 채 헬기로 이송되었다.
‘뭐지……. 지금 무슨 일이……?’
그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있던 박원상은 귀를 벽에 대고 있었다.
같은 방을 쓰는 이들도 다 깨서 그를 보고 있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괜찮을 것 같았다.
애초에 다 깨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굴고 있지 않나?
너무도 시끄러웠다.
뭘 옮기는지 뭔지 덜컹거리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복도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데,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것이 확실히 심상찮아 보였다.
“박원상에게 여기 총괄하라고 하면 돼.”
“하지만 그는…….”
“상관있겠나? 연구 안 하면 죽을 텐데.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갈아 치우면 그만이지.”
“아……. 저는…….”
“자네? 자네는 지금처럼 있게.”
“그…… 네, 각하.”
거기에 더해 방금 들린 대화가 결정적이었다.
‘뭐지.’
박원상은 쿵쿵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이곳을 담당한다?
흐음.
그렇게만 된다면……?
‘그럼 나는……. 이 자식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박원상이 잊을 수 없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험체도 꾸준히 공급될 겁니다. 지금보다는 줄어들겠지만.”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김선태.
김태평에게 들었다.
모두가 한통속이었겠지만, 눈앞에서 버린 놈은 김선태였다고.
아내가 그렇게 된 것은 김선태 때문이었다고.
‘망할…….’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김선태의 육중한 몸과, 그가 함부로 죽이던 이들의 모습들이었다.
머리로는 대통령이 제일 무서운 놈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몸이 반응하는 건 김선태였다.
‘시발…….’
박원상은 욕설과 함께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도…… 잘된 일이야.’
억지로, 간신히 행복 회로를 돌리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잘된 일이긴 하지 않나?
김조은이 계속 여기 있었다면 아무래도 뭔가 할 수가 없을 터였다.
그가 사라진 상황이라면…….
준장과 아무래도 좀 껄끄러운 사이가 된 지 오래라지만, 대체제가 없는데 어쩌겠나.
‘정 안 될 거 같으면 라드들을 풀어 버려도 되지.’
자폭 행위가 될 공산이 크겠지만…….
수틀리면 그렇게 할 생각까지 있었다.
뭐가 되었건 숨어 있을 수 있는 곳도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