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탈주 (4)
“비가…….”
김민수는 인상을 쓴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침 고민하던 참이었다.
쫓을까.
아니면 여기서 일단 한 번 더 정비를 할까.
“어떻게 할까요?”
구우준은, 그러니까 일행 일부를 이끌고 선두에 서 있던 그는 고개를 돌려 김민수에게 물었다.
라드 대부분은 본부에 남아 있긴 했다.
그렇다고 재정비가 되냐?
그럴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뭘 더 안 부수면 다행일 지경이었다.
김민수가 있는 상황에서라면 나름대로 지시에 따를 수 있는 놈들이지만, 그가 없으면 통제가 쉽지 않았다.
“흔적은?”
김민수도 비슷한 생각이었기 때문에 뒤를, 본부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물었다.
구우준은 거역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한을 느끼면서도 그의 물음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아직……. 어느 정도는 추적이 가능합니다.”
모닝은 가벼운 차다.
때문에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가는 경우라면 진짜 어지간히 타이어가 더럽지 않은 이상 흔적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어떠한가.
제대로 남아 있는 게 더 드물었다.
사람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도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해서 모닝은 흙이나 다름없는 도로를 달려야 했고,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럼 가 보지. 헬기……. 헬기가 대체 어디서 왔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이 근방이다, 이건데…….”
김민수나 구우준 모두 산속에 있지 않았나.
헬기가 총에 맞았을 거란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옥상 위에 있던 것들에게는 제대로 된 언어 능력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비상 착륙 같은 걸 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다만 요란한 소리로 하늘을 어지럽히던 것이 금세 사라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을 거라 가늠할 뿐이었다.
“이놈들도 헬기가 있는 쪽으로 갔을 거야. 미리 입을 맞춘 게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사라져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네, 아마도요. 일단 그럼…… 쫓겠습니다.”
“그래.”
김민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구우준은 방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여러 거대 개체 그리고 하나의 초거대 개체가 따랐다.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비가…….
그렇지 않아도 추운 날씨에 비까지 내리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민수로서는 이제 와 추적을 그만두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번…… 공격은 압도적으로 손해만 봤어.’
라드와 인간들의 싸움이란 대개…….
라드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라드가 공격하는 입장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디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 있다고 해 봐야, 중세 시대 성도 아닌데 방어에 용이한 건물이 몇이나 있겠나?
효과적인 원거리 무기가 없는 이상에야 인간은 월등히 강력한 신체를 앞세운 라드에게 속절없이 당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쓰러진 이들 중 태반은 은신처에 숨겨 둔 식량 덕분에 라드로 화하게 되었고.
‘총……. 이런 망할 놈의 새끼들…….’
하지만 총이 있다면 얘기가 달랐다.
일단 돌격할 때 손실을 피할 수가 없지 않나?
심지어 이번에는 초거대 개체가 하나, 거대 개체는 무려 셋이나 죽었다.
엄밀히 말하면 죽어 가고 있긴 하지만, 살릴 수 있는 방도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헬기만 없었다면…….
그러니까 옥상에 내몰렸던 놈들을 라드로 만들었다면 최소한 손실 본 인원만큼 회복할 수 있었을 터였다.
어쩌면 중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전력이 더 늘어났을 수도 있었을 테고.
‘도망을 가……?’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어차피 옥상으로 몰아 다 물어 버리면 회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무리해서 들어갔는데, 헬기가 와서 제대로 된 놈들은 죄다 태워 가 버렸다.
남아 있던 것들은…….
얼마 안 가 죽어 버릴 게 뻔한 노인들이나 팔다리가 성하지 못한 것들뿐이었다.
꽤 건장한 것들도 있었지만, 놈들은 워낙에 저항이 심했던 탓에 제압 과정에서 심하게 다쳐 버렸다.
물기는 했다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민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 저쪽으로 향했습니다.”
“저기…… 낯이 익은데?”
그사이에도 쉬지 않고 움직인 일행 덕에 김민수는 어느 길목에 다다라 있을 수 있었다.
방금 말했듯이 언젠가 한번 와 봤던 곳이었다.
구우준이 터를 잡고 있던 곳은 아니었다.
그곳은…….
제아무리 라드로 이루어진 무리라 해도 제정신으로 있기 어려운 곳이었다.
김민수야 괜찮다 해도 본능의 지배를 받는 라드 놈들에게는 그러했다.
“아……. 전에 말씀드렸던, 군부대가 있는 방면입니다.”
“군부대라……. 그러고 보니 그 헬기…… 군용 헬기 같던데.”
“네. 아무래도…… 그쪽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럼 어디로 갔는지 알았군.”
“네.”
“이건 안 좋은데.”
김민수는 총알이 빗발치던 전장을 떠올렸다.
구우준 측과 싸울 때랑은 느낌이 아예 달랐다.
수십 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작정하고 쏴 대는 총탄의 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군부대라면…….
못해도 아까보다 더하지 않겠나?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기는 할 겁니다.”
“으음……. 응? 저기도 군부대인가?”
“네?”
김민수는 찝찝한 마음에 고개를 가로젓는 와중이었다.
돌아갈까 싶었다.
여기서 돌아간다는 의미는…….
지금 추적을 접는다는 의미보다는, 아예 이 자체를 접는다는 의미에 가까웠기에 입맛이 한없이 썼다.
“저기, 저거.”
“음……. 아뇨. 이 근방에 와 봤는데……. 저긴 군부대가 아닙니다.”
그의 말에 구우준은 어두운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힘을 주어, 김민수가 가리킨 곳을 살폈다.
대강 봐도 군부대는 아니었다.
말이 군부대 방면일 뿐, 여기서 그곳까지 가려면 10km 이상은 더 가야 했으니까.
게다가 주변 치안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처음 갔을 땐 군대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했을 정도로 라드가 많지 않았나.
당시엔 인간이었기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동떨어져 있던 군인 분대 하나를 통으로 털어먹었고 총도 몇 정 입수하긴 했지만…….
좋은 기억은 별로 없는 곳이었다.
“그래, 그렇군. 근데 사람이 있는 거 같은데…….”
“사람이요?”
“저기.”
“어……. 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김민수의 손가락 끝을 열심히 살피다 보니 무언가 일렁이는 불길이 보였다.
주변으로 시커먼 인영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아까 그놈들일까? 아니면 군인?”
“모르겠습니다. 이쪽으로는…… 원체 오랜만에 와 봐서.”
“그렇긴 하지. 군인들이라면…….”
“위험합니다.”
구우준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름 정예라 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수가 적었다.
애초에 그 둘, 모닝에 탄 둘을 쫓기 위해 온 것이었기에 그랬다.
사실 그것도 쫓았다기보다는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려고 온 참 아닌가.
그런 목적을 두고 있었는데 많이 데리고 오는 것은 지나친 낭비였다.
“위험하겠지. 가까이 가서 본다면 어디까지 되겠나?”
“그……. 음.”
구우준은 불만을 표하려다가 말았다.
군인이라면, 뭔 장비를 가지고 있을지 어찌 안단 말인가?
막말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열 감지 장치라도 들고서 경계를 서고 있다면 도로 위에 올라서는 순간 덩치 큰 표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 뻔했다.
‘아니, 아니지……. 그런 장비가 넘쳐나는 것들이었으면…….’
그러나 그랬다면…….
이 근처는 물론이거니와 관계가 깊어 보이는 본부 근방까지 싹 정리가 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가뜩이나 폭격 때문에라도 다른 지역보다는 라드가 적은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행동반경이 딱히 넓지 않았던 건 그만한 장비나 인력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밤이고 비도 오니……. 적어도 100미터까지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가까이 갈 수 있구만그래.”
“네. 하지만…… 다 가기엔 너무 크고 또…….”
“이놈들이 조용히 하는 데에는 소질이 전혀 없지.”
구우준의 눈길이 머무는 곳으로 김민수의 시선 또한 향했다.
여러 라드 놈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한시도 쉬지 않고 발을 굴러 대거나 크릉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구우준이나 김민수도 일반인에 비하면 시끄러운 편이긴 했다.
이성이 있다고 해도, 본능을 어찌하기는 어려웠다.
괜히 호르몬에 지배를 받는 존재란 말이 있겠나.
충동.
이건 김민수도 구우준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둘이 가지.”
“네.”
해서 둘은 나머지 놈들에게 근처 폐허 밑으로 가 있으라고 해 놓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찰박이는 소리와 함께였다.
어찌 된 놈의 비가 갈수록 더 거세지고만 있었다.
“아, 잠시.”
“아.”
그럼 보통은 경계가 누그러져야 정상일 텐데…….
몇몇이 우비도 없이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중에 군복 입은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누가 봐도 군부대 측인 듯했다.
무엇보다 저 중앙에 놓인 물체는 헬기였다.
“뭐지?”
“이상합니다. 군부대는 꽤 먼데……?”
왜 군부대로 가지 않고 이 애매한 곳에 내려앉았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긴 할 터였다.
“연료 문제일까?”
“어쩌면 여기서 운영하는 것일…… 아니, 아니겠군요.”
구우준은 주변을 면밀히 살핀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에 저 많은 놈들이 산다고 하기엔 뭐가 너무 없었다.
“군부대로 가려다 여기에 섰다 이건데…….”
“어쩌죠?”
“이게 일부라 이거지. 으음.”
“그래도 많습니다.”
박중 대위가 이끌고 온 병사들만 해도 열이 넘는 상황에, 원래 옥상에 있던 이들 중 정예들까지 뒤섞여 있다 보니 이게 만만하게 보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끌고 온 이들로 어찌할 수 있을까?
안 될 터였다.
말이 안 됐다.
‘안 돼……. 어려워.’
김민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제야 구우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여기서 들어가자고 했으면…….
죄 죽지 않겠나?
진짜 이건…….
“가지.”
“네. 어……?”
“왜. 걸렸나? 그럼 뛰어야지.”
“아, 아뇨. 저쪽……. 저쪽도.”
구우준은 그렇게 미련 없이 튀려다 말고, 우연히 시선이 닿은 곳에서 일렁이는 불길을 보았다.
착각인가 싶어서 다시 봤지만, 확실히 뭔가 있었다.
“어…….”
“가…… 볼까요?”
구우준의 말에 김민수는 잠시 고민했다.
원래 고속 도로였던 이 도로를 통으로 횡단해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제야 전체 지도가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상하행 휴게소였던 모양이었다.
그사이에는 나름 녹지도 있어서 꽤나 거리가 멀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만약 반대편에도 이만한 수가 있다면 두말할 것 없이 도망가야 할 터였다.
하지만, 저쪽에 자리 잡은 것들의 수가 적다면?
‘그럼 물어야지.’
쭉정이라도 지금은 수가 급한 상황이지 않나.
“가 보지.”
“네.”
해서 둘은 반대편 휴게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비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