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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18화 (218/323)

218화 탈주 (3)

“흐아아압! 죄, 죄송합니다.”

“아니, 아냐. 시발놈이 딱 맞춰 놨네. 좀만 더 참아 봐.”

“네, 넷…….”

김태평은 숨겨 두었던 모닝을 타고 무작정 내달리다가, 전에 봐 두었던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마당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헬기를 확인했더랬다.

텅 빈 하늘에 홀로 요란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내며 날아갔으니 일반인도 아니고 요원쯤 되는 사람이 확인을 못 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차피 헬기를 보낼 곳도, 돌아갈 곳도 정해져 있지.’

수원.

정확히 말하자면 수원 비행장.

‘시발 새끼들이……. 헬기를 보낼 거면 더 좀 도와주지……. 아니, 아닌가. 하긴, 그쪽 입장에서는 여기 있는 인원 전원이 필요했던 건 아니긴 해.’

김태평은 요원의 옷가지를 대강 찢어 냈다.

그러곤 총상 흔적을 면밀히 살폈다.

그냥 관통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건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래……. 이참에 정유현 교수나 나…… 대원들 일부만 흡수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지.’

김태평은 지금 당장 총알을 어떻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일단은 지혈만 하는 게 좋아 보였다.

총 맞은 마당에 다행이라는 말을 쓴다는 게 적절치 않기는 했지만, 하여간 뼈가 다친 건 아니지 않나.

어차피 여기서 총알 빼고 뭐 한다고 해 봐야 당장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 아프다?”

“네. 흐……. 흐으으으!”

해서 김태평은 방금 찢어 낸 옷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후 요원의 다리를 동여맸다.

아래쪽으로 피가 아예 안 통할 정도로 맸다가는 안 매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하기에, 딱 피만 어느 정도 멎을 정도로만 힘을 주었다.

그랬음에도 요원의 입에서는 신음이 송골송골 새어 나왔다.

그와 함께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놈들이 바라는 대로 되긴 했어. 본부에 있는 물자들……. 귀한 것들은 대개 옥상으로 옮겨 놨으니 챙겼겠지? 쓸모없는 사람들까지 챙겼을 리는 만무하고…….’

김태평은 수원 비행장, 즉 대령 측의 심계를 나름대로 추측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당장 부하를 또 잃게 생긴 마당이었으니.

“이거……. 먹을 수 있겠어?”

“아, 네.”

김태평은 수원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둔 채, 유현이 챙겨다 주었던 약을 건넸다.

항생제와 소염제 등이 섞인 알약이었는데 어지간한 감염은 이걸로 해결이 가능할 거라고 했더랬다.

지금이야 무슨 과 의사인지 모를 정도로 이것저것 다 보고 있는 양반이지만, 알고 보면 국내 최정상의 감염내과 의사이지 않았나.

허투루 건네준 건 아니겠거니 싶어서 신줏단지 모시듯 잘 챙겨 두고 있었다.

“그래, 잘 삼켜. 너 지금 슬슬 열나거든? 이게 뭐 때문인지를 모르겠네. 정신은 어때.”

“또렷합니다.”

“그래.”

김태평은 억지로 약을 삼키고 있는 부하를 보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무리 봐도 눈이 좀 흐려지는 거 같은데…….

본인이 멀쩡하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확실히 이래저래 의사는 필요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름 의료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나라에 살다가 다 박살 나고 나니 더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일단…… 가자고. 이리로 와.”

“네. 그나저나…….”

“그나저나 뭐.”

“짐 된다 싶으면 일단 두고 가십쇼. 저 혼자서도 일주일은 너끈합니다.”

“지랄.”

일주일?

지금 봐서는 하루도 힘들어 보였다.

일단 식량도 턱없이 부족한 데다가, 무엇보다 식수가 문제였다.

자고로 열이 나면 물이 많이 필요한 법 아니던가.

“오기나 해.”

“네.”

해서 김태평은 비척거리는 부하를 부축하여 다시 모닝에 탑승했다.

그러곤 남아 있던 총 중 한 정을 부하에게 건넸다.

“다른 거 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오른쪽만 봐. 그리고 이상한 거 있으면 말하고. 알았어?”

“네.”

“사주 경계한답시고 고개 쳐 돌리고 하지 말라고. 가뜩이나 어지러울 텐데 그러다 기절한다.”

“네. 걱정 마십쇼.”

“걱정 안 하게 할 거면 총을 맞지 말든가.”

“하하……. 아, 아야…….”

나름 베테랑인 것이 다행이었다.

일반인이었다면 경계는커녕 짐이 되었을 터였다.

‘그랬으면 버리고 갔을 테니 마음만은 편했으려나…….’

김태평은 쓸데없는 생각을 애써 지우며 액셀을 밟았다.

가뜩이나 길이 엉망이라 큰 차들도 다니기 어려운 상황인데, 타고 있는 차가 모닝이다 보니 선택지가 더더욱 제한되고 있는 마당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원래 다니던 길엔 잔해가 너무 많았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사실상 기적을 바라고 달렸다고 보면 되었다.

아까부터 바퀴 하나가 덜그럭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구멍이 난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은 곧 속도를 냈다간 뒤집힐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어차피 속도 낼 만한 도로가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비……? 비까지 내려?’

그 와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어 어둑하던 거리가 숫제 깜깜해졌다, 이 말이었다.

심지어 비의 기세도 심상치가 않았다.

장대비였다.

이렇게 되면…….

‘어지간한 건물은 위험해.’

관리되지 않는 도시는 생각보다 나약한 법이었다.

일단 하수도가 넘치는 경우도 많았고…….

건물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도 컸다.

가뜩이나 이 근처는 폭격을 받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이런 시발.”

김태평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대강의 지도가 머리 안에 있기는 했다.

하지만 어둡고 비까지 오는 상황에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모닝에 헤드라이트가 남아 있기는 한데…….

“일단 천천히 간다.”

“네.”

“경계……. 잘해. 보이는 게 있기는 할는지 모르겠다만.”

“네, 팀장님.”

그렇다고 저 안에?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비가 흔적을 지워 버릴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모닝을 타고 온 거리 자체가 별로 안 되지 않나.

라드 놈들이라면…….

후각과 더불어 다른 감각이 모두 예민한 데다가, 아까 본 그놈들처럼 지능이 뛰어난 놈들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원래 머릿수보다는 줄었겠지만…… 지금 상태라면 대여섯 놈만 있어도 위험해. 죽는다…….’

요원 하나가 멀쩡했다고 해도 저런 건물에서는 제대로 된 방어를 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도 혼자였다.

물론 총이야 쏘긴 할 텐데…….

제대로 쏘겠나?

저기 있으면 죽은 목숨이라고 해도 좋았다.

‘차라리 비가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라드 놈들…….

덩치가 큰 만큼 장거리 이동에는 불리한 놈들이었다.

실제로 냉전 시대에 이루어졌다던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잘 보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이용한 실험들이 있었지 않나?

하지만 마라톤이나 장거리 달리기에서 그러하듯, 지속적인 이동이 가능해야 하는 특수 부대의 특성상 오히려 과다한 근육은 불리하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비까지 온다면…….

부우웅

김태평은 애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이어 나가며 액셀을 밟았다.

그에 따라 모닝은 덜컹거리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빨리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정도에 불과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차는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팀장님.”

“왜.”

김태평은 요원에게 의식이 있는 한 우측 경계는 완전히 맡겨도 좋다고 여기고 있었다.

어둡기도 하거니와 길도 개판이다 보니 운전자가 사방을 경계하는 것은 낭비이지 않겠나.

해서 우측과 정면만 주시하고 있었더랬다.

“방금……. 불 같은 걸 본 거 같아서요.”

“불……?”

그 와중에 이상한 말을 하니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환상을 보나 싶었다.

실제로 옆을 봤을 땐, 아무것도 안 보여서 더더욱 그랬다.

“네. 저기.”

“어디를 가리키는 거야.”

“저……. 저 끝에. 지금은 없는…… 아, 방금.”

“?”

도깨비불 같은 걸 보나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게 말이 되나 싶었겠지만.

말로만 듣던 좀비 비슷한 것들이 세상을 멸망시키고 있는 상황 아닌가.

귀신이고 나발이고 다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서 좀 무서워지려는 찰나, 김태평의 눈에도 무언가 일렁이는 것이 스쳐 지나갔다.

“어……. 그래.”

“네, 있다……. 있다니까요.”

비 때문에 그리고 거리 때문에 또 어둠 때문에 확실치는 않았지만, 저 거리 어딘가에 무언가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라드……. 라드일까?’

라드들이 불을 피운다.

이상한 일이지만, 아까 본 놈들은 총도 쏘는데 불이라고 못 피우겠나?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빛이 일렁이던 곳이 본부에서 더 떨어진 곳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라드 놈들이 날고 기는 놈들이라고 해도 차보다 빠를까.

그놈들 수도 많고, 다 지능이 높은 것도 아니니 통제도 쉽지 않았을 텐데…….

‘다른 라드 놈들이라면……. 불 피우는 게……. 말이 안 되지.’

아까와 같은 놈들이 많을까?

그랬다면 벌써 다 죽었을 터였다.

조준 사격이 가능한 라드라니…….

그게 다수였다면 어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놈들이 극소수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부우웅

해서 김태평은 사람들일 거라고 판단한 후, 차를 그쪽으로 몰았다.

너무 어둡고, 잔해를 피해 돌아오느라 한참을 헤맸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오산 휴게소인 거 같은데…….’

휴게소.

수원 비행장을 오가던 길목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 주변을 돌아서 가긴 했더랬다.

그 말은 곧 주변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는 얘기였고, 김태평은 그렇게 살핀 정보를 본능적으로 차곡차곡 모아 두는 편이기도 했다.

‘폭격을 맞은 흔적은 없었어. 하지만…….’

휴게소는 그 특성상 입구가 많을뿐더러 벽 또한 유리 벽이지 않나.

거기에 음식도 꽤 쌓여 있고, 이런저런 물품들도 많은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은신처로써 훌륭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약탈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여기저기 깨진 곳이 많았지. 시신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사람이 살았다면 부대에서 가깝기도 하고, 오가는 차량을 딱 볼 수 있는 위치이니만큼 어떻게든 확인이 되었을 거야.’

같은 이유로 라드 또한 지금은 거기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방금도 일렁이는 무언가를 확인했다.

아까보다 가까워진 마당이었기 때문에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는데, 건물 안쪽에서 불을 치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최근에 자리한……. 아니면 오늘 온 방문객이 피운 불이라는 얘긴데…….’

높은 확률로 본부 측 사람들일 터였다.

유현 쪽이야 헬기를 타고 갔을 테니 논외로 친다면, 오예리 형사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럼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지.’

일단 픽업트럭으로 왔을 테니 그러할 것이고, 저들의 전투력 또한 보통은 아닐 테니 도움이 될 터였다.

점점 액셀에 올린 발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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