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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17화 (217/323)

217화 탈주 (2)

“수원은 어느 방향…… 어디로 가죠?”

“모르겠군요.”

“하.”

“흠.”

오예리, 이순규 그리고 요원 하나는 픽업트럭을 탄 채 일단 본부 쪽에서 빠져나온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빠져나오는 것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에,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더랬다.

그래 봐야 도로 사정이 개판이다 보니 막상 달린 거리가 긴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고개를 돌려보면 본부가 있는 산자락이 선연히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라드 놈들이라고 날아다니는 건 아니기에 이만하면 충분히 달렸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지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몸집과 무게는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정신 나간 엔지니어라도 등장하지 않는 이상, 라드들에게 탈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보면 되었다.

“교수님이 계시면……. 참 좋을 텐데.”

“그러니까. 유현이가 이럴 때 정말…… 의지가 됐죠.”

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헬기 쪽을 바라보았다.

“저기, 교수님이 타고 계시겠죠?”

“네. 그렇겠…… 아! 저걸 따라가면 되겠네요!”

“아, 맞네. 이 멍청한…….”

“하필 반대로 달려왔네. 그러고 보니 당연히 수원 쪽으로 갔을 텐데.”

헬기는 누가 봐도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걸 어찌 아냐고?

아무리 망한 세상이라지만 해는 늘 그렇듯 서쪽으로 지고 있지 않나.

그거 하나만 알아도 북쪽이 어딘지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팀장님도 살아 계신다면 수원으로 가셨을 겁니다. 가시죠.”

게다가 이들 중에는 요원도 끼어 있었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훈련받는 이들이지 않나.

게다가 지금까지 김태평과 함께 살아남은 이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실제로 골든 트라이앵글에 동떨어졌던 상황에서조차 살아남았던 이들 중 하나가 여기 있었다.

“네.”

“가죠.”

물론 김태평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나머지 둘이 커버해 줄 수 있는 영역이었다.

전직 형사이자 뛰어난 저격수인 오예리와 라드화가 진행되었던 이순규라면 충분히 가능해야 옳았다.

부우우웅

픽업트럭은 이내 수원 쪽으로 머리를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 경계가 필요해 운전대는 정신을 차린 요원이 잡은 참이었다.

오늘 안에 갈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으니.

게다가 이 셋의 무장 상태 또한 형편없어진 지 오래였다.

너무 많은 탄약을 소모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했었으니…….’

오예리는 마지막 남은 탄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이순규는 사정이 좀 나았다.

탄창 두 개는 있었으니.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으려니, 이순규가 탄창 하나를 건네주었다.

“어?”

“어차피 저는 쏘지도 못해요. 손가락이 굵어져서…….”

“그, 네. 알겠습니다.”

“저는 그냥 이게 편합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실제로 이순규는 오예리에게 접근하는 놈들을 물리적으로 떼어 내는 게 더 편했다.

제아무리 인간으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차분한 조준 사격이 가능할 정도는 또 아니어서 그랬다.

“그나저나…… 하늘이…….”

“하필 이럴 때…….”

픽업트럭 뒤에 타고 있는 둘에게는 하늘이 더 가까이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평소에도 그러할진대, 오늘은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실제로 구름이 가라앉아 있어서 그랬다.

새카만 먹구름이 자욱하게 번져 가고 있었다.

저 멀리 떨어져 내린 해는 이제 희미한 붉은 점으로만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되었건 비가 되었건 한바탕 쏟아질 모양이었다.

“일단…… 지붕 있는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정 안 되면…….”

“천이라도 덮어야죠. 오히려 잘된 것일 수도 있어요.”

“라드 놈들도 비나 눈에는 쥐약이긴 하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모두들 표정이 좋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막말로 라드 놈들에게도 위협적인 것이 비나 눈 아닌가?

더군다나 지금은 겨울이었다.

독감이라도 걸리게 되면…….

‘제길.’

‘망할…….’

일행 모두가 독감으로 누군가를 잃어 본 경험이 있다 보니 더욱더 무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 상태에 놓인 인간은 연약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심지어 지금 일행은 이렇다 할 보급 물품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밖으로 나올 때, 대규모 전투는 상정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오래 머물 생각도 안 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저기!”

요원은 부리나케 차를 달리다가, 폭격에 맞아 무너진 건물 사이로 보이는 납작한 건물을 가리켰다.

주변으로는 꽤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 외에는 어두워서 확인이 불가했다.

“일단 가죠! 으…….”

벌써 후두둑 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마당이었다.

정말 잠깐 노출되었을 뿐임에도 둘 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끼이익

헤드라이트 하나가 나간 탓에 진짜로 보이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해서 아무렇게나 세워 뒀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붕이 있긴 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폭격에 완전히 벗어나 있었는지, 주변에는 새카맣게 그을린 흔적조차 없었다.

“이, 일단 안으로! 와, 엄청 젖었네요. 괜찮아요?”

동료 하나를 독감으로, 그것도 베테랑 요원이었던 동료를 그렇게 잃은 경험이 있는 요원은 권총 하나만 달랑 챙긴 채 둘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찌지직

삐걱대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쥐새끼들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

평소라면 눈살을 찡그렸을 장면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쥐가 있다는 건…….

주변에 쥐를 잡아먹을 수 있는 야수가 없다는 얘기 아니겠나?

그리고 이 시대의 야수는 곧 라드들을 의미했다.

그 말은 즉 라드가 없다는 뜻이었다.

“다행이군요.”

“네, 제가 불을 지피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날씨가…….”

“어후…….”

오예리와 이순규는 몸을 부리나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몸이 굳어서 그랬다.

애초에 비가 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추운 날씨에 노출된 마당 아닌가.

요원은 독감이나 다른 질환이 걱정되었기에, 덜덜 떨고 있는 둘을 보면서 급히 불을 붙였다.

다행히 이 건물이 무슨 장사를 하던 데였던 모양인지 불붙일 만한 것이 많았다.

화악

그렇게 불을 붙이자, 열기와 함께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다다다닥

그러자 쥐들이 더 멀리 흩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주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

“휴게소였나?”

“그럼 우리 오산 휴게소에 있는 건가요?”

빛바랜 상호들과 조리 기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에 버려진 시신들도 있었는데, 이제 와 그런 것들이 새삼 끔찍하게 여겨지진 않았다.

그저 안심이 될 뿐이었다.

“꽤 가까이 왔군요.”

“무리하면 갔을 수도 있었겠는데.”

“아뇨, 아닙니다. 비행장 남부는 무법지대예요. 라드 놈들도 하나도 정리가 안 되어 있고……. 생존자 무리들도 이제 와서는…….”

“그것도 그렇긴 하죠.”

“흐음.”

“무엇보다 두 분 뭐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요. 빨리 몸이나 말리고 계십쇼. 제가 경계 서고 있겠습니다.”

요원은 권총을 든 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초거대 개체가 아니라 거대 개체 정도만 되어도 사실 권총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곰처럼 두꺼운 가죽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일단 질량 자체가 깡패여서 그랬다.

하지만 쥐들이 있지 않나.

라드는 없다고 단언해도 좋았다.

그러니 지금 경계를 서는 건, 그야말로 만에 하나 있을 일을 염려해서일 뿐이었다.

“먹을 건……. 저희가 들고 온 것으로 때워야 할 거 같습니다. 여기 뭐……. 엉망이네요.”

“그렇겠죠. 지금까지 뭐가 있을 리가 없죠.”

“네. 어차피 수원으로 튀면 그만 아니겠어요?”

그렇게 20여 분가량이 흐르자, 이순규도 오예리도 몸이 녹아서 제대로 된 활동이 가능해졌다.

머리도 돌기 시작하자, 슬슬 연기가 걱정이 되었다.

“그건 그렇고 이거 어쩌죠?”

20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휴게소 안쪽은 연기가 자욱해진 지 오래였다.

이대로 계속 있다간 질식해서 죽을 터였다.

다른 누구보다 이순규가 제일 잘 알았다.

“일단…… 문이라도 열죠. 불을 끄는 건…….”

그렇다고 불을 꺼?

그건 무리였다.

날씨가 너무 추웠다.

게다가 사실 옷도 다 안 마르기도 했고.

‘난 괜찮아. 하지만 오예리 형사는…….’

강인한 사람이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이지 않나?

호르몬의 세례를 받은 자신과는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대가로 수명을 적잖이 바치긴 했겠지만…….

‘날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돼.’

해서 이순규는 문을 열고 위를 바라보았다.

연기가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기세에 비하면 하늘 위로 향하는 연기는 턱없이 적었다.

비 때문이었다.

“이만하면…….”

“절대 모르겠군요.”

“네, 비가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순규는 그렇게 흩어지고 있는 연기를 보다가 이내 불가로 돌아왔다.

자욱하던 연기도 사라졌겠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니 드디어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팀장님……. 어찌 되셨을까요?”

“건물에 있던 사람들도 걱정이에요.”

“그러니까…… 라드 놈들이 그렇게 강할 줄이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김태평 팀장님은 걱정하지 마시죠. 그 양반이 어디 이런 데서 죽을 사람입니까?”

이순규는 유현을 떠올리다가, 이내 요원을 위로했다.

생각해 보면 유현이야 헬기를 탔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그게 어디 추락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수원 비행장에 있을 터였다.

최우식이나 양재원 등 그가 아끼는 이들 태반이 그렇게 되었을 터였다.

그에 반해 김태평은…….

‘아까 올 때 차가 그대로 있었어. 흐음.’

그의 말에 요원도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네……. 이진호 형사도 있으니까요. 사실 전력이라면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진호가……. 진호가 보통은 아니죠.”

오예리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

‘아까…… 어렴풋이……. 아냐, 아닐 거야.’

차량 뒤에 누워 있던 무언가.

바지가 비슷했던 것 같긴 한데, 제대로 본 게 아니다 보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요원 말대로이지 않나?

김태평만 해도 괴물이다. 거기에 이진호와 다른 요원들까지 있는데 그깟 일반 라드들에게 당할 리가 있겠나.

뭔가 대단한 변수라도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 노래 제목이 뭐예요?”

오예리는 초조해진 나머지 저도 모르게 노래 하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초조할 때만이 아니라 그냥 습관적으로 흥얼거리던 노래다 보니, 이순규의 귀에도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아, 이거요. 죄송해요.”

“아뇨, 아뇨. 듣기 좋아요. 그냥 제목이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아…….”

오예리는 잠시 얼굴을 붉히다, 입을 열었다.

“이화동……이란 노래예요.”

“이화동? 홍대 옆에?”

“아, 네. 노래 이름이 그거예요. 제가 자취하던 동네라.”

“아……. 흐음. 기회가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 보고 싶네요.”

“꽤 좋아요. 노래 받아 둘걸. 맨날 앱으로 스트리밍만 해서……. 제일 후회되는 일 중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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