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탈주 (1)
타타타타타타
로터 두 개가 동시에 돌아가는 꽤 거대한 수송 헬기는 힘겹게 날아가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정비는커녕 연료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간신히 띄웠던 헬기인데, 규정 인원을 초과한 데다가 심지어 총까지 맞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망할.”
이제 기장은 초조함을 감추지도 않았다.
남은 거리가 그리 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은 연료는 더 적었다.
“밑에 찾아봐. 멀쩡한 건물 있는지! 나중에 급유 가능한 곳으로!”
“네!”
그렇지 않아도 주변을 살피고 있던 부기장을 비롯한 박중 대위 등 수원 비행장에서 온 병사들이 좀 더 열심히 아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말이 쉽지, 멀쩡한 건물이면서 동시에 나중에 급유가 가능한 곳을 만족시키는 곳은 거의 없었다.
이 근방은 정말로 깨끗하게 폭격을 진행해서 그랬다.
육안으로 볼 때 멀쩡해 보이는 옥상도 막상 헬기가 내려앉으면 무너질 공산이 컸다.
실제로 폭격이 끊긴 후에도 한동안은 비가 오거나 하면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던가.
최근엔 차가운 날씨에 더해 눈까지 내려 더더욱 많은 건물들이 붕괴하거나 붕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아 저기!”
그러다 어떤 병사 하나가 오산 휴게소 쪽을 가리켰다.
건물은 이미 불탄 재가 되어 있었다.
제대로 뭐가 떨어졌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운동장 등은 멀쩡히 남아 있었다.
몇몇 생존자들이 주변에 천막이나 텐트를 쳤던 흔적이 있긴 한데…….
지금도 누가 살고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저기면…… 그냥 좀 더 가면 비행장입니다!”
“안 돼! 지금 뒤에 로터는 이미 섰어!”
“네? 아!”
저기서 불과 몇 킬로만 더 올라가면 비행장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확실히 로터가 서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프론트 메인 로터 또한 털털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좀만 더 갔다간 착륙이 아니라, 추락하게 될 것이 뻔했다.
“간다! 엄청 흔들릴 거야! 떨어지지 않게 다들 꽉!”
로터가 돌아가는 와중이다 보니 기장의 외침은 정말 근접해서 붙어 있는 사람들만 들을 수 있었다.
군용이라는 것들이 다 그렇지 않나.
사용자의 편의보다는 그냥 돌아가는 데 초점을 맞춘 물건들.
모든 물자가 부족해진 지금과 같은 마당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잡아요! 내려갑니다!”
“떨어진다!”
“잡아!”
무슨 가족오락관처럼 말이 전달될 때마다 왜곡이 있었다.
가장 먼 곳으로 전달될 때쯤에는 실제로 헬기가 무서운 기세로 강하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 추락한다!”
“잡아!”
“다들!”
그냥 추락으로 생각되었다.
사실 반쯤은 추락이기도 했다.
유현은 욕설과 함께 주변에 있던 이들을 붙잡았다.
재원과 우식 그리고 우식의 아내와 지민 등이었다.
김 주무관이 보이지 않아 돌아보니, 벌써 병사들 사이에 껴서 잘 붙잡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아무래도 뒤에 있는 로터가 멈춰 있어서 그런가, 뒤쪽부터 땅에 닿았다.
닿았다는 표현은 사실 너무 점잖은 편이었고, 뒷바퀴 두 개가 완전히 박살이 난 채 사방으로 뻗어 가고 있었다.
기기기기긱
다행인 것은 앞으로 날아가던 속도가 꽤 느려져 있던 터라, 앞으로 끌려가는 거리가 별로 길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으, 으아아아!”
그럼에도 충격에 무려 세 명의 사람이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그중 하나는 폐허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기이한 방향으로 목이 꺾인 채 축 늘어졌다.
다른 둘이라고 해서 딱히 사정이 나아 보이진 않았다.
물론 안에 남은 이들도 크게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흐……. 으…….”
기장은 잠깐 사이에 바짝 젖어 버린 이마를 훑어 내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아는 얼굴은 다 안에 남아 있었다.
이리저리 부딪쳐서 좀 다친 사람들은 있었지만, 적어도 안에 남은 이들 중에는 거동이 불가할 만큼 다친 이들이 없어 보였다.
다만 헬기는 문제였다.
“이걸 시발 어쩐다.”
기장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손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불쾌했다.
거기에 헬기를 어떻게 옮기나 하는 걱정까지 더해지자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이렇게 됐구나.”
“지나가면서만 봤지……. 실제로 들어와 본 건 너무 오랜만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싣고 온 인원들이 다들 썩 괜찮은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대원들과 유현의 일행들뿐이지 않나.
차라리 그대로 잘 날아왔다면 옥상에 남겨 두고 온 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진하게 남아 있었을 텐데, 거의 추락하다시피 이상한 곳에 떨어진 탓에 뒤보다는 앞을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웅성대는 대원들과 병사들 사이에서, 유현이 우식 그리고 재원과 함께 박중 대위에게 향했다.
어느새 중천에 떠 있던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여기서 밤을 지새워야 할는지도 몰랐다.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비행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9킬로.
하지만 비행장의 북부만이 인간들의 영역이고 남부엔 서성이는 라드들이 꽤 있기 때문에, 실제 이동하게 되면 훨씬 멀게 느껴질 것이 뻔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일단……. 이 헬기는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헬기는 주요 자원이었다.
‘가라니까 오긴 왔는데……. 헬기가…….’
박중 대위는 뒷바퀴 쪽이 박살 난 헬기를 바라보았다.
아마 저 정도는 다른 헬기에서 떼다 붙이든 어쩌든 하면 해결할 수 있을 터였다.
정비 인력의 수준이 꽤 대단하지 않던가.
전쟁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 대한민국 군대의 특성상,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이어 나가고 있는 부대는 오히려 정비나 의료와 같은 전투 수행 능력 유지를 위한 부대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이걸 이대로 두면…….”
“생존자들이나 라드나 와서 깽판을 치겠죠.”
“네. 헬기가 있고 없고가…….”
“이번에 절감했습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유현을 시작으로 그의 일행들 그리고 대원들이 와서 인사를 건넸다.
비록 몇몇 희생자들……. 심지어 의도적으로 배제된 이들이 꽤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덕에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살아났다는 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나.
그렇게 한참 감사 인사와 아니라는 겸양이 오가고, 다시 대화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원을 반으로 쪼개서 먼저 가고, 남은 반이 지키고 있을 수도 있지만…….”
박중 대위의 말에 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이번에 살려 온 인원 중에 병사들도 몇 있는 건 사실이었다.
거의 탄창이 빈 상태이지만, 헬기에 있던 탄약을 보급받으면 전투를 수행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부상이 있던 자들이지 않나.
유현이 치료해 줄 수 있던 부분은 어느 정도 치료해 주었지만 잘린 다리나 팔을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뇨. 지금 이 상황에서 나누어서 다니는 건……. 둘 다 위험할 겁니다.”
“그렇죠.”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인원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일이 있겠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지 않나.
게다가 유현도 그렇고 나머지 인원도 그렇고 다들 지쳐 있었다.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마당인데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럼 여기서 밤을 보내죠. 좀 쉬고……. 식량도 실어 왔으니…….”
“아, 네.”
식량.
옥상 위에 두었던 것들.
유현은 그제야 헬기 중앙에 놓여 있던 물건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맨날 보던 박스들이었음에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건, 그만큼 경황이 없어서이기도 했거니와…….
‘식량 때문에 사람들이 버려졌군. 그래……. 본부장이 그래서 죽었어.’
어쩐지 부리나케 움직였다 했다.
아니, 그 전에 생각해 보면 이런 세상에 어찌 호의로만 여기까지 헬기를 보내왔겠나.
다 바라는 것이 있었을 터였다.
이걸 깨달은 이가 비단 유현뿐인 것은 아니었다.
옥상 위에 있던 이들은 죄 알 수밖에 없었다.
맨날 보던 건데, 어쩌겠나.
‘하지만…… 그래도…….’
이들 덕에 일부라도 살아난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식량을 가져왔다 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 아니겠나?
헬기 연료만 해도 구하기 어려울 텐데, 그 와중에 일부가 망가지기까지 했으니.
“자, 드시죠.”
“네.”
“네네.”
불 피울 필요가 없는 식들로 저녁을 때우기 시작했다.
그사이 해는 더 넘어가서 하늘엔 붉은 노을이 불타고 있었다.
“그나저나, 놈들이 쫓아올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망한 세상에 그나마 봐 줄 만한 것이 있다면 하늘이었다.
인간이 두 발을 디디고 살던 땅은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하늘만은 오히려 점점 더 아름다워져만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럴 수 있겠지만…… 멀어요. 12킬로는 될 겁니다. 평소에 차 타고 다닐 때조차 본부에서 비행장까지 2시간 이상 걸릴 때가 많았어요. 걸어온다면…… 더 걸릴 겁니다.”
박중 대위의 물음에, 입맛이 없음에도 꾸역꾸역 마른 식량을 집어넣던 유현이 대꾸했다.
단지 희망 회로를 불태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라드는 장거리 이동에 불리하다는 걸 여러 번 확인하지 않았나.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보건소에서 도망가다가 중간에 다 죽었을 터였다.
“게다가 놈들을 이끌고 있는 놈은 지적 능력이 있어요. 그 안에 저희가 남겨 두고 온 것을 수색하거나 하지, 무리해서 쫓을 거 같진 않습니다. 물론 대비는 해 둬야겠죠. 이만한 화력이면…….”
“기습에 당하는 게 아니라면 수십 마리의 라드 정도는 순살할 수 있죠.”
박중 대위는 유현의 말에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원래부터 이렇진 않았을 터였다.
그저 사람 닮은 무언가를 도살하다 보니 절로 비틀어졌을 것이 뻔했다.
“그나저나…….”
유현은 순살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다른 곳에 나가 있던 일행이 어찌 되었나 궁금해서요.”
“아. 그러고 보니.”
이순규, 오예리 등 수원에 있는 이들도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이순규야 튈 수밖에 없는 인물이고, 오예리는 유현이 제일 믿는 사람 중 하나다 보니 자주 봐서 그랬다.
박중 대위는 끙 하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시대에 헬기가 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에 있든 봤을 겁니다. 이쪽으로 오고 있겠죠.”
“그렇겠죠?”
유현은 그 미소에 또한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소였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힘들었다.
이순규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오예리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메워 가고 있었다.
“교수님도 그 노래 좋아하세요?”
식사가 끝나고, 헬기 안에 대다수가 들어가 있을 무렵 유현은 밖에 나와 있었다.
총을 들고서였는데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
“그 노래요. 제목이 뭐더라.”
옆에 서 있던 재원이 물어 오는데, 유현도 제목은 몰랐다.
그저 멜로디만 알 뿐이었다.
간혹 오예리가 혼자 흥얼거리던 멜로디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