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습격 (5)
쾅위태롭던 옥상 철문이 박살 나면서, 주변을 감싸 놓았던 쇠사슬마저 죄 깨져 버렸다.
“아…… 안 돼!”
타다다다다당
아직 타지 못한 이들이 헬리콥터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들고 있는 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악!”
“으으으!”
순식간에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쓰러졌다.
안에 있던 이들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오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내리는 이가 없었다.
우식은 지민의 눈과 귀를 가리느라 여념이 없을 뿐이었다.
나름 저기 남은 이들과 친분을 다졌던 이들이 없어서일까?
“안 돼! 아저씨!”
재원도.
“아…….”
김 주무관도.
‘제기랄.’
말은 안 했지만 유현도 안타까운 마음만은 하나였다.
“어어어!”
“빨리! 빨리 띄워!”
그러나 마음만으로 어디 되는 일이 있다던가?
헬기에 탄 인원은 그저 달라붙는 생존자들과, 그 뒤로 밀려오는 라드들을 쏘기 바빴다.
동시에 기장도 부리나케 헬기를 띄웠다.
어차피 이곳 옥상엔 나름 헬기 이착륙장이 만들어져 있었기에, 그리 부담도 없었다.
애초에 헬기를 완전히 내려놓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붙었……. 붙었다! 쏴!”
그럼에도 날렵한 놈 하나가 헬기 바닥에 붙었다.
“어어어어어!”
그 순간 확 떠오르던 헬기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병사 하나가 밑으로 떨어졌다.
“으, 으아아악!”
떨어지는 위치가 나빴다.
하필 어깨로 떨어져서, 그쪽 어깨가 박살 나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질 지경이었다.
타다다다다당
가뜩이나 총까지 들고 있던 마당인지라, 순간적으로 연사로 총알이 튀어 나갔다.
그중 대부분은 그냥 허공으로, 또는 주변 라드나 사람들에게로 뻗어 나갔지만.
몇 발은 그대로 헬기에 꽂혔다.
“안 돼!”
기름이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기름을 겨우겨우 채워서 온 탓에, 기장의 얼굴이 곧장 하얗게 탈색됐다.
손실이 하나도 없었다고 가정해도 왕복 비행은 빠듯하지 않았나?
근데 이렇게 줄줄 샌다면…….
속도를 높이든가 해야 할 텐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가다가…… 가까이에서 서야 할 수도…….’
기장은 뒤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 그저 내달리기 시작했다.
곧 옥상의 지옥이 미니어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들러붙었던 놈은 벌써 손만 남긴 채 바닥으로 추락했으니, 남은 건 날아가는 일뿐이었다.
“흐아아…….”
“뒤질 뻔했네.”
박중 대위의 입에서 욕설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사태가 터지고 난 후로, 죽음은 늘 곁에 있었지만…….
방금은 진짜로 죽을 뻔하지 않았나.
진짜로…….
죽음의 위기가 스치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흐…….”
“아…….”
대부분은 그 여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딱 하나, 유현만 빼고 그랬다.
“오예리 형사……. 순규!”
정신을 차리고 안을 돌아보니, 안 보이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옥상에 남겨진 건 아니었다.
아예 다른 그룹에 있지 않았나.
‘처음부터 안 왔으려나? 그대로 수원으로…… 갔을까?’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았다.
지금 이 근처에 있다면…….
그건 죽음을 의미하지 않나.
‘오예리 형사…….’
가슴 한켠이 아려 오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단지 동료였으니까.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유현은 언제든 이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각오라고 해 두는 편이 더 옳을 테지만, 여하간에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이 순간 순규가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면,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오예리 형사에 대한 걱정이 훨씬 더 컸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야.’
유현은 기이한 감정은 묻기로 결심했다.
대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잠깐 당황한 사이 헬기가 더 멀리 날아간 탓에 본부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주변에 산까지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좀만 더 빨리 정신을 차렸다면, 차라도 보였을 텐데…….
“제길.”
욕설을 내뱉자, 옆에 있던 재원이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어쩔 수…… 없었잖아요.”
아마 다소간의 오해가 있었을 텐데,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으니.
그저 아래를 굽어볼 따름이었다.
“저기, 교수님. 위험합니다!”
“아, 네.”
주의를 들었음에도 별로 자세를 바꾸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익숙한 차량이 있지 않은지…….
그것만 살폈다.
부우우웅
그 시각, 오예리 형사와 순규 그리고 요원까지.
셋은 픽업트럭에 탄 채, 본부 근처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까…… 그 차 거기 서 있었죠?”
“네. 팀장님은 보이질 않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좀 살피고 나올 걸 그랬나…….”
운전대는 오예리 형사가 잡고 있었다.
이순규는 덩치가 너무 커서 차 안에 타기가 어렵지 않나.
그냥 타는 것만 해도 도전일 텐데, 운전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요원은…….
“이게 대체…….”
그는 아예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가 늘 의지했던 사람, 김태평이 사라지지 않았나.
“수원……. 수원으로 가고 계실 겁니다.”
“네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김태평은 마치 태산 같은 존재였으니.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운전대를 잡은 오예리가 정상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진호야……. 어디 간 거야.’
급하게 스쳐 지나오느라 자세히 보질 못했다.
얼핏 보인 시신이 눈에 익긴 했는데…….
확실할 수는 없었다.
차에 가려져 있기도 했고, 고개를 처박고 있어서 잘 뵈지도 않아서 그랬다.
옷은…….
‘모르겠다……. 아냐, 쉽게 당해 줄 놈이 아냐.’
막말로 독감도 ARS-24도 이진호 형사를 어쩌지 못하지 않았나.
아까 달려들던 그놈들…….
오예리와 이순규만 있었어도 별 어려움 없이 상대할 수 있었을 터였다.
더 이상 작은 라드들은 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으니.
그러나 가슴 한켠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을 어찌하기는 어려웠다.
부우웅
오예리는 그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액셀을 무작정 밟았다.
수원.
수원에 가면…….
볼 수 있겠거니 하는, 그런 막연한 기대를 품고서였다.
“크아아아!”
더군다나 이런 거리에서 멈추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한참 본부 측과 라드 놈들이 주변을 휩쓸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한두 번쯤은 라드 놈들을 마주했을 터였다.
본능에만 이끌려 사는 초기 라드들은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라, 꼴랑 차 하나만 내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무작정 쫓아왔을 것이 뻔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바탕 토벌이 있었기 때문에, 간신히 살아남은 놈들 몇몇이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울부짖는 것이 고작이었다.
“시내로 들어가면……. 위험할 수도 있겠네요.”
“네. 수원 측에서도 순찰을 줄였다고 들었어요.”
아스라이 들려오는 비명이 요원의 정신을 좀 깨운 덕일까?
그는 주변을 보며 걱정스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오예리 또한 아무 말이나 하고팠던 심정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에 대꾸했다.
“제가 잘 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당연한 말을 해 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쭉쭉 이어졌다.
그사이 이순규는 픽업트럭에 선 채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거대 개체급의 키를 지닌 그는, 픽업트럭 차체가 높기도 해서 꽤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헬기는 무리 없이 날고 있는 거 같고……. 김태평 팀장이랑 이진호 형사는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라드의 몸을 지니고 있지만, 정신만은 온전한 인간의 것을 유지하고 있는 그 아닌가.
사람의 몸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가진 인간이 그득한 세상에서 그는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선 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를 두고 간 그들이 앞서가고 있단 기대는 할 수 없어서 그랬다.
‘그 둘이…… 단순한 라드 놈들한테 당할 리는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둘 다 어떻게 되었을 거란 생각도 들진 않았다.
원래도 형사에 국정원 요원이지 않나?
더구나…….
최근 벌어진 일련의 토벌 작전에서도 둘의 활약은 어마어마했더랬다.
주로 라드보다는 인간들 상대로 벌인, 일종의 학살이었지만.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럼에도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라드의 본능인가 싶을 정도로 강력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헉, 헉.”
“저 새끼들…… 뭐죠?”
“몰라. 라드……. 라드는 맞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시발……. 으…….”
“어디 봐 봐.”
“으……. 괜찮…… 괜찮습니다.”
그 시각, 김태평과 요원은 산 정상쯤에 있었다.
거리를 두고 뛰어오던 라드 놈들이 살짝 멀어지는 것 같길래 잠시 양 갈래로 떨어져 총을 쐈던 게 화근이었다.
한 놈을 맞히긴 했다.
다리라는 게 문제고, 또 그것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긴 했는데…….
그것만이었다면 나았을 터였다.
‘괜찮다고……?’
요원의 다리에도 구멍이 났다.
총에 맞았다.
라드가 쏜 총에.
‘라드가…… 조준 사격을 한다고……?’
빈말로도 잘 쏜다고는 못 할 사격이긴 했다.
분명 탄창 하나를 다 비웠으니까.
그러나…….
여긴 산이다, 산.
나무가 있고, 바위가 있는 곳.
무지성으로 쐈다간 탄창 하나가 아니라 열 개를 비워도 단 한 발도 못 맞힐 수 있었다.
“괜찮습니까?”
“으……. 괜찮아. 아프긴 한데……. 이 정도야…….”
근데 맞혔다.
게다가 저 꼬락서니는 또 뭐란 말인가.
둘이 왜 저렇게 모여서…….
속닥거리고 있단 말인가.
‘한 발 맞았으면 비명 지르면서 튀든지, 아니면 달려들든지 해야 하는 거 아냐?’
왜 나무 뒤에 숨어서 속닥거리고 있어.
저러면 사람 같잖아.
그런데 따라붙는 것을 보면 절대로 사람은 아니었다.
훈련받아서가 아니라 그냥 힘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따라붙었으니까.
처음엔 비록 김태평이 뇌진탕이 있어 느렸다고 해도, 금세 회복해서 숫제 달리다시피 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그냥 아까 쏠 걸 그랬을까요?”
구우준은 총에 맞아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김민수를 보며 물었다.
관통상이다 보니 이걸로 죽을 것 같진 않았다.
다만 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니, 아냐. 지금 봤지. 이 거리에서, 이 상황에서 맞히는 거? 확실히 보통 놈이 아냐.”
“그건 알죠. 하지만.”
“됐어.”
“됐다고요?”
“시간은 우리 편이야.”
김민수는 입고 있는 옷 중 하나를 찢어다가 허벅지를 동여맸다.
이제 보니 전에도 총에 맞은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익숙해 보였다.
“우린 다른 수가 있잖아.”
“네? 어떤……?”
김민수는 구우준을 보며 피식 웃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곤 호르몬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길어진 성대를 이용해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냈다.
-우어어어어어어!
고요했던 산중에 있던 새들부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옥상에서 죽은 시신을 부수거나 살아남은 이들을 물어 감염시키고 있던 라드 놈들이 고개를 훽 하고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