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습격 (4)
오예리 형사를 위시한 셋은 총을 들고 무너진 바리케이드 사이를 통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속도가 팍팍 나지는 못했다.
그럴 수가 없지 않겠나.
근거리에서 마주치는 라드란 곧 재앙이니까.
해서 천천히, 위층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상한데.”
오예리는 중간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쯤 되면 와야 하는데…….
“왜 안 오죠?”
“누구…… 아, 팀장님이요?”
오예리 형사가 이진호 형사를 걱정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요원 또한 김태평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믿음이 더 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태평이 저따위 라드들에게?
그는 골든 트라이앵글…… 현세의 지옥이라는 곳에서조차 죽지 않았다.
“걱정 마시죠. 아까 봤잖아요. 차가 어디 박아서 느리게 오는 걸 겁니다.”
“음…….”
“커다란 놈들도 아니고, 우연히 휘말린 놈들 아니겠습니까? 팀장님도 계시고……. 막말로 이진호 형사님 싸움 실력이 이순규 교수님보다도 나은데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확신을 가진 요원의 말에 비로소 오예리 형사 또한 마음을 놓았다.
그래.
고작 그 정도 라드에게 뭐가 어떻게 되겠나?
게다가 총소리도 끊어진 마당이었다.
타다다다다당
무엇보다 위쪽이 급해 보였다.
이미 조준 사격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총소리마다 연사뿐이었다.
하긴, 근거리에서 조준이 뭐 얼마나 의미가 있겠나.
타다다다다당
해서 셋은 위로 향했다.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바닥이나 벽면 등에 워낙에 바리케이드용 고물들이 많다 보니 소리가 아예 안 나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 예민한 라드 중 어느 한 마리도 뒤를 돌아보고 있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뒤를 잡힐 수 있단 생각이 가능한 놈들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안이 너무 시끄러웠다.
타다다다당
콰과과광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던 수류탄까지 마구잡이로 터지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그와 동시에 한 층 위에 있던 라드 놈들의 육편이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제기랄.”
“조용.”
“네.”
셋은 그 육편을 피해, 조금 더 위로 향했다.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대개 라드들이었다.
화력을 모아 쏘고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할 텐데…….
문제는 이제 그 화력이라는 것도 끝물이라는 점이었다.
벽 뒤에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초거대 개체나 거대 개체들의 수가 많다는 것도 문제였다.
“젠장, 우측 뚫렸어! 위! 위로!”
이걸 어떻게 하나 하고 있으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이었다.
그의 말에 따라 두다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측이 뚫렸다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할 터였다.
하필 이놈의 건물이 너무 커서 계단도 세 개나 있지 않던가.
평소라면야 별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지금처럼 우글거리는 와중이라면 중대한 문제였다.
“흐아아아!”
“죽여!”
“물어……!”
그와 동시에 벽 뒤에 숨어 있던 라드 놈들이 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당
도망치면서도 총을 쏘고 있는 거 같기는 했지만…….
정자세로 쏘는 것도 아니고 뒤로 쏴야 하는데 뭐 얼마나 맞힐 수 있겠나.
게다가 쌓아 두었던 바리케이드가 그대로 놈들의 방호벽이 되어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으, 으아아악!”
더군다나 충원받았던 병사 중에서는 다리를 다쳤던 이들도 있다 보니…….
낙오되어 죽어 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다다다다
뚫렸다던 우측에서도 라드 놈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어, 어쩌죠?”
“우리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아, 잠깐만.”
셋이 올라간다고 도움이 될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까?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이 자리에 있던 모두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예리와 이순규는 유현 한 명 때문에라도 완전히 멈춰 설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요원과는 다르다, 이 말인데…….
그 순간, 이순규의 귓가에 낯선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네?”
“왜요.”
“잠깐 조용히.”
이 둘이 조용히 한다고 해서 의미가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위에서 또 총질하고 난리 바가지를 피우고 있지 않나.
마지막 바리케이드이니만큼 죽음을 각오하고 사수를 해야 한다, 이 말이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은 하나뿐이니 더더욱 그랬다.
심지어 위에는 나름 오래 버틸 수 있도록 화분 대용이 될 궤짝에 흙과 작물들을 옮겨 심어다가 가지고 있었다.
식량이나 침낭 등 필수 물품도 옥상에 다 있었고.
뭐…….
그래 봐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타다다다다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순규는 돌연 뒤로 돌더니 오랫동안 여닫지 않아 굳어 버린 창문을 억지로 뜯듯이 열었다.
힘이 어마어마한 장사라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제야 다른 이들도 이순규가 왜 조용히 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헬리콥터……?”
“군용…….”
“수원이겠죠?”
헬기가 하나 오고 있었다.
수송 헬기였다.
서른 명 이상, 무리하면 오십 명도 탈 수 있는, 꽤 거대한 군용 수송 헬기.
“들어줬구나!”
“그럼 우리는……!”
“우리는 아래쪽으로. 팀장님과 합류해서 도망갑시다!”
옥상 위에 너저분한 것들이 좀 있겠지만, 그거 치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무엇보다 저 헬기가 온 이상 위에서 뭐 더 버티겠나?
다 도망가겠지.
마침 남은 인원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도 않다 보니…….
한 대를 꽉 채운다는 전제하에 태우면 아마 다 태울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위에 상황을 정확히 모르다 보니, 단언은 어려웠지만…….
다다다다
하여간, 의견이 일치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행은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아래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 위에 있는 라드들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고, 그저 들이받고 있을 뿐이었다.
그사이 유현은 일단 무장이 빈약한 이들부터 옥상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들어가! 우리는 쏜다! 안 쏘면 다 죽어!”
“으아아아!”
“던져!”
“하아압!”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바리케이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기껏해야 책걸상 수준이지 않나.
라드가 가까이만 오면 바로 무너질 터였다.
다 빠져나가기 전에는 원거리 사격으로 제압을 해 줘야만 했다.
“총, 총알이 없어요!”
“옆에!”
“저도 이게 마지막입니다!”
“망할.”
문제는 그 원거리 사격도 지금껏 너무 많이 했다는 점이었다.
교활한 것들이 방금 물린, 그러니까 조금 전까지 같은 편이었던 이들을 앞으로 내모는 통에 더더욱 소모가 빨라졌다.
원래 이곳에 있던 이들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지만, 병사들은 알 게 뭐란 말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쏴 죽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쏴 댄 탓에 총알이 다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헬기 섰어요! 빨리! 타는 대로 튈 겁니다! 교수님!”
본부장이 유현을 끌고 뒤로 향했다.
뒤를 도니, 이미 재원과 우식 그리고 김 주무관 등은 헬기에 오르고 있었다.
그 외의 인원들, 그러니까 이곳에서 보호 중이던 인원들은 헬기에 타지 못하고 무언가에 살짝 막혀 있었는데 그건 왜 그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여간, 이제 더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지 않나.
튀어야 했다.
“네, 네! 이런 제기랄!”
라디오로 송신을 계속했던 덕에 튀는 건 가능해지긴 했다지만…….
이렇게 하나의 근거지가 송두리째 날아가는 건 역시나 뼈 아픈 일이었다.
“자, 병사들! 자네들도!”
유현의 뒤를 따라 병사들과 대원들이 달렸다.
그동안에도 보호 중이던 생존자들은 헬기로 향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송 헬기에 타고 온 병사들이 가로막고 있어 그랬다.
“우, 우리는요!”
“순서대로!”
“우리가 먼저 왔다고!”
“그럼 저 사람들 죽이자는 겁니까? 저 사람들 덕에 살아난 주제에!”
“그…….”
처음엔 이런 일침이 통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사라진 통에 계단을 오른 라드 놈들이 잠가 둔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사태는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두드리는 게 아니라, 문이 우그러지고 있었으니까.
얼마나 버틸까.
저 앞에 걸어 둔 쇠사슬까지 해도 1분? 2분?
“살려 줘!”
“시발 뒤로 물러나! 이 버러지 새끼들!”
해서 달려들려고 했는데, 돌연 수원 측에서 온 병사들이 총을 발사했다.
“으, 으아아악!”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본부장이 기함하며 달려들었다.
안 그래도 인솔자가 몇 번인가 본 얼굴이라서 그랬다.
“아시겠지만 수원은 식량이 부족해요! 대원들까지만 구조하겠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사람을!”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뭐, 나도 쏘겠다고?”
박중 대위.
사실상 수원의 칼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지휘관이 권총을 뽑아 본부장을 겨누고 있었다.
그 또한 사람이다 보니 총구가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 거리에서 못 맞히진 않을 터였다.
“어쩔 수 없죠.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식량이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너…… 설마……!”
“아닙니다. 이곳이 무너지길 바라고 있던 건 아니에요!”
“교, 교수님! 뭐라고 말씀을 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전에 헬기에 올라타 있던 유현을 본부장이 애타는 목소리로 불렀다.
유현이라고 해서 이 상황이 괜찮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있겠나?
하지만…….
“이분들 의견에 따라야 할 상황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내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여기서 마음 좀 편하겠답시고 죽으면,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은 다 뭐가 된단 말인가.
세상을 구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저지른 죄가 유현이라고 해서 딱히 없는 건 아니지 않나.
“교수님! 어떻게!”
“대원들 생각을 하십쇼!”
유현이 입을 다물자, 박중 대위가 소리쳤다.
들어가려다 멈칫거리고 있는 대원들을 가리키면서였다.
“이제 곧 무너져요! 그럼 다 죽습니다! 저 사람들 중에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어차피 가서 굶어 죽느니 여기서 죽는 게 나을 겁니다. 나도 나 좋자고 이러는 게 아냐! 명령이라고!”
“시발놈이!”
본부장은 욕을 남기고는 거꾸로 돌아 뛰었다.
그러곤 이제 덜컹거리며 반쯤 열린, 그 틈으로 벌써 라드의 손이 튀어나오고 있는 문을 힘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나 대신! 한 명은 태워 줘!”
몰라서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저 발악일 뿐이었다.
박중 대위는 쯧 하고 혀를 차다가, 이내 손에 잡히는 어린애 하나를 들이밀었다.
“태워.”
“나머지는요?”
“알 게 뭐야, 시발! 대원들 태워!”
“네!”
“저, 저도 남겠습니다.”
“저도!”
대원 중 둘이 더 남았다.
박중 대위는 하늘을 보다가,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둘 더 태워.”
그 꼴을 보고 있던 재원이 손을 슬그머니 들려는 것을, 유현이 말렸다.
“지랄 마. 넌 가서 더 많은 사람을 살려야지.”
“그…….”
“여기 있는 모두가 마음이 편할 거 같냐? 위선 떨지 마.”
“그…….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