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습격 (3)
“습격인가?”
“그런가 봅니다! 빨리!”
“돌아간다! 철수!”
구조 신호가 막 올라왔을 때, 김태평 일행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상대가 지척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자마자 발이 묶여 버려서 그랬다.
더군다나 생존자 무리를 찾아다니는 것도 이제는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뭐가 남아 있어야 말이지.
대량 학살을 진행해야 할 만한 일이 없어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긴 했지만…….
하여간,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을 죽인 것을 확인했는지 어쨌는지 그 후로 라드 놈들이 서둘러 움직이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더랬다.
부우웅
우우우웅
여러 연고로 근처에 있던 김태평과 오예리 그리고 이순규 등은 부리나케 본부 쪽으로 향했다.
“녹색이었으니…… 동쪽 입구야.”
“그럼 서쪽으로 가야죠.”
“그렇지.”
본부에서 이어지는 길은 두 개.
둘 다 결국, 산자락이 얼추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차로 들어가려면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부우웅
한 가지 착각을 한 것이 있다면 저들은 딱히 차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인간 사이즈에 맞춰 만든 차가 라드에게 잘 맞겠나?
게다가 액셀을 밟아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길을 따라 제대로 된 운전을 하는 건 어지간한 지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놈들은 산이고 뭐고 하여간, 길이 없어도 잘만 다니는 놈들이다 보니 그냥 그렇게 다녔다.
끼이익
해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라드를 마주해야만 했다.
“어……. 이 병신들이 색깔 헷갈렸나?”
운전하던 요원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고, 김태평은 일단 녀석의 뒷통수를 때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책임 소재를 따지는 건 어디까지나 일이 다 해결이 된 다음의 일이었다.
퉁일이 해결되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지금은.
“어, 저놈.”
해서 총을 쐈다.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초거대 개체 놈들의 위압감 때문에 뒤에 있던 진짜 적, 김민수나 구우준은 보지 못했다.
그에 반해 라드가 됨으로써 감각이 예민해진 구우준은 멀리서 들려온, 심지어 소음기까지 달아서 소리까지 죽인 총성을 듣고 방향까지 특정했다.
“왜.”
“저놈이…… 그때 학교에서.”
“아, 저놈인가!”
또 하나의 불행이 있다면, 김태평이 요주의 인물 중 하나라는 점이었다.
“안에 있던 게 아니로군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 주변 생존자 무리를 털고 있었으니까.”
“하긴……. 어쩌죠?”
구우준은 솔직히 저놈 저거 하나 잡자고 무리하다가 싹 뒤지느니 그냥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대장은 김민수이지 않나.
그의 말에 따라야 했다.
거스를 수 없는 피의 본능 아니, 바이러스의 명령이 그의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기에 그랬다.
“잡아야지. 저놈은 우리처럼 될걸.”
“하지만 이제…….”
“아직 있지.”
구우준은 뒤를 돌아보았다.
혹 이쪽으로 적들이 오게 되면 총알받이 용도로 쓰려고 남겨 둔 5마리의 라드가 있었다.
쭉정이들이라고 보면 되었다.
김민수의 분류에 따르면, 구식 라드라 했다.
이성이 더 남아 있는 라드를 적대시하기도 하는 놈들.
이놈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폭력에 굴복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을 물고 싶다는 본능 하나만은 건재해서, 지금도 옥상이건 어디건 간에 인간을 보면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이놈들이 물면요?”
“그럴 수 있겠나?”
“그건…….”
차에 탄, 그것도 총으로 무장한 놈을 문다?
거대 개체 정도나 되면 또 모르겠지만…….
이놈들은 김민수가 잡아 온 지 꽤 된 놈들이었고, 그동안 먹을 것도 제한을 해 뒀기에 피지컬만 보면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냥 주의만 끌어 주면 돼.”
“네, 그럼…….”
“어차피 저놈들이 지랄하면 이거 실패해.”
방금 초거대 개체 하나가 쓰러졌다.
당장에 죽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시간문제긴 할 것이었다.
의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의사가 있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있을까?
팔다리에 박히는 것 정도야 털고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까지 집중 포화를 받게 되면 무리였다.
“가자.”
“아……. 네.”
구우준이 보기에도 저기 저놈들이 후방에서 찌르고 들어오면 모르긴 해도 이 공세가 실패할 가능성이 팍 올라갈 것 같았다.
뭐…… 사실 지금 들어간 놈들만 해도 박살이 날 것 같긴 했지만…….
‘이제 옥상엔 아무도 없잖아?’
모르긴 해도 저 안은 슬슬 지옥이 되어 가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김민수의 말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졌다.
슬픈 건 딱히 옳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도 따라야 한다는 점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김민수라는 위인이 꽤나 똑똑한 데다가 충동에 넘어가는 일도 적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저놈한테 집착하는 건 이해가 안 가긴 하는데…….’
구우준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라드 놈들을 밀쳐 내고는 살짝 우회해서 김태평 일행에게 향하고 있었다.
“다 들어갔어!”
“시발…….”
“어쩌죠?”
오예리는 마지막 한 마리까지 머리통을 날려 버린 후, 물었다.
아무리 대단한 저격수라고 해 봐야 혼자 아닌가.
게다가 미친 듯이 내달리는 놈들을 어찌 다 맞힐 수 있겠나.
그나마 몇 마리라도 무력화시켰다는 게 다행이었다.
“들어……가야죠. 뒤에서 쳐야 합니다. 위험하겠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어, 잠깐.”
이젠 그것도 어렵게 된 마당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안으로…….
끄아아아
흐아
바람결에 비명이 섞여 들려오는 건 착각이 아닐 터였다.
저 안엔 정말이지 말 그대로의 지옥이 펼쳐지고 있지 않겠나?
“잠깐?”
해서 이동하고 있으려는데, 이진호가 운전석에 있는 요원의 어깨를 잡았다.
조수석에 있던 김태평이 왜 그러냐고 묻자, 간단한 말로 답했다.
“온다.”
“뭐……. 이런 미친!”
코를 킁킁대던 이진호가 수풀을 가리키는 동시에 작은 라드 5마리가 쇄도했다.
“컥!”
“밀어, 밀어 버려!”
“쏴!”
말이 차지, 창문 같은 건 깨져 나간 지 오래인 SUV 아닌가.
그나마도 오예리와 이순규 그리고 요원 둘이 탄 차는 픽업 트럭이었다.
한창 달리고 있던 때라면 또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만한 라드들도 꽤나 커다란 위협이었다.
투두두두
훈련받은 요원은 물론이거니와 저격수인 오예리조차 제대로 조준할 생각도 못 하고 마구잡이로 쏴 대고 있었다.
이순규가 근거리로 온 놈들의 머리통을 깨 주지 않았다면 이것만으로도 뒤따르던 오예리 일행은 박살이 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퉁그런 상황에서, 구우준과 김민수의 총격이 시작됐다.
수풀 너머에, 그리 정성을 다해 은폐를 하지도 않고.
“어……. 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둘이 아주 대단한 사수는 아니란 점이었다.
해서 애초에 운전수를 직접 맞힐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앞서가는 라드나 맞히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기고 있어서 그랬다.
대신 SUV의 앞쪽에 대고 갈겨 대고 있었는데, 그중 몇 발인가가 바퀴에 맞았다.
“이거 왜 이래! 병신아 운전……. 운전!”
“어……!”
가뜩이나 산길이지 않나.
포장이 살짝 되어 있긴 했지만 오랜 시간 방치됨으로 인해 오프로드 그 자체였다.
눈 치울 사람도 없는 만큼 진흙이었고.
그 와중에 바퀴 하나가 나가 버렸으니 이게 나갈 수 있겠나.
엎어지지 않고 나무에 갖다 박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상황이었다.
팍또, 변수가 하나 더 있었다.
이진호.
라드.
그러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뭐야?”
“저거……. 우리 편인데?”
그는 들고 있던 소방용 도끼로 가까스로 다가온 라드의 어깻죽지를 날려 버리고, 발로 차 밀어 버렸다.
커다란 라드들이 뛰어들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랐을 텐데.
그게 아니다 보니 요원들과의 싸움에서 라드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으…….”
“물렸어?”
“제길. 쏴.”
한 명이 당하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이대로 다 무너질 건 아니었다.
“그냥 가! 이대로 두면 다 죽어!”
“네, 네!”
해서 오예리 일행이 타고 있던 픽업 트럭은 순식간에 멈춰 버린 SUV를 두고 지나쳐 달렸다.
구우준과 김민수 둘 다 그쪽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일단 급한 건…….
김태평이었으니까.
탕“컥……?”
불의의 습격이었다.
이진호는 배에 난 구멍을 내려다보며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독감에 걸려 죽는 줄 알았다.
아니, 사실 며칠간은 아예 기억이 없었다.
그러다 깨어나니 팔뚝에 물린 자국이 있었다.
그와 함께 찾아온 명령.
-물어.
다행이라고 할까?
몸이 말이 아니다 보니 그 명령을 이행하는 대신 그저 발작만 일으켰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참을 만해졌다.
그러나 무언가를 때려 부수고 싶다는 충동 자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그래서 밖으로 나가길 자원했다.
솔직히 서른 명가량의 생존자를 죽일 때, 그때가 제일 속이 시원했다.
‘그래……. 어쩌면…….’
시원하다고 해서 피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간혹 정신이 온전해질 때면, 손부터 씻었다.
이진호의 손이 너덜너덜해진 것은 그러한 이유였다.
툭주마등이 스쳐 지나가고, 다음으로 이진호 형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정 바퀴였다.
“뭐야!”
“총……. 컥.”
김민수, 구우준은 계속해서 쏴 대고 있었다.
이진호가 죽어 나가건 말건 알 바란 말인가.
이들의 눈에는 보이는 건 오직 하나 김태평뿐이었고, 김태평은 방금의 충돌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뇌진탕이 왔다.
“으……. 으…….”
“팀장님! 이쪽으로!”
이제 남은 인원은 그까지 둘.
“두고……. 두고 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 못 걸어.”
남들이 죽어 나가는 동안, 특히 이진호가 시간을 확 벌어 준 동안 그들은 차에서 내려 올라가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총 쏘는 놈 둘은 상정 외의 전력이었으니까.
“어쩌죠?”
“따라가야지.”
그사이 구우준과 김민수는 비틀거리며 올라가는 김태평의 뒤를 잡았다.
사격에 좀만 더 자신이 있었다면 부축하는 놈만 쏴 죽이면 될 텐데, 그건 도저히 무리일 것 같았다.
해서 잠자코 따랐다.
“후우. 후우.”
그 모습은 기괴한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라드가, 그것도 총 든 라드가 나타나리라고 상상이나 해 봤겠나?
게다가 그놈들이 다른 놈들은 가차 없이 쏴 죽이고 딱 김태평만 물기 위해 쫓아온다고 생각할 수 있겠나?
망상이나 다름없었다.
해서 요원은 어마어마한 공포와 함께 걸어야 했다.
다행인 것은 김태평이 두고 가라고 했던 것과는 달리 나름 잘 걷고 있다는 점이었다.
타다다다당
아까보다 가까이서 총격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발원지는 당연하게도 건물 안이었다.
“미친.”
뒤늦게 안에 들어선 이순규, 오예리 그리고 요원의 입에선 욕설부터 나왔다.
개고생해서 마련해 둔 바리케이드가 깡통처럼 찌부러져 있었다.
초거대 개체의 짓이 분명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게 대체 몇 놈이나 되냐는 건데…….
“위에는 괜찮을까요?”
“그러길 바라야죠. 그래도 병사가 한둘은 아니니.”
일행은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각자의 무기를 쥔 채 앞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