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습격 (2)
다음 날이라고 해서 별안간 다른 날이 닥치진 않았다.
김태평은 하루 만에 여상한 얼굴이 된 채, 여전히 낯빛이 그리 좋지 못해 보이는 요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돌았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원도 조금 줄였다.
후방에서 지원해 줘야 할 오예리 형사와 그런 오예리를 지켜 줄 이순규 정도만을 대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확실히…… 이놈들 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어요. 어쩌면…….”
“이제 거기가 아니라 이 근처에 있을까요?”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산기슭 근처에도 놈들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 좀 보시죠.”
“제기랄.”
김태평이 무언가를 발견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를 발견한 것은 이 근방만을 순찰하는 대원들이었다.
본부장과 유현은 그들이 들고 온 흔적, 즉 배설물을 보며 인상을 썼다.
단지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식량이…… 충분한가 본데…….’
일부러 한 덩이를 통째로 들고 온 모양인데 양이 많았다.
아니, 많다는 말보다는 거대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이건 숫제 소똥 아닌가?
이만큼이나 싸 재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많이 먹는다는 얘기였다.
“저기, 교수님 지금 뭐 하시는……?”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게로 배설물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라드는…… 특히 이만큼이나 쌀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놈들은 아무래도 부주의성이 더 크지.’
라드는 단순히 흉포해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충동 장애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그 말은 곧 모든 일에 부주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뭔가를 씹지 않고 삼키는 경우가 많았다.
“흐음.”
“아니, 지금……. 아이구. 이거.”
유현은 뼛조각을 찾고 있었다.
특히 사람의 뼛조각을 찾고 있었다.
‘이놈들은 식인종이 아냐.’
식인종이 판치는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건 이제 더 이상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또 한창 먹을 것이 부족한 도시에서 지냈던 이들에게는 라드가 사람을 먹는 것 또한 특이한 일이 아닐 터였다.
그러나 라드에게 인간은 감염시켜야 할 대상이지, 식량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체 식량이 있는 한 절대로 사람을 먹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들보다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없군…….”
이제 배설물 근처에는 유현만 남아 있었다.
애초에 안으로 들고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보았기 때문에 유현과 나머지 인원 사이의 거리는 제법 벌어져 있었다.
때문에 유현의 중얼거림을 당장에 들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네?”
그나마 가까이에 있던 재원이 이렇게 물어 왔다.
그제야 유현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적거린다는 심정으로 이리저리 헤집어 놓고는 고개를 들었다.
“사람 뼈가 없어. 이것들 다른 걸로 배를 채우고 있는 모양인데…….”
“아……. 그거…….”
“모조리 감염시키고 있다고 치면, 수가 꽤 많을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다른 흔적은?”
유현은 인상을 쓴 채 대원을 돌아보았다.
대원은 쉬이 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기술을 익힌 적이 없어서 그랬다.
다만 배설물이 있던 곳 주변에 꽤나 많은 배설물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기억했다.
“그렇군요. 흐음……. 거참.”
그 말을 전해 들은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뜩이나 머리 좋은 놈들이 있는데…….
수도 늘었고, 먹을 것도 충분하다.
이렇게 되면 위험하지 않나?
“저기!”
그때 옥상 위에서 경계를 맡던 김현철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딘가를 가리키면서였는데 뭘 가리키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변고가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슈우우욱
김태평이 맡기고 갔던 구조 요청탄이 위로 발사되었다.
“빨리!”
“네!”
“네!”
다행한 것은 일단 이쪽에도 남은 인원이 적지 않다는 점.
그리고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 정도일 터였다.
일행은 미친 듯이 위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계단이 높아서가 아니라, 바리케이드를 이리저리 쳐 놔서 그랬다.
옥상 위에서 그냥 막을 수 있으면 제일 좋기야 하겠지만…….
그게 되겠나?
끼이익
일행은 급히 바리케이드를 치웠다가 다시 닫고 올라가고를 반복하면서, 겨우겨우 옥상에 닿았다.
탕탕탕
이미 총을 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기슭 근처에서 이미 놈들이 보이고 있었다.
퉁퉁퉁
이전에도 이랬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닌데…….
차이가 있다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으아아아!”
“크억!”
선두에 선 것들은 크기가 작았다.
동시에 나이도 제각각이었다.
그 말은 곧 고령의 라드들이 꽤나 뒤섞여 있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빨랐다.
두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지경이었다.
“저게 대체 다 어디서…….”
“쏴!”
“쏘라고!”
물경 기백을 헤아리는 작은 라드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병사들 중 일부는 패닉에 빠질 지경이었다.
애초에 트라우마가 있던 이들이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럴 만하다고 해서 그렇게 둘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나?
이번에 뚫리면 트라우마만 남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죽을 게 뻔했다.
“쏴!”
유현은 뺨 때리는 일조차 불사한 채 병사들을 독려했다.
물론 그 자신도 쉬지 않고 쏴 댔다.
타다다다다당
탄약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다.
이번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다음은 없지 않겠나?
해서 연사로 마구 쏴 대고 있었다.
“큭.”
“커억.”
당연하게도 직선으로 내달리던 놈들 중 태반이 쓰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옥상 위의 사람들의 표정은 펴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으로! 안으로 들어왔어!”
“모두 몇이나 왔지!”
“그건 몰라요!”
“일단 밑으로! 다섯! 다섯만 가!”
“네!”
안으로 들어온 녀석들이 있었다.
덩치가 크지는 않지만, 솔직히 라드 놈들 덩치가 그렇게 중요하던가?
작은 놈이라도 앞에서 지랄발광하기 시작하면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특히 지금 밑에 있을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터였다.
노약자들밖에 없으니…….
“또, 또 온다!”
“쏴!”
그렇다고 위에를 소홀히 할 수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미 100마리가 넘는 라드가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은 건재했다.
타다다다당
심지어 이번 적은 교활하기까지 했다.
일단 앞서가던 놈들 뒤에 숨어 온 탓에 화력이 줄어들어 있었다.
게다가 쓰러진 놈들을 방패 삼아 오고 있었기에 쓰러지는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엄폐물이 될 만한 것들을 죄 철거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태반이 건물에 당도했을 거란 생각마저 들 정도로 엄청난 돌진이었다.
“조준! 조준 사격해!”
연사로 드르륵 긁어서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바닥 또는 허공으로 튀는 총알이 너무 많지 않나?
아까와는 달리 흩어져서 뛰어오고 있는 데다가, 움직임도 다채롭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서 김현철, 본부장, 유현 등이 고래고래 외쳐 대고 있었다.
그들 몇몇은 벌써 쏘는 방법을 달리 한 지 오래였다.
‘시발……. 시발.’
그런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한둘씩이긴 해도 계속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놈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초거대 개체랑……. 그때 봤던 그 새끼들이…… 안 보여…….’
그런 와중에도 핵심 전력이라 할 만한 것들은 보이질 않았다.
다행이라 할 만한 건, 김태평을 위시한 이쪽의 핵심 전력 또한 아직 합류하지 않았단 점인데…….
‘도망갈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게다가…… 건물에 숨어 쏘는 것도 아니고…… 개활지에서 라드랑 싸우는 건…….’
무작정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정면에서 붙으면 총을 들고 있다 해도 이쪽이 불리…….
“컥.”
그 순간, 옆에 있는 병사가 쓰러졌다.
라드가 뭘 던졌나?
돌?
아니,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짓을 해 준다면 환영할 만한 일일 터였다.
이쪽 숫자가 아주 적었다면 또 모를 일이겠지만, 숫자가 충분한 이상 돌 던진답시고 움직임을 멈추면 바로 죽일 수 있지 않겠나?
“뭐야!”
유현은 병사의 얼굴에 난 구멍을 확인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보다 끔찍한 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총……?’
이건…….
총상이었다.
타다다다당
오발?
아니, 그런 건 아닐 터였다.
위에서 아래를 보고 쏘는데 무슨 오발?
물론 전투 공포나 공황에 빠진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이는 없었다.
여전히 남은 이들은 모두 아래쪽으로 총을 쏘고 있었다.
어찌나 집중하고 있는지, 병사 중 하나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지경이었다.
‘대체…….’
유현은 일단 병사의 유해를 뒤로 두고, 건물 아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너무 가까이 오는 놈이 있으면 쏘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컥.”
그때 또 하나의 병사가 뒤로 넘어갔다.
상대의 총격 따위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옥상 난간에 몸을 숨길 생각 또한 아무도 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예 서서 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뒤로 넘어가는 모습이 꽤 적나라하게 보였다.
적어도 유현은 볼 수 있었다.
‘뭐……. 이게 대체…….’
라드가 총을 쏜다.
그래, 이건 가능한 일이었다.
방아쇠 누르면 나가는데 그건 원숭이도 쏠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저격은 아예 다른 얘기였다.
이성이 있고 지능이 높다고 해도…….
‘충동을 눌러야 가능한…….’
인간 조력자가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환장할 노릇인 것은 이 와중에도 밑으로 들어오는 놈들 때문에 옥상 전력을 줄여야만 했다.
“5명 더! 더 내려가!”
밑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까.
노약자들…….
총도 지급받지 못한 채 바리케이드 하나에 의지해 싸워야 할 그들이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타다다당
그런 생각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저 새끼! 저 새끼 쏴!”
초거대 개체를 위시한 몇몇 거대 개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유현은 그 뒤에 숨어 있는 두 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탕탕꽤 많이 쏘고 있는 듯한데…… 명중률이 아주 높지만은 못하단 것이 위안거리였다.
“컥.”
물론 아주 엄한 데다 쏘는 건 아닌 데다가, 병사들이 딱히 은폐를 하고 있지 않았기에 여전히 한 명씩은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현은 숨어서 쏘라는 명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그럼 지금 뛰어오는 놈들을 지금처럼 효율적으로 죽일 수 없을 테니.
‘제기랄. 언제 오는 거야!’
이제 핵심까지 다 뛰고 있지 않나.
지금 뒤를 잡으면 승산이 있을지도 몰랐다.
유현은 아주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와줘! 시발!’
짤막한 기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