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습격 (1)
“뭐?”
“북쪽으로 가면 더 큰 곳이 있습니다.”
구우준은 날이 가면 갈수록 장족의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김민수는 거의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받을 지경이었다.
라드답게 몸도 커지고 있는 와중에 심지어 지능도 유지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으음.”
“음!”
좀 아까운 것은, 그 외에 다른 놈들은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었다.
구우준에게 얘기를 들어 보니 나름 특출난 면이 있었다고 했는데…….
나름 명령은 잘 알아듣고, 간단한 보고도 가능하니 다른 놈들보다 우수하긴 하지만 기대만큼은 결코 아니었다.
“북쪽이라…….”
“네. 군부대가 남아 있는 듯합니다. 이전부터 파악하고 있던 곳입니다.”
“군부대? 그럼 너무 위험하지. 총은 위험해.”
김민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총이 무섭다는 거야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워낙에 뼈저리게 느낀 마당이었다.
어찌어찌 이겼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으면 큰 피해를 볼 뻔했다.
“주변으로 수색을 돌고 있습니다. 그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저희가 확보했던 총도 그쪽에서 확보한 겁니다.”
“아……. 그때 피해는?”
“거의 없었죠. 우리를 구하러 왔다가 당한 거니까.”
“구해……? 아, 인간이었지.”
김민수는 말을 이어 나가면서, 구우준의 몰골을 살폈다.
이제는 어떻게 봐도 인간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불과 1, 2주 정도 지났을 뿐이고 덩치가 어마어마해진 건 아니었지만…….
턱과 손의 변화가 너무 두드러졌다.
멀리서 본다면 또 모를 일이겠지만 가까이서 본다면 누구라도 위화감을 느낄 터였다.
‘아니……. 아니지. 말을 이 정도로 하면…… 흐음.’
김민수가 이번 싸움으로 확보한 총은 열 정가량이 되었다.
그에 반해 총을 쏠 수 있는 인원은 크게 제한이 되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총을 쏜다는 게 말 그대로 쏘기만 해서는 별 효과가 없지 않겠나?
타겟을 맞혀야 하는데 이게 근거리에서라도 가능해 보이는 놈은 기껏해야 다섯을 넘기지 못했다.
그나마도 탄창을 갈 수 있는 놈은 자신과 구우준, 이렇게 둘뿐이었다.
“좋은 정보긴 한데……. 군인들을 물어서 편 늘리는 거나 다른 생존자들을 물어서 늘리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총이.”
“시켜 봐서 알잖아. 이 새끼들은 반푼이야.”
“대체 뭐가 이런 차이를 일으키는 걸까요?”
“모르지.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지내지 않겠지.”
김민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구우준이 합류하면서 훨씬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것들 아닌가?
최소한의 절제마저도 자신의 명이 없으면 불가능한 놈들이었다.
그래서 인간들 사이에 들어가 살까도 싶었는데…… 그건 또 무리였다.
‘이…… 충동…….’
돌이켜 보면 인간이었던 시절에도, 김민수는 빈말로도 좋은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무언가 파괴하고픈 본능을 간신히 억눌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 본능은 약자 앞에서는 어김없이 풀어지기 마련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서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을, 인간 시절에도 했었으니 말 다 한 셈 아니겠나.
“그놈은 어쩌면 우리랑 같을 수도 있어.”
“누구……. 아. 그놈이요.”
“그래.”
그래서 김민수는 더 지금 눈앞에 있는 무리에 집착하고 있었다.
밑에 것들?
초거대 개체 몇 놈을 제외하면 다 갈아치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얼마가 죽어 나가건 간에 구우준 같은 놈이 더 소중했다.
자기 같은 놈이 또 나올지 어떨지 모르던 시절에야 무리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좀 더 사렸지만 이제는 확인하지 않았나?
더 만들 수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생존자를 쏴서 죽였다는 놈……. 그놈은 아무리 봐도 우리랑 비슷한 부류야.”
“뭐……. 대장이랑 제가 비슷했었다는 건 맞는데……. 이게 정말 맞는 걸까요?”
“모르지. 그래도 해 봐야지. 다른 수가 있나?”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밑에 있는 놈들 다 갈아 치우고서라도, 이 비슷한 놈들로 채워 나가면 좋지 않겠나.
‘가능하다면 여성 중에서도 이런 형태가 있으면 좋겠는데.’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라드에게도 성욕은 있었다.
그것이 생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잘 없을뿐더러, 간혹 임신이 되면 산모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김민수로서는 일단 같은 라드에게 사랑에 빠지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최소한의 의사소통은 가능해야 할 것이 아닌가.
‘뭐……. 그냥 써먹을 놈들이 많으면 더 좋은 거 아닌가?’
그런 면에서 구우준은 김민수와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구우준은 딱히 자신 같은 놈이 필요하단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모든 인간관계가 필요에 의해서 정의되는 그이기에 그랬다.
괜히 생각하는 놈이 또 있으면 산으로 가지 않겠나?
같은 라드에게 살의를 느낄 수 없는 몸이 아니었다면, 벌써 뒤집어엎었을 수도 있었다.
“군부대는 후순위로 둬. 괜히 들쑤셨다가 총 들고 뛰쳐나오면 골 아파.”
“네.”
“그보다는 역시 저놈들이 문젠데……. 확실히 그놈은 무서운 놈이야.”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하여간 당면한 문제는 재난 본부 놈들이 맞았다.
물론 구우준은 김민수가 거기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좀만 눈을 돌리면 훨씬 손쉬운 상대가 많은데 굳이 거길 건드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결정된 이상……. 관심을 기울여야 했고 또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 다, 죽었다!
바로 어제 당도했던 생존자 무리의 은신처.
꽤 조심스레 행동했던 놈들이었지만…… 은신처 근처의 발자국만 지운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그 수가 꽤 많아 보이기도 했고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 야생 동물들의 사체에서 총기류의 흔적이 전혀 없었기에 땡잡았다고 생각했다.
정작 침입했을 때 마주하게 된 것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다 죽어?
먼저 들어간 놈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으로 향했고, 시신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죄다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그것도 한자리에 모여 있었는데…….
저항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저 몇몇이 도망가려 애를 썼다는 것 정도만 확인 가능했을 뿐이었다.
“우리에게 편을 주느니 다 죽이려는 듯싶습니다.”
“뭐……. 식인을 했다는 것도 핑계가 됐겠지만…… 글쎄. 거긴 식인만 했던 건 아니지 않나.”
“알고 죽였는지 여부조차 불확실합니다.”
“그렇지.”
김민수는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산기슭 쪽을 돌아보았다.
저 너머에 본부가 있었다.
달린다면 금세 갈 수 있을 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자신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조차 모를 테니 확신할 수 있었다.
인간은 길로만 다닐 줄 알지만, 라드가 되면 산에서도 본능적으로 길을 찾아 걸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으…….”
“졸리다!”
저따위 놈들에게 흔적을 지우라는 건 기대할 수 없는 일지만.
애초에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다니면 될 일 아니겠나.
길이 없는 곳으로만 이동하는 이들을 인간들이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진 싸움이라고 봐도 좋을 터였다.
아무리 라드가 강하다 해도 그렇게까지 훈련받은 인간 무리를 어찌하긴 어려울 테니.
“후우.”
그 시각.
김태평은 매일같이 밖으로 나가던 일상 아닌 일상을 잠시 멈추고, 수원 비행장에서 얻어 온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술이 약한 사람도 아닌데 한두 캔만에 얼굴이 불콰해진 것이 여느 때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유현은 그가 왜 그러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제…… 확실히 대원들도 그렇고 표정이 이상했지. 멀쩡했던 건…… 이진호 형사뿐이야.’
생존자 무리가 다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번 수색에 나서면서는 더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엔 도리어 김태평 등이 가진 물품을 욕심내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대원 하나가 꽤 커다란 부상을 겪게 되었을 정도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는 모르겠는데, 이진호 형사가 결원을 빈틈없이 채워 주고 있었다.
“후…….”
“괜찮습니까?”
“딱히 그렇진 않습니다.”
김태평은 유현의 말에 고개를 가로젓고는, 또다시 맥주 한 캔을 깠다.
원래 같으면 밖에 적이 있으니 말려야 했겠지만, 유현은 그러는 대신 마주 앉아서 물을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굳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는 않았다.
뭐가 되었건 간에 끔찍한 일이 있었을 텐데 그걸 물어서 무엇 하겠나.
상기시켜서 좋을 일이 없을뿐더러, 듣는 입장에서도 좋을 일이 하나도 없을 터였다.
“그렇군요. 참 망할 세상입니다.”
“그렇죠. 망할 세상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어요.”
“희망이라…….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라드 놈들은 생식이 불가해요. 더 늘어날 수 없다는 거죠. 이미 임신한 사람이 감염되어 라드가 된 경우가 아니라면……. 아니, 그런 경우에서도 산모가 생존할 수는 없습니다.”
누가 제왕절개라도 해 주면 모를까,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닫았다.
이 또한 김태평이 수색 도중에 발견했던 참상이었다.
꽤 여러 구의 시신이 버려져 있었다.
사태가 터진 후에 이런 경우를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차이가 있었다.
그곳엔 갓 태어난 아이와 여자의 시신들뿐이었다.
훼손 상태가 꽤 심했지만, 뒤따라간 유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호르몬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는 건 머리 크기와 손발의 크기죠. 어느 것 하나라도 출산에 유리할 만한 요소가 아니에요. 예상만 했었는데…… 이번에 확인하게 된 셈입니다.”
“버티면 된다, 이 말씀이시죠.”
“네.”
“그러려면…… 우리는 이 파도를 넘어야 하겠군요.”
“네,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든, 이 파도를 넘기면 기회가 올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이라…….”
김태평은 유현의 말에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어제 그가 향했던 곳이 있는 방향이었다.
사람을 죽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난 본부요? 아직 살아 있었군요! 참 다행입니다!
자신을 환대한 이들을 그렇게나 많이 죽인 건 처음이었다.
‘나도 사람은 사람인가.’
그에 더해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이리도 진하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유현이 말하는 희망찬 미래에 자신의 자리는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될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군요. 그러려면 일단 술부터 그만 마셔야겠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마셔도 좋지 않겠습니까?”
“정신과 친구 없다고 술을 권합니까?”
“그럼 그럴 때 마시지 언제 마십니까.”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그래……. 결국은 나도 이 사태의 공범이지.’
역설적으로 크나큰 죄를 짓고 나서야, 양심이라 부를 만한 게 싹 트기 시작해서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