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준비 (2)
“이게……. 이게 뭐야.”
너그러운 이순규가,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도 화를 냈다.
물론 사람들 있는 데서는 아니었다.
유현과 따로 있는 곳에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저게…… 병사들이냐?”
“음……. 병사들이지. 총 들고 있잖아.”
“부상병이잖아!”
“우리가 고쳐야지.”
“아니…….”
“어쩌겠어. 그쪽도 그쪽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저만한 인원을 받은 게 어디야. 그리고…….”
“그리고?”
유현은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어차피 이 근처에 달리 사람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
듣는 이가 없다 해도 양심에 켕기는 말을 큰 소리로 떠들 수 있을 만큼 철면피는 못 되는 편이었다.
“저 사람들 같이 오면서 보니까, 벌써 거기서 짐덩이 취급받은 지가 꽤 됐어.”
“그렇……겠지. 현실적으로 그렇긴 하잖아.”
말이 부상병이지, 절대로 호전이 되지 못할 상처를 입은 이들도 있었다.
가령 한쪽 손이 없다거나, 다리를 절룩거린다거나.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을 때조차 약자에게 비정했던 곳이 바로 대한민국 아니었던가?
그러니 이 지경에서 그러한 점이 개선이 되리라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 그 말은 우리가 품어 준다면 저 사람들의 소속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거지.”
“네 말대로면…… 어차피 짐이잖아?”
“총기를 다룰 수 있고, 교리에 빠삭한 짐이지. 그리고 다들 20대야. 아무리 장애를 입었다고 해도 어지간한 노인들보다는 훨씬 나아.”
“으음…….”
아무리 그래도 저쪽에서 짐덩이 취급받던 사람들이 여기 온다고 달라지나?
이순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악해져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도리어 착한 사람이라 그랬다.
다만 아직 저들까지 자신의 울타리 안에 담아 두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원래 있던 이들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가득해진 마당이었다.
“군인들 가득한 곳에서야 짐이겠지만, 우리는 군인들이 없잖아. 김현철 소위 말고 누가 있어.”
“아…….”
“뭐 직업 군인인 사람은 두 분이고 나머지는 다 병사긴 한데, 그래도 아무래도 좀 다르긴 하겠지.”
“그런…… 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나 유현은 그 뒤를 볼 수 있는 인간이었다.
애초에 그래서 한 무리의 리더가 될 수 있던 사람이었고.
또…….
이미 본부에서도 리더에 준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사실상 어디가 불편한 사람들이라 해도 총 든 군인 20명을 끌고 왔다는 점에서, 본부장보다도 더 우위에 설 수 있지 않겠나.
“수고…… 많으셨습니다. 흉악한 놈들이 있는데 왔다 갔다도 하시고.”
“아뇨, 괜찮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유현은 거기에 더해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보니 대놓고 업적을 드러내는 대신 오히려 겸양을 떨었다.
이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아서 그랬다.
확실히 젊은 대원들 중에서는 본부장보다도 유현을 더 높게 치는 이들이 꽤 많아지지 않았나.
‘목표는…… 남산.’
단순히 권력에 대한 야욕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유현은 언제나 너머의 일을 바라보는 인간 아닌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다른 이들은 절망에 빠지기 시작한 마당이었다.
그냥 라드도 무서운데, 지능까지 갖췄어?
게임이라도 망겜 소리 나올 텐데, 이건 현실이었다.
옆에서 그놈들 때문에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죽어 나가는…….
‘바이러스는 확실히 약독화되고 있어.’
그러나 유현은 거기서조차 희망을 보고 있었다.
이성을 날려 버리던 놈이 점차 남기고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바이러스가 인간이라는 숙주에 점차 적응하고 있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었다.
‘이걸 좀 더 지켜본다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면…….’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인원이 늘어난 만큼 경계를 설 인원도 더 충분해지겠군요.”
“네, 여유가 좀 생길 겁니다.”
이 말에 몇몇이 안도의 한숨을 토해 냈다.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었다.
딱 며칠 경계를 섰을 뿐이었다.
정찰이라고 해 봐야 산기슭 근처에, 그것도 차 타고 나간 것이 거의 전부였고.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멘탈이 마구 갈려 나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부족한 인원은 그대로 수면과 휴식의 부족으로 이어져서 그랬다.
“식량은…… 일단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고……. 식수도 일단은 충분합니다. 다만.”
“다만……?”
유현의 말에 본부장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유현은 그러한 시선을 느끼며 밖을 내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작은 마을로 통하는 길 정도?
그러나 저기 어딘가에 그놈들이 반드시 있을 터였다.
“저놈들이 시간을 들여서 압박해 온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몇 개월을 질질 끌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가능성은 있을 겁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유현은 아닐 거란 기대도 품고 있었다.
왜냐.
확실히 지능이 대단한 건 맞았다.
그러나 모든 구성원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마어마한 놈이 리더를 맡고 있다고 해도 통제가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걸, 그때 보았다.
‘하지만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워…….’
평소 오던 길이 아니라 아예 다른 길로 돌아오다가 확인했던 노인 회관.
안은 엉망이었다.
노인들은 전부 죽어 있었고, 몇몇 젊은이들의 시체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노인들의 시체는 거의 멀쩡히 남아 있었는 데 반해 젊은이들의 시체는 팔다리가 잘려 없어졌다는 것.
-끌려간 흔적이 있어요.
-식인종일까?
-아니……. 아닌 거 같은데.
그놈들은 노인들의 시신을 두고 갈 이유가 없지 않나.
상처만 봐서는 오히려 노인들이야말로 사람한테 당한 것 같은데 두고 가?
막말로 시신 전시를 위해서라도 끌고 갈 놈들이었다.
-라드 놈들일 가능성이 더 커.
-아니……. 이렇게 되면…….
-놈들이 주변에 있는 생존자들을 다 이런 식으로 끌고 가면…….
-규모가 더 커지겠는데…….
라드들에게 재난 본부 하나만을 둘러싼 채 가만히 기다리게 한다?
그건 무리였다.
적어도 그때 그 무리에게 인내하라고 하는 건…….
라드 리더가 아니라 할애비가 와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런 식으로 작은 생존자 무리를 찾아내고 공격하게끔 한다면……?
‘멍청한 놈들은 지들이 최종적으로 어딜 치려고 하는지조차 모를걸…….’
그렇게 유도할 수 있다면 놈들은 충분히 몇 개월도 기다릴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이 생각을 놈도 했으리란 가정하에서나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어쩐지 가능할 것도 같지 않나?
“식량이야 자급자족할 수 있을 테지만…… 주변에 있는 생존자 무리를 품는 건 어떨까요.”
“아……. 그게 말입니다.”
유현의 말에 본부장은 대번에 난색을 표했다.
유현의 탓도 있었다.
자세한 얘기, 즉 생존자 무리를 가만 내버려 두면 다 저놈들 편 그러니까 라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안 했지 않나.
그러나 그런 얘기를 꺼냈다가는 스무 명이나마 데려와서 간신히 안정시킨 이 분위기가 아까보다도 더 침울해지지 않겠나.
어떤 정보는 그냥 혼자 또는 주요 인원 몇몇하고만 공유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걸, 사태가 터지고 알았다.
“그분들을 저희가…… 대강의 소재는 파악하고 있음에도 불러들이지 못한 이유가 있어요.”
본부장은 그런 생각을 모르니만큼 계속해서 그의 입장에서 해야 할 말을 이어 나갔다.
“거동이 너무 불편한 분들도 있고……. 또는 이게 좀 그런데요. 문제 일으키던 놈들이 모여 있는 곳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 근방에는 사실 라드들이 딱히 많지 않아서 그분들도 그렇게 위험하진 않아요.”
마음 착한 양반이지만, 무한정 퍼다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았겠나.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누구건 간에 받아 주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까지 다 데려오진 못했다.
그나마 가끔 들러 잘 있나 확인하는 정도로 그쳤다.
물론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인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짐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본부장은 이제껏 그들을 품어 주지 못했던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이제 와서 그 사람들을 규합한다고 해서…… 도움이 될 거 같진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라드 놈들이 인지한 상태이지 않습니까? 이쪽으로 데리고 왔다가 괜히 공격이라도 받게 되면 그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유현은 이 일에 대해 물러설 생각일랑 전혀 없었다.
물증도 하나 있지 않나.
당장 오늘 오면서 확인했다.
“그중 하나가…… 완전히 박살 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죠. 하지만 아까 말씀으론 사람들이 침입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식인종들은 이번에 라드 놈들에게 끝장이 났고요.”
“식인종이 그놈들 하나뿐이라는 보장은 없죠.”
“그……. 아무리 세상이 이래도 그렇게 흉악한 놈들이 또…… 있겠습니까…….”
“있을 수 있죠. 그럼 이렇게 하죠.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시는 분들의 소재만 알려 주시면, 저희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접선해 보겠습니다. 올 수 있는 상황이면 오고 아니면 할 수 없죠. 안전함을 확인하거나 변고가 생겼는지 정도만 확인하겠습니다.”
“그건…….”
본부장은 눈알을 데구르르 굴렸다.
그라고 해서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다른 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 않나.
그저 이미 충분히 고생하고 있는 젊은 대원들을 생각해서 그랬던 것일 뿐이었다.
결국,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진하게 품고 있는 그로서는 유현의 마지막 제안까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시죠. 경계 설 인원이 늘었으니……. 하지만 너무 멀리 가시는 건 위험해요. 중간에 라드 놈들한테 공격이라도 당하시면 어쩐단 말입니까.”
“네, 그거야…… 당연히 저도 명심하고 있습니다. 무리하지 않겠습니다.”
“네네. 저희에게 교수님은 참 중요한 분이십니다.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데려올 수 없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데려온다면 난색을 표할 것이 뻔했다.
‘이 사람 성정상…… 지금까지 방치해 두었다는 건 정말…… 움직임이 어려운 사람이거나 혹은 악인들일 가능성이 커.’
때문에 그들을 데려오는 건 유현도 곤란해질 일일 게 뻔했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라드가 될 확률이 너무 높지 않나?
어떻게 해야 할까.
스쳐 지나가는 답이 있었지만…….
그걸 깊이 생각하면, 유현은 자신을 잊게 될까 염려가 되었다.
좀 비겁한 생각이지만 그는 이 짐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기로 작정했다.
“저는 여기 남을 겁니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사실 오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여전히 유현의 속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본부장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흘리고 있었다.
유현은 속에 흐르기 시작한 시커먼 피를 숨긴 채, 여상한 대화를 이어 나가다 방을 빠져나오자마자 김태평을 불렀다.
“흐음…….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겠군요.”
적의 전력이 늘어날 수 있다는 말에 그는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이 편이 더 쉽긴 합니다.”
어쩐지 홀가분해 보이는 건, 유현의 착각이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