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준비 (1)
“그게…… 참말입니까?”
대령은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잡아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 해도 머릿속이 터져 나갈 것 같은데…….
그 와중에 라드가 전술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고, 일부 식인종들은 알아서 물렸다고?
이걸 믿으라는 건가?
아마 눈앞에 선 사내가 유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뺨이라도 올려 붙였을 텐데, 하필 상대가 그 정유현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아무리 봐도 그놈들이 저희를 쫓아오는 거 같습니다.”
“그…….”
대령은 그건 좀 논리의 비약이 아닙니까? 라는 말을 간신히 참았다.
물론 라드 놈들이 간혹 추적이라는 걸 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단기적인 거잖아? 복수라니…….’
복수가 되었건 집착이 되었건 하여간에 뭐가 되었건…….
그런 걸 마음에 품으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한 법이었다.
바로 기억.
뭐라도 기억하는 게 있어야 저런 짓을 하지 않겠나.
그러나 그가 본 라드들은 붕어 정도는 아니더라도, 딱히 뭘 기억하는 것 같진 않았다.
다만 본능에 충실할 뿐…….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놈들은 우리를 쫓고 있어요. 그거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저 무리를 이끌고 있는 놈은 지능이 꽤 대단한 놈입니다.”
“너무……. 너무 절망적인 거 아닙니까?”
“현실이 그런 것을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그런 놈이 지척에 있다면 우리도 방어를 더 단단히 하는 게 좋겠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는 비행장 내에 있는 놈들조차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수원 인근 그리고 경기도 남부와 서울에 이르기까지의 폭격은 전부 수원 비행장에서 담당했다고 보면 되었다.
당연하게도 비행장 자체는 폭격에서 배제되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곧 오히려 이 주변이 라드들의 집중 서식처가 되었다는 소리였다.
유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지금 대령이 하는 말이 엄살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령님. 인력이 조금 줄어도 기지를 지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에 비해 저희는 일단 사람이 부족합니다. 이러다 저쪽이 다 죽어 나가게 되면…….”
“그럼 차라리 이쪽으로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호위는 저희가 무리해서라도 담당하겠습니다.”
“이쪽도 식량이 아주 남아도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흠.”
비행장 주변 공터부터 해서 골프장까지 모조리 갈아엎고 있지 않나.
미관상 좋지 못하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다만 이 겨울에 굳이 그 고생을 해야 하냐는 의문 정도는 있었다.
그럼에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유현의 말마따나 식량이 부족해서 그랬다.
BX 그러니까 공군의 PX는 이미 텅 빈 지 오래였다.
사람 수가 확 줄긴 했지만 그걸로 모든 이가 끼니를 때우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본부 측은…… 일단 비축해 둔 식량도 많고, 주변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본부 쪽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셨다고 들었는데요.”
“방어에 용이하지 않을 거 같아 폐기한 계획입니다.”
“아무튼, 그 본부를 포기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수송이라니……. 그만한 인원이 움직이는 건 위험해요. 평상시라면 모를까, 지금은 곁에 적이 있습니다.”
“으음…….”
본부 쪽엔 식량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안엔…….
이런저런 설비도 구비되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용이 불가한 상황이지만 인력과 장비 등이 더 갖추어지게 된다면, 일단 소방차라도 몇 대 더 늘어나게 되지 않겠나.
이런저런 험지도 달릴 수 있는 데다가 육중한 무게까지 자랑하는 소방차는 이런 재난 상황에서 단지 구조에만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전략 무기로도 쓸 수 있는 소중한 물자였다.
“많이도 필요 없어요. 열 명에서 스무 명만…… 주십쇼.”
“총 든 병사 열에서 스물이면 적은 건 아닙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잖습니까.”
“으음.”
대령은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근방엔 폭격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가, 날도 추워서 사람은커녕 라드들도 나다니질 않고 있다 보니 그저 평화로운 광경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러나 저 너머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본부 쪽에…… 노약자가 많아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도 있긴 하지…….’
말은 안 했지만, 군은 모든 생존자를 다 구조하고 있지 않았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군이라면 모름지기 모든 시민을 구조해야만 한다고, 그 누구보다 대령이 제일 강하게 주장했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노약자는 필연적으로 모든 일에 있어서 효율이 떨어져…….’
노인의 지혜?
농경 사회도 아닌데 그런 게 필요하겠나?
더욱이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당장 다음 주 아니,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약자는 시민이라기보다는 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다른 구성원들, 그러니까 무언가 일을 할 수 있어서 해야만 하는 이들의 불만이 날로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본부 측은 감당할 수 있었어. 그쪽 사람들은 진짜 구성원이 좋아……. 무엇보다 풍족하기도 하고.’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을 요즘처럼 절실히 느꼈던 때가 있었던가?
원래 인색했던 놈들은 차치하고, 평소 사람 좋다는 평을 듣던 이들조차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이들을 받는 데 있어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모르긴 해도…….
지금 저 밖을 헤매고 다니는 라드 중에 군에 의해 구조를 받았던 이들도 꽤 있을 터였다.
다름 아닌 대령 본인이 내린 명령이었던 만큼…… 모를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보내죠.”
갈등하던 대령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쪽엔 의사들도 있고……. 무엇보다 식량도 많아.’
관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치는 이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인색한 이라고 해도 같이 일하다 다친 이까지 내치자 하지는 못했다.
일말의 양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단 비행장 상황이 그 정도로 어렵진 않아서일 터였다.
물론 부담이긴 했다.
아픈 이들이라고 해서,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밥을 먹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
“잠깐 계시면, 인원 스무 명 채워서 모아 오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다만 저희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핵심 인력이 아니라…… 보조 인력을 주로 붙여 드리게 될 거 같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아……. 네. 그럼요.”
말이 보조지 짐덩이를 붙여 줄 요량이었다.
물론 진짜 위험해진다면 구조에 나설 작정이긴 했다.
아니, 애초에 대령은 유현을 비롯한 몇몇은 그냥 이쪽에 왔으면 했다.
그런데 유현이 거절했으니 뭐 어쩌겠나.
‘지킬 수 있다면…… 본부 쪽에 남아 있는 게 오히려 더 나을 거야.’
단지 의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현은 드넓게 펼쳐진 부대 안쪽을 바라보았다.
주로 쓰이는 건물만 해도 여럿이라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많았으니.
농사까지 지어야 해서, 그 주변으로는 아예 경비탑까지 세워 놓았다 들었다.
‘막상 붙게 된다면…… 모를 일인데……. 이쪽이라고 더 안전할 거 같진 않단 말이지.’
적어도 며칠 또는 몇 주 안에 전투가 벌어질 거라 상정한다면 본부 쪽이 더 나아 보였다.
또 유현은 일단 재난 본부 사람들에게 만족하고 있었다.
풍족해서 여유로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태 전의 동기들만 봐도, 딱히 풍족하다고 해서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많았던가?
오히려 더 욕심내는 놈들이 훨씬 많았다.
‘수보다는 어떤 구성원인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야.’
수가 암만 많으면 뭐 하나.
위기가 벌어졌을 때 도망갈 생각이나 하고 있다면…….
강변 테크노 마트가 어디 규모가 작아서 무너졌다던가.
이미 내부에서부터 어느 정도 무너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적어도 본부 쪽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이 유현의 판단이었다.
“아…….”
유현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아마 평정심이지 않겠나.
그런 그조차 대령이 데리고 온 이들의 면면을 마주하게 되었을 땐, 당황을 감추기 어려웠다.
“모두 총으로 무장했습니다. 군인인 만큼 총도 잘 쏘고요.”
“아……. 네.”
그러나 그 당황을 굳이 대령에게 투사하진 않았다.
다만 속으로 삭일 뿐이었다.
‘뭐…… 내어 준 게 어디야.’
일단 총에 더해 탄약도 주지 않았나.
이것만 해도 뭐…….
‘약은 많이 있으니까…….’
물론 병사들이라기보다는 부상병으로 불러야 할 것 같긴 한데, 그건 고치면 될 일이었다.
식량?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장 본부 내에 있는 축구장이 주변에 있던 농부, 그러니까 노인들의 손에 의해 개간이 된 지 오래였으니.
겨울이라 당장 자라는 작물이 없긴 하지만 유현 일행이 오기 전에 한 차례 수확이 이루어진 덕에, 배 채울 거리가 부족할 일은 적어도 몇 개월간은 없을 터였다.
“감사합니다.”
“네.”
대령은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표정 변화도 없이 일행을 이끌고 나가는 유현을 보면서 생각했다.
역시 저치는 대단하다고.
‘손이 부족한 상황이니 저거라도 좋다, 이건가.’
오히려 차출된 인원들의 얼굴이 볼만했다.
불안에 떨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대 밖으로 나갔다가 다친 이들이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다치기만 했으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은 동료의 죽음을 목도해야만 했다.
“자, 가시죠.”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에서 도망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기서 도망가면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가뜩이나 다친 몸인데 도망을 가?
죽겠다고 애쓰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부르릉
유현도 그걸 알기에 위로하거나 윽박지르는 대신 그저 자리를 안내하고 차에 탔다.
소방차가 앞서가고, 그 뒤를 버스가 따르고, 맨 뒤를 구급차가 따랐다.
말이 소방차고 구급차지 용도는 수송 하나뿐이었다.
다만 한 대만 움직이면 돌발 상황에 대처가 안 될 테니 여유 있게 움직일 뿐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돌아가는 느낌인데…….”
“맞습니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 놈들이 있으니까요. 당장 움직일 거 같진 않은데…….”
가 보지 않은 길로 가야 하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잘한 일이었다.
김민수는 상황을 수습하자마자 일단 주변으로 정찰부터 보냈으니까.
“생존자들이 있으면 먹을 거 강탈하고……. 최대한 살려서 데려와.”
“음!”
“혹시 낯익은 놈 있으면 싸우지 말고 와서 보고하고.”
“으음!”
정찰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동료가 죽기도 했지만, 새롭게 영입된 놈들도 있으니 먹여서 키워야 하지 않겠나.
그에 더해 적들의 동향을 살피기도 할 작정이었다.
물론 유현과 김태평은 전투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피했기 때문에, 놈들의 손아귀에 떨어진 이들은 작은 규모의 애꿎은 생존자 무리가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