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04화 (204/323)

204화 관찰 (3)

“붙을 모양인데요?”

“으음……. 서로가 싸우는 걸 피해야 맞는 거 아닙니까?”

한편, 김태평과 유현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폐허가 된 차 뒤에 숨어서 멀리서 이 꼴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다 보였다.

일단 좌측 건물 무더기 뒤에 숨어 있던 놈들이 우회하고 있었다.

하필 지켜보고 있던 쪽으로 우회를 해 와서, 움직임이 고스란히 다 눈에 들어왔다.

“전술적인 판단은 그게 맞습니다만…….”

김태평은 그 말을 하면서, 소싯적에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양웬리리라는 인물이 했던 말이었다.

-전술은 전략에 종속되고, 전략은 정치에 종속되고, 정치는 경제에 종속된다.

허구의 인물이라는 건 알지만,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데 그런 게 중요하다던가?

그렇게 따지면 사실상 아이돌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평생 따로 만날 일은 없잖아?

“내부 상황을 우리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압력이 있을 수 있겠죠.”

“공포……이려나.”

“그럴 겁니다.”

“하긴, 리더는 합리적일 수 있어도 밑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죠. 라드 쪽이야 공포보다는 파괴 욕구가 더 강할 테지만……. 뭐 결론적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겠네.”

유현의 말을 들으면서, 김태평은 리더가 비합리적인 상황도 있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작금에 벌어진 이 사태를 봐도 그렇지 않나.

대통령.

그 새끼가 싸지른 거대한 똥에 온 세계가 깔려 버렸다.

“저쪽도 움직이는데…….”

“흐음……. 이렇게 되면 이길 수 없겠네요.”

“네. 어부지리를 노려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는 않겠습니다.”

“수원 쪽은 아직이죠?”

“네. 아무래도……. 주변부 정리가 다 안 된 상황이다 보니 군부대를 움직이는 게 부담일 겁니다.”

“하긴, 그 주변이 폭격을 안 받았다 보니…….”

생존자 무리들을 구출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그나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존자는 곧 선하거나 최소한 취약한 집단이라는 이론이 통했다.

하지만…….

-사람 먹는 사람들이 있을 줄이야.

대통령이 뿌린 똥이 전 세계를 압살하고 있다면, 구우준이 뿌린 똥은 적어도 수도권을 압살하고 있었다.

놈의 그룹에서 도망친 놈들 때문이었다.

딱히 뭐 대단한 동료 의식이 있을 수가 없는 상황 아니던가.

안에서 핍박받거나 사소한 차별이라도 받는 느낌이 들면, 좀 잘난 놈일수록 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놈들이 곱게 죽어 주는 대신 다른 무리에 녹아들고는 이 망할 식인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그놈들에게 당한 병사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주변부 수색조차 조심스러운 마당입니다. 그런 와중에 라드 놈들과 식인종 무리 간의 싸움에 끼라는 명령은 도저히 못 내리겠군요.

수원 비행장 대령의 답은 단순 명료했다.

그뿐만 아니라 반박할 여지도 딱히 없었다.

-게다가 라드 놈들이 복수심을 불태운다는 것도 이상하군요. 물론, 놈들이 진짜로 재난 본부로 향한다면 저희도 돕겠습니다. 지금도 일부 병력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쇼. 다만 무용한 싸움에 병사들의 생명을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실 저 라드 놈들이 노리고 있는 게 유현 일행일 거라는 것도 남들이 보기엔 얼토당토않은 말이지 않겠나.

그렇다고 해서 아쉽지 않다는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이 싸움에서 유현과 김태평 등은 방관자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죽이길 바라야겠군요.”

“그렇죠.”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도뿐이었다.

이따위 기도를 들어줄 만한 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그게 최선이었다.

“이쪽으로.”

“네!”

그러거나 말거나, 식인종들은 안에 갇힌 채 하염없이 쌓아 올라만 가는 공포심에 생명줄이 깎여 나가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두 갈래로 갈라져서였는데, 이유는 명확했다.

이쪽에는 원거리 무기가 있지 않나.

만약 포위망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다면…….

‘한쪽이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다른 쪽에서 최대한 죽일 수 있어. 여의치 않으면 도망갈 수도 있고.’

구우준은 최악을 염두해 두었을 때조차 살아날 길이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잘 풀리면?

‘좌우에서 총질하면……. 시발 탄약 여기서 다 쓰겠다는 각오로 쏘면 절반 이상은 쏴 죽이겠지.’

절반?

아니, 그 이상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열 마리 이하로 줄일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근접전으로 붙어도 승산이 있었다.

뭐가 되었건 이쪽은 각종 수라장을 겪어 온 이들이 태반이지 않나.

‘하지만…… 저 새끼들……. 보통 놈들이 아니지.’

물론 희망적으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해서 구우준은 뒤쪽을 바라보았다.

숨겨 둔 차량이 있는 곳이었다.

오토바이도 있었다.

저기에 저게 있다는 걸 아는 이는…….

‘없지.’

영철과 곽근영을 제외하면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도피용 차량.

누구보다 이곳을 요새화하는 데 진심이었던 그가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누가 생각이나 해 봤겠나.

“천천히……. 놈들이 사방에 있으니까.”

“네.”

“조용히 갈 필요는 없어. 무조건 죽이면서 간다.”

“네.”

반대편을 맡고 있는 건, 또 다른 사내였다.

영철이나 곽근영에 비해서도 딱히 실력이 처지지 않는 놈.

그러나 말을 잘 듣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놈을 밑에 두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포기했다.

‘잘하겠지. 죽어도 좋고.’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나니, 다 괜찮아졌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그렇지 않겠나.

자박

자박

하여간 그런 생각도 이제는 사치였다.

눈앞에 적들이 있으니까.

그것도 지금껏 마주했던 놈들 중 최악의 적들이지 않나.

여태 편하게 살아왔다면 또 모르겠으나…….

적어도 사태가 터진 이후 구우준의 삶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투쟁의 연속이었다.

있었던 일만 잘 정리해서 써도 나의 투쟁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을 터였다.

“저기.”

돌연 걸음을 멈추게 된 것은, 역시나 라드 때문이었다.

과연 영철의 감이다 싶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피, 피해!”

상대도 이쪽을 눈치챘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쇠꼬챙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정찰병은 아니었는지 날아드는 속도와 그 정확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음!”

“저쪽!”

게다가 한 놈은 딱 하나만 던지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고 있었다.

다른 놈들에게 알리리라는 것 정도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게 그래도 라드인데 그럴 리가? 하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저 큰일 났다 싶을 뿐이었다.

“쏴! 쏘라고!”

어떻게든 죽여야 했다.

탕“컥!”

급한 마음에 손에 잡히는 대로 한 놈을 일으켜 세웠고, 놈도 수라장을 겪어 왔던 놈답게 바로 총을 쐈지만…….

“아니…….”

딱 한 발만 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대로 자리에 남아, 쇠꼬챙이를 꼬나 쥐고 있던 놈이 던진 꼬챙이에 가슴께가 푹 하고 찔려 뒤로 벌러덩 넘어가고야 말았다.

“어, 어쩌죠?”

이쪽이나 저쪽이나 피차 마찬가지였던 걸까?

탕타타타당

정반대편 쪽에서도 총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영철은 소리에 귀 기울일 새조차 없이, 쓰러진 놈을 보다가 이내 물었다.

그로서는 드물게 연기할 여유조차 없었던 만큼 공포심이 그득 떠올라 있었다.

“어쩌긴! 일단 쏴! 저 새끼 하나고, 이제 쇠꼬챙이도 없어!”

“네? 없어요?”

“그래, 내가 개수 셌지!”

“하.”

그런나 구우준이 몸을 일으켜 총을 쏴 대기 시작하자, 공포심의 대상이 살짝 바뀌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걸 뭐라고 할까…….

경외심?

그래, 이 인간과 함께라면 뒤질 일은 없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영철도 두려움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설 수 있었다.

“옳지. 존나 쏘라고.”

“싸워야지!”

대응 사격에 나서자, 어설프게 몸을 숨기고 있던 라드 하나가 금세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멀리서 보고 있던 유현과 김태평은 그 모습을 보면서 환호했다.

어차피 둘 다 나쁜 놈들이지 않나.

지금까지 스코어는 2:3.

무려 다섯 놈이 죽어 나간 마당이었다.

적들이 그만큼 죽었단 얘기이니만큼 기분이 나쁘면 이상한 일이었다.

탕타타타당

원래 같았으면 이쯤에서 식인종 무리는 도망갔을 터였다.

총이야 쉽사리 망가지는 물건이 아니라 하지만…….

탄약이 어디서 막 샘솟는 건 아니잖아?

유사시를 대비해 여유분을 남겨 둬야 했다.

‘지금이 유사시가 아니라면 대체 언제가 유사시겠어.’

하지만 식인종들은 모든 화력을 여기서 소진하겠다는 마음으로 총을 쏴 대고 있었다.

“크아아!”

“으아!”

특히 건물 위에 남겨 두었던 놈들이 활약을 해 주고 있었다.

슬금슬금 뒤로 빠지는 구우준 측을 쫓던 놈들 중 무려 셋이나 단번에 자빠졌을 정도.

물론 그거 셋 죽이는 데 탄창 다섯 개가 홀랑 비어 버렸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구우준은 평소 입버릇처럼 외치던 총탄 아끼라는 말 대신, 칭찬과 격려를 쏟아 냈다.

“잘했어! 우리도 쏴! 쏘라고!”

그러곤 자신도 총탄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이나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태 초기였으면 라드들을 꿰기에도 충분할 만한 소음이었다.

물론 이제 총소리가 단순히 크기만 하지 않고, 총탄에 맞으면 제아무리 거대화된 놈들도 죽어 나자빠질 수밖에 없다는 걸 학습한 이상 그런 일은 없을 터였다.

생존자들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너무 가까이로는 오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왜냐?

총 든 놈들이 다 군인이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군인들조차 언제든지 약탈에 나설 수 있다는 걸 배워서 그랬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억…….”

두 무리는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죽도록 치고받을 수 있었다.

쇠꼬챙이가 날아들고, 총탄이 날아들고.

일견 보면 확실히 라드 쪽이 불리했다.

총이지 않나.

조총만 해도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보여 주었었는데, K-2는 어떻겠나.

“좋아.”

그러나…….

김민수는 도리어 웃고 있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뒤로 숨어드는 것에 성공한 탓이었다.

그가 초거대 개체 둘과 함께 눈앞에 두고 있는 건 라드가 보기에도 소름 끼칠 만큼 끔찍하게 조형된 시신 장식품 사이에 서서 총탄을 쏴 대고 있는 놈들이었다.

구우준이 라드 놈들의 반격에 대응하기 위해 건물 위에 남겨 두었던 칼.

-사주 경계 철저히 해!

분명 이런 명령도 내려 두었지만, 눈이 시뻘게진 채 뛰어들고 있는 라드들 코앞에 있는데 옆을 어찌 돌아볼 수 있겠나.

자세히 봤다면 지금 뛰어드는 놈들 중 태반은 라드화가 진행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은, 그러니까 작은 놈들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구우준조차 전투 흥분으로 인해 정신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뭐 하겠나.

“죽여!”

“음!”

김민수는 그야말로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간에 후방을 잡았다.

구우준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총소리와 비명 소리 때문에 아직 사태 파악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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