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관찰 (1)
“저게 뭔 일인 거 같냐?”
김태평.
그리고 요원 몇은 생존자 무리의 근거지라 추정되는 곳 주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서는 아니었다.
유현과 본부장 모두의 요청이 있었다.
지척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또라이 새끼들이 있는데 경계를 안 선다는 건 직무 유기 아니겠나?
불가능한 일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여기 있는 이들은 은·엄폐의 달인들이었다.
“모르겠는……데요?”
“저 중에 몇 놈은…… 우리 공격했던 놈 같은데?”
“그런가요?”
“어, 생김새가 그래.”
“팀장님은 그게 분간이 가세요?”
“대충?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이제 알겠어.”
“으음.”
그러한 연고로, 급한 일에 대해서는 라디오로 송수신을 하면서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덜 급한 일이면 그냥 가도 될 거리다 보니 그리 불합리한 요구도 아니란 생각에서였다.
근데 그게 대박을 쳤다.
아닌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런 일이 생겨?
“어어, 어!”
경계를 서고 있던…….
더 정확히 말하면 기괴한 시신 조형물 사이에 숨어서 작살 비슷한 것을 들고 있던 겁쟁이의 허벅지에 쇠꼬챙이가 틀어박혔다.
확실히 주변 시야와 냄새 등으로 인해 헷갈렸던 것은 맞지만…….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라드, 그것도 무려 지능이 뛰어난 놈이다 보니 숨을 수 있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걸리게 되었고, 걸리자마자 이 꼴이 되었다.
“으……. 으아아아!”
“어디에 있지?”
“저, 저기!”
겁쟁이는 라드가 묻자 빠르게 답했다.
아마 다치지 않았더라도, 그러니까 통증이 수반되지 않았더라도 묻는 말에 술술 불었을 터였다.
아무리 사람을 먹을 만큼의 악인이라고 하지만, 그거랑 용기는 사실 별반 상관이 없는 일이지 않나.
오히려 더 겁쟁이일 가능성이 컸다.
그저 라드들에 둘러싸이게 되는 것만으로도 불 거다, 이 말이었다.
“얼마나 있지?”
“서, 서른!”
“서른. 무장은?”
“초…… 총도 있어!”
“흐으음…….”
그래서일까?
오히려 대화는 잘 통했다.
이성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 있었다면 ‘라드가 말을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고뇌에 빠지는 시간도 있었을 텐데…….
그런 고민은커녕 그냥 묻는 말에나 술술 답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거 하나만 떠올라 있었다.
반면에 그런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라드, 김민수는 머릿속이 좀 복잡했다.
‘골목에서 나타난다면…… 딱히 무서울 것도 없어.’
골목이라 함은 폐허 사이로 난 길목들을 뜻했다.
원거리 사격이 되었건 투척이 되었건 간에 한 차례 충돌이 있고 나면 필시 난전이 벌어지게 될 텐데…….
시야가 트인 곳이 아니니만큼, 근접전이 벌어진다면 아무래도 이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딴 놈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거대한 몇 놈만 투하해도 끝장이 날 테니까.
하지만…….
‘저 위……. 건물들에서 나타나면 그때는 골치 아픈데.’
근접전이 아니라 원거리 싸움이 된다, 이 말인데…….
아무리 힘이 좋아서 아래서 위로 던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한계는 명확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상대편에는 총도 있다지 않나?
그 수가 많지 않다면, 평소라면 감당할 수 있었을 터였다.
‘여기서 피해를 너무 입었다가는 본대에 당할 수도 있어. 아니, 본대가 아니라 아예 다른 놈들인 거 같긴 한데…….’
재난 본부?
이제 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거기에 더 많은 놈들이 있지 않나.
근처를 보니 유현이라는 남자는 여기가 아니라, 거기 있을 것 같았다.
만만한 놈이 아니긴 해도 이런 식으로 미쳐 버렸던 놈은 아니니까.
“일단……. 뒤로.”
“응?”
“뒤로!”
해서 김민수는 라드를 뒤로 물렀다.
가뜩이나 시신을 보고, 또 피 질질 흘리는 인간을 보고 흥분했던 놈들을 통솔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이 무리에 있어 김민수의 장악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으음…….”
게다가 일단 사람 하나를 던져 주지 않았나.
물고 싶다는 충동과 부수고 싶다는 충동 사이에 뭐가 이길지는 모르겠는데…….
중요하진 않을 것 같았다.
저따위 놈이야 합류해 봐야 소모품으로 쓰게 될 테니까.
어쩌면 당장 스트레스 푸는 데 쓰는 게…….
“끄…… 끄아아아악!”
그래, 저런 식으로?
초거대 개체 넷 그리고 거대 개체 셋에게 아무렇게 붙들렸던 녀석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 도저히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모양새로 토막이 나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건, 압도적인 완력 덕에 아파할 만한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을 거란 점이었다.
“미친.”
“저 시발…….”
황급히,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건물 여러 군데로 나뉘어 온 생존자 무리들은 눈앞에 갑자기 벌어진 참상에 욕설부터 내뱉었다.
곽근영이나 영철 또한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구우준이란 이름으로 이 무리를 이끌고 있는 사내만은 달랐다.
그는 토막 난 부하가 아니라 토막을 치고 난 후, 그 토막을 입에 처넣는 것이 아니라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그 움직임 자체를 바라보았다.
“섣불리 쏘지 마.”
무장이 부족한가?
그건 아니었다.
운 좋게 잡아 둔 군인들한테서 총을 꽤 노획했더랬다.
무려 열 정이 넘었다.
탄환이 넉넉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긴 했지만…….
“네?”
“저 새끼들 달려들면 골치 아픈데요?”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초거대 개체들은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니라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다.
지형적인 유리함과 무장의 유리함이 있으니만큼 죄다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어마어마한 피해가 있을 터였다.
숫자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무리는 호전적이건 아니건 간에 생존 확률이 떨어질 테니, 결국에는 절멸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고.
“그렇다고 자극할래?”
“저 새끼들이 자극이 필요합니까?”
“잘 봐. 뒤로 물러나잖아.”
대장의 말대로 라드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어떻게…….”
“이제 진짜 X 된 거 같군그래.”
“잘된 거 아닙니까?”
“통제되는 라드 무리야. 작지도 않고. 이게 X 된 거지 어떻게 잘된 건가.”
구우준은 쯧 하고 침을 뱉었다.
그 침이 옆에 깔아 두었던 시신의 얼굴에 탁 하고 달라붙었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거나 하진 않았다.
눈앞에 미친 괴물들이 있는데 이게 뭐 대수라고?
“왜…… 안 싸우죠?”
“이 새끼들이 그 라드들이니까.”
“지능이 있어서요?”
“응. 생각해 봐. 이런 데서 넌 싸우고 싶냐? 싸워 봤자 꼬라박는 거밖에 더 되겠어?”
멀리서 망원경을 통해 그 꼴을 지켜보고 있던 요원 하나가 불만 어린 얼굴이 되어 물었다.
김태평도 비슷한 얼굴이었지만, 기대조차 하고 있지 않았기에 금세 담담해질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말에 요원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기가 진짜 X 같긴 해요.”
그때 같이 갔던 요원이라서 납득이 더 빠른 것도 있었다.
멀리서 봐도 그렇지만…….
가까이서 본 저쪽 지형은 진짜 뭣 같지 않았나.
콘크리트 건물은 무너져도 은·엄폐물이 된다더니 진짜 그랬다.
심지어 제대로 무너진 것도 아니다 보니 그냥 비슷한 폐허가 줄지어 서 있게 되어 더더욱 분간이 안 되었다.
중간중간 시야를 어지럽히고 코를 괴롭게 하는 시신들은 덤이었다.
그냥 찬찬히 살피면서 걸어도 길을 잃거나 최소한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거기가 익숙한 놈들하고 싸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거야.”
“그것도 섬뜩하긴 하네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라드 무리라.
어찌 보면 세상에서 제일 X 같은 것들이 아닐까?
“일단 지켜보자고. 저 새끼들이 어찌 나오나 봐야지.”
“네.”
물론 다음 행보는 어떨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러다가 회까닥 돌아서 뛸 것 같진 않지만…….
전에 김태평 일행이 당했던 것처럼 며칠 동안 괴롭히다가 확 덮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려웠다.
‘어쩐다.’
김민수가 하고 있는 고민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유현이라고 했지? 그 새끼는 여기가 아니라 딴 데 있을 거야……. 문제는 거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어떻게 봐도 굳건해 보이는 건물.
일종의 성이라고 해도 좋았다.
특히 옥상에서 총 든 놈들이 지키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어디 거지 같은 2, 3층짜리 건물도 아니니 아래서 암만 힘센 놈들이 던진다고 해 봐야 옥상에 닿을 길은 요원할 터였다.
그와는 반대로 놈들이 쏘는 총알은 그대로 와서 박히겠지.
‘그럼 여기가 훨씬 쉽다는 건데.’
서른.
서른이라고 했지.
그중 열만 물어도 전력을 올라갈 터였다.
그만큼 확보해야 할 식량이 늘어난다는 것이 문제긴 한데…….
어차피 그 성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총알받이들이 꽤 많이 필요할 테니 장기적인 문제는 없을 터였다.
“일단……. 주변 살펴보지.”
그렇게 생존자 무리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라드는 완전히 물러나는 대신 주변에 머무르기로 했다.
물론 안쪽에 있던 이들에게는 그 움직임이 명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았다.
X 같은 지형은 밖이나 안이나 공평하게 적용이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반해 멀리 떨어져 있던 김태평은 사태의 전말을 더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
좋은 일인가?
‘마냥 좋은 일은 아니지, 당연히.’
저런 새끼들은 그냥 처음부터 없는 게 좋은 일 아니겠나?
그렇게 따지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던 게 더 좋은 일이고,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원흉 중에 김태평도 있다 보니 고개를 털긴 했지만.
하여간…….
“알리지. 최악은 면했어.”
“네. 어디에 자리 잡을지……. 그건 확인해야겠죠?”
“그렇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안 들키는 거야. 가까이 온다 싶으면 튀자고.”
김태평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암만 봐도 이 근방에서 저기가 잘 보이면서 동시에 비와 바람 등을 피할 수 있을 만한 건물은 이곳뿐이었다.
아니, 다른 데도 있긴 한데 대가리 달린 놈이라면 무조건 여기에 있고 싶어질 터였다.
처음에야 몰라서 딴 데 들어간다손 쳐도 알게 되면 진짜 무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죠, 그건.”
“아무튼, 상황 알리도록 하지.”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쪽과는 달리 본부 쪽은 평온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무려 두 무리의 적이 알랑거리긴 했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고 유현을 비롯한 경계 인원은 그냥 그렇게 무료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막말로 지금 같아서는 추위가 더 힘들었다.
-김태평이다. 식인종 무리……. 근방에 라드 출현.
그때 들려온 라디오 소리는 모두의 귀를 쫑긋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를 공격했던 무리로 추정.
이어지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라드가 나타났다는 것도 이상한데, 그게 우리가 아는 놈들이라고?
아니, 아는 놈들이라고 퉁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병사 때부터 시작된 인연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지독한 악연이지 않나.
‘이 새끼들……. 거기서 어떻게든 피해를 줘야 할 거 같은데……?’
유현이나 오예리 형사 등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