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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01화 (201/323)

201화 라드 무리 (3)

자박

자박

영철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에게 곽근영이 물었다.

그 또한 오늘은 이만 물러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줄행랑을 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어서 그랬다.

“야, 근데 이렇게까지 튈 일이야?”

“뭐. 아까 못 봤어? 그 새끼들……. 그거 보통 라드 아냐.”

“보통이건 아니건…… 수가 좀 되기는 했지만…….”

곽근영은 품 안에 넣어 둔 비수를 만지작거렸다.

사람 사냥꾼으로 전직했다고 해서 라드 사냥을 멈추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라드가 사냥하기 더 쉽지 않던가?

도발 좀 해 주면 직선으로 달려들기 십상이었고, 중거리 명중률이 거의 100%에 육박하는 그에게는 그저 밥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당장 아까 그놈들이랑 붙으라 해도 딱히 두렵진 않을 것 같았다.

“아냐……. 초거대 개체가 그렇게 모였다는 것부터가 너무 이상해. 그 새끼들은 보통 혼자 있거나 작은 놈들 거느리고 있잖아.”

“흐음……. 뭐 우연히 그렇게 커진 거 아냐?”

“시발, 속 편한 소리 하고 앉아 있네.”

“걷고 있거든?”

“지랄 말고…….”

그에 반해 영철의 생각은 아예 달랐다.

그가 봤을 때 초거대 개체는 사자, 그중에서도 수사자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혼자서도 작은 무리 하나를 털어 버릴 수 있는 무력의 소유자들.

전에는 라드화 되면 다 그렇게 되는 줄 알았지만, 수많은 라드들을 상대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되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라는 걸.

“그 새끼들이 왜 무리에 하나겠어. 될성부른 놈 있으면 죽이거나, 나중에 초거대 개체가 된 놈이 원래 있던 놈을 죽이고 수장이 되니까 그렇겠지!”

“너 동물의 왕국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

“상식적으로 그럼! 우리가 사냥해 온 놈들이 몇인데 어떻게 그게 다 그러냐고.”

“흐음……. 근데 저것들은 여럿이라 좀 다르다? 뭐 이런 거야?”

“그래. 일단 우리 대장한테라도 물어보자고. 그 인간이라면 뭔가 다른 의견이 있을 거야. 너도 인정하지? 우리 대장. 좀 다르잖아?”

“그건……. 그야 그렇지.”

곽근영은 여전히 무리 안에 초거대 개체가 여럿 있다는 게 그렇게 걱정할 만한 일인가 싶었더랬다.

하지만…….

대장 얘기가 나오자 생각이 좀 달라졌다.

‘하긴……. 그 인간은 좀 다르지.’

판단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곽근영이나 영철의 개인적인 무력이 특출난다곤 하지만, 위기가 없었겠나?

어지간한 재난이었다면 또 모를 일이겠으나 이만한 재난 앞에서는 개개인의 능력의 차이는 별 의미가 없는 법이었다.

그때마다 대장은 가장 합리적이고 또 그럴싸한 대안을 제시해 왔다.

애초에 사람을 먹자고 한 것도 그 인간이지 않나.

“뭐, 그래.”

“그래, 새꺄.”

“주변에 따라붙지는 않았겠지?”

“적어도 내 느낌에는 없어. 좀 싸하긴 한데…… 이거야 뭐.”

“그래, 그럼 다행이지.”

하여간 두 악인은 서로를 보며 후후 웃고 나서 걸음을 재차 빠르게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 라드 무리를 이끄는 김민수 또한 보조를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고.”

“음.”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냄새로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냄새마저 저들이 직접 풍기는 것을 따라가고 있다기보다는 저들이 남긴 흔적에 배어 있는 냄새를 따라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영철이나 곽근영처럼 본능적인 영역이 날짐승 수준에 다다른 이들조차 그들의 추적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란 얘기였다.

저벅

저벅

하여간 두 무리는 끊임없이 북쪽을 향해 걸었다.

여기서 동쪽으로 살짝 튼다면 수원 비행장이 나올 테고, 생존자 무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곳은 근거지였다.

“저기 오네.”

“응? 벌써?”

근거지는 지금 경계 수준이 꽤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척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이나 가까운 거리에 수십 명에 달하는 무장 집단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쪽에서는 그곳을 공격할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도 그럴 거라 믿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게 이쪽의 결론이었다.

하여간에 시신이 전시되기 시작하는 지점과 수십 미터는 떨어진 안쪽에 자리하고 있던 이들의 눈에 영철과 곽근영 등이 잡히기 시작했다.

“뭐지……?”

“알 게 뭐야. 알아서 했겠지.”

“하긴……. 저 둘이 같이 갔으니.”

“일단 정찰한다고 했잖아.”

“그래, 신경 끄자. 하 근데 시발 우리 진짜 여기 있어야 되는 거야?”

처음엔 이상하게만 여겨졌다.

아니,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긴 했지만.

그것만 고민하고 있기엔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것들이 너무 흉측했다.

비록 인간을 먹기로 결정한 사람들이지만…….

인간을 일부 벗어난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신들에 둘러싸이는 것을 즐길 수는 없지 않겠나?

멀쩡한 형태의 시신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근방을 채우고 있는 시신의 형태는 어떻게 봐도 그로테스크하기만 해서 더더욱 그러했다.

“까라면 까야지. 네가 가서 대들어 볼 거야?”

“아니……. 우리야 뭐…….”

그렇다고 해서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긴 했다.

리더가 무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명분이 없었다.

뭔가 더 편한 일상을 원했다면, 영철이나 곽근영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돌기는 해야 하지 않았겠나.

용기가 부족한 탓에 자리에 남았으면 이런 일이라도 해야 했다.

둘은 그들의 몫으로 남겨진 종, 종이라고 해 봐야 빈 깡통에 불과한 것을 돌아보다가 이내 앞을 돌아보았다.

벌써 영철과 곽근영은 폐허와 시신 더미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은신처로 향한 다음이었다.

“이건…….”

얼마 후, 김민수는 라드 무리를 이끌고 시신이 전시되기 시작한 지점에 도달했다.

“으으음!”

“음!”

그조차 놀랄 만큼 끔찍한 광경이었으니, 다른 것들이 발광하기 시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겠나?

이런 꼴을 라드가 아니라 사람이 저질러 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니.

“냄새는?”

“으음!”

“야, 정신 차려. 냄새는?”

“으으으음. 모르……. 모르겠다.”

물론 김민수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옆에 있던 놈을 쥐고 흔들었다.

이러면 재까닥 답이 나와야 정상이건만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그렇게 내놓은 답도 형편없었다.

예상하기는 했더랬다.

사방에 널린 이것들은 시야만 어수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냄새…….’

냄새라고 부르면 너무 점잖은 표현일 터였다.

악취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 와중에 뭔가 추적한다는 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봐도 무방했다.

‘망할.’

김민수는 인상을 잔뜩 쓴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도 이러고 있을 지경이니 다른 놈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나?

라드들은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김태평과 요원이 이상을 감지하자마자 폐허 속에 모습을 숨겼던 것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었고, 요원들이 괜히 그런 수고로운 일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의 증거이기도 했다.

“저것들 뭐야?”

“몰라. 뭐가 저렇게 많지……?”

라드들의 무방비한 모습은 고스란히 경계를 서고 있던 둘에게 전달이 되었다.

“종 쳐야 하나?”

“잠깐……. 잠깐. 여기서 종 치면, 병신아. 저 새끼들도 들을 수 있을 거 아냐.”

“그야 그렇지. 근데 더 들어오면 쳐야지?”

“누구 좋으라고. 사람이면 나도 치겠어. 근데 저 새끼들 저거 너무 크잖아. 라드야. 그것도 존나게 큰!”

“뭐…… 어쩌자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곧장 종이 울리는 일은 없었다.

“직접……. 직접 가서 전할게.”

“너……. 너, 이 시발 놈아! 어디가!”

“어차피 쟤네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모르는 거잖아. 내가 뛸게.”

“저. 저. 하.”

물론 용기 없는 둘이 딴 데로 튀는 일도 없었다.

인육을 뜯게 되었을지언정 배를 주린 적은 없지 않나?

심지어 위험에 노출된 적도 없었다.

안온하다고 하면 이상하기야 하겠으나…….

적어도 이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안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 이 시발.”

홀로 남겨진 이는 두려움에 떨면서 앞을 내다보았다.

과연 라드들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었다면, 벌써 비명과 함께 뒤도 안 돌아보고 튀었을 텐데.

저것들은 그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차근차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눈에 담긴 감정의 일부는 공포였지만 태반은 호기심이었다.

특히 맨 앞에 선 놈.

저놈은…….

‘이거 떠올린 새끼는…… 좀 다를 거 같은데.’

김민수는 확실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저 끔찍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그래서 알았다.

어떤 시신은 옷을 갖춰 입은 채, 녹슨 무기를 쥐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세워 둔 지 꽤 오래되었는지 백골화가 되어 있기도 하고, 냄새도 달라서 적어도 이들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김민수는 무슨 수작으로 저렇게 해 둔 것인지 잘 알겠어서 오히려 흥미가 일었다.

“공격이 있을 수 있어. 주의해.”

“음!”

“저 시신 사이에서 총알이나 뭐 날아올 수 있다고. 알아들어?”

“으음!”

그러면서 동시에 등에 메고 있던 철판을 집어 들었다.

초거대 개체들에 비하면 작은 몸집을 지니고 있지만, 비교적 작다는 것이지 객관적으로는 김민수의 몸집도 작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에 더해 완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각종 호르몬으로 부스팅 된, 수명을 대가로 얻어 낸 힘은 철판이고 나발이고 간에 가볍게 들 수 있었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것들도 철판을 집어 들었다.

지들끼리 던지는 쇠파이프 창이라면 가볍게 뚫어 버릴 방패겠지만 인간들이 던져 대는 돌덩이 정도는 위협은커녕 날아왔나 싶을 정도로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시발, 시발.”

홀로 남게 된 경계병은 욕설을 주워 넘기며, 받은 창을 쥐고 있었다.

원래 같으면 종을 쳐야겠지만 아까도 달려들까 봐 못 쳤는데 지금 칠 수 있겠나?

이제야말로 한달음에 달려들 것 같은데?

물론 라드들의 덩치 때문에 원근감이 헷갈리기도 하고 애초에 겁이 나서 판단력에 혼동이 온 탓도 있긴 하지만…….

하여간 아까보다 확연히 가까워진 건 사실이었다.

* * *

“뭐?”

“라드……. 라드들이 오고 있습니다!”

“종을 쳐야지!”

“그게……. 그게, 다른 놈이 겁난다고 줄을 잘라서.”

“이 미친.”

“그래서 제가 뛰어왔습니다.”

리더 구우준은 숨을 헐떡이고 있는 놈을 노려보다가 이내 손짓을 했다.

그러자 방금 들어왔던 영철이 뛰어왔다.

“넌 뭘 했길래 줄줄이 꼬리를 달고 와?”

“모…… 몰랐습니다. 근데 정말 놈들이라면 보통 일 아니에요. 여기서는 승산이 없어요!”

“제기랄.”

문책할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이 보초 서던 놈부터 팔다리를 잘라 놔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급한 건 라드 아니겠나?

구우준은 등 뒤에 메고 있던 총을 돌려 쥐고는 앞으로 나섰다.

“가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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