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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00화 (200/323)

200화 라드 무리 (2)

오래된, 그와 더불어 함부로 굴러먹은 흔적이 역력한 폰은 놀랍게도 충전이 되어 있었다.

서울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도 전기가 들어오는 지역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선생이었던 사내에게 제일 놀라운 것은 그저 눈앞의 라드였다.

“어떻게…….”

“반응이 한결같구만, 그래.”

라드, 생전의 이름으로 말하자면 김민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놀랄 일이긴 했다.

그가 봐도 자신과 다른 라드는 크게 달랐으니.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도 평범한 라드와 아주 다르진 않았더랬다.

그러나 점차 머릿속을 메우고 있던 안개가 흩어져 가는 느낌을 받았고, 종래에는 이렇게 됐다.

“묻는 말에나 답하지.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가 지금 네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흉포한 분노와 충동이 가득했던 가슴 속에는 어느덧 이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되었나?

그건 또 아니었다.

여전히 멀쩡한 인간을 보고 있으면 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아니, 이건 충동이라기보다는 사명에 가까웠다.

반드시 물어야 했다.

적어도 감염체가 아닌 이들에 대해서, 김민수는 전혀 동족 의식을 느낄 수 없었다.

“어……. 어떻…… 윽.”

덕분에 묻는 말에 답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던 이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후려칠 수 있었다.

저 행위를 납득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했다.

“묻는 말에 답해.”

“어……. 모, 몰라. 이런 사람은…….”

“아니, 잠깐만! 형님. 이거.”

하여간 일정 수준에 다다른 폭력은 과묵한 사람도 수다스럽게 만드는 힘이 있는 법이었다.

독립운동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애초에 도덕심이 무너진 채 생존에만 몰두하던 이들에게는 효과가 더 좋았다.

가뜩이나 라드들에게 에워싸여 쫄아 있던 전직 경찰이 외쳤다.

나만은 일단 때리지 말아 주세요, 하는 마음이 천지 사방으로 느껴질 정도로 다급해 보였다.

“이거 정유현이잖아요!”

하여간 경찰은 유현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보면 알아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유명인이지 않나.

팬데믹 사태가 터졌을 때도 그랬지만, 이 라드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일종의 예언가 내지는 폭로자 포지션으로, 유현은 살아남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에게 바이블이 되어 있었다.

“정유현……. 그래, 본 적 있나?”

신이 나서 떠들어 대던 경찰은 이어지는 질문에는 곧장 답하지 못했다.

아는 얼굴이긴 하지만 매체를 통해서나 봤기에 그러했다.

엄밀히 따지면 먼발치에서 유현이 있는 건물을 보긴 했지만…….

사람이 매도 아닐진대 그 먼 거리에서 별다른 도구도 없이 어찌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을 알아본단 말인가.

“아, 아뇨. 보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말을 안 하면 맞을 것 같아서 고개를 황급히 젓기는 했다.

지금도 끅끅거리고 있는 형님을 보고 있자니 행동이 절로 빠릿빠릿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럼 질문을 바꾸지. 이 근처에서 사람들 본 적 있나.”

“어떤…….”

“그냥. 니들이 죽인 저런 사람들 같은 사람들.”

다행히 맞지는 않았다.

그저 대화가 이어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호의적인 느낌이 드냐고 하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김민수는 라드 특유의 예민한 감각을 이용해 이들이 한쪽 구석에 치워 두었던 시신 더미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리 막 나가기로 작정한 이들이라고 해도 시신 옆에서 대놓고 놀기는 뭣해서 여러 포대기 같은 것으로 가려 놨지만 라드들의 후각 앞에선 별 소용이 없었다.

“어…….”

전직 경찰은 저걸 들켰다는 생각에 잠시 머릿속이 탈색되었다.

“봐, 봤습니다!”

대신 나선 것은 선생이었다.

그는 여전히 통증으로 인해 얼굴이 시뻘건 와중에도 일단 말을 뱉고 있었다.

한 대 맞았더니 또 이런 걸 맞게 되면 죽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어디서?”

“저, 저쪽 방면입니다.”

“북쪽이군.”

“네?”

“여기서 북쪽이라고. 규모는?”

이제 선생은 상대가 라드라는 것도 잊은 지 오래였다.

비록 생김새는 라드 그 자체였고, 그중에서도 거대 개체로 분류될 정도로 커다랬지만…….

대화의 논리 정연함은 선생 시절에 만났던 이들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선생은 두려움 없이 그저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적…… 적어도 스물? 어쩌면 그 이상일 겁니다. 총, 총도 있었어요.”

“총? 총이라.”

김민수는 스물이란 말에 인상을 썼다.

그때 도망간 놈들……. 기껏해야 열 명 정도였기에 그랬다.

이 환란의 시기에 숫자가 줄면 줄었지 늘 수 있겠나?

그러나 총이란 단어에, 그의 얼굴이 조금 펴지기 시작했다.

“네, 네. 총이 있었습니다. 규모를 보건대 여기보다 훨씬……. 훨씬 풍족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총 때문에…….”

“확인해 봐야겠는데.”

김민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다시 한번 선생이 가리켰던 곳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저쪽이라고?”

“네. 산 중턱에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가 커요.”

“그래. 잘됐네. 좋아.”

분위기가 어쩐지 아까보다는 나아 보였다.

라드에게 둘러싸인 주제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어쩐지 말이 통하다 보니 살려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 기대가 아주 빗나간 것은 아니긴 했다.

“잡아.”

“음!”

“아, 안 돼!”

“사, 살려 줘!”

대화가 끝나자마자, 김민수는 몸을 일으키더니 주변에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초거대 개체 둘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반항은 없었다.

했어도 별 의미는 없었을 터였다.

어차피 애들 장난 같은 느낌이나 주었을 테니.

“으.”

“으!”

초거대 개체에게 붙잡힌 둘은 곧 김민수에게 팔뚝이 물렸다.

둘은 거의 바로 바닥에 엎어져 몸을 발발 떨기 시작했다.

고열이 튀다가 잠시 심장이 멎고, 그게 다시 뛸 때쯤에는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있을 터였다.

끊임없이 산 사람을 물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감염시키기 위해 애쓰는 것들이 되겠지.

‘그러다 정신을 차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김민수는 전자에, 그것도 꽤 엄청난 수준에 속해 있었지만 다른 놈들은 아니지 않나?

당장 옆에 있는 초거대 개체도 그가 키워 내다시피 한 놈이건만, 명령을 알아들을 뿐 말을 하진 못했다.

알아듣는 것도 간단한 거나 알아듣는 거지, 복잡한 명령은 아예 내릴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거의…….

‘말 잘 듣는 개지. 개…….’

의견 교류 따위는 기대하기 어렵단 얘기였다.

이놈들이라고 다를까?

김민수는 차게 식은 눈으로 바닥을 기고 있는 둘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심장 발작이 있었는지 조용해졌다가 이내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쯧.’

일말의 기대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서 그는 둘을 지켜보는 대신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저기 노인들은……. 노인들은 버려두고. 나머지나 챙기지. 대충 밖에 둬도 안 썩긴 할 텐데……. 알지? 어떻게 하는지는.”

그 말에 초거대 개체 대신 다른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치와 이성이 반비례하는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저것들은 더 복잡한 명령 수행이 가능했다.

그래 봐야 딱 그 정도이긴 한데…….

여러 번 반복했던 일이라면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하여간 곧 도살당했던 이들의 시신이 토막 나기 시작했다.

내부 장기와 뇌 등은 워낙에 잘 썩는 부위다 보니 몸통은 버리기 위함이었다.

‘흐음…….’

그렇게 고요했던 노인들의 은신처가 피범벅이 되어 가는 사이, 김민수는 홀로 건물 위로 올라 아까 선생이 가리켰던 곳을 바라보았다.

한바탕 난리를 피우긴 했지만, 여전히 동이 터 오려면 먼 시각이었다.

애초에 겨울이라 해가 늦게 뜨기도 했고.

달빛에 의지해서 봐야 한다는 건데…….

‘저 산 너머에 뭐가 있다, 이거지.’

당연히 지금 보이는 건 산뿐이었다.

그것도 칠흑같이 어두운 산.

“저것들은 뭐야?”

다음 날.

날이 밝은 후라고 하기엔 해가 중천에 떠 있게 된 시각, 영철은 재난 본부 근처에서 한 무리의 라드를 목격할 수 있었다.

“뭐야……?”

옆에 있던 곽근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 같은 무리를 이루는 이들 모두 라드들을 보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웠다면 무조건 도망가야 했을 정도로 강대해 보이는 놈들이었다.

일단 초거대 개체만 해도 여럿이었다.

저거 하나만 난입해도 무리 하나가 와해될 정도라는 걸 알고 있는 영철 등으로서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것들……. 저 위에를 보고 있는데?”

“멍청아, 일단 숙여.”

“어, 어어.”

더 소름 돋게 만드는 건 놈들의 움직임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체계가 있다고 할까?

물론 최근 들어 라드 놈들 중 저런 놈들이 꽤 있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라고? 할 정도였다.

위장에 엄폐에…….

저런 놈들이 본인들의 근거지로 쳐들어온다고 생각을 하니, 등줄기가 서늘하다 못해 오한이 일었다.

“응……?”

그 시각, 김민수는 후방에 선 채 보고를 듣고 있었다.

영철 등이 본 무리는 일종의 정찰대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간 정찰이라는 게 본디 한 방향으로만 보내는 것이 아니지 않나.

“총 든 놈들이 밖에 있다고?”

“음! 그렇다! 봤다.”

“소리……. 소리 지르지 말고.”

“음!”

“하.”

김민수는 다른 방향으로 보냈던 이에게 보고를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같은 무리인가?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이놈들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건물 옥상에만 총 든 놈이 8명은 있다고 하지 않나.

근데 밖에도 그보다 더 많은 놈들이 있다고?

‘같은 무리라면……. 저기서 총을 쏜다고 치면…….’

잘 보이진 않을 거리긴 했다.

그러나 총 든 이들이 경계를 삼엄하다 싶을 정도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게 서고 있는 와중에 병력을 따로 뺄 정도로 숫자가 많다는 건 뭔가 더 있다는 소리 아닐까?

어쩌면 군대가 있을 수도 있었다.

군복 얘기는 없지만 원래 이 새끼들 말은 다 믿으면 안 되지 않나.

머리가 나쁜 건 둘째 치고 관찰력이 좋지도 못했다.

“일단……. 가서 보지.”

“음.”

만약 따로 떨어져 있고, 그 안에 유현이 있다면…….

그 무리가 있다면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각개 격파가 가능하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해서 김민수는 무리를 이끌고 놈들이 뭔가 봤다는 곳으로 향했다.

“없잖아?”

텅 비어 있었다.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거짓말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담배…….”

태운 담배꽁초를 확인한 마당이니만큼, 그렇게 의심할 이유도 없어지긴 했고.

이상한 것은 놈들의 발자국이 저 건물 쪽이 아니라, 더 북쪽으로 나 있다는 점이었다.

‘뭐지?’

수색인가?

그렇다면 기회였다.

더더욱 본대와 멀리 떨어질 작정이라는 얘기였으니.

“냄새 맡을 수 있지?”

“음!”

“그럼 가자.”

라드 무리는 본격적으로 영철 일행을 뒤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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