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98화 (198/323)

198화 영철 (3)

“읍.”

요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꽤 요란하게 굴었을 터였다.

김태평이 보기에도 그게 반드시 유난스럽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후…….’

확실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현실을 넘어서 있어서 그랬다.

쇠꼬챙이 같은 것에 꾀인 채 이리저리 묶여 있는 시신들은…….

어떻게 봐도 끔찍했다.

게다가 어떤 건물엔 마치 전시라도 해 놓은 듯이 목이 매달린 시신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차라리 백골화라도 진행이 되었더라면 나았을 텐데, 날씨가 날씨인 만큼 부패가 조금만 진행되었을 뿐이라 더더욱 들여다보고 있기가 어려웠다.

“일단 이쪽으로.”

그 와중에도 김태평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요원을 반대편으로 끌었다.

왜 이딴 짓을 해 놨을까.

단순히 영역 표시를 위해서?

라드들에게도 두려움을 심어서 안전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것만은 아닐 터였다.

“여기서부터는 정신 바짝 차려. 주변에 누구 있었으면, 우리 들켰어.”

“아…….”

여기 있는 놈들에게는 이런 광경이 아마도 더없이 익숙할 터였다.

그렇다는 건 정신 팔린 놈들을 아무런 방해 없이 관찰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가 되었다.

태평의 말을 듣고 나서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요원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이 제대로 돌아왔다는 걸 확인한 김태평은 영철을 쫓기 위해 시선을 옮겼다.

허사였다.

사라져 있었다.

“망할.”

미로와 같은 공간인데, 애초에 거리를 두고 쫓고 있지 않았나.

더군다나 그 자신 또한 잠시라고는 해도 일단은 시선을 빼앗겨 버렸던 마당이었다.

“봤을……까요?”

“아니. 그랬을 거 같진 않아. 하지만…….”

김태평은 단련된 몸을 이용해 반쯤 무너져 내린 건물 2층 쪽으로 올라갔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단숨에 올랐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하여간, 그는 그렇게 약간의 시야를 확보한 채로 그러나 폐허 뒤에 몸을 숨긴 채로 주변을 살폈다.

기대했던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시야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아까보다 좀 더 보이는 정도?

“사방이 이 지경이야. 이 새끼들 대체 사람을 얼마나 죽인…… 아니, 라드도 있군. 하긴……. 사람 먹는 놈들이 라드라고 안 먹진 않겠지.”

온 사방에 전시된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개중에는 뜯어 먹었는지 신체 대부분이 결손되어 있는 것들도 있었다.

방금 김태평이 말한 것처럼 라드의 시신들도 널려 있었다.

덩치가 커서 눈에 더 잘 띄었다.

중요한 건 정작 놈들의 본거지 같은 곳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더 들어가 볼까요?”

“너무 위험해.”

요원은 그의 말에 소음기 단 권총을 집어 들어 보였다.

상대의 수가 적다거나 밀집도가 떨어진다면 아마도 괜찮을 터였다.

하지만…….

‘지형이 너무 불리해.’

그냥 제대로 된 건물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오히려 무너진 건물들이 있다 보니 더더욱 분간이 안 되었다.

지금이야 해가 뜬 상황이니 망정이지 조금만 더 어두워지면 뭘 쫓기는커녕 이쪽에서 길을 잃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위에 적이 있다면?

솔직히 시신이랑 분간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잘 보면, 보기에 끔찍한 시신 중간중간에 멀쩡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나름 옷도 입혀 놔서 사람인지 아닌지 잘 봐야 할 정도였는데, 그것도 다 계획적으로 저지른 짓일 터였다.

‘더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야. 일단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다는 거에 만족해야 할 거 같은데…….’

김태평은 폐허 사이로 나름 최선을 다해 살펴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름지기 훌륭한 요원이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툭해서 그는 곧장 아래로 뛰어내렸다.

“우리끼리는 무리야.”

“아……. 네.”

그리고 요원은 김태평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의 판단이 늘 100% 맞는 건 아니었지만, 뭐가 되었건 다른 이들보다는 낫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랬다.

“돌아가는 길도 험하겠구만…….”

“네, 주의해야겠습니다.”

“걸리면 곤란해지긴 할 거야.”

그러곤 김태평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영철을 쫓아올 때처럼 주의를 기울이면서였다.

이 근처의 광경을 본 이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통 놈들이 아니지 않나?

뭐 사람이 사람을 먹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그렇긴 하겠지만…….

이건 정도를 지나친 감이 있었다.

“서울에서 본 놈들하고 같은 놈들일까요?”

“아니, 거긴 이렇게까지 치밀하진 않았어.”

요원의 감상은 그러했었다.

하지만 김태평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가 봤을 때 이놈들은 단순히 미친놈들이 아니었다.

그로테스크하게까지 보이는 시신 전시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옷 입은 시신들은…….

‘위험해……. 위험하다, 이놈들은.’

다 그렇진 않을 터였다.

그러나 뭐가 되었건 이들을 이끄는 놈은 이 와중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원래 총질도 머리 차가운 놈이 하는 총질이 제일 무서운 법인데…….

“어쩌면 서울에서 본 놈들은 여기 산하에 있는 놈들일 수도 있어.”

“네? 너무 범위가…….”

“차가 있다면 어려운 일도 아냐. 게다가 이 새끼들이 사냥을 다닌다고 생각해 봐. 생각보다 사람은 먹으려고 하면 그렇게 먹을 데가 많지 않을걸. 엄청 돌아다닐 거야.”

“읍…….”

“정신 차리고.”

“아까 저런 걸 봐서요. 죄송합니다.”

둘은 서로 번갈아 가며 앞뒤로 시선을 옮기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이어 갔다.

훈련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김태평이 그러했던 것처럼 요원도 타고난 사람이었다.

동시에 꽤 많은 실전 경험으로 단련된 사람이기도 했고.

“어땠어?”

둘이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조용히 철수하는 사이, 영철은 제집처럼 익숙한 발걸음으로 폐허와 시신 그리고 백골들로 둘러싸인 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교묘하게 교차되는 폐허 속에 더 깊은 곳으로 통하는 길목이 있었다.

그 길목 안쪽과 밖은 확연히 구분되었다.

폐허 더미 속에서 나름 멀쩡한 벽돌을 찾아 벽을 만들어 두어서만은 아니었다.

안과 밖은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찾았어. 근데 꽤 많아. 젊은 놈들도 많고……. 무엇보다 총이 꽤 있어.”

영철은 젤 먼저 마주친 이, 곽근영의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기에 욕설부터 날아들었다.

“망할. 총이 있어? 그것도 꽤?”

“어. 건물 높이나 너비도 적당해. 정면에서 뚫을 생각 하면……. 흐음……. 어려울 거 같은데.”

그런 건 영철의 고려 사항이 아니었기에 하고자 했던 말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그사이 밖으로 나온, 어깨에 총을 짊어진 사내를 향해서였다.

곽근영은 영철이 보기에도 진짜 미친놈이지만, 이 인간은 얘기가 달랐다.

미쳤다고만 하기엔 한참 모자란 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시신에 옷을 입혀 늘어세워 놓자고 할 땐 저도 모르게 돋아난 소름을 숨기느라 애를 먹었을 지경이었다.

“곽근영이 또 들어가는 건?”

“거기 같이 들어간 여자가 다 불었을걸요.”

“그렇긴 하겠지. 근데 사람이 그렇게 많다면……. 식량 수급을 어찌하고 있지? 주변에 농지가 있었나?”

막상 사람을 죽일 땐, 앞으로 나서는 편은 아니었다.

처음엔 그게 심약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닌 듯했다.

‘그런 일은 누구나 대신할 수 있다, 이거겠지.’

꼭 누군가를 남들 앞에서 죽여야 무언가를 입증할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도 보라지.

무심한 얼굴로 툭 던지는 질문이 날카롭지 않나.

“그건…….”

“확인할 생각을 못 했나?”

물론 저러다 갑자기 내지르는 칼도 무섭긴 했다.

말로 해결할 수 있으면 말로 해결하자는 게 저 인간의 모토긴 하지만…….

그 말속에 내포된 숨은 뜻은, 언제든 수틀리면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기도 했다.

“네, 네. 죄송합니다.”

상대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이었다.

당최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런 주제에 이쪽이 조금이라도 잔인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하면 인상을 쓰는 게 어이가 없었다.

“죄송할 건 없지. 겨울이니까……. 농사를 쉬고 있을 수도 있어. 애초에 주변에 다 농지였으니…….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고. 문제는 총인데. 그걸 대체 어디서 가지고 왔을까?”

상대, 그러니까 이 무리를 이끌고 있는 이의 이름은 구우준이라 했다.

본명인지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렇게 말하니 믿을 수밖에.

하여간 그는 자신의 총을 쓰다듬고 있었다.

군필이라면 모를 수 없는 총이었고, 동시에 군인에게서 뺏어 온 것이기도 했다.

“멀리서 봐서 정확하진 않지만, 이거랑 같은 거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누군갈 죽여서 총을 뺏었다면……. 그런 놈들이 굳이 아무것도 없는 놈들을 구해 가진 않을 거 같고…….”

영철의 말에 리더는 총을 쓰다듬던 손을 가만히 옮겨 턱에 난 털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흠. 군인들과 연관이 있나? 가까이에 군부대가 있을 거 같진 않은데. 체격은 직업 군인들 같아 보이지만…….”

“소방 재난 본부? 뭐 이런 글귀가 써 있었습니다.”

“그럼 소방관들이라고 보는 게 좋겠네. 안에 물자도 꽤 많겠어.”

물자라는 게 식량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술이나 물 등은 이들에게도 귀한 물건이었지만, 식량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살아남은 사람은 꽤 많지 않나.

좀 더 질기긴 해도 식량의 범위를 라드까지 넓힌다면 먹을 건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다.

그보다는 다른 물자들이 훨씬 귀하단 얘기였고, 재난 본부라면 니즈에 딱 알맞은 느낌이 일었다.

“들여다봤다는 건 상대도 알겠지?”

“네? 네. 아마도요. 처음에 대놓고 저 혼자 남았으니까요.”

“그 후로는?”

구우준의 말에 영철은 한 시점을 떠올렸다.

들켰을까?

알 수 없었다.

그냥 찜찜한 느낌?

아니, 그보다는 섬찟한 느낌이 일었을 뿐이었다.

“아, 아뇨.”

“왜 망설여?”

“사람이 워낙 많았어서……. 하지만 어두웠고, 아무도 못 봤을 겁니다.”

“흐음.”

이번에도 그랬다.

섬찟한 느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타고 흘렀다.

분명 일대일로 싸우면 영철이 이길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싸움이 될까 싶었다.

그러나 근원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언제나 구우준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겠는 상황이지만 일단 몸을 숨겼던 것과 같은 이유로 영철은 이 느낌이 가시기 전까지는 구우준을 거역할 생각이 절대로 없었다.

“아무튼, 당장 먹을 건 많고 날도 추우니까 무리하지는 말지. 그냥 관찰만 하자고. 주변 길이나 좁혀 두고.”

“네.”

“좋아. 고생했네. 마침 박 씨가 솜씨를 부렸어. 꽤 맛있을걸.”

“아……. 아까 오함마?”

“그래. 덩치가 좋아서 그런가 실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구우준은 그렇게 돌아온 영철의 어깨를 툭 하고 두드렸다.

영철은 일부러 더 호들갑을 떨며 안으로 향했다.

그런 영철을 보다가, 구우준은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봄까지는 걱정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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