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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97화 (197/323)

197화 영철 (2)

밤이 어둡다는 건 상식일 터였다.

그러나 진짜 어두운 밤을 경험해 본 적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특히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서울에 살았던 이들 중엔 드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

군대마저 공군 군의관으로 다녀온 탓에 도시에서만 거주했던 유현은 여전히 이 어두운 밤이 낯설기만 했다.

오로지 달과 별에 의지해 앞을 살펴야 한다니.

기가 차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도 본부장님이 저 앞에 불 피워 놔서 뭐가 보이긴 하지 않아요?”

“보이는 느낌만 있는데…….”

유현은 수원에서 받아 온 것으로 추정되는 맥주 한 캔을 툭 따서 한 모금 넘기며 말했다.

상식적으로 오늘 당장 습격이 있을 것 같진 않아서 그랬다.

상대의 규모를 전혀 추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현정? 그 사람 말에 의하면…… 그때 쳐들어왔던 사람들 기껏해야 열도 안 돼.’

아마 남아 있던 이들이 맞서 싸웠다면 또 모를 일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비도와 작살, 사시미에 초반 몇이 너무도 잔인하게 죽어 나간 게 컸던 듯했다.

하긴, 제아무리 망한 세상에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모든 이가 벌써 문명을 잊고 사는 건 아니지 않나.

그만한 무도함을 장착할 수 있었다는 건, 어쩌면 망하기 전에도 야만성을 내재하고 있었을 거라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 정도 숫자면……. 우리는 대응이 가능해.’

물론 비도와 작살이라는 단어가 좀 걸리긴 했다.

아마 일행 중 몇은 상하게 될 것이었다.

어쩌면 꽤 많이.

그러나 상대도 다 죽을 게 뻔했다.

이쪽은 수원으로 쪼개진 일행을 제외하고서라도 총이 거의 7정은 더 있었으니까.

“그래도 저 정도 거리면 어렴풋이 보여도 저는 맞힐 수 있어요.”

오예리 형사는 맥주를 홀짝이는 유현을 보다가, 이내 건물 사방에 피워진 불들을 겨누기 시작했다.

건물 자체가 한 동이라기엔 너무 거대했기 때문에 한눈에 들어오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말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예리 형사의 사격 솜씨는 원래도 대단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더 늘어만 가고 있어서 그랬다.

“그렇죠. 덕분에 제가 쉬네요.”

“내려가서 마시면 안 돼요? 저 아직 교대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천천히 마시면서 기다리죠, 뭐. 이번에 맥주를 엄청 준 거 같던데.”

“하……. 엄청 맛있게 드시네.”

“맛있어요, 실제로.”

당연한 말이지만 옥상엔 그 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대원들과 요원까지 포함에 8명이나 더 있었다.

덕분에 둘은 느슨해진 마음으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옥상을 올려다보는 이가 하나 있었다.

영철이었다.

‘흐음……. 규모가…… 여기는 엄청난데……?’

감히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횃불 근처로 갔다간 몸뚱이에 구멍이 날 것 같아서 그랬다.

‘총이 있었지…….’

총이 있다고 해서 다 잘 쏘는 건 아니겠지만…….

대한민국 남자들은 죄 군대를 다녀오지 않던가.

영철 또한 사격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기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좋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서 산기슭 언저리에 자리를 잡은 참이었다.

이것도 용기를 낸 결과였고, 해 뜨기 전에 뜰 생각이었다.

그전까지는 어스름한 빛에 비쳐 보이는 옥상 위의 인원들을 살필 요량이었는데, 저게 전부라 해도 지금 당장은 어려울 듯싶었다.

‘몇 놈이나 있는 거야?’

같은 무리 내에서도 미친놈으로 통하는 그였지만, 정말 미친놈이었다면 지금껏 살아남지도 못했을 터였다.

겉으로 내비치는 모습은 말하자면 위장이었다.

상대의 방심 내지는 두려움을 이끌어 내기 위한.

동시에 무리 내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대우를 받기 위한.

‘일단…… 알아만 둘까? 아니면……. 흐음. 이건 조언을 구해야겠는데.’

하여간, 영철은 괴팍한 인상이 아니라 침착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턱밑을 쓸어내렸다.

기실 이만한 규모의 무리를 상대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긴 했다.

오래 걸리긴 했을지언정, 바닥부터 무너뜨리는 방식을 택하면 되기는 할 터였다.

‘아니, 되려나? 정말?’

그때 상대했던 건 노인들의 무리였다.

고생했던 것에 비해 얻은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쇠약했던 무리였다.

먹을 만한 것들은 싸우다 죽어 버려서 더 그랬다.

그에 비해 이쪽 무리는 만약 이긴다면 얻는 게 어마어마하겠지만…….

‘시발.’

이길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되었다.

죽는 건 무섭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긴 했지만…….

그런 말도 있지 않나.

돈에 관심 없다고 하는 놈이야말로 돈에 미친 놈이라는 말.

만고불변의 진리라 생각했다.

아마도 그 누구보다 죽기 싫은 이가 영철 본인일 테니.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미친놈을 가장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굳이 근육질의 사내를 뜯어 먹고 다니지도 않았을 터였다.

“찾았다. 저 새끼……. 진짜로 안 가고 보고 있네?”

그때, 김태평이 영철을 찾았다.

정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탓에 태반이 고장 난 와중에, 딱 하나 남은 적외선 감지 장비를 이용한 결과물이었다.

“쏠 수 있을까요?”

“아니, 이걸 맞히는 건 말이 안 돼. 저격총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너네는 왜 하필 죄다 이것만 들고 있어?”

“이것만 주니까요…….”

“아, 그렇지.”

김태평은 k2를 쥐고 흔들다가, 이내 1km 너머에 있는 것이 분명한 영철을 바라보았다.

사실 저게 사람인지 뭔지 여부도 불명확한 상황이었다.

얼굴 식별은커녕 그냥 살아 있는 무언가라는 것만 확인 가능한 거리였으니까.

다만 영철임을, 그러니까 따라붙은 놈일 거라고 확신하게 된 근거는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면 저렇게 한 자리에 숨어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쏠 이유가 없긴 하지.”

“네?”

“따라붙어 보자.”

“아…….”

저쪽은 이쪽의 본거지를 아는데, 이쪽은 딱히 아는 게 없는 상황이지 않나.

정보 비대칭이 반드시 패로 이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손해 봐서 좋을 건 없었다.

게다가 이쪽은 김태평을 비롯한 여러 정보 요원도 있는데 오히려 정보가 후달린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다.

“가시죠.”

“많이 가는 건 안 돼. 저 새끼 감이 좋아.”

“음.”

“배운 게 아닌데 저 정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지. 일단 저렇게 강탈하는 수법을 쓰면서 여지껏 살아남았다는 게 대단한 거야.”

“그렇죠. 그럼 저랑만 같이 가시죠.”

“그래, 네가 좋겠네.”

그렇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 들키면…….

‘들키고 저 새끼 목만 따면 어차피 피차 아무것도 모르게 될 테니까 상관없긴 하지.’

통신으로 본거지에 이쪽 위치를 알렸을까?

그럴 수는 없을 터였다.

라디오 송수신 장비를 들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거 주렁주렁 매달고도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놈이라면, 혼자서 이미 쳐들어와서 다 죽이지 않았을까?

영화에나 나오는 놈일 터였다, 그런 놈은.

“가자.”

“네.”

하여간 지금은 이쪽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김태평은 어둠 속에서도 놈을 찾을 수 있지만, 놈은 그게 아니니까.

별과 달에만 의지해서 길을 찾을 수 있었다면 인류가 굳이 전등을 만들었겠나.

칠흑 같은 어둠은 모두에게 공평한 법이었다.

“이 정도 거리가 적당하겠어.”

“너무 먼 거 아닙니까? 500미터는 더 떨어져 있는데요.”

“더 붙으면 혹시 몰라.”

“으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어차피 근거지 알아내는 게 단데.”

“하긴……. 그건 그렇죠.”

김태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밤이라 해도 소음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산에 불어닥치는 바람 소리는, 달리는 차 소리에 비견될 만큼 커다랬다.

‘슬슬 튀어야겠네. 지독한 놈들이……. 교대도 하는 걸 보니까, 숫자가 꽤 돼.’

영철은 그러한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긴 했지만, 그 말은 곧 아직 뜨기 전이라는 말과 같지 않겠나.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저 봐. 저 새끼. 보통내기가 아니라니까?”

“그렇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철은 그리 느리지 않은 속도로 산길을 타고 있었다.

유현과 비견될 만한 움직임이었는데, 오히려 그보다도 나은 감도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배울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지 않던가.

선을 넘는 그 감각.

야만의 성질.

영철은 그걸 지니고 있었다.

“일단 조용히 하고 따라가자고.”

“네네.”

김태평은 그런 영철의 뒤를 살포시 밟았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쫓아가는 일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 둘은 그런 일에 있어서 오히려 프로지 않나.

게다가 장비까지 있다 보니 더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경계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영철의 눈치뿐이었다.

“후…….”

산을 내려온 영철은 심호흡을 한 후, 곧장 걸음을 옮겼다.

방향은 낮에 향했던 폐허가 된 마을이 아니라 북쪽이었다.

“설마 멀지는 않겠죠?”

“걸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선 그렇게 멀진 않을걸.”

“미친놈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홀로 휘영청 휘어진 달빛을 따라 걷는 그를 보면서 요원이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얼굴이 되어 말했다.

제아무리 훈련받은 사람들이고 또 총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쫄리지 않나.

지금 같은 세상에 도보로 먼 길을 걷는다는 건…….

자살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벅저벅

그러거나 말거나 영철은 걷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작살을, 다른 한 손에는 사시미를 든 채였다.

라드 한둘 정도는 위협으로 느끼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근처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거나.

“수원으로 향하는 길인데…….”

그렇게 걷다 보니, 김태평은 어느덧 익숙한 길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길로 향하고 있진 않았다.

거기서 옆으로 틀었다.

동탄이 나오는 길이었다.

“인구 밀집 지역입니다.”

“폭격 대상 지역이기도 했어. 오히려…… 빈집에 틀어박혔으면 거기가 더 안전했을 수도…….”

인구 밀집 지역이라는 말은 곧 라드도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요원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김태평은 우선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곤 계속 걸었다.

아무래도 별거 없는 거리다 보니 멀리 떨어져 걸어야만 했다.

해도 뜨기 시작한 마당이라 더더욱 그랬다.

그 말은 곧 아차 하면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여기는 처음 보는 길인데……. 주변에 뭐가 많으니까 주의해.”

“네.”

“저놈은 내가 볼 테니까 너는 주변을 봐.”

“네. 걱정 마십쇼.”

요원도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불안해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조용한 걸음을 끊임없이 옮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 늘어서 있는 건물 폐허 살피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툭 하고 앞서가던 김태평의 등에 부딪혔다.

드문 일이었고 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왜…….”

“이 미친놈들이.”

김태평은 건물 폐허마다 매달려 있는 시신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왜 라드조차 보기 힘든가 했더니…….

바로 이 때문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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